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노인과 허 선생의 역사 이야기 : 거꾸로 보는 중국사
역사는 진보하는 것일까. 소달구지의 시대보다 자동차의 시대가 더 나은 것은 사실인가? 하지만, 자동차의 시대에 들어와 교통 사고가 급증하여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것은 어째서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교통 수단이 진화해 온 역사에 대해서는 친숙하면서 교통 사고가 진화해 온 역사에 대해서 익숙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왜 우리는 세계사의 진행을 인류 개체가 행복하게 증가해 온 역사로만 기억하고 동물 개체가 불행하게 감소해 온 역사로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세계사의 진행을 유럽 문명이 행복하게 건설되어 온 역사로만 기억하고 비유럽 문명이 불행하게 파괴되어 온 역사로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중국사의 진행을 도덕적인 이념이 전개되어 온 역사로만 기억하고 부도덕한 욕망이 증대해 온 역사로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역사의 현실은 복잡한데 왜 우리의 역사 감각은 이다지도 일면적인가? 거꾸로 보는 역사의 미덕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실 노인[實翁]이 말했다. “(중략) 기주(冀州)는 사방 천 리로 중국이라 일컫는다. 산을 등지고 바다에 임하매 바람과 물이 넉넉하고, 해와 달이 맑게 비치매 춥고 더움이 알맞고, 물과 산이 영기(靈氣)를 모으매 선량한 사람들이 탄생하였다. 대개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ㆍ요순(堯舜)이 일어나서 초가집에 살면서 자기부터 검소한 덕을 닦아 백성의 재산을 마련하였으며, 공손하고 겸양한 모습으로 밝은 덕을 몸소 실천하여 백성의 인륜을 바로잡았다. 문(文)의 가르침이 차고 넘쳐서 천하가 화락하였다. 이것이 중국에서 이른바 성인이 공력과 감화로 구현한 지극한 치세였다. (중략) 하후(夏后)가 천자의 자리를 아들에게 전하게 되자 백성이 비로소 제집 이익만 꾀하게 되었고, 탕(湯)․무(武)가 임금을 내쫓고 죽이자 백성이 비로소 윗사람을 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몇몇 임금의 허물은 아니다. 지극한 치세 후에 점차 쇠란이 일어나는 것은 시세가 절로 그러한 것이다.
〈원문〉 冀方千里。號稱中國。負山臨海。風水渾厚。日月淸照。寒暑適宜。河嶽鍾靈。篤生善良。夫伏羲神農黃帝堯舜氏作而茅茨土階。身先儉德。以制民產。欽文恭讓。躬行明德。以敷民彜。文敎洋溢。天下煕皥。此中國所謂聖人之功化至治之世也。(중략) 夏后傳子而民始私其家。湯武放殺而民始犯其上。非數君之過也。至治之餘。衰亂之漸。時勢然矣。夏忠商質。比唐虞則已文矣。成周之制。專尙夸華。降自昭穆。君綱已替。政在列侯。徒擁虛器。寄生於上。不待幽厲之傷而天下之無周久矣。(중략) 自周以來。王道日喪。覇術橫行。假仁者帝。兵彊者王。用智者貴。善媚者榮。君之御臣。啗以寵祿。臣之事君。餂以權謀。半面合契。隻眼防患。上下掎角。共成其私。嗟呼咄哉。天下穰穰。懷利以相接。(중략) 或曰。木石之灾。肇於有巢。鳥獸之禍。創於包羲。飢饉之憂。由於燧人。巧僞之智。華靡之習。本於蒼頡。縫掖之偉容。不如左袵之便易。揖讓之虛禮。不如膜拜之眞率。文章之空言。不如騎射之實用。暖衣火食。體骨脆軟。不如毳幕潼酪。筋脉勁悍。此或是過甚之論。而中國之不振則所由來者漸矣。混沌鑿而大樸散。文治勝而武力衰。處士橫議。周道日蹙。秦皇焚書。漢業少康。石渠分爭。新莽簒位。鄭馬演經。三國分裂。晉氏淸談。神州陸沈。(중략) 遼金迭主。合於松漠。朱氏失統。天下薙髮。夫南風之不競。胡運之日長。乃人事之感召。天時之必然也。虛子曰。孔子作春秋。內中國而外四夷。夫華夷之分。如是其嚴。今夫子歸之於人事之感召。天時之必然。無乃不可乎。 實翁曰。(중략) 自天視之。豈有內外之分哉。(중략) 夫天地變而人物繁。人物繁而物我形。物我形而內外分。(중략) 孔子周人也。(중략) 春秋者周書也。內外之嚴。不亦宜乎。雖然。使孔子浮于海。居九夷。用夏變夷。興周道於域外。則內外之分。尊攘之義。自當有域外春秋。此孔子之所以爲聖人也。 - 홍대용(洪大容),〈의무려산(醫巫閭山)에서 실 노인[實翁]과 허 선생[虛子]이 나눈 문답[醫山問答]〉,《담헌서(湛軒書)》
