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 역본의도 / 복희육십사괘차서지도(伏羲六十四卦次序之圖)

▣ 복희육십사괘차서지도(伏羲六十四卦次序之圖)





右前八卦次序圖는 卽繫辭傳所謂八卦成列者요 此圖는 卽其所謂因而重之者也라 故로 下三은 卽前圖之八卦요 上三은 則各以其序重之하고 而下卦因亦各衍而爲八也라 若逐爻漸生하면 則邵子所謂八分爲十六, 十六分爲三十二, 三十二分爲六十四者니 尤見法象自然之妙也니라


이상 앞의 팔괘차서도(八卦次序圖)는 곧 〈계사전(繫辭傳)〉의 이른바 ‘팔괘(八卦)가 열을 이루었다’는 것이며, 이 도(圖)는 곧 이른바 ‘인하여 거듭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3획은 곧 앞 도(圖)의 팔괘(八卦)이며, 위의 3획은 각각 순서대로 거듭한 것이고, 아래의 괘(卦)는 또한 각각 부연하여 8을 만든 것이다. 만약 효(爻)마다 점점 생겨나면 소자(邵子)의 이른바 ‘8이 나뉘어 16이 되고 16이 나뉘어 32가 되고 32가 나뉘어 64가 되었다’는 것이니, 더욱 법(法)과 상(象)의 자연한 묘리(妙理)를 볼 수 있다.


【附錄】朱子曰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此一節은 乃孔子發明伏羲卦自然之形體次第니 最爲切要라 古今說者에 惟康節明道二先生이 爲能知之라 故로 康節之言曰 一分爲二하고 二分爲四하고 四分爲八하고 八分爲十六하고 十六分爲三十二하고 三十二分爲六十四하니 猶根之有, 之有枝하여 愈大則愈少하고 愈細則愈繁이라하고 而明道先生以爲加一倍法이라하시니 其發明孔子之言이 又可謂最切要矣로다


주자(朱子)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는다’는 이 한 절(節)은 바로 공자(孔子)께서 복희(伏羲)가 괘(卦)를 그은 자연의 형체(形體)와 차례를 발명하신 것이니, 가장 간절하고 긴요하다. 고금(古今)에 설명한 자들 중에 오직 강절(康節)과 명도(明道) 두 선생이 이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강절(康節)의 말씀에 이르기를 ‘1이 나뉘어 2가 되고 2가 나뉘어 4가 되고 4가 나뉘어 8이 되고 8이 나뉘어 16이 되고 16이 나뉘어 32가 되고 32가 나뉘어 64가 되었으니, 뿌리에 줄기가 있고 줄기에 가지가 있는 것과 같아서 더욱 커질수록 더욱 적어지고 더욱 세세해질수록 더욱 많아진다.’고 하였으며, 명도선생(明道先生)은 이것을 ‘일배(一倍)를 더하는 법(法)이다.’ 하였으니, 공자(孔子)의 말씀을 발명함이 또 가장 간절하고 긴요하다 할 것이다.


蓋以河圖洛書論之하면 太極者는 虛中之象也요 兩儀者는 陰陽奇偶之象也며 四象者는 河圖之一合六, 二合七, 三合八, 四合九요 洛書之一含九, 二含八, 三含七, 四含六也며 八卦者는 河圖四實四虛之數요 洛書四正四隅之位也라 以卦言之하면 太極者는 象數未形之全體也요 兩儀者는 爲陽而爲陰하니 陽數一而陰數二也요 四象者는 陽之上에 生一陽하면 則爲而謂之太陽하고 生一陰하면 則爲而謂之少陰하고 陰之上에 生一陽하면 則爲而謂之少陽하고 生一陰하면 則爲而謂之太陰也라 四象旣立하면 則太陽居一而含九하고 少陰居二而含八하고 少陽居三而含七하고 太陰居四而含六하니 此는 六七八九之數所由定也라 八卦者는 太陽之上에 生一陽하면 則爲而名乾하고 生一陰하면 則爲而名兌하며 少陰之上에 生一陽하면 則爲而名離하고 生一陰하면 則爲而名震하며 少陽之上에 生一陽하면 則爲而名巽하고 生一陰하면 則爲而名坎하며 太陰之上에 生一陽하면 則爲而名艮하고 生一陰하면 則爲而名坤하니 康節先天之說에 所謂乾一, 兌二, 離三, 震四, 巽五, 坎六, 艮七, 坤八者 蓋謂此也라 至於八卦之上에 又各生一陰一陽하면 則爲四者十有六이니 經雖无文이나 而康節所謂八分爲十六者此也요 四之上에 又各生一陰一陽하면 則爲五者三十有二니 經雖无文이나 而康節所謂十六分爲三十二者此也요 五之上에 又各生一陰一陽하면 則爲六之卦 六十有四而八卦相重하여 又各得乾一, 兌二, 離三, 震四, 巽五, 坎六, 艮七, 坤八之次하니 其在圖可見矣니라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가지고 논하면 태극(太極)은 중앙을 비운 상(象)이고 양의(兩儀)는 음양(陰陽)의 기우(奇偶)의 상(象)이며 사상(四象)은 하도(河圖)에 1이 6을, 2가 7을, 3이 8을, 4가 9를 합한 것이며, 낙서(洛書)에 1이 9를, 2가 8을, 3이 7을, 4가 6을 포함한 것이며, 팔괘(八卦)는 하도(河圖)의 사실(四實)·사허(四虛)의 수(數)이고 낙서(洛書)의 사정(四正)·사우(四隅)의 위치이다.

