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7년(1731)에 임금이 이의만(李宜晩, 1650〜1736)을 인견(引見)하였는데, 그는 82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력과 정신이 또렷한 데다 청렴결백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영조는 ‘나를 수양하는 공부와 학문의 공부는 차이가 있는데 수양의 공부를 쌓고 또 천수까지 누리는 비결’에 대해서 이의만에게 물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은 젊어서부터 병이 많아 마음을 수양하는 방도에 대해 생각했지만 요체는 터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말년에 ‘절(節)’ 한 글자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했는데 그 도움이 과연 컸습니다. 『주역』에 ‘제도로써 절용하면 재물을 손상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해치지 아니한다.[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라고 하였고, 『논어』에 ‘씀씀이를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한다.[節用而愛民]’라고 하였으니, 이 ‘절’ 한 글자는 요긴한 쓰임이 참으로 넓고 큽니다. 대체로 기욕(嗜慾)을 절제하고 언어를 절제하면 양생(養生)할 수 있고, 재용을 절약하고 민력을 절약하면 정사를 다스릴 수 있으니, 이를 천하의 모든 일에 미루어 보면 절실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몸을 다스리는 데는 기욕을 절제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국가를 다스릴 때는 재용을 절약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 ‘절’ 한 글자를 자기 자신과 국가에 쓴다면 종묘사직이 안정될 것임을 밝혀 영조에게도 유의하기를 권면한 것이다.
옛날, 학자들이나 초야에 있던 선비들은 자신의 수양 공부에 있어 글자 하나에 뜻을 두고서 깊이 있게 사색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나는 평생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비방도 피하지 않고서 오직 ‘시(是)’ 자만을 구했다.”라고 하면서, 이를 고집하다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하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각자의 삶을 끌고 갈 한 글자의 대의(大義)를 마음에 깊이 새겨, 이를 잘 갈고 닦아 한층 더 깊이 있는 인생을 엮어 가기 바란다. 설령 중간에 그로 인해 곤란을 당할지라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고집을 부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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