〈해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일 뿐이다.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실제로는 상대적인 것이었음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실학(實學)이다. 상대적인 것들을 반드시 안과 밖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구획하여 어느 한 쪽에 배치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허학(虛學)이다. 사물은 그 자체로서 이해되지 않고 항상 어떤 주어진 의미로서 이해되기 마련인지라 보통 사람들은 수많은 안과 밖의 그물망에 의해 사물에 덧씌워진 의미를 곧 그 사물이라 착각하기 쉽다. 질서와 규범에 의해 존재에 부과된 의미를 존재 그 자체로 오해하기 쉽다. 허학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실학은 그러한 그물망을 벗겨낸다. 의미로부터 존재를 풀어 준다. 의미는 비어 있지만 사물은 채워져 있다. 비어 있는 의미를 배우는 학문은 허학이지만 채워져 있는 사물을 배우는 학문은 실학이다. 질서 이전의 존재, 질서에 의해 부과된 의미 이전의 존재, 그런 존재를 꿈꿀 수는 없는 것일까. 참으로 이 세상에 대해 실학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지은 철학소설 「의산문답」은 조선후기의 문제작이다. 중국의 안과 중국의 밖을 가르는 경계에 있는 의무려산(醫巫閭山)에서 실 노인[實翁]과 허 선생[虛子] 사이에 오고가는 철학적 대화는 그 전까지 조선 사회에서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주고 있다. 예문으로 제시된 부분은 「의산문답」의 마지막 부분으로 고금(古今)의 변화와 화이(華夷)의 분별에 관해 허 선생이 가르침을 청하자 실 노인이 열변을 토하는 대목이다. 실 노인은 말한다. 역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역사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이제까지 역사라는 존재를 구획해 왔던 ‘안과 밖’의 관념, 곧 문명과 야만의 관념에 근접하는 ‘중화와 오랑캐’의 관념은 실체가 있는 것[實]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것[虛]이었다고. 중국의 역사는 항상 실체적으로 문명의 역사, 중화의 역사, 안쪽의 역사로 생각되어 왔고 거기에 합당한 의미를 갖춘 사실(fact)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실제로 그러한 사실들과 충돌하는 수많은 반사실(counterfact)들이 감추어져 있었다고. 사실과 달리 우(禹) 임금은 중국에서 세습 왕조를 처음 열어 준 욕망의 임금이고, 탕(湯) 임금과 무(武) 임금은 윗사람에게 대항하여 역성 혁명을 성취한 부도덕의 임금이었다는 것. 사실과 달리 진(秦) 시황제의 가공할만한 분서갱유가 도리어 한(漢) 나라의 행복을 열어 주고, 전한(前漢) 시대의 치열한 경학 논쟁이 도리어 전한의 멸망을 초래하였다는 것. 실 노인은 중국의 역사와 유교 이념 사이의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천천히 즐기며 이를 천시의 필연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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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참고사항 |
글쓴이 / 노관범 2010. 6.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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