괘(卦)를 그은 것을 가지고 말하면 태극(太極)은 상수(象數)가 아직 나타나기 이전의 전체이며 양의(兩儀)는 가 양(陽)이 되고 가 음(陰)이 되니, 양(陽)의 수는 1이고 음(陰)의 수는 2이며, 사상(四象)은 양(陽)의 위에 한 양(陽)을 낳으면 가 되어 태양(太陽)이라 이르고 한 음(陰)을 낳으면 가 되어 소음(少陰)이라 이르며, 음(陰)의 위에 한 양(陽)을 낳으면 가 되어 소양(少陽)이라 이르고 한 음(陰)을 낳으면 가 되어 태음(太陰)이라 이른다. 사상(四象)이 이미 확립되면 태양(太陽)이 1에 거하여 9를 포함하고 소음(少陰)이 2에 거하여 8을 포함하고 소양(少陽)이 3에 거하여 7을 포함하고 태음(太陰)이 4에 거하여 6을 포함하니, 이는 6·7·8·9의 수가 말미암아 정해진 것이다.

팔괘(八卦)는 태양(太陽)의 위에 한 양(陽)을 낳으면 가 되어 건(乾)이라 이름하고 한 음(陰)을 낳으면 가 되어 태(兌)라 이름하며, 소음(少陰)의 위에 한 양(陽)을 낳으면 가 되어 이(離)라 이름하고 한 음(陰)을 낳으면 가 되어 진(震)이라 이름하며, 소양(少陽)의 위에 한 양(陽)을 낳으면 가 되어 손(巽)이라 이름하고 한 음(陰)을 낳으면 가 되어 감(坎)이라 이름하며, 태음(太陰)의 위에 한 양(陽)을 낳으면 가 되어 간(艮)이라 이름하고 한 음(陰)을 낳으면 가 되어 곤(坤)이라 이름하니, 강절(康節)의 선천설(先天說)에 이른바 ‘건(乾)이 1이고 태(兌)가 2이고 이(離)가 3이고 진(震)이 4이고 손(巽)이 5이고 감(坎)이 6이고 간(艮)이 7이고 곤(坤)이 8이다’란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팔괘(八卦)의 위에 또 각각 한 음(陰)과 한 양(陽)을 낳게 되면 4획이 된 것이 16개이니, 경(經)에는 비록 글이 없으나 강절(康節)의 이른바 ‘8이 나뉘어 16이 되었다’는 것이 이것이다. 4획의 위에 또 각각 한 음(陰)과 한 양(陽)을 낳으면 5획이 된 것이 32개이니, 경(經)에는 비록 글이 없으나 강절(康節)의 이른바 ‘16이 나뉘어 32가 되었다’는 것이 이것이다. 5획의 위에 또 각각 한 음(陰)과 한 양(陽)을 낳으면 6획의 괘(卦)가 64개가 되어 팔괘(八卦)가 서로 거듭하여[겹쳐져] 또 각각 건(乾)이 1이고 태(兌)가 2이고 이(離)가 3이고 진(震)이 4이고 손(巽)이 5이고 감(坎)이 6이고 간(艮)이 7이고 곤(坤)이 8인 차례를 얻게 되니, 도(圖)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 天地之間이 莫非太極陰陽之妙라 聖人이 仰觀俯察하고 遠求近取하시니 固有超然而默契於心矣라 故로 自兩儀未分하여 渾然太極으로 而兩儀, 四象, 六十四卦之理 已粲然於其中이요 太極分而兩儀면 則太極은 固太極이요 兩儀는 固兩儀也며 兩儀分而四象이면 則兩儀又爲太極이요 而四象又爲兩儀矣라 自是而推하면 四而八하고 八而十六하고 十六而三十二하고 三十二而六十四하여 以至於有百千萬億之无窮하니 雖見於摸은 若有先後而出於人爲나 然其已定之形과 已成之勢가 固已具於渾然之中하여 而不容毫髮思慮作爲於其間也니라


