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極經世書
[券 五]觀物外篇 上 [1]
■ 하늘의 수 5 와 땅의 수 5 를 합하면 10 이 되는데 수數의 완전함이다. 하늘은 1 에서 4 로 변하고 땅은 1 에서 4 로 변한다. 4 에는 체體가 있지만 그 1 에는 체體가 없다. 이것을 유무有無의 극極이라고 한다.
하늘의 체수體數는 4 이지만 3 을 쓰고 1 은 쓰지 않는다. 땅의 체수體數는 4 이지만 3 을 쓰고 1 은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체體에는 1 이 없고 자연自然도 1 을 쓰지 않는다. 도道는 3 을 쓰는데 천天 · 지地 · 인人 이다.
■ 체體는 여덟 번 변하고 용用은 여섯 번 변하는데 팔괘八卦의 상象에서 바뀌지 않는 것은 넷이고 반대로 바뀌는 것은 둘인데 여섯 괘卦가 변하여 8 이 된다. 중괘重卦의 상象에서 바뀌지 않는 것은 여덟이고 반대로 바뀌는 것은 스물 여덟인데 36 이 변하여 64 가 된다. 그러므로 효爻는 6 에서 그치고 괘卦는 8 에서 다하는데 깊이 파고들면 36 이 된다. 그리고 괘卦를 거듭하면 64 에서 그친다. 괘卦는 8 에서 완성되는데 거듭하면 64 가 되고, 효爻는 6 에서 완성되는데 깊이 파고들면 36 이 되고 거듭하면 384 가 된다.
■ 하늘에 네 철[四季]이 있는데 한 철은 넉 달이고 한 달은 40일 이다. 그래서 4 × 4 = 16 이 되나 각각 1 을 빼면 한 철은 석 달이고 한 달은 30 일이 된다. 네 철은 체수體數이고 석 달 · 30 일은 용수用數이다. 체體가 비록 4 를 갖추었으나 그 1 은 늘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용用은 3 에서 그치고 9에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체수體數는 항상 짝수이므로 4 · 12 를 쓰고 용수用數는 항상 홀수이므로 3 · 9 를 쓴다.
■ 큰 수는 부족하고 작은 수는 항상 남는데 왜 그럴까? 큰 것은 보이지 않아서이고 작은 것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時는 4 에서 그치고 월月은 3 에서 그치며 일日은 10 에서 꽉 찬다. 따라서 사람의 팔다리는 4 이고 손가락은 10 이다.
■ 하늘은 남쪽에서 나타나나 북쪽에서 숨게 된다. 6 에서 다하게 되나 7 에서는 남는다. 따라서 사람이 앞은 알지만 뒤는 어두우며 좌우左右는 대강안다.
■ 하늘의 체수體數는 4 이고 용수用數는 3 이다. 땅의 체수體數는 4 이고 용수用數는 3 이다. 하늘은 땅을 극하고 땅은 하늘을 극하지만 극하는 것은 땅에 있다. 비유하자면 낮의 나머지가 밤에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늘은 3 이고 땅은 4 이며, 하늘은 삼신三辰이 있고 땅에 사행四行이 있다. 이러한 땅은 크기에 나타나면서 숨는데 그 나머지를 이르는 것이다.
■ 하늘에 2 정正이 있고 땅에 2 정正이 있는데 모두 2 변變으로 팔괘八卦를 이룬다. 하늘에 4 정正이 있고 땅에 4 정正이 있는데 모두 28 변變으로 육십사괘六十四卦를 이룬다. 그러므로 소성지괘小成之卦는 정正이 4 이고 변變이 2 이며 도합 6 괘卦이다. 대성지괘大成之卦는 정正이 6 이고 변變이 28 이며 도합 36 괘卦이다.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는 36 괘卦의 근본이고 태兌 · 진震 · 손巽 · 간艮 은 28 괘卦의 근본이다.
■ 건乾에 일곱 아들이 있고 태兌에 여섯 아들이 있고 리離에 다섯 아들이 있고 진震에 네 아들이 있고 손巽에 세 아들이 있고 감坎에 두 아들이 있고 간艮에 한 아들이 있으나 곤坤은 모두 음陰이기 때문에 아들이 없다. 건乾에 일곱 아들이 있고 곤坤에 여섯 아들이 있고 태兌에 다섯 아들이 있고 간艮에 네 아들이 있고 리離에 세 아들이 있고 감坎에 두 아들이 있고 진震에 한 아들이 있으나 손巽은 강剛이기 때문에 아들이 없다.
■ 건곤乾坤은 7 변變하기에 주야晝夜의 최고조는 7 분分에 지나지 않는다. 태간兌艮은 6 변變하기에 월月은 6 에서 그치고 도합 12 가 된다. 리감離坎은 5 변變하기에 일日은 5 에서 그치고 도합 10 이 된다. 진손震巽은 4 변變하기에 체體는 4 에서 그치고 도합 8 이 된다.
■ 괘卦의 정正과 변變은 도합 36이고 효爻는 또 216 이 되는데 용수用數의 책策이다. 36 에서 4를 빼면 32 가 되고 또 4를 빼면 28 이 되고 또 4 를 빼면 24 가 된다. 그러므로 괘수卦數 32 위位는 4 를 빼고 말한 것이고 천수天數 28 위位는 8 을 빼고 말한 것이며 지수地數 24 위位는 12 를 빼고 말한 것이다. 4 란 건괘乾卦 · 곤괘坤卦 · 이괘離卦 · 감괘坎卦 이고 8 이란 이괘?卦 · 부괘孚卦 · 소과괘小過卦 · 대과괘大過卦 를 한데 합친 것이며, 12 란 태괘兌卦 · 진괘震卦 · 태괘泰卦 · 기제괘旣濟卦를 한데 합친 것이다.
■ 일日에 8 위位가 있는데 용用이 7 에서 그치는 것은 건乾을 빼고 말하기 때문이다.
월月에 8 위位가 있는데 용用이 6 에서 그치는 것은 태兌를 빼고 말하기 때문이다.
성星은 8 위位가 있는데 용用이 5 에서 그치는 것은 리離를 빼고 말하기 때문이다.
신辰에 8 위位가 있는데 용用이 4 에서 그치는 것은 진震을 빼고 말하기 때문이다.
■ 일日에 8 위位가 있는데 수數가 7 에서 그치는 것은 태泰를 빼고 말하기 때문이다.
■ 월月은 태兌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월月은 일日의 수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12 월月에 늘 12 일日이 남는다.
■ 양陽은 10 이 없는 까닭에 뒤에서 부족하고 음陰은 1 이 없는 까닭에 앞에서 부족하다.
■ 건乾은 양陽 가운데 양陽으로 변하지 않는 까닭에 1 년이 12 월에 그치면 진震은 음陰 가운데 음陰으로 변하지 않는 까닭에 1 일이 12 시에 그치나 나타나지 않으며, 태兌는 양陽 가운데 음陰이고 리離는 음陰 가운데 양陽으로 모두 변한다. 그러므로 일월日月의 수數를 나눌 수 있다. 음수陰數는 12 에서 시작하고 양수陽數는 30 에서 시작하는데 항상 2 와 6 이 있다.
■ 연年을 들어 월月을 보이고 월月을 들어 일日을 보이며 일日을 들어 시時를 보이는 것은 양陽이 음陰을 거느리기 때문이다. 하늘의 4 변變이 땅의 4 변變을 포함하고 일日의 변화가 월月 · 성星 · 신辰의 변화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1 괘卦가 4 괘卦를 포함하는 것이다.
■ 일日도 1 위位이고 월月도 1 위位이며 성星도 1 위位이며 신辰도 1 위位이다. 일日에도 4 위位가 있고 월月에도 4 위位가 있고 성星에도 4 위位가 있고 신辰에도 4 위位가 있으니 4 × 4 = 16 위位가 있다. 이것이 1 변變하여 일월日月의 수數를 다하게 된다. 하늘에 4 변變이 있고 땅에 4 변變이 있으며, 변變에 장長과 소消가 있다. 이것이 16 변變하여 천지天地의 수數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 일日은 1 에서 시작하고 월月은 2 에서 시작하고 성星은 3 에서 시작하고 신辰은 4 에서 시작한다. 이것을 확대하면 양수陽數는 늘 6 이고 음수陰數는 늘 2 인데 대운大運과 소운小運이 다하게 된다.
[券 五]觀物外篇 上 [2]
■ 360 이 변하여 129,600 이 되고 129,600 이 변하여 167 억 9,616 만 이 된다. 167 억 9,616 만이 변하여 28,211 조 990 만 7,456 억이 된다. 360 은 시時가 되고 129,600 은 일日이 되고 167 억 9,616 만은 월月이 되고 28,211 조 990 만 7,456 억은 년年이 되는데 그리하여 대운大運과 소운小運의 수數가 이루어진다. 28,211 조 990 만 7,456 억을 12 로 나누면 앞의 6 은 장長이 되고 뒤의 6 은 소消가 되는데 이것은 1 년 12 월의 수數, 그리고 360 일 진퇴進退와 같다. 167 억 8,616 만을 10 으로 나누면 1 월 10 일의 수數와 같다. 대운大運의 소장消長을 따라 60 일 진퇴進退가 있다. 129,600 을 12 로 나누면 1 일 12 시時의 수數, 그리고 6 일 진퇴進退와 같다.
360 은 1 시時와 수數와 맞먹고 소운小運의 올림과 버림을 따르면 주야晝夜의 때와 같다. 16 변變의 수數는 교수交數를 버리고 용수用數를 취하여 28,211 조 991 만 7,456 억을 얻는다. 이 28,211 조 991 만 7,456 억을 12 한限으로 나누면 앞의 6 한限은 장長이 되고 뒤의 6 한限은 소消가 된다. 각 한限마다 20 억 9,968 만의 167 억 9,616 만을 얻으며, 매 167 억 9,616 만 년을 1 분分씩 벼르면 60 일 올림이 된다. 6 한限에 6 분分씩 벼르면 360 일 올림이 되어 오히려 나머지 1 이 있게 되며, 7 분分씩 벼르면 366 일 올림이 된다. 그 퇴退도 이와 같다. 129,600 에서 3 을 뺀 것이 교수交數이고 7 을 취한 것이 용수用數이다. 용수用數는 3 이고 6 에서 이루어지는데 나머지를 보탬으로써 7 이 된다. 7 은 90,720 년年을 얻는데 반은 45,360 년이니 6 일이 올라간다. 일日에는 주야晝夜가 있고 수數에는 초하루와 그믐이 있어 12 일을 얻는다. 매 3,600 년에 1 일이 올라가고 4,320 년에 12 일이 올라가게 되며 나머지 2,160 년에 나머지 6 이 올라가 교수交數의 2,190 년과 합하는데 모두 12 분分씩 올라가 윤閏이 된다. 그러므로 소운小運의 변變은 무릇 60 하고도 366 일에서 이루어진다.
