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이후백(李後白)이 전조(銓曹)의 장관이 되어 공론을 숭상하고 청탁을 받지 않으니 정사가 볼 만하였다. 아무리 친구라도 자주 찾아와 안부를 살피면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루는 일가 사람이 찾아왔는데, 말을 나누던 차에 관직을 구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후백이 안색을 바꾸고 사람들의 성명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 작은 책자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앞으로 관직에 제수할 사람들이었으며 일가 사람의 이름도 기록 안에 들어있었다. 이후백이 말하기를,
“내가 그대 이름을 기록하여 후보자로 추천하려고 했었네. 그런데 지금 그대가 관직을 구한다는 말을 하니, 만약 구한 자가 얻게 된다면 그것은 공정한 도리가 아닐세. 참으로 애석하네만,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네.”
하니, 그 사람이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이후백은 관직 하나를 제수할 때면 매번 벼슬할만한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폭넓게 물었으며,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 제수했을 경우에는 번번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랏일을 그르쳤구나.”라고 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여론이 이후백의 공정한 마음은 근세에 비할 사람이 없다고 여겼다. [원문]
後白爲銓長, 務崇公論, 不受請託, 政事可觀. 雖親舊, 若頻往候之, 則深以爲不韙. 一日, 有族人往見, 語次示求官之意. 後白變色, 示以一小冊子, 多記人姓名, 將以除官者也; 其族人姓名, 亦在錄中. 後白曰: “吾錄子名, 將以擬望. 今子有求官之語, 若求者得之, 則非公道也. 惜乎! 子若不言, 可以得官矣.” 其人大慙而退. 後白每除一官, 必遍問其人可仕與否, 若誤除不合之人, 則輒終夜不眠曰: “我誤國事.” 時論以“後白之公心, 近世無比.”
- 이이(李珥, 1536~1584), 「경연일기(經筵日記)」, 『율곡전서(栗谷全書)』 제3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