천지(天地)의 사이에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의 묘리(妙理) 아닌 것이 없다. 성인(聖人)이 우러러보고 굽어살피며 멀리서 구하고 가까이에서 취하였으니, 진실로 초연히 마음에 묵계(默契)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양의(兩儀)가 나뉘지 않아 혼연(渾然)한 태극(太極)일 때로부터 양의(兩儀), 사상(四象), 64괘(卦)의 이치가 이미 그 가운데에 찬란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태극(太極)이 나뉘어 양의(兩儀)가 되면 태극(太極)은 진실로 태극(太極)이고 양의(兩儀)는 진실로 양의(兩儀)이며, 양의(兩儀)가 나뉘어 사상(四象)이 되면 양의(兩儀)는 또 태극(太極)이 되고 사상(四象)은 또 양의(兩儀)가 된다. 이로부터 미루어 나가면 4에서 8이 되고 8에서 16이 되고 16에서 32가 되고 32에서 64가 되어 백천만억의 무궁함에 이르게 되니, 비록 모획(摸)에 나타난 것은 선후(先後)가 있어 인위(人爲)에서 나온 듯하나 이미 정해진 형체(形體)와 이미 이루어진 세(勢)는 진실로 혼연(渾然)한 가운데에 이미 갖추어져 있어서 털끝만큼의 사려(思慮)나 작위(作爲)함도 그 사이에 용납하지 않는다.


○ 答袁樞曰 要見得聖人作易根原의 直截分明인댄 不如且看卷首橫圖라 自始初止有兩時로 漸次看起하여 以至生滿六之後면 其先後多寡旣有次第而位置分明하여 不費辭說이라 於此看得하면 方見六十四卦 全是天理自然排出來니라 聖人이 只是見得分明하여 便只依本出이요 元不曾用一毫智力添助시니라


원추(袁樞)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은 근원의 직절하고 분명함을 보고자 한다면 우선 책 머리의 횡도(橫圖)를 보는 것만 못하다. 처음에 다만 두 획이 있을 때로부터 점차 보아서 6획을 낳아 가득한 뒤에 이르면 선후(先後)와 다과(多寡)가 이미 차례가 있고 위치가 분명하여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서 관찰하여 터득하면 바야흐로 64괘(卦)가 완전히 천리(天理)에서 자연히 배열되어 나온 것임을 볼 것이다. 성인(聖人)이 다만 이것을 봄이 분명하여 근본에 따라 그려낸 것 뿐이요, 원래부터 일찍이 한 털끝만치라도 지혜와 힘을 써서 더하거나 돕지 않았다.”


○ 問四爻五爻者는 何所主名이니잇고 曰 一爲儀요 二爲象이요 三爲卦니 則八卦備矣라 此上에 若旋次各加陰陽一하여 則積至三重하여 再成八卦者八이면 方有六十四卦之名이라 若徑以八卦로 加乎一卦之上이면 則亦如其位而得名焉이로되 方其四之時엔 未成外卦라 故로 不得而名之耳니라 又曰 第四者는 以八卦爲太極而復生之兩儀也요 第五者는 八卦之四象也요 第六者는 八卦之八卦也니라


“사효(四爻)와 오효(五爻)는 무엇을 가지고 주장하여 이름합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첫 번째 획이 양의(兩儀)가 되고 두 번째 획이 사상(四象)이 되고 세 번째 획이 팔괘(八卦)가 되니, 이렇게 되면 팔괘(八卦)가 갖추어진다. 이 위에 만약 다시 차례로 각각 음(陰)·양(陽)의 한 획씩을 가(加)하여 쌓여서 세 번 거듭함에 이르러 다시 팔괘(八卦)를 이룬 것이 8개가 되면 비로소 64괘(卦)의 명칭이 있게 된다. 만약 곧바로 팔괘(八卦)를 가지고 두루 한 괘(卦)의 위에 가(加)하면 또한 그 위치와 같이 되어 명칭을 얻으나, 네 번째 획을 그었을 때에는 아직 외괘(外卦)를 이루지 않았으므로 이름할 수가 없을 뿐이다.”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제4획은 팔괘(八卦)를 태극(太極)으로 삼아 다시 낳은 양의(兩儀)이고 제5획은 팔괘(八卦)의 사상(四象)이며 제6획은 팔괘(八卦)의 팔괘(八卦)인 것이다.”


○ 又詩曰 諸儒談易紛紛하니 只見繁枝不見根이라 觀象徒勞推互體요 玩辭亦是逞空言이라 須知一本能雙이라야 始信千兒與萬孫이라 喫緊包犧爲人意를 悠悠千古向誰論고


또 시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제유(諸儒)들이 역(易)을 말하기를 분분히 하니,

다만 번잡한 지엽일 뿐 근본을 보지 못하였네.

상(象)을 봄에 한갓 수고롭게 호체(互體)를 미룰 뿐이요,

말을 살핌에 또한 빈 말을 늘어놓을 뿐이라오.

모름지기 한 뿌리가 두 줄기임을 알아야,

비로소 천 아들과 만 손자임을 믿게 될 것이다.

포희(包犧)의 사람을 위한 긴요한 뜻을

유유(悠悠)한 천고에 뉘를 향하여 의논할까.”


 


 제작: 동방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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