■ 건乾은 1 로 건괘의 5 효爻가 나누어져 대유괘大有卦가 되는데 360 수數와 같고 건괘乾卦의 4 효爻가 나누어져 소축괘小畜卦가 되는데 129,600 의 수數와 같으며, 건괘乾卦의 3 효爻가 나누어져 이괘履卦가 되는데 167 억 961 만의 수數와 같고 건괘乾卦의 2 효爻가 나누어져 동인괘同人卦가 되는데 28,211 조 990 만 7,456 억의 수數와 같으며, 건괘乾卦의 초효初爻가 나누어져 구괘?卦가 되는데 7자 9,586 만 6,110 해垓 9,946 만 4,008 경京 8,439 만 1,936 조兆 의 수數와 같다. 이것을 분수分數라고 하는데 큰 것을 나누어 작게 하는 것이다. 모두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므로 양수陽數이다.
■ 하늘은 체體를 총괄하므로 8 변變하여 16 에서 그치고 땅은 용用을 나누어 맡으므로 6 변變하여 12 에서 그친다. 하늘은 1 에서 시작하여 7 자 9,586 만 6,110 해垓 9,946 만 4,008 경京 8,439 만 1,936 조兆 에서 그치고 땅은 12 에서 시작하여 204 자 6,980 만 7,381 해垓 5,491 만 8,499 조兆 720 만 억億 에서 그친다.
■ 1 은 2 를 낳는데 쾌괘?卦가 되며 12 의 수數와 같다. 2 는 4 를 낳는데 대장괘大壯卦가 되며 4,320 의 수數와 같다. 4 는 8 을 낳는데 태괘泰卦가 되며 5 억 5,987 만 6,915 억 2,000 만의 수數와 같다. 8 은 16 을 낳는데 임괘臨卦가 되며 944 조 3,699 만 6,915 억 2,000 만의 수數와 같다. 16 은 32 를 낳는데 복괘復卦가 되며 2,652 만 8,870 해垓 3,664 만 8,800 경京 2,947 만 9,731 조兆 2,000 만 억億의 수數와 같다. 32 는 64 를 낳는데 곤괘坤卦가 되며 무극無極의 수數와 같다. 이것을 장수長數라고 하는데 작은 것이 자라서 커지는 것이다. 모두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므로 음수陰數이다.
■ 땅이 있은 뒤에 2 가 있고 2 가 있은 뒤에 낮과 밤이 있다. 2 와 3 이 변하고 한데 어울려 뒤섞이어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은 2 에서 생기고 수數는 12 에서 변한다. 따라서 1 은 수數가 아니다. 수數가 아닌데 수數를 이루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그리 낮과 밤이 필요 없다. 사람이 땅 위에 살면서 낮과 밤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땅 위의 수數는 사람이 쓴다.
■ 하늘은 임괘臨卦 위부터, 땅은 사괘師卦 위부터가 운수運數 이다. 하늘은 동인괘同人卦 아래부터, 땅은 박괘剝卦 아래부터가 연수年數이다. 운수運數는 하늘에 있는 것이고 연수年數는 땅에 있는 것이다.
하늘은 비괘?卦 위부터, 땅은 간괘艮卦 위부터가 용수用數이다. 하늘은 명이괘明夷卦 아래부터, 땅은 비괘否卦 아래부터가 교수交數이다. 하늘은 진괘震卦 위부터, 땅은 진괘晉卦 위부터가 유수有數이다. 하늘은 익괘益卦 아래부터, 땅은 예괘豫卦 아래부터가 무수無數이다.
■ 하늘에 있는 수數는 건乾에서 시작하여 진震에서 그치며 나머지는 무無로 들어가는데 그리하면 천신天辰을 볼 수 없게 된다. 땅은 1 을 버리고 12 에서 시작하며 지화地火는 늘 숨어 있다. 그러므로 하늘은 체[天]을 기틀로 삼지만 항상 그 기틀을 숨기고 있으며, 땅은 용用을 근본으로 삼지만 그 용用을 감추고 있다. 1 시時는 3 월月에서 그치고 1 월月은 30 일日에서 그치는데 모두 신수辰數를 뺀 것이다. 이 때문에 8 곱하기 8 을 하면 괘卦가 64 가 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8 이고 변하는 것은 7 이다. 7 곱하기 8 을 하면 56 이 되는데 그 뜻도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 양효陽爻는 주수晝數이고 음효陰爻는 야수夜數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품고 음양陰陽이 서로 뒤섞이므로 밤과 낮은 서로 떨어지고 강유剛柔는 서로 어그러지게 된다. 봄과 여름은 양陽이기 때문에 주수晝數가 많고 야수夜數가 적으며, 가을과 겨울은 음陰이기 때문에 주수晝數가 적고 야수夜數가 많다.
[券 五]觀物外篇 上 [3]
■ 체수體數의 책策은 384 인데 건乾 · 곤坤 · 리離 · 감坎의 책策 을 버리면 용수用數인 360 이 된다. 체수體數의 용用은 270 인데 건乾 · 리離 · 감坎 의 책策을 버리면 용수用數의 용用인 252가 된다. 체수體數의 용用은 270 인데 그 가운데 156 은 양陽이고 114 는 음陰이다. 리離 의 책策을 버리면 152 의 양陽과 112 의 음陰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실용實用의 수數이다. 대개 양陽은 리離를 버리고 건乾을 쓰며, 음陰은 곤坤을 버리고 감坎을 쓴다. 그러므로 하늘의 양책陽策은 112 인데 음陰을 버린 것이며, 땅의 음책陰策도 112 인데 양책陽策 40 에서 남북南北의 양陽을 버린 것이다. 남쪽의 맨 끝은 몹시 덥고 북쪽의 맨 끝은 몹시 추워 물체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제외시킨 것이다. 40 은 하늘의 나머지이다. 양陽이 음陰을 업신여기고 낮이 밤을 깔보는 것은 땅에 있어서이다. 합하여 152 의 양陽이 되고 112 의 음陰이 된다. 양陽에서 건乾의 책策을 버리고 음陰에서 감坎의 책策을 버리면 144 의 양陽과 108 의 음陰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용수用數의 용用이다. 양 36 에 3 을 곱하면 108 이 되고 음 36 에 3 을 곱하면 108 이 되는데 삼양三陽 · 삼음三陰 하니 음양陰陽 이 각각 반이다. 양陽 에 나머지 1 이 있어 36 으로 되며 합하면 144 의 양陽이 되고 108 은 음陰이 된다. 그러므로 체수體數의 용用은 270 이나 실제로 쓰는 것은 264 이며 용수用數의 용用은 252 가 된다. 괘卦는 64 개가 있으나 쓰는 것은 36 개에서 그치고 효爻는 384 개가 있으나 쓰는 것은 216 개에서 그친다. 64 를 나누면 256 이 된다. 그러므로 1 괘卦에서 초효初爻와 상효上爻를 버리면 이 또한 256 이 되는데 이것은 생물生物의 수數이다. 그러므로 리離 와 감坎은 생물의 주主가 되며, 이괘離卦는 네 개의 양陽으로 이루어져 있고 감괘坎卦 네 개의 음陰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생물도 반드시 4 로 되어 있다. 양陽도 112 이고 음陰도 112 인데 감괘坎卦와 이괘離卦의 효爻를 버리면 216 이 되고 음양陰陽의 40 을 합치면 256 이 된다. 그래서 팔괘八卦는 여섯 개의 효爻를 쓰고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주主가 되며, 여섯 개의 효爻는 4 위位를 쓰고 감괘坎卦와 이괘離卦가 주主가 된다. 그러므로 하늘의 아침과 저녁에 물체가 자라지 못하지만 한낮에 물체가 자라며, 땅의 남극과 북극에 물체가 자라지 못하지만 한낮에 물체가 자라며, 땅의 남극과 북극에 물체가 자라지 못하지만 적도에는 물체가 자란다. 체수體數는 무엇을 하는가? 물체를 자라게 한다. 용수用數는 무엇을 하는가? 운행하게 한다. 운행하는 것은 하늘이고 물체를 자라게 하는 것은 땅이다. 하늘은 홀로 운행하므로 용수用數를 맨 처음 서로 곱하면 용수用數의 용用이 되는데 물체를 자라게 하는 때이며, 땅은 짝으로 자라기 때문에 체수體數의 용用으로 양陽에 음陰을 곱하면 생물의 수數가 된다. 하늘의 수는 3 이므로 6 에 6 을 곱하고 다시 도 6 을 곱하면 건乾의 책策인 216 이 된다. 땅의 수는 2 이므로 12 에 12 를 곱하면 곤坤의 책策인 144 가 된다. 건괘乾卦는 9 를 쓰므로 3 에 8 을 곱하면 24 가 되고 다시 9를 곱하면 이 또한 216 이 되며, 2 에 8 을 곱하면 16 이 되고 다시 9 를 곱하면 이 또한 144 가 된다. 곤괘坤卦는 6 을 쓰므로 3 에 12 를 곱하면 36 이 되고 다시 6 을 곱하면 이 또한 216 이 되며, 2 에 12 를 곱하면 24 가 되고 다시 6 을 곱하면 이 또한 144 가 된다. 곤坤 은 12 로 24 가 되고 여기에 6 을 곱하는 것으로 6 의 1 과 반이 건乾의 나머지가 되기 때문에 건乾은 152 를 얻고 곤坤은 108 을 얻는다.
■ 양陽인 4 개의 괘卦와 12 개의 효爻 에서 8 은 양陽이고 4 는 음陰이며, 36 으로 양陽을 곱하고 24 로 음陰을 곱하면 384 가 된다.
■ 괘卦의 반대는 모두 6 양陽과 6 음陰이다. 역易에서 6 양陽과 6 음陰은 12 와 짝이 되고 4 정正 을 버리면 8 양陽과 4 음陰 · 8 음陰과 4 양陽이 되는데, 각각 여섯 쌍이 있고 10 양陽과 2 음陰 · 10 음陰과 2 양陽은 각각 3 쌍이 있다.
■ 체體에 384 가 있지만 쓰는 것은 360 에서 그친다. 어째서인가?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를 쓰지 않아도 360 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변역變易을 해도 이 넷은 변하지 않는다. 무릇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를 잘하기 때문이다. 용用이 360 에서 그치지만 366 이 있는 것은 왜인가? 수數가 남기 때문이다. 수數가 남으면 어떻게 쓰이는가? 건乾만을 온전히 쓰는 것이다. 건乾 · 곤坤은 쓰지 아니하나 감坎 · 리離 는 반을 쓴다. 건乾을 온전히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양陽이 남는 것을 맡아보는 것이다. 건乾 · 곤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독양獨陽은 생기게 하지 못하고 전음專陰은 이루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坎 · 리離는 반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낙? 감坎은 서쪽이 되고 리離는 동쪽이 되어 음양陰陽의 반과 같고 봄·가을, 밤·낮이 문이 되기 때문이다. 건乾을 쓰기도 하고 감坎 · 리離 를 쓰기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양陽을 내세워 말하기 때문에 건乾을 쓰는 것이며, 남는 것을 내세워 말하면 양陽이 음陰을 업신여기고 낮이 밤을 깔보기 때문에 감坎 · 리離를 쓰는 것이다. 양陽이 남음을 맡음으로 건乾을 온전히 쓸 수 있으며, 음陰이 모자람을 맡음으로 곤坤을 쓰지 못한다. 양陽이 음陰을 업신여기고 음陰이 양陽을 업신여김으로 감坎 · 리離는 반을 쓰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늘의 남쪽은 전부 보이고 북쪽은 전부 안 보이며 동쪽과 서쪽은 각각 반만 보이는 것이다. 감坎과 리離는 음양陰陽의 끝이다. 그러므로 리離는 인寅과 같고 감坎은 신申과 같다. 그리고 수數가 항상 넘치는 것은 대개 음양陰陽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수用數는 인寅을 넘지 않고 효수爻數는 신申을 넘지 않는다.
