[번역문]
나는 잠자기를 좋아한다. 차가운 등불 심지를 다 돋우며 밤새도록 괴로이 읊조려 보기도 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잠자는 것이 낫다. 수암주인은 이를 먼저 터득한 사람이다. 수암주인은 누구인가. 해상(海上) 김성표(金聲表) 군이다. 그는 젊은 시절 부지런히 책을 읽고 농사를 지었다.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며 촌음을 아꼈으니, 어찌 편안히 자는 것을 능사로 여기겠는가. 지금 세상이 옛날 같지 않으니,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으려고 꼼짝도 않은 채 집 이름을 수암이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세상을 잊는 방법을 배웠다. 긴 꿈에서 먼저 깨어나는 그 날이 과연 올 것인가. 나는 주인이 동쪽 창가에서 자고 깨는 모습을 보며 순환하는 세상의 운수를 점쳐 보리라. 아들 율관(栗寬)이 책을 들고 내게 와서 배우다가 돌아가게 되자 이 글을 써서 보낸다.
[원문]
渴睡余挑盡寒燈, 竟夜苦吟, 無益不如睡. 睡菴主人, 其先見者耶. 主人爲誰, 海上金君聲表. 少日蓋嘗劬書明農, 晨興灑掃, 寸陰是惜, 豈以穩睡爲能事. 而見今世運不古, 不見不欲見, 不聞不欲聞, 瞥然而凝, 以睡爲菴. 吾於是得忘世之術, 而大夢先覺, 或有其日耶. 吾將以主人之東牕睡覺, 占世運之循環矣. 胤子栗寬挾書從余, 及歸書此以寄之.
- 기우만(奇宇萬, 1846~1916), 「수암소기(睡菴小記)」, 『송사집(松沙集)』 권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