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 제102권
경사강의(經史講義) 39 ○ 역(易) 2 |
[췌괘(萃卦)] |
37괘(卦)의 주사(繇辭) 중에 ‘형(亨)’ 자가 있는 것이 36곳인데 오직 췌괘(萃卦)에만 두 개의 형 자가 있고 상(象)과는 서로 연관된 뜻이 없으므로 이를 정자(程子)가 연문(衍文)으로 단정 지었다. 육씨(陸氏)의 말에 의하면 “제가(諸家)의 판본(板本)에는 없고 오직 왕숙(王肅)의 판본에만 ‘이견대인형취이정야(利見大人亨聚以正也)’라고 되어 있다. 여기의 형 자는 마땅히 위 구(句)에 붙여야 하는데, 왕필(王弼)은 ‘형통함은 정도로써 모이기 때문이다.[通聚以正]’라고 하여 형 자를 아래 구로 붙였으니 옳지 않다.”고 하였다. 대개 육씨는 단사(彖辭) 중에 형 자를 의심한 것이지 ‘췌형(萃亨)’이라고 할 때의 형 자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정자는 ‘췌형’이라고 할 때의 형 자를 연문으로 보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췌형(萃亨)’이라고 할 때의 형(亨) 자는 단사의 내용으로 검토해 보면 연문(衍文)이 틀림없습니다. 대개 단사는 그 주사(繇辭)를 단정 짓는 것입니다. 그 예(例)를 보면 먼저 그 괘의 뜻과 괘의 이름에 대해 풀이하고 다음에 괘덕(卦德)과 괘사(卦辭)를 풀이하는데, 주사 가운데에서 한 자도 빼놓은 뜻이 없습니다. 37괘(卦)의 주사 중에 형 자가 있는 것을 살펴보면 그 ‘형’의 뜻을 단정 짓지 않은 적이 없으며, 다른 괘에 미루어 보아도 다 그러합니다. 그래서 췌괘의 단사는 그 주사를 다 풀이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유독 ‘췌형’이라고 할 때의 형 자에 대해서만 언급(言及)을 하지 않았으니, 《정전》과 《본의》에서 그 형 자를 연문이라고 한 것은 대개 단사를 따르는 통례(通例)입니다. 어찌 다시 제가(諸家)의 시비(是非)를 따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견대인형(利見大人亨)’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육씨의 말이 사실상 경문(經文)의 뜻을 얻은 것입니다. 대개 사람의 마음은 만 가지이기 때문에 모이면 혼란스럽기가 쉽고, 사물은 같지 않기 때문에 모이면 다투기가 쉬운 것입니다. 반드시 덕이 있는 대인(大人)이 군림을 해서 다스려야만 그 모임이 올바르게 되어 모이는 도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오의 임금과 육이의 신하가 중정(中正)한 덕으로 모여 천하의 모임을 다스리고 그것이 길(吉)하여 후회가 없게 되는 것이니, 그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로우니 형통하다.[利見大人亨]”고 한 것은 아마도 육이와 구오를 가리킨 듯합니다. 만약에 그 형 자를 아래 구에 붙여서 “형통함은 정도로써 모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어세(語勢)로 보아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이 되어 전연 문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육씨가 지적한 것은 진실로 일가견이 있는 것입니다.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는 것에 대해 《정전》에서는 그 모이는 상(象)에 대해서만 말을 하였는데, 어떤 이는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장마물이 모인 것이다.”라고 하고, 장청자(張淸子)도 “물이 모인 것을 막지 않으면 넘치게 된다.”고 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못의 상을 취한 것은 과연 장마물이 모임으로 인한 것인가? 장마물은 번창하게 되면 모든 물건에 큰 손상을 입히는데, 그러면 물건이 어떻게 모일 수 있겠는가? 대개 못의 공덕은 만물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이니, 오직 그 윤택하게 해 주므로 그 흐름이 널리 퍼져서 만물이 더욱 폭넓게 모이는 것이다. 대상(大象)에서 의의를 취한 것이 어찌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옛사람이 이미 말한 것이 있는데, 어떻게 여기는가?
장마물이 모인다는 말은 신(臣)도 의심이 갑니다. 이미 장마물이라고 하였다면 옆으로 넘쳐흐르는 형세이지 모여들 리는 없는 것이니, 계곡으로 쏟아지는 물은 이미 땅으로 언덕을 삼는 지택임괘(地澤臨卦)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며 천맥(阡陌)으로 넘쳐흐르는 물은 어찌 풍수환괘(風水渙卦)의 바람으로 인해 흩어져 퍼지는 물과 다르겠습니까. 더구나 농사에 피해를 주고 물건에 손상만을 입힐 뿐이라면, 이를 모이는 상으로 취하는 것은 신으로서는 진실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주석의 말은 결코 본뜻이 아니며, 장씨(張氏)가 “물이 모인다.”고 말한 것은 주석의 말과 조금 다릅니다. “만물을 윤택하게 한다.”고 한 것과 같은 말은 그 모인다는 의미에 부합하기는 합니다. 다만 상사(象辭)에서 “병장기를 수리하여 예기치 않은 일에 대비한다.”고 한 것과는 말뜻이 맞지 않습니다. 대개 윤택하게 적셔 준다는 것은 이 얼마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기상입니까. 그런데 병장기를 살펴보고 다스리는 일은 환란(患亂)을 예방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니, 군자가 상(象)을 관찰하고 본받는 것이 어찌 이렇게 상반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윤택하게 해 준다는 말도 아마 올바른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전》에서는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는 것만을 말하였고 모이는 의의는 말하지 않았으며, 《본의》에서는 전혀 해석을 하지 않았으니 이는 진실로 절충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서는 물이 멈추어 있는 것이 못이니, 이미 제방이 있으면 자연 고여서 쌓이게 되므로 그 고여서 쌓이는 상으로 인하여 모이는 뜻을 얻게 되는데, 비록 모였더라도 옛 제방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모을 수가 없으므로 물이 스며드는 곳을 헌 옷가지로 막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병장기를 수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대략 통할 것 같습니다.
[주D-002]물이 …… 막는 것 : 《주역(周易)》 기제괘(旣濟卦) 육사(六四)에 “배의 물이 새는 틈을 헌 옷가지로 막는다.”는 말에서 인용한 것으로, 환란에 미리 대비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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