건乾은 48 이나 1/4 로 나누면 음陰의 제재를 받으며, 곤坤은 48 이나 1/4 로 나누면 양陽의 제재를 받는다. 그러므로 건乾은 36 을 얻고 곤은 12 를 얻는다. 양陽이 진進을 맡아보기 때문에 360 일을 올리게 되고 음陰은 소消를 주관하기 때문에 12 월에 12 일을 내리게 된다. 순수順數는 건乾 1, 태兌 2, 리離 3, 진震 4, 손巽 5, 감坎 6, 간艮 7, 곤坤 8 이 되고 역수逆數는 진震 1, 리태離兌 2, 건乾 3, 손巽 4, 감간坎艮 5, 곤坤 6 이 된다. 건乾 48, 태兌 30, 리離 24, 진震 10, 곤坤 12, 간艮 20, 감坎 36, 손巽 40 이 되고 건乾 36, 곤坤 12, 리태손離兌巽 28, 감간진坎艮震 20 이 된다.
[券 五]觀物外篇 上 [4]
■ 원수圓數는 1 이고 방수方數는 2 인데 홀수와 짝수의 뜻이다. 6 은 1 이고 12 는 2 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 원圓의 수數는 1 에서 시작하나 쌓여서 6 이 되고 방方의 수數 1 에서 시작하나 쌓여서 8 이 된다. 변하면 4 에서 시작하나 쌓여서 12 가 된다. 6 은 항상 6 으로 변하고 8 은 항상 8 로 변한다. 그리고 12 도 또한 8 로 변하는데 자연의 도道이다. 8 은 천지의 체體이고 6 은 하늘의 용用이며 12 는 땅의 용用이다. 하늘은 방方이 변하여 원圓이 된 것인바 늘 1 이 있다. 땅은 1 이 나뉘어 4 로 된 것인 바 늘 방方을 간직하고 있다. 하늘은 체體는 변하나 용用은 변하지 않으며, 땅은 용用은 변하나 체體는 변하지 않는다. 6 이 1 을 아우르면 7 이 되고 12 가 4 를 아우르면 16 이 된다. 양陽은 진進을 주관하므로 하늘이 1 을 아울러 7 이 되고 음陰은 퇴退를 주관하므로 4 를 버리면 12 에서 그친다. 이 때문에 양陽은 항상 1 이 있으나 음陰은 항상 1 이 없다. 그러므로 천지의 체體는 8 에서 그치고 하늘의 용用은 에서 그치며 땅의 용用은 12 에서 그치게 된다. 원圓이란 방方을 깎아서 용用으로 삼은 까닭에 1 이 변하여 4 가 되나 4 에서 1 을 버리면 3 이 되며, 3 이 변하여 9 가 되나 9 에서 3 을 버리면 6 이 된다. 방方은 원圓을 끌어다 체體로 삼은 까닭에 1 이 변하여 3 이 되나 아우르면 4 가 되고 4 가 변하여 12 가 되나 아우르면 16 이 된다. 그러므로 용수用數는 3 에서 이루어지고 6 에서 그치며, 체수體數는 4 에서 이루어지고 16 에서 그친다. 이 때문에 원圓 은 1 에서 곧장 3 을 에워싸고 1 에서 시작하나 쌓여서 6 이 되며, 방方은 1 이 나뉘어 4 가 되고 4 가 나뉘어 16 이 되는데 모두 자연의 도道이다.
■ 1 이 2 를 부리면 3 이 생겨나고 3 에서 1 을 버리면 2 가 된다. 3 은 9 를 낳는데 9 에서 1 을 버리면 8 이 되고 3 을 버리면 6 이 된다. 그러므로 1 이 3 을 부리고 3 이 다시 2 를 부리며, 3 이 9 를 부리고 9 가 다시 8 과 6 을 부린다. 그래서 2 가 4 를 낳고 8 이 16 을 낳으며 6 이 12 를 낳는다. 3 이 1 을 아우르면 4 가 되고 9 가 3 을 아우르면 12 가 된다. 12 가 또 4 를 아우르면 16 이 된다. 그러므로 4 는 1 을 본本으로 삼고 3 을 용用으로 삼으며, 12 는 3 을 본本으로 삼고 9를 용用으로 삼으며, 16 은 4 를 본本으로 삼고 12 를 용用으로 삼는다.
■ 양陽을 떠받드는 것은 신神을 떠받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부리고 신神은 감추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道는 천지만물을 낳지만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다. 천지만물은 또한 도道에서 법法을 취한다.
■ 양陽은 도道의 용用이고 음陰은 도道의 체體이다. 양陽이 음陰을 쓰고 음陰이 양陽을 쓴다. 양陽을 용用으로 삼으면 음陰을 높이는 것이고 음陰을 용用으로 삼으면 양陽을 높이는 것인데 음陰이 도道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물며 도道임에 있어서랴.
■ 6 이 변하여 36 이 되고 8 이 변하여 64 가 되며 12 가 변하여 384 가 된다. 6 · 6 이 변하고 8 × 8 은 64 가 되는데 변하면 384 가 되며, 8 · 8 이 변하고 7 × 7 은 49 가 되는데 변하면 384 가 된다.
■ 원圓은 6 변變하는데 6 × 6 을 하고 올림을 하므로 60 이 변하여 360 이 된다. 방方은 8 변變하므로 8 × 8 은 64 가 된다. 양陽은 진進을 주관하기 때문에 이로써 나아가 60 이 된다.
■ 원圓은 성星이다. 역기曆紀의 수數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방方은 토土이다. 주州를 구획하고 땅을 나누는 법은 여기에서 본뜬 것이다. 대개 원圓은 하도河圖의 수數이고 방方은 낙서洛書의 무늬이다. 그러므로 복희伏羲가 무늬로 역易을 만들었고 우왕禹王과 기자箕子가 그것을 풀어서 『홍범洪範』을 지었다.
■ 시수蓍數는 6 을 안 쓰고 7 을 쓰는데 왜인가? 그 나머지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나머지를 버리면 6 이 되므로 책수策數는 36 이다. 그러므로 50 은 육십사괘의 윤년閏年의 책策이다. 그 용用은 49 이며 육십사괘의 1 세歲의 책策이다. 홀수로 돌아가 1 을 남겨 두는 것은 마치 1 세歲의 윤閏과 같다. 괘卦를 처리할 때 4 를 버리는 것은 왜인가? 하늘이 변하는 것을 땅이 본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수蓍數에서 1 을 버리는 것은 괘卦에서 4 를 버리는 것이다.
■ 원圓은 지름이 1 이고 둘레가 3 인데 거듭하면 6 이 된다. 방方은 지름이 1 이고 둘레가 4 인데 거듭하면 8 이 된다.
■ 방方을 깎으면 원圓이 되는데 하늘이 운행하는 이유이다. 큰 것을 나누면 작은 것이 되는데 땅이 생화生化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6 변變을 쓰고 땅은 4 변變을 쓴다.
■ 1 더하기 8 은 9 가 되고 줄이면 7 이 된다. 8 에서 2 를 줄이면 6 이 되고 16 에서 4 를 줄이면 12 가 되며, 24 에서 6 을 줄이면 18 이 되고 32 에서 8 을 줄이면 24 가 되며, 40 에서 10 을 줄이면 30 이 되고 48 에서 12 를 줄이면 36 이 되며, 56 에서 14 를 줄이면 42 가 되고 64 에서 16 을 줄이면 48이 된다. 1 이 나뉘어 4 가 되고 8 이 나뉘어 32 가 되며, 16 이 나뉘어 64 가 되고 96 에 이르러 나뉘면 384 가 된다.
■ 1 은 6 을 낳고 6 은 12 를 낳고 12 는 18 을 낳고 18 은 24 를 낳고 24 는 30 을 낳고 30 은 36 을 낳는다. 이렇게 확대하면 60 은 변하여 360 을 낳는다. 이것이 운행運行의 수數이다. 4 는 12 를 낳고 12 는 20 을 낳고 20 은 28 을 낳고 28 은 36 을 낳는데 이것은 생물生物의 수數이다. 그러므로 건乾의 양책陽策은 36 이고 태兌 · 리離 · 손巽 의 양책陽策은 28 이며, 진震 · 감坎 · 간艮 의 양책陽策은 20 이고 곤坤의 양책陽策은 12 이다.
[券 五]觀物外篇 上 [5]
■ 원圓은 1 변變하면 6 을 낳는데 1 을 버리면 5 가 되고 2 변變하면 12 를 낳는데 2 를 버리면 10 이 되며, 3 변變하면 18 을 낳는데 3 을 버리면 15 가 되고 4 변變하면 24 를 낳는데 4 를 버리면 20 이 되며, 5 변變하면 30 을 낳는데 5 를 버리면 25 가 되고 6 변變하면 36 을 낳는데 6 을 버리면 30 이 된다. 그러므로 남기면 6 · 6 이 되고 버리면 5 · 5 가 된다. 5 는 4 에서 1 이 남고 4 는 3 에서 1 이 남으며 2 는 1 에서 1 이 남는다. 그러므로 1 은 2 를 낳으나 1 을 버리면 1 이 되고 2 는 3 을 낳으나 1을 버리면 2 가 되며, 3 은 4 를 낳으면 1 을 버리면 3 이 되고 4 는 5 를 낳으나 1 을 버리면 4 가 된다. 이 때문에 2 는 1 을 근본으로 삼고 3 은 2 를 근본으로 삼으며, 4 는 3 을 근본으로 삼고 5 는 4 를 근본으로 삼으며 6 은 5 를 근본으로 삼는다. 방方 은 1 변變하면 4 가 되는데 4 는 8 을 낳고 4 를 아우르면 12 가 된다. 8 은 12 를 낳고 8 을 아우르면 20 이 된다. 12 는 16 을 낳고 12 를 아우르면 28 이 된다. 16 은 20 을 낳고 16 을 아우르면 36 이 된다. 1 은 3 을 낳고 아우르면 4 가 된다. 12 는 20 을 낳고 아우르면 32 가 된다. 28 은 36 을 낳고 아우르면 64 가 된다.
