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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사자암 중창기(五臺山獅子庵重創記)

 

건문(建文) 3년 봄 정월 신미일(辛未日)에 계운신무 태상왕 전하(啓運神武太上王殿下 조선 태조)께서 내신(內臣)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이득분(李得芬)을 시켜 참찬 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신(臣) 권근(權近)을 명소(命召)하여 전지(傳旨)하기를,

“내가 일찍이 듣건대, 강릉부(江陵府)의 오대산(五臺山)은 빼어난 경치가 예로부터 드러났다기에, 원찰(願刹 왕실의 명복(命福)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을 설치하여 승과(勝果)를 심으려 한 지 오래였다. 지난해 여름에 늙은 중 운설악(雲雪岳)이 이 산에서 와서 고하기를 ‘산의 중대(中臺)에 사자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국가를 보비(補裨)하던 사찰입니다. 대(臺)의 양지쪽에 자리잡고 있어 이 대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거쳐가는 곳입니다. 세운 지 오래되어 없어졌으나 빈터는 아직도 남아 있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한탄하고 상심하니, 만약 이 암자를 다시 세운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기뻐하고 경축(慶祝)함이 반드시 다른 곳보다 배나 더할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듣고 기뻐하여 공장(工匠)을 보내어 새로 세우되, 위에 3채를 세운 것은 부처를 안치(安置)하고 승방(僧房)으로 쓰기 위한 것이요, 아래 2칸을 세운 것은 문간과 세각(洗閣)으로 쓰기 위한 것인데,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나 형세에 합당하게 되었으니, 알맞게 하고자 하여 사치하거나 크게 하지 않은 것이다. 공사가 이미 끝나매 겨울 11월에 친림(親臨)하여 보고 낙성(落成)을 하였으니, 대개 먼저 간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복리(福利)를 후세에 미루어 물아(物我 외물과 나)가 다같이 받고 유명(幽明)이 함께 힘입으려 한 것이니, 경(卿)은 글을 지어 영구히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신 권근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불씨(佛氏)의 도(道)는 자비로 만물을 구제하는 것인데, 그 설이 매우 근거가 있어 한(漢) 나라 이래로 당시의 군주들이 존숭하여 믿지 않은 이가 없었다.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태상왕 전하께서 신무(神武)하신 자품으로 천운에 맞추어 나라를 창건하여 곧 동방(東方)을 차지하시고, 유신(維新)의 정사를 펴, 깊은 인(仁)과 후한 은택으로 계책을 남기어 후손들을 복되게 하심이 지극하였다고 하겠다. 온갖 정사[萬機]가 번거로움이 싫으셔서 성왕(聖王)에게 전위(傳位)하시고 불승(佛乘 불교 경전)에 전심(專心)하여 부지런히 받들고 믿어 궁벽한 산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옛 암자 터를 물어보아 유명한 절을 세우시고, 머나먼 천리 길을 친히 옥체(玉體)를 수고롭혀 순행(巡行)하여 임하시니, 산골의 숲이 광채가 나고 연하(煙霞)가 빛깔이 달라졌으니, 이 산이 생긴 이래 일찍이 있지 않던 일이다.
옛적에 신라(新羅)의 두 왕자(王子)가 이 산에 들어왔던 것이 지금까지 미담(美談)으로 전하여 오고 있는데, 하물며 지금 전하(殿下)께서 창업(創業)하신 임금이요 태상왕(太上王)의 존귀하신 몸으로 이곳까지 멀리 승여(乘輿)를 몰아 친히 임행(臨幸)하셨음에랴. 이제부터는 산야(山野)의 늙은이들이 한없이 재미나게 이야기하여 이 산의 중요함을 증가하게 될 것이니, 마땅히 헌원씨(軒轅氏)가 패자(貝茨)에서 노닌 것이나, 목왕(穆王)이 요지(瑤池)에 간 것과 더불어 짝이 되어 다같이 한이 없이 후세에 전하여 일컫게 될 것이다.

이달 16일


 

[주D-001]목왕(穆王)이……것 : 목왕은 주(周) 나라 임금. 요지는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신선(神仙)이 산다는 곳인데, 여기에서 목왕이 서왕모(西王母)와 만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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