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백열한 번째 이야기
2016년 1월 25일 (월)
빚 갚는 사회

[번역문]

예로부터 이 세상에 빚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현은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드리우는 것이 빚이고 학자는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을 잇는 것이 빚이며,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 빚이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빚입니다. 고금의 논객들은 장자방(張子房)*을 두고 빚을 다 갚은 사람이라고 합니다만 그 궁극을 따져 말한다면 어찌 다 갚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빚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빚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저 빚을 갚기만을 바라며, 빚이 있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저 빚이 없는 사람이 될까 염려할 뿐입니다. 저는 마음속에 빚 문서가 수북이 쌓여 있는데 아직 한 푼도 청산하지 못하여 늘 개탄하고 있습니다.

* 자방은 장량(張良)의 자(字)이다. 본래 한(韓)나라에서 대를 이어 정승 벼슬한 사람으로, 한나라가 진(秦)나라에 멸망당하자 조국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가재(家財)를 털어 진시황(秦始皇)의 암살을 도모하였다. 후에 한 고조(漢高祖)를 도와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공을 다 이룬 뒤에는 물욕을 버리고 물러나 신선의 도를 즐겼으므로 세상에 빚이 없는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원문]

從古以來, 天下無無債人. 聖賢以立敎垂世爲債, 學者以爲去聖·繼絶學爲債, 臣之於君·子之於父,以忠孝爲債. 古今論者, 以張子房爲了債人, 然若究其極而言之, 豈可謂了之乎? 無債人, 天下之棄物也. 不願無債, 而但願塞其債; 不患有債, 而只恐爲無債人. 銖心中債帳積如, 而未能淸一分, 尋常慨歎.


- 박수(朴銖, 1864~1918), 『중당유고(中堂遺稿)』 권1, 「여김취오(與金聚五)」


빚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환을 전제로 남에게 빌린 물질적인 빚이고,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 신세지고 도움받으며 사는 마음의 빚이다. 윗글의 저자 박수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가 통상 말하는 구한말이다. 지도층은 분열되어 있었고, 외세는 숨통을 조여와 물질적인 궁핍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인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서민이 살기는 얼마나 팍팍했을지 민심은 또 얼마나 이반되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윗글에서 박수가 말하는 빚은 마음의 빚인 동시에 자신의 책무이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 근원적인 빚을 지고 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박수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빚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통상 사람들은 자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남의 책무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게다가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했듯이 마음의 빚은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구한말은 500여 년을 유지해 오던 한 왕조가 스러져가던 때였다. 당시의 서민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삶을 겨우겨우 버텨나갔을 것이다. 자신이 지고 있는 근원적인 빚이나 마음의 빚을 갚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박수와 같은 당시의 지식인들은 “빚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그저 빚을 갚기만을 바라며, 빚이 있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저 빚이 없는 사람이 될까 염려할 뿐”이라고 권고하며 마음의 빚을 상기시켰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의 팽창으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시발점은 1997년의 외환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로 크게 어려움을 겪은 기업이 부채의 비중을 줄이고 자산을 늘리는 데에 주력하자 은행은 대출의 새로운 대상을 개인으로 돌려 출구를 찾았다. 또한, 정부는 경기 활성을 위해 소비자금융 확대를 유도했다. 이와 맞물려 부동산 거품이 일면서 개인이 빚을 내 부동산투기를 하는 이른바 ‘빚테크’ 열풍이 불었다. 이것은 한동안 경기 부양의 효과를 가져왔지만 결국 가계부채의 팽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자산이 되어줄 줄 알았던 부동산이 불과 20년도 안 되어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는 속칭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자영업푸어, 카푸어 등 ‘푸어(poor)’를 꼬리표로 달고 있는 불건전한 가계 상태가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을 넘을 것이라 예상하며 이것이 우리 경제의 위험한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경고하고 있다. 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는 국민 10명 중 7명이 빚을 지고 있다 하니 빚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마냥 과장인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지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상환해야 할 물질적인 빚만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마음의 빚은 구석으로 내몰리고 외면당하여 아예 사라져버리고 말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한들 출구조차 보이지 않았던 구한말의 어려움에 비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마음의 빚을 상기시키는 지식인이 있었고 물질적인 빚에 매몰되지 않는 서민의 건전한 정신이 있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물질적인 빚이 만연한 지금 다시 새롭게 상기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상환해야 할 물질적인 빚은 마음의 빚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이라면 국민 대다수가 마음의 빚을 내던지고 이 하찮은 물질적인 빚에 전전긍긍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올 한해는 정부의 가계부채에 대한 정책이 실효성 있게 시행되어 크고 작은 빚에 시달리는 서민이 큰 어려움 없이 가계 빚을 상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비록 빚 갚기에 바빠 살기가 팍팍한 현실이지만 박수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근원적인 빚과 마음의 빚을 서로서로 갚아가는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 선종순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전주분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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