■ 역易의 대연大衍은 어떤 수數인가? 성인이 의지하는 수數이다. 천수天數 25 를 합하면 50 이 되고 지수地數 30 을 합하면 60 이 된다. 그러므로 5 위位는 서로 얻어 각각 합함이 있다. 50 은 시蓍의 수數이고 60 은 괘수卦數이다. 5 는 시蓍의 소연小衍이다. 그러므로 50 은 대연大衍이다. 8 은 괘卦의 소성小成이므로 64 는 대성大成이다. 시蓍의 덕德은 원圓인데 하늘의 수數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7 곱하기 7 은 49 가 되고 50 은 1 을 남기며 말하는 것이다. 괘卦의 덕德은 방方인데 땅의 수數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8 곱하기 8 은 64 가 되고 60 은 4 를 버리며 말하는 것이다. 시蓍는 용수用數이고 괘卦는 체수體數이다. 용用은 체體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1 을 남기고 체體는 용用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4 를 버린다. 원圓의 근원은 1 이고 방方의 근원은 4 이다. 그러므로 시蓍는 1 을 남기고 괘卦는 4 를 버린다. 시蓍의 용수用數는 7 인데 그 나머지를 아우르면 또 1 을 남긴다는 뜻이다. 점칠 때 1 을 거는 것은 또 1 을 버린다는 뜻이다. 시蓍의 용수用數에서 1 을 거는 것은 3 을 본받는 것으로 그 나머지 48 이 1 괘卦의 책策이다. 4 에 12 를 곱하면 48 이고 12 에서 3 을 빼면 9 가 남는다. 4 에 3 을 곱하면 12 인데 이것은 버리는 책策이다. 4 에 9 를 곱하면 36 인데 이것은 쓰이는 책策이며, 건乾의 36 양효陽爻와 같다. 12 에서 5 를 빼면 7 이 남고 4 에 5 를 곱하면 20 인데 버리는 책策이다. 4 에 7 을 곱하면 28 인데 쓰이는 책策이며, 태兌 · 리離 의 28 양효陽爻와 같다. 12 에서 6 을 빼면 6 이 남고 4 에 6 을 곱하면 24 인데 버리는 책策이다. 4 에 6 을 곱하면 24 인데 쓰이는 책策이며, 곤坤의 1/2 인 24 음효陰爻와 같다. 12 에서 4 를 빼면 8 이 남고 4 에 4 를 곱하면 16 인데 버리는 책이다. 4 에 8 을 곱하면 32 인데 쓰이는 책이며, 간艮 · 감坎의 24 효爻에서 상괘上卦의 8 음陰을 아우른 32 효爻오 같다. 그러므로 7 · 9 는 양陽이고 6 · 8 은 음陰이다. 9 는 양陽의 극수極數이며 6 은 음陰의 극수極數이다. 수數가 최고조에 이르게 되면 되돌아오게 되므로 괘卦가 변하게 된다. 진震 · 손巽이 책策이 없는 것은 불용不用의 수數와 같기 때문이다. 하늘은 강剛을 덕德으로 삼기에 유柔는 드러나지 않는다. 땅은 유柔를 바탕으로 삼기에 강剛은 자라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진震 · 손巽 은 쓰지 않는 것이다. 건乾은 9 를 쓰므로 책策은 9 이다. 4 는 사시四時에 응하는데 1 시時는 90 일日이다. 곤坤은 6 을 쓰므로 그 책策 또한 6 이다.
■ 기수奇數에 넷이 있는데 1, 2, 3, 4 이고 책수策數에 넷이 있는데 6, 7, 8, 9 이다. 이들을 합하면 8 수數가 되는데 이것은 방수方數의 8 변變에 응하는 것이다. 기수奇數로 돌아가 거는 수數를 합치면 6 이 되는데 5 와 4 · 4, 9 와 8 · 8, 5 와 4 · 8, 9 와 4 · 8, 5 와 8 · 8, 9 와 4 · 4 는 원수圓數의 6 변變에 응하는 것이다.
■ 기수奇數는 4 에서 끝나기 때문에 5 를 쓰지 않고 책수策數는 9 에서 끝나기 때문에 10 을 쓰지 않는데 5 는 1 이고 10 은 2 이다. 그러므로 50 은 버리고 49 를 쓰는 것이다. 기수奇數는 5 를 쓰지 않고 책수策數는 10 을 쓰지 않는 것은 유무有無의 최고조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연의 수數에 있어서랴.
■ 괘卦에 64 가 있으면서 쓰는 것은 60 에서 그치는데 왜 그런가! 60 괘卦는 360 효爻 이다. 그러므로 갑자甲子는 60 에서 그치며, 육십갑자를 하면 천도天道가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수策數에 응하는 것이다. 36 에 24 를 더해도 60 이 되고 32 에 28 을 더해도 60 이 된다.
■ 건乾은 48 이고 곤坤은 12 이고, 진震은 20 이고 손巽은 40 이고 리離 · 태兌는 32 이고 감坎 · 간艮은 28 인데 합하면 60 이 된다. 시蓍의 수數는 온전하므로 양책陽策 36 과 28 을 합하면 64 가 된다. 괘수卦數는 4 를 버리므로 음책陰策 24 와 32 를 합하면 56 이 된다.
[券 五]觀物外篇 上 [6]
■ 9 를 올리면 36 이 되는데 모두 양수陽數이다. 그러므로 양陽 가운데 양陽이다. 7 을 올리면 28 이 되는데 앞은 양陽이고 뒤는 음陰이다. 그러므로 양陽 가운데 음陰이다. 6 을 올리면 24 가 되는데 모두 음수陰數이다. 그러므로 음陰 가운데 음陰이다. 8 을 올리면 32 가 되는데 앞은 음陰이고 뒤는 양陽이다. 그러므로 음陰 가운데 양陽 이다. 시蓍에서 4 를 올리면 100 이 되고 괘卦에서 4 를 올리면 120 이 되는데, 100 은 10 이고 120 은 12 이다.
■ 기수奇數로 돌아가 괘掛의 수數와 합하면 5 와 4 · 4 를 얻는데 그러면 책수策數는 4 · 9 이다. 9 와 8 · 8 을 얻으면 책수策數는 4 · 6 이고 5 와 8 · 8 과 9 와 4 · 8 을 얻으면 책수策數는 모두 4 · 7 이다. 9 와 4 · 4 를 얻고 5 와 4 · 8 을 얻으면 책수策數는 모두 4 · 8 이다. 9 는 1 이 변하여 건乾에 응한 것이고 6 은 1 이 변하여 곤坤 에 응한 것이며, 7 은 2 가 변하여 태兌와 리離에 응한 것이고 8 은 2 가 변하여 감坎과 간艮에 응한 것이다. 5 와 4 · 4 에서 괘掛의 1 의 수數를 버리면 4 × 8 = 32 이고 9 와 8 · 8 에서 괘掛의 1 의 수數를 버리면 4 × 6 = 24 이며 5 와 8 · 8, 9 와 4 · 8 에서 괘掛의 1 의 수數를 버리면 4 × 5 = 20 이고 9 와 4 · 4, 5 와 4 · 8 에서 괘掛의 1 의 수數를 버리면 4 × 4 = 16 이 된다. 그러므로 3, 4, 5, 6 의 수數를 버리면 9, 8, 7, 6 의 책策이 되는 것이다.
■ 하늘이 1 이면 땅은 2 이고 하늘이 3 이면 땅은 4 이며, 하늘이 5 이면 땅은 6 이고 하늘이 7 이면 땅은 8 이며, 하늘이 9 이면 땅은 10 이다. 수數가 이리저리 뒤섞이어 변하고 가로세로로 섞이는 것은 마치 하늘땅이 서로 품고 밤과 낮이 서로 번갈아드는 것과 같다. 1 은 수數의 시작이지 수數가 아니다. 그러므로 2 곱하기 2 는 4 가 되고 3 곱하기 3 은 9 가 되고 4 곱하기 4 는 16 이 되고 5 곱하기 5 는 25 가 되고 6 곱하기 6 은 36 이 되고 7 곱하기 7 은 49가 되고 8 곱하기 8 은 64 가 되고 9 곱하기 9 는 81 이 되지만 1 은 변하지 않는다. 100 은 10 이고 10 은 1 인데 이 또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數는 1 을 버리면 9 에서 끝나게 되는데 모두 그 변하는 것을 쓰는 것이다. 5 × 5 = 25 는 천수天數이고 8 × 8 = 64 는 괘수卦數이며, 9 × 9 = 81 은 홍범洪範의 수數이다.
■ 대연大衍의 수數는 산법算法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산법算法의 시작은 방方 · 원圓 · 곡曲 · 직直에 불과하다.
■ 음陰에는 1 이 없고 양陽에는 10 이 없다.
■ 승수乘數는 수數를 늘리고 제수除數는 수數를 줄인다. 산법算法이 비록 많으나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양陽은 음陰을 얻어야 낳고 음陰은 양陽을 얻어야 이룬다. 그러므로 시수蓍數는 4 에서 9 가 되고 괘수卦數는 4 에서 10 이 되는데, 비유하면 간幹과 지支가 서로 이리저리 뒤섞이어 간幹은 6 으로 끝맺고 지支는 5 로 끝맺는 것과 같다.
■ 3 × 4 는 12 이고 2 × 6 도 마찬가지로 12 이다. 2 × 12 는 24 인데 3 × 8 도 24 이고 4 × 6 도 24 이다. 3 × 12 는 36 인데 4 × 9 도 36 이고 6 × 6 도 마찬가지로 36 이다. 4 × 12 는 48 인데 3 × 16 도 48 이고 6 × 8 도 48 이다. 5 × 12 는 60 인데 3 × 20 도 60 이고 6 × 10 도 60 이다. 이것들은 모두 저절로 서로 들어맞은 것이다.
■ 4 × 9 는 36 인데 6 × 6 도 36 이다. 양陽 6 에서 또 음陰 6 의 반을 아우르니 이것이 9 이다. 그러므로 수數로 말할 때는 음양陰陽이 각각 3 이다. 3 효爻로 말하면 천天 · 지地 · 인人도 각각 3 이다. 음陰과 양陽 속에 각각 천天 · 지地 · 인人 이 있고 천天 · 지地 · 인人 속에 음陰과 양陽이 있다. 그러므로 3 은 하늘이고 2 는 땅이며, 일정한 수數에 따른다.
■ 태극太極이 나뉘어 양의兩儀가 세워진다. 양陽은 아래로 음陰과 사귀고 음陰은 위로 양陽과 사귀어 사상四象이 생겨난다. 양陽은 음陰과 사귀고 음陰은 양陽과 사귀어 하늘의 사상四象이 생겨나고, 강剛은 유柔와 사귀고 유柔는 강剛과 사귀어 땅의 사상四象이 생겨난다. 이리하여 팔괘八卦가 이루어진다. 팔괘八卦가 서로 뒤섞이어 만물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1 이 나뉘어 2 가 되고 2 가 나뉘어 4 가 되고 4 가 나뉘어 8 이 되고 8 이 나뉘어 16 이 되고 16 이 나뉘어 32 가 되고 32 가 나뉘어 64 가 된다. 그래서 말하기를 음陰으로 나뉘고 양陽으로 나뉘며, 강剛과 유柔를 번갈아 사용하여 역易의 6 위位가 나타나게 된다. 10 이 나뉘어 100 이 되고 100 이 1,000 이 되고 1,000 이 나뉘어 10,000 이 된다. 비유하자면 뿌리에 줄기가 있고 줄기에 가지가 있고 가지에 잎이 있는 것과 같다. 커질수록 더욱 작아지고 줄어들수록 더욱 늘어난다. 이들을 합하면 1 이 되고 펼치면 10,000 이 된다. 이 때문에 건乾은 나누고 곤坤은 합하며, 진震은 불어나게 하고 손巽은 줄어들게 한다. 불어나면 나누어지고 나누어지면 줄어들며 줄어들면 나누어진다.
