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인형과 나무 인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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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수저계급론’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수저계급론은 자식의 사회적 계급이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에 의해 대물림된다는 이론이다. 유럽 귀족층에서 은(銀) 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은수저로 젖을 떠먹이던 풍습에서 유래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말에서 가져온 용어이다. 사람들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계급을 나누고 각각에 해당하는 재산과 수입까지도 규정하고 있는데, 흙수저란 부모의 능력이나 형편이 넉넉지 못해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사기(史記)』「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도 힘없는 자를 흙 인형에, 권세 있는 자를 나무 인형에 비유한 고사가 보인다. 전국 시대 맹상군이 명성을 떨치자 진(秦)나라 왕이 그를 초대했는데, 소대(蘇代)가 맹상군이 가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대목이다.
소대는 맹상군에게 권세를 누리려다 이국땅에서 외로운 신세가 될 수도 있음을 흙 인형과 나무 인형 비유로 전하였고,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는 것을 단념했다고 한다.
이 글을 쓴 성대중은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서얼로 태어났다. 두터운 신분의 벽을 누구보다도 절감했을 그가 나무 인형을 부러워하지 않고 진흙 인형인 것이 다행스럽다고 한 것은 괜히 한 말이 아니다. 동해가 세 번이나 뽕밭으로 변하는 것을 볼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마고 선녀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도 살 만큼 산 사람으로서 세상을 보니, 권세라는 것이 허망하기 짝이 없음을 통찰하고서 한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큰 격랑을 만났다. 힘없는 ‘흙 인형’들은 격랑 속에서 풀어져 광장에서 커다란 대지를 이루었다. 반면 권세를 지니고 떵떵거리던 ‘나무 인형’들은 도도한 정의의 물결 위에서 겉돌며 갈 곳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가 권세의 허망함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사실 격랑 속에서 어떤 신세가 되느냐는 권세를 지녔느냐 못 지녔느냐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행사했느냐에 달려 있다. 권세를 지닌 자들이 흙 인형들과 함께하며 흙 인형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국민들은 그들에게 흙을 북돋워 줄 것이다. 그러면 권세를 지닌 자들은 국민이 바라보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권세를 지닌 자들이 혹시라도 ‘나는 너희와는 다른 나무 인형이야.’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얼마 뒤 물 위에 둥둥 떠 비웃음을 사면서도 돌아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지 않아도 좋을 역사를 반복해서 경험해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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