■ 건乾과 곤坤이 위치를 잡으니 진震과 손巽은 한 번 교류한 것이고, 태兌 · 리離 · 감坎 · 간艮 은 두 번 교류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震은 양陽이 적고 음陰이 항상 많으며, 손巽은 음陰이 적고 양陽이 늘 많다. 태兌와 리離는 양陽이 많고 간艮과 감坎은 음陰이 많다. 이 때문에 신辰과 화火는 보이지 않는다.
■ 1 기氣가 나뉘어 음陰과 양陽이 된다. 나누어진 양陽을 많이 얻은 것은 하늘이 되고 나누어진 음陰을 많이 얻은 것은 땅이 된다. 그러므로 음陰과 양陽이 반으로 나누어져서 형形 · 질質을 갖추게 되고 음陰과 양陽이 치우쳐져서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형形과 질質도 또 나누어지게 되는데 양陽이 많은 것은 강剛이 되고 음陰이 많은 것은 유柔가 된다. 성性과 정情이 또 나누어지는데 양陽이 많은 것은 양陽의 극極이고 음陰이 많은 것은 음陰의 극極이다.
■ 태괘兌卦 · 이괘離卦 · 손괘巽卦는 양陽이 많은 것을 얻었고 간괘艮卦 · 감괘坎卦 · 진괘震卦는 음陰이 많은 것을 얻었다. 이 때문에 하늘땅의 쓰임이 되는 것이다. 건괘乾卦는 양극陽極이고 곤괘坤卦는 음극陰極이므로 쓰지 않는다.
[券 五]觀物外篇 上 [7]
■ 건乾이 넷으로 나뉘어 하나를 얻어 가지니 곤坤과 어울리고, 곤坤이 넷으로 나뉘어 하나를 얻어 가지니 건乾을 떠받든다. 건乾과 곤坤이 합하여 여섯 아들을 낳으니 세 아들은 모두 양陽이고 세 딸은 모두 음陰이다. 태兌가 나뉘어 1 양陽이 되니 간艮과 어울리고 감坎이 나뉘어 1 음陰이 되니 리離를 떠받든다. 진震과 손巽이 서로 바뀌니 합하여 말하면 음양陰陽이 각각 반이다. 이 때문에 물과 불이 상생相生하고 상극相剋한 연후에 만물을 이루게 된다.
■ 건乾과 곤坤은 이름과 위치가 바뀌지 않는다. 감坎과 리離는 이름은 바뀌나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진震과 손巽은 위치는 바뀌나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태兌와 간艮은 이름과 위치가 모두 바뀔 수 있다. 이괘離卦는 건괘乾卦를 닮았고 감괘坎卦는 곤괘坤卦를 닮았고 중부괘中孚卦는 건괘乾卦를 닮았고 이괘?卦는 이괘離卦를 닮았고 소과괘小過卦는 곤괘坤卦를 닮았고 대과괘大過卦는 감괘坎卦를 닮았다. 이 때문에 건괘乾卦 · 곤괘坤卦 · 이괘離卦 · 감괘坎卦 · 중부괘中孚卦 · 이괘?卦 · 대과괘大過卦 · 소과괘小過卦는 모두 바뀌지 않는다. 이괘離卦는 하늘에서 밤과 같으니 양陽 가운데에 음陰이 있는 것이고 감괘坎卦는 땅에서 낮과 같으니 음陰 가운데에 양陽이 있는 것이다. 진震이 음陰과 사귀기 시작하면 양陽이 생겨나고 손巽이 양陽을 없애기 시작하면 음陰이 생겨난다. 태兌는 양陽을 자라게 하고 간艮은 음陰을 자라게 한다. 진震과 태兌는 하늘에서 음陰이고 손巽과 간艮은 땅에서 양陽이다. 그러므로 진震과 태兌는 위는 음陰이고 아래가 양陽이며, 손巽과 간艮은 위는 양陽이고 아래가 음陰이다. 하늘이 처음 생겨나는 것으로 말하면 음陰이 위에 있고 양陽이 아래에 있으니 교태交泰의 뜻이다. 땅이 이루어진 것으로 말하면 양陽이 위에 있고 음陰이 아래에 있으니 존비尊卑의 자리이다.
■ 건乾과 곤坤이 위아래의 위치를 정하고 감坎과 리離가 좌우의 문에 벌이어서면 하늘땅이 닫히고 열리며 해와 달이 드나들게 된다. 그러므로 봄 · 여름 · 가을 · 겨울, 그믐 · 초하루 · 반달 · 보름달, 낮과 밤의 길고 짧음, 행도行度의 영축盈縮은 이것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 무극無極 이전에는 음陰이 양陽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상象이 생긴 뒤에는 양陽에서 음陰이 갈라졌다. 음陰은 양陽의 어머니이고 양陽은 음陰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큰 아들을 임신하니 복괘復卦가 되고 아버지가 큰 딸을 낳으니 구괘?卦가 되었다. 이 때문에 양陽은 복괘復卦에서 시작하고 음陰은 구괘?卦에서 시작한다.
■ 성性은 체體가 아니면 이루지 못하고 체體는 성性이 아니면 생겨나지 못한다. 양陽은 음陰을 체體로 삼고 음陰은 양陽을 체體로 삼는다. 움직임은 성性이고 고요함은 체體이다. 하늘에서는 양陽이 움직이고 음陰은 가만히 있으며, 땅에서는 음陰이 움직이고 양陽은 가만히 있는다. 성性이 체體를 얻으면 고요하고 체體가 성性을 따르면 움직인다. 이 때문에 양陽은 느리고 음陰은 빠르다.
■ 양陽은 홀로 서지 못하고 반드시 음陰을 얻은 뒤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양陽은 음陰을 바탕으로 삼는다. 음陰은 스스로 나타나지 못하고 반드시 양陽을 기다린 뒤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음陰은 양陽을 창唱으로 삼는다. 양陽이 그 시작을 알면 그 이루어짐이 형통하고 음陰이 그 법을 본받으면 그 수고로움이 끝난다.
■ 양陽은 알 수 있으나 음陰은 알지 못하며 양陽은 볼 수 있으나 음陰은 보지 못한다.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은 있음이 된다. 그러므로 양陽의 성性은 있으나 음陰의 성性은 없다. 양陽은 두루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지만 음陰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다. 양陽은 없을 수 있으나 음陰은 항상 있다. 두루 미치지 못함이 없고 늘 있는 것은 실實이 된다. 그러므로 양陽의 체體는 허虛하고 음陰의 체體는 실實하다.
■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승升이라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강降이라고 한다. 승升은 생生이고 강降은 소消이다. 그러므로 양陽은 아래에서 생기고 음陰은 위에서 생겨난다. 이 때문에 만물이 모두 반대로 생겨나는데 음陰이 양陽을 낳고 양陽이 음陰을 낳으며, 음陰이 다시 양陽을 낳고 양陽이 다시 음陰을 낳는다. 그러므로 순환이 끝이 없다.
■ 하늘땅의 근본은 중中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건乾과 곤坤이 번갈아 변하지만 중中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람은 하늘땅의 복판에서 거처하고 염통은 사람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도 한낮에 가장 왕성하고 달도 보름날에 꽉 찬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중中을 귀하게 여긴다.
■ 본디 일기一氣이다. 생生하고 양陽이 되고 소消하면 음陰이 된다. 그러므로 2 는 1 일 뿐이고 6 은 3 일 뿐이며 8 은 4 일 뿐이다. 이 때문에 하늘을 말하면서 땅을 말하지 않으며, 임금을 말하면서 신하를 말하지 않으며, 아버지를 말하면서 아들을 말하지 않으며, 남편을 말하면서 아내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 땅을 얻어야 만물이 생겨나고 임금이 신하를 얻어야 만화萬化가 생겨나며, 아버지가 아들을 얻고 남편이 아내를 얻어야 가도家道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1 이 있으면 2 가 있고 2 가 있으면 4 가 있으며, 3 이 있으면 6 이 있고 4 가 있으면 8 이 있다.
■ 음陰과 양陽이 생겨서 양의兩儀로 나뉘어졌다. 양의兩儀가 뒤섞이어 사상四象이 생겨나고 사상四象이 뒤섞이어 팔괘八卦가 이루어지면 팔괘八卦가 이러저리 뒤섞이어 만물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양의兩儀는 하늘땅의 종류를 낳고 사상四象은 하늘땅의 체體를 정하며, 사상四象은 팔괘八卦의 종류를 낳고 팔괘八卦는 해와 달의 체體를 정하며, 팔괘八卦는 만물의 종류를 낳고 중괘重卦는 만물의 체體를 정한다. 종류는 생겨나는 순서이고 체體는 상象이 뒤섞이는 것이다. 종류를 헤아리면 반드시 생生에 근본을 두고 체體를 살펴보면 반드시 상象에서 말미암는다. 생生은 앞날을 미리 짐작하는 것이고 상象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좇아서 살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같은 종류로 나온 곳은 같으나 있는 곳이 다르며, 있는 곳은 다르나 상象은 같다. 이렇게 지난 것을 헤아리면 만물이 어지 달아나리오.
■ 하늘은 때에 따라 변하고 땅은 만물에 응한다. 시時는 음陰이 변하고 양陽이 응한 것이며, 물物은 양陽이 변하고 음陰이 응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時는 미리 짐작하여 알 수 있고 물物은 반드시 따르면서 이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陽은 맞이하고 음陰은 따르며, 음陰은 거스르고 양陽은 순응하는 것이다. 그 체體를 말하면 하늘이 나뉘어 땅이 되고 땅이 나뉘어 만물이 되는데 도道는 나눌래야 나눌 수 없다. 마지막에 만물은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하늘로 돌아가며 하늘은 도道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도道를 귀하게 여긴다.
[券 五]觀物外篇 上 [8]
■ 변變이 있으면 반드시 응應이 있다. 그러므로 안에서 변하면 밖에서 응하고 밖에서 변하면 안에서 응하며, 아래에서 변하면 위에서 응하고 위에서 변하면 아래에서 응하고, 하늘이 변하면 해[日]가 응한다. 그러므로 변하는 것은 하늘을 따르고 응하는 것은 해를 본받는다. 이 때문에 일日은 성星에서 만나고 월月은 신辰에서 만나며, 수水는 토土에서 생겨나고 화火는 석石에 숨으며, 날짐승은 나무에 깃들고 길짐승은 풀에 기대며, 심장과 허파는 서로 잇닿아 있고 간과 쓸개는 서로 붙어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변응變應의 도道이다.
■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하늘과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땅과 친하다. 그러므로 변變하고 응應하는 것은 늘 반대이다.
■ 양陽이 음陰과 뒤섞이어 낳은 것이 발굽과 뿔을 가진 종류이고 강剛과 유柔와 뒤섞이어 낳은 것이 뿌리와 열매를 가진 종류이며, 음陰이 양陽과 뒤섞이어 낳은 것이 깃털과 날개를 가진 종류이고 유柔가 강剛과 뒤섞이어 낳은 것이 줄기와 가지를 가진 종류이다. 하늘이 땅과 한데 어울려 뒤섞이고 땅이 하늘과 한데 어울려 뒤섞이므로 날개가 있으나 걷는 것이 있고 다리가 있으나 날아다니는 것이 있으며, 풀 가운데 나무가 있고 나무 가운데 풀이 있다. 각각 이 종류로 헤아리면 생물의 종류가 수數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걷는 것은 땅에서 편하고 날아다니는 것은 하늘에서 편하니 그 종류를 따를 뿐이다.
■ 뭍에 있는 것은 물 속에도 반드시 있는데, 비유하면 그림자가 있으면 형상이 있는 것과 같다. 뭍에는 걷는 것이 많고 물에는 나는 것이 많은데 한데 어울려 뒤섞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뭍에서 큰 것은 물 속에서는 반드시 작고 물 속에서 큰 것은 뭍에서는 반드시 작다.
■ 범과 표범의 털은 풀과 같고 매와 새매의 깃털은 나무와 같다.
■ 나무는 별[星]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므로 열매는 별모양을 닮았다.
■ 잎은 음陰이고 꽃과 열매는 양陽이다. 가지와 잎은 연하고 뿌리와 줄기는 단단하다.
■ 사람의 뼈가 크면 몸도 크고 나무의 줄기가 크면 잎도 큰데 천지의 수數에 응한 것이다.
■ 짐승은 몸이 가로로 되어 있고 식물은 몸이 세로로 되어 있다. 사람은 가로로 되어 있어야 마땅하나 반대로 세로로 되어 있다.
■ 나는 것은 날개가 있고 걷는 것은 발가락이 있다. 사람의 두 손은 날개이고 두 발은 발가락이다.
■ 나는 것은 나무의 열매를 먹고 걷는 것은 풀을 먹는다. 사람은 둘 다 모두 먹으며, 또 날짐승과 길짐승을 먹으므로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귀하다.
■ 체體는 반드시 한데 어울려 뒤섞인 뒤에 생겨난다. 그러므로 양陽이 강剛과 한데 뒤섞이어 심장과 허파를 낳고 양陽이 유柔와 한데 뒤섞이어 간과 쓸개를 낳으며 유柔가 음陰과 한데 뒤섞이어 콩팥과 방광을 낳과 강剛이 음陰과 한데 뒤섞이어 지라와 밥통을 낳는다. 심장과 눈을 낳고 쓸개는 귀를 낳고 지라는 코를 낳고 콩팥은 입을 낳고 허파는 뼈를 낳고 간은 살을 낳고 밥통은 골수를 낳고 방광은 피를 낳는다. 그러므러 건괘乾卦는 심장이 되고 태괘兌卦는 지라가 되고 이괘離卦는 쓸개가 되고 진괘震卦는 콩팥이 되고 곤괘坤卦는 피가 되고 간괘艮卦는살이 되고 감괘坎卦는 골수가 되고 손괘巽卦는 뼈가 되고 태괘泰卦는 눈이 되고 중부괘中孚卦는 코가 되고 기제괘旣濟卦는 귀가 되고 이괘?卦는 입이 되고 대과괘大過卦는 허파가 되고 미제괘未濟卦는 밥통이 되고 소과괘小過卦는 간이 되고 비괘否卦는 방광이 된다.
■ 하늘땅에 8 상象이 있고 사람에게 16 상象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늘과 땅이 합하여 사람이 태어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합하여 자식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16 상象 이 있는 것이다.
■ 염통은 허파에 자리잡고 있고 쓸개는 간肝에 자라잡고 있는데 무엇 때문인가? 성性으로 말하면 반드시 하늘로 돌아가고 체體로 말하면 반드시 땅으로 돌아가며, 땅 가운데에 하늘이 있고 석石 가운데에 불[火]이 있다. 그러므로 염통과 쓸개를 상징한 것이다. 염통과 쓸개는 왜 거꾸로 매달려 있는가? 풀과 나무는 땅의 본체本體이다. 사람과 초목은 반대로 생겨났기 때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입과 눈은 가로로 되어 있는데 코는 어째서 세로로 되어 있는가? 체體는 반드시 한데 어울려 뒤섞인다. 그러므로 짐승은 세로가 알맞지만 반대로 가로로 되어 있으며, 식물은 가로가 알맞지만 반대로 세로로 되어 있는 것은 모두 한데 어울려 교차했기 때문이다.
■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고 땅에 사방四方이 있으며 사람에게 사지四肢가 있다. 이 때문에 손마디로 하늘을 살필 수 있고 손금으로 땅을 살필 수 있다. 하늘땅의 이치가 손마디와 손금에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으니 어찌 귀하지 않으리오!
■ 심장은 신神을 거느려서 다스리고 콩팥은 기氣를 거느려서 다스리며 머리는 형체를 거느려서 다스린다. 형체와 기氣가 한데 어울려 뒤섞이고 신神이 마음을 맡아보는데 이것이 삼재三才의 도道이다.
■ 사람의 팔다리에 각각 맥脈이 있다. 1 맥脈에 3 부部가 있고 1 부部에 3 후候가 있는데 천수天數에 응한 것이다.
■ 심장은 신神을 갈무리하고 콩팥은 정精을 간직하며, 지라는 혼魂을 갈무리하고 쓸개는 백魄을 갈무리 한다. 밥통은 음식물을 받아들여 삭여서 기氣는 허파로 보내고 혈血은 간으로 보내며, 수분은오줌통과 창자로 보낸다.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며, 하늘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이 때문에 바라보면 비스듬한 덮개와 같다. 땅은 동남쪽이 낮고 서북쪽은이 높기 때문에 동남쪽에 강이 많고 서북쪽에 산이 많다. 하늘은 땅을 덮고 땅은 하늘을 싣고 있어 하늘땅이 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 땅이 있고 땅 위에 하늘이 있다.
■ 하늘은 위에서 혼혼渾渾하여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두수斗數를 보고 하늘을 살핀다. 북두칠성의 두병斗柄이 가리키는 곳이 하늘의 운행하는 곳이다. 괴魁는 자방子方을 가리키고 표杓는 인방寅方을 가리키며, 성星은 인寅을 낮[晝]으로 삼는다. 두斗에 일곱 개의 별이 있기 때문에 낮[晝]은 10 분分에 불과하다.
■ 하늘이 운행하는 까닭에 낮과 밤이 있고 해가 운행하기 때문에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이 있다. 더운 계절은 짧고 추운 계절은 긴데 하늘땅이 서로 한데 어울려 뒤섞이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운행하는 것은 하늘과 해가 서로 한데 어울려 뒤섞이기 때문이다.
■ 해는 아침에 동쪽에 있고 저녁에 서쪽에 있는데 하늘의 운행을 따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북쪽에 있고 겨울에는 남쪽에 있는 것은 하늘의 뒤섞임을 좇기 때문이다. 하늘은 한 바퀴를 운행하여 1 성星을 넘는데 해의 운행에 응하기 때문이다. 봄에는 유방酉方을 향하고 여름에는 오방午方을 향하고 가을에는 묘방卯方을 향하고 겨울에는 자방子方을 향하는데 해의 뒤섞임에 응하기 때문이다.
■ 해는 천천히 나아가고 달은 빨리 물러난다. 해와 달이 한 번 만나서 한나절이 보태지고 한나절이 덜어진다. 그러므로 이것이 윤달의 나머지이다. 해가 한 번 대운大運하여 6 일日이 올라가고 달이 한 번 대운大運하여 6 일日이 버려진다. 그러므로 이것이 윤달의 차이이다.
■ 해가 양도陽度로 운행하면 남고 음도陰度로 운행하면 모자라는데 손님과 주인의 도道이다. 달이 해에서 떨어지면 밝음이 생기기는 하나 더디고 해 가까이 가면 백魄이 생기는 데 빠르다. 이것은 임금과 신하의 義이다. 양陽이 줄어들면 음陰이 생겨나기 때문에 해가 지면 달이 서쪽에서 떠오른다. 음陰이 성盛하면 양陽이 대들기 때문에 해가 바라보이면 달은 동쪽에서 떠오른다. 하늘은 아버지가 되고 해는 아들이 되기 때문에 하늘은 왼쪽으로 운행하고 해는 오른쪽으로 돈다. 해는 남편이고 달은 아내이기 때문에 해는 동쪽에서 솟아오르고 달은 서쪽에서 떠오른다.
[券 五]觀物外篇 上 [9]
■ 해와 달이 서로 일식 · 월식이 되는 것은 수數가 교류하기 때문이다. 해가 달을 바라보면 월식月食이고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日食인데 마치 물과 불이 서로 억제하고 제약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슬기로움을 쓰고 소인小人은 힘을 쓴다.
■ 해는 하늘을 따라 돌고 달은 해를 따라 돌며 별은 달을 따라 나타난다. 그러므로 별은 달을 본받고 달은 해를 본받으며 해는 하늘을 본받는다. 하늘은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우며, 해는 반은 남고 반은 모자라며, 달은 반은 차고 반은 이지러지며, 별은 반은 움직이고 반은 가만히 있는데 음양陰陽의 뜻이다.
■ 하늘은 밤낮으로 늘 보이고 해는 낮에만 보이며, 달은 밤에 보이지만 반은 볼 수 없고 별은 밤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귀천貴賤의 등급이다.
■ 달은 낮에도 볼 수 있으므로 양陽 가운데 음陰이다. 별은 밤에도 볼 수 있으므로 음陰 가운데 양陽이다. 하늘은 홀수이고 땅은 짝수이다. 그러므로 천문天文을 살피는 사람을 별을 볼 뿐이고 지리地理를 살피는 사람은 산과 강을 볼 뿐이다. 별을 살펴보면 천문天文을 알 수 있고 산과 강을 살펴보면 지체地體를 알 수 있다. 천체天體는 만물을 받아들이고 지체地體는 만물을 지고 있으므로 체體는 도道로 돌아간다.
■ 남쪽의 맨 끝은 몹시 덥고 북쪽의 맨 끝은 몹시 춥다. 그러므로 남쪽은 녹아 있고 북쪽은 얼어 있기 때문에 만물이 살 수 없는 땅이다. 여름에는 해가 북두칠성을 따라 북쪽에 치우쳐 있고 겨울에는 해가 북두칠성을 따라 남쪽에 치우쳐 있다. 그러므로 하늘땅이 한데 어울려 뒤섞여야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이 서로 대꾸하며,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이 서로 화합한 후에 만물이 비로소 생겨난다.
■ 하늘은 강剛을 덕德으로 삼기 때문에 유柔는 보이지 않는다. 땅은 유柔를 체體로 삼기 때문에 강은 생겨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진괘震卦와 손괘巽卦는 하늘에서 양陽이고 땅에서 음陰이다. 양陽이 있어서 음陰이 본받으므로 지음至陰은 신辰이고 지양至陽은 일日인데 모두 하늘에 있어서이다. 그러나 땅은 물과 불 뿐이다. 그러므로 땅에는 모두 질質을 가지고 있는 사물뿐이다. 음陰이 양陽을 굴복시켜야 형질形質이 생겨나고 양陽이 음陰을 굴복시켜야 성정性情이 생겨난다. 이 때문에 양陽은 음陰을 낳고 음陰을 양陽을 낳으며, 양陽은 음陰을 억제하고 제약하며 음陰은 양陽을 억제하고 제약한다. 양陽이 굴복시키지 못하는 것을 땅에서 볼 수 없고 음陰이 지지 못하는 것을 하늘에서 볼 수 없다. 양陽을 굴복시키는 것이 적은 것은 그 체體가 반드시 유柔하다. 그러므로 양陽을 두려워하지만 양陽을 쓴다. 양陽을 굴복시키는 것이 많은 것은 그 체體가 반드시 강剛하다. 그러므로 양陽을 물리치고 음陰을 쓴다. 그러므로 물과 불은 움직이어 양陽을 따르고 흙과 돌은 가만히 있어 음陰을 따른다.
■ 양陽이 음陰을 낳으므로 물이 먼저 이루어지고 음陰이 양陽을 낳으므로 불이 나중에 이루어진다. 음양陰陽은 상생相生하고 체體와 성性은 상수相須한다. 그러므로 양陽이 없어지면 음陰도 없어지고 음陰이 다하면 양陽도 다하게 된다.
■ 금金과 화火가 서로 지키면 흐르고 화火와 목木이 서로 얻으면 타는데 그 종류를 좇기 때문이다.
■ 물이 추위를 만나면 얼고 불을 만나면 없어지게 되는데 그 이기는 바를 따르기 때문이다.
■ 양陽이 음陰을 만나면 비가 되고 음陰이 양陽을 만나면 바람이 되며, 강剛이 유柔를 만나면 구름이 되고 유柔가 강剛을 만나면 천둥이 된다. 음陰이 없으면 비가 되지 못하고 양陽이 없으면 천둥이 되지 못한다. 비는 유柔이며 음陰에 속한다. 음陰은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양陽을 기다린 뒤에야 일어서게 된다. 천둥은 강剛이고 체體에 속한다. 체體는 홀로 쓰이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양陽을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게 된다.
■ 뜻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형상이 있으며 형상이 있으면 반드시 수數가 있다. 수數가 만들어 정해지면 형상이 생겨나고 형상이 생겨나면 말이 뚜렷하여지고 말이 뚜렷해지면 뜻이 드러나게 된다. 형상과 수數는 통발과 올무이고 말과 뜻은 물고기와 토끼이다. 물고기와 토끼를 잡으려면 반드시 통발과 올무를 가지고 해야 한다. 통발과 올무를 버리고 물고기와 토끼를 잡은 것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하늘이 변하면 사람이 본받는다. 그러므로 원元 · 형亨 · 이利 · 정貞 은 역易의 변變이다. 사람이 행하면 하늘이 응한다. 그러므로 길吉 · 흉凶 · 회悔 · 린吝 은 역易의 응應이다. 원元과 형亨을 변變으로 삼고 이利와 정貞을 응應으로 삼으며, 길吉과 흉凶을 응應으로 삼고 회悔와 린吝을 변變으로 삼는다. 원元하면 길吉하고 길吉하면 이利가 응應한다. 형亨하면 흉凶하고 흉凶하면 정貞으로 응應한다. 회悔하면 길吉하고 린吝하면 흉凶하다. 이 때문에 변變 가운데에 응應이 있고 응應 가운데에 변變이 있다. 변變 가운데의 응應은 천도天道이다. 그러므로 원元이 변하게 되면 형亨이 응應하고 이利가 변하게 되면 정貞으로 응應하게 된다. 응應 가운데의 변變은 인사人事이다. 그러므로 변하면 흉凶이고 응應하면 길吉이며, 변變하면 인吝이고 응應하면 회悔이다. 회悔는 길吉의 먼저이고 인吝은 흉凶의 뿌리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하늘을 따르지 사람을 좇지 않는다. 원元의 봄이고 인仁이다. 봄은 철의 첫머리이고 인仁은 덕德의 으뜸이다. 때는 아직 왕성하지 않으나 덕德은 넉넉하여 사람을 기른다. 그러므로 덕德을 말하면서 때를 말하지 않는다. 형亨은 여름이고 예禮이다. 여름은 철의 한창이고 예禮는 덕德의 아름다움이다. 한창은 반드시 쇠약해지는데 아름다움은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때를 말하면서 덕德을 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큰 것을 건원乾元이라 하고 상구上九에 회悔가 있다. 이利는 가을이고 의義이다. 가을은 철의 이루어짐이고 의義는 덕德의 한창이다. 만물이 바야흐로 이루어지면 이를 거두어야 하는데 의義는 이利와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때를 말하면서 덕德을 말하지 않는다. 정貞은 겨울이고 지智이다. 겨울은 철의 끝머리이고 지智는 덕德의 쇠함이다. 올바르면 길吉하고 올바르지 아니하면 흉凶하다. 그러므로 덕德을 말하면서 때를 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利와 정貞을 성정性情이라고 한다.
■ 크도다, 문왕文王이 역易을 지음이여! 그 천지의 용用을 얻었음이라! 그러므로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한데 어울려 뒤섞이어 태괘泰卦가 되고 감괘坎卦와 이괘離卦가 한데 어울려 뒤섞이어 기제괘旣濟卦가 되었다. 건괘乾卦는 자방子方에서 생겨나고 곤괘坤卦는 오방午方에서 생겨나며, 감괘坎卦는 인방寅方에서 마치고 이괘離卦는 신방申方에서 끝나는데 하늘의 때에 응應한 것이다. 건괘乾卦가 서북쪽에 놓여 있고 곤괘坤卦가 서남쪽에 물러나 있어 장남長男이 명령을 받들어 사업을 행하고 장녀長女가 어머니를 대신하며, 감괘坎卦와 이괘離卦가 제자리를 찾고 태괘兌卦와 간괘艮卦가 짝을 이루는데 땅의 방方에 응應한 것이다. 임금의 법이 여기에서 다하는 것이다.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하늘땅의 근본이고 이괘離卦와 감괘坎卦는 하늘땅의 쓰임이다. 이 때문에 역易은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서 시작하고 이괘離卦와 감괘坎卦에서 가득차게 되며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에서 끝맺게 된다. 그리고 태괘泰卦와 비괘否卦는 상경上經의 한복판이고 함괘咸卦와 항괘恒卦는 하경下經의 맨 처음인데 모두 그 쓰임을 말한 것이다.
■ 곤괘坤卦는 서남쪽에서 세 딸을 거느리고 건괘乾卦는 동북쪽에서 세 아들을 거느린다. 상경上經은 3 에서 시작하고 하경下經은 4 에서 마치는데 모두 교태交泰의 뜻이다. 그러므로 역易은 용用인데 건乾은 9 를 쓰고 곤坤은 6 을 스며 대연大衍은 49 를 쓴다. 그러나 잠룡潛龍은 쓰지 않는다. 크도다, 용用이여! 나는 여기에서 성인의 마음을 보았도다.
■ 도道는 하늘을 낳고 하늘은 땅을 낳는다. 공功을 이루면 자신은 물러나므로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받는다. 이 때문에 건괘乾卦는 한 자리 물러나 있는 것이다.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한데 어울려 뒤섞이면 태괘泰卦가 되고 변하면 잡괘雜卦가 된다.
■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는 상편上篇의 쓰임새이고 태兌 · 간艮 · 손巽 · 진震은 하편下篇의 쓰임새이다. 이괘?卦 · 중부괘中孚卦 · 대과괘大過卦 · 소과괘小過卦는 이편二篇의 정正이다.
■ 역易은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을 말하는 것이다. 진괘震卦와 태괘兌卦가 처음으로 교류한다. 그러므로 아침과 저녁의 위치에 해당되고 이괘離卦와 감괘坎卦는 교류함의 막바지이다. 그러므로 자子와 오午의 위치에 해당한다. 손괘巽卦와 간괘艮卦는 비록 교류하지 아니하나 음양陰陽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쓰임새 가운데의 편위偏位에 해당한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순양純陽과 순음純陰이기 때문에 불용不用의 위位에 해당한다.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세로로는 여섯 아들이 되고 가로로는 역易의 근본이 된다. 진괘震卦와 태괘兌卦는 가로로는 여섯 괘卦가 되고 세로로는 역易의 쓰임새가 된다.
[券 五]觀物外篇 上 [10]
■ 상象은 형形에서 생기고 수數는 질質에서 생기며, 명名은 언言에서 생기고 의意는 용用에서 생겨난다. 천하의 수數는 이理에서 나오는데 이를 따르지 아니하면 술術로 들어간다. 세상 사람들이 수數로써 술術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理를 잃는 것이다.
■ 천하의 일은 모두 도道로 오는데 이리하면 근심이 이르지 아니한다.
■ 하늘에서 양陽은 남쪽에 있고 음陰은 북쪽에 있다. 땅에서 음陰은 남쪽에 있고 양陽은 북쪽에 있다. 사람에게서 양陽은 위에 있고 음陰은 아래에 있는데 한데 어울려 뒤섞이면 양陽은 아래로 내려가고 음陰은 위로 올라가게 된다.
■ 하늘이 이理로 다하지만 형形으로 다하지 못한다. 혼천渾天의 술術은 형形으로 하늘을 다하는데 어찌 가하리오!
■ 신辰의 수數의 12 이며, 해와 달이 교회交會하는 것을 신辰이라고 한다. 신辰은 하늘의 체體이다. 하늘의 체體는 형체가 없는 기氣이다.
■ 정의精義하여 입신入神하여야 실제에 응용할 수 있다. 정의精義하지 못하면 입신入神하지 못하고 입신入神하지 못하면 실제에 응용할 수 없다.
■ 다스림의 도道는 반드시 그 변화에 통달하여야 하는데 고지식하여 변통變通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비유하자면 봄철에 겨울의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것과 같다.
■ 양陽의 수數는 1 이고 펼치면 10 이 되는데 십간十干의 종류가 이것이다. 음수陰數는 2 이고 12 가 되는데 십이지十二支 와 12 월月의 종류가 이것이다.
■ 원元 · 형亨 · 이利 · 정貞의 덕德은 길吉 · 흉凶 · 회悔 · 린吝의 일을 포함한다. 비록 덕德을 행하더라도 때를 어기면 마찬가지로 흉凶이 된다.
■ 초효初爻와 상효上爻는 같다. 그러나 상효上爻는 초효初爻에 미치지 못한다. 이효二爻와 오효五爻는 같다. 그러나 이효二爻의 음중陰中은 오효五爻의 양중陽中에 미치지 못한다. 삼효三爻와 사효四爻는 같다. 그러나 세 개의 효爻가 하괘下卦의 위에 있으므로 네 개의 효爻가 임금 가까이에 있는 것만 못하다.
■ 하늘의 신神은 해에 깃들어 있고 사람의 신神은 눈에서 나타난다. 사람의 신神은 깨어 있을 때는 심장에 깃들고 잘 때에는 신장에 깃드는데 하늘을 본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야晝夜의 도道이다.
■ 구름이 움직이면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며 천둥이 울리는데 이 또한 저마다 그 종류가 따르기 때문이다.
■ 취吹 · 분噴 · 허噓 · 가呵 와 바람 · 비 · 구름 · 안개 · 천둥은 엇비슷한 것을 말함이다.
■ 만물은 각각 태극太極 · 양의兩儀 · 사상四象 · 팔괘八卦의 차례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예와 지금의 상象도 가지고 있다.
■ 구름에 수水 · 화火 · 토土 · 석石의 다름이 있으며, 그 밖의 종류도 이와 같다.
■ 동지冬至와 하지夏至는 서로 떨어져 있는데 동서東西의 도度는 얼추 180 이고 남북南北의 도度는 대략 60 이다.
■ 동지冬至의 달이 운행하는 것은 하지夏至의 해와 같고, 하지夏至의 달이 운행하는 것은 동지冬至의 해와 같다.
■ 4 정正은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이다. 그 상象을 살펴보면 반복反覆의 변화가 없는데 정正하기 때문이다.
■ 양陽이 음陰 가운데에 있으면 양陽이 역행逆行하고 음陰이 양陽 가운데에 있으면 음陰이 역행逆行한다. 양陽이 양陽 가운데에 있고 음陰이 음陰 가운데에 있으면 순행順行한다. 이것은 참되고 빈틈없는 이치로 하도河圖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저절로 그러하나 부득이 바뀌는 것은 내상內象과 내수內數이다. 다른 것은 모두 외상外象과 외수外數이다.
■ 풀종류의 작은 것은 곤괘坤卦에 들어간다.
■ 오행五行의 목木은 만물의 유類이다. 오행五行의 금金은 석石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수水 · 화火 · 토土 · 석石은 금金 · 목木에 미치지 못한다. 금金과 목木은 그 사이에서 생겨난다.
■ 천기天氣를 얻은 것은 움직이고 지기地氣를 얻은 것은 가만히 있는다.
■ 양陽의 유類는 원圓이나 형체를 이루면 방方이 되며, 음陰의 유類는 방方이나 형체를 이루면 원圓이 된다.
■ 천도天道의 변變은 왕도王道의 권權과 같다.
[券 五]觀物外篇 上 [11]
■ 무릇 괘卦는 각각 성性과 체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의 문門을 떠나지 못한다. 예컨대 만물은 하늘로부터 성性을 받아 각각 그 성性으로 되는데, 사람에게 있으면 사람의 성性이 되고 길짐승과 날짐승에게 있으면 길짐승과 날짐승의 성性이 되고 풀과 나무에 있으면 풀과 나무의 성性이 된다.
■ 하늘은 기氣를 으뜸으로 하고 체體를 버금으로 한다. 땅은 체體를 으뜸으로 하고 기氣를 버금으로 한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도 이와 같다.
■ 기氣는 성性을 기르고 성性은 기氣에 기댄다. 그러므로 기氣가 있으면 성性도 있고 성性이 움직이면 기氣도 움직인다.
■ 요임금 이전은 선천先天이고 요임금 이후는 후천後天이다. 후천은 법法을 본받는다.
■ 하늘의 상수象數는 깨달아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신神의 조화는 깨달아 헤아릴 수 없다.
■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토土와 석石이 된 것이므로 바뀌지 않으며, 잎과 꽃은 수水와 화火가 된 것이므로 변하여 바뀐다.
■ 자연히 그러한 것은 하늘인데 오직 성인聖人만이 탐구할 수 있다. 법法을 본받는 것은 사람이다. 움직였다 멈추었다 하는 것은 비록 사람이지만 이 또한 하늘이 하는 것이다.
■ 생生은 성性이고 하늘이며, 성成은 형形이고 땅이다.
■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남녀교구男女交構하는 형상이다.
■ 체體는 4 이고 변變은 6 인데 신神과 기氣를 아울러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氣가 변하면 반드시 6 이 되기 때문에 360 이다.
■ 모든 일은 최고조에 이르지 아니하고 거의 10 의 7 에서 그친다. 대개 하짓날은 60 에서 그친다. 게다가 아침과 저녁으로 나누어 빛깔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거의 10 의 7 이다.
■ 동쪽은 붉은빛, 남쪽은 흰빛, 서쪽은 누른 빛, 북쪽은 검은빛인데 이것이 정색正色이다. 아침 · 한낮 · 해질녘 · 밤중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하도河圖에는 비록 글이 없지만 나는 종일토록 의논을 하여도 이에 떠나지를 못한다. 대개 천지만물의 이치는 그 속에서 다하기 때문이다.
■ 동지冬至의 자중子中은 음陰의 끝머리이고 춘분春分의 묘중卯中은 양陽의 한가운데이며, 하지夏至의 오중午中은 양陽의 끝머리이고 추분秋分의 유중酉中은 음陰의 한가운데이다. 무릇 360 을 2 로 나누면 180 이 되는데 이것은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이 서로 떨어진 수數이다.
■ 양陽 가운데에 음陰이 있고 음陰 가운데에 양陽이 있는 것은 하늘의 도道이다. 양陽 가운데 양陽은 해이며 서暑의 도道이다. 양陽 가운데 음陰은 달인데 이것은 양陽의 종류이므로 낮에도 볼 수 있다. 음陰 가운데 양陽은 별인데 이 때문에 밤에 볼 수 있다. 음陰 가운데 음陰은 신辰인데 하늘의 땅이다.
■ 기氣는 하나이며, 맡아보는 것은 건乾이다. 신神은 하나이며 기氣를 이용하여 변하기 때문에 유무有無와 사생死生의 사이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방方이 없기에 헤아릴 수가 없다.
■ 간干은 줄기의 뜻이며 양陽이다. 지支는 가지의 뜻이며 음陰이다. 간干은 10 이고 지支는 12 인데 이것은 양수陽數 가운데에 음陰이 있고 음수陰數 가운데에 양陽이 있는 것이다.
■ 건乾을 알지 못하면 성명性命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 시時가 그러한 뒤에 말이 있고, 응應과 변變이 곧 말이기에 말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다.
■ 인仁은 하늘땅과 짝이 되기에 인人이라고 일컫는다. 오직 인仁만을 참으로 인人이라고 할 수 있다.
■ 생生하고 성成하며, 성成하고 생生하는 것은 역易의 도道이다.
■ 기氣는 신神의 집이고 체體는 기氣의 집이다.
■ 물고기는 물 속에 사는 족속이고 곤충은 바람의 족속이다.
■ 동지冬至의 자중子中은 음陰의 끝머리이고 춘분春分의 묘중卯中은 양陽의 한가운데이며, 하지夏至의 오중午中은 양陽의 끝머리이고 추분秋分의 유중酉中은 음陰의 한가운데이다. 무릇 360 을 2 로 나누면 180 이 되는데 이것은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이 서로 떨어진 수數이다.
■ 양陽 가운데에 음陰이 있고 음陰 가운데에 양陽이 있는 것은 하늘의 도道이다. 양陽 가운데 양陽은 해이며 서暑의 도道이다. 양陽 가운데 음陰은 달인데 이것은 양陽의 종류이므로 낮에도 볼 수 있다. 음陰 가운데 양陽은 별인데 이 때문에 밤에 볼 수 있다. 음陰 가운데 음陰은 신辰인데 하늘의 땅이다.
■ 기氣는 하나이며, 맡아보는 것은 건乾이다. 신神은 하나이며 기氣를 이용하여 변하기 때문에 유무有無와 사생死生의 사이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방方이 없기에 헤아릴 수가 없다.
■ 간干은 줄기의 뜻이며 양陽이다. 지支는 가지의 뜻이며 음陰이다. 간干은 10 이고 지支는 12 인데 이것은 양수陽數 가운데에 음陰이 있고 음수陰數 가운데에 양陽이 있는 것이다.
■ 건乾을 알지 못하면 성명性命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 시時가 그러한 뒤에 말이 있고, 응應과 변變이 곧 말이기에 말은 나에게 있지 아니하다.
■ 인仁은 하늘땅과 짝이 되기에 인人이라고 일컫는다. 오직 인仁만을 참으로 인人이라고 할 수 있다.
■ 생生하고 성成하며, 성成하고 생生하는 것은 역易의 도道이다.
■ 기氣는 신神의 집이고 체體는 기氣의 집이다.
■ 물고기는 물 속에 사는 족속이고 곤충은 바람의 족속이다.
[券 六]觀物外篇 下 [1]
■ 사물로 사물을 기쁘게 하고 사물로 사물을 슬프게 하는 것은 발發하여 절도에 들어맞는 것이다.
■ 돌의 꽃은 염소鹽消의 종류이고 물 속의 나무는 산호珊瑚의 종류이다.
■ 물 속의 생물은 뭍의 생물과 다르지 아니하며, 각각 한열寒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크게 비교하면 뭍은 양陽 가운데 음陰이고 물은 음陰 가운데 양陽이다.
■ 일日 · 월月 · 성星 · 신辰은 같이 하늘을 맡고 수水 · 화火 · 토土 · 석石은 함께 땅을 맡으며, 이耳 · 목目 · 비鼻 · 구口 는 함께 머리를 맡고 수髓 · 혈血 · 골骨 · 육肉 은 같이 몸을 맡는다. 이것은 곧 5 의 수數이다.
■ 불[火]은 무無에서 생기고 물[水]은 유有에서 생긴다.
■ 나와 사물이 없어지면 능히 사물을 사물로 볼 수 있다.
■ 신辰이 해[日]에 이르면 생生이 되고 해[日]가 신辰에 이르면 용用이 된다. 대개 따르면 생生이 되고 거스르면 용用이 된다.
■ 역易에 384 효爻가 있는데 이것이 진짜 천문天文이다.
■ 매와 수리의 무리는 날것을 먹으나 닭과 오리의 무리는 날것만을 먹지 않는다. 범과 표범의 무리는 날것을 먹으나 고양이와 개는 날것을 먹고 또 곡식도 먹는다. 이렇게 유추하면 그 밖의 것들도 알 수 있다.
■ 말과 소는 모두 음陰의 무리인데 자세히 나누면 말은 양陽이고 소는 음陰이다.
■ 날짐승의 무리는 바람을 좋아하고 위로 날아오르는 것에 민첩하며, 길짐승의 무리는 땅을 좋아하고 아래로 뛰는 것에 능하다.
■ 날짐승과 곤충의 알은 열매 · 낟알과 같은 부류이다. 낟알의 종류에 씨앗이 많은데 곤충의 무리도 또한 그러하다.
■ 누에의 종류는 올해는 누에나방으로 누에 자子이나 다음 해에는 누에 자子가 누에가 된다. 순무의 종류는 올해는 뿌리이면서 싹이고 다음 해에는 싹이면서 자子가 된다.
■ 하늘땅의 기운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운행하면 다스려지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운행하면 어지러워진다. 어지러움이 오래되면 다시 북쪽에서 남쪽으로 운행하게 된다.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모두 그러하다. 이로써 역대歷代를 헤아리면 소장消長의 이치를 알 수 있다.
■ 나에게 맡겨진 것은 정情이요, 정情이 가려지면 어두워진다. 물物에 말미암은 것은 성性이 되고 성性은 신神이며 신神인즉 명明이다.
■ 하늘에 숨고 땅에 숨으며 행하지 않아도 이른다. 음양陰陽으로 거느리지 못하는 것은 신神이다.
■ 물 속에 사는 것은 눈을 감지 아니하고 공중에 사는 것은 눈을 감는다. 길짐승의 무리는 윗눈썹이 아래로 감고 날짐승의 무리는 아랫눈썹이 위로 감는데 종류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 물 속에 사는 것 가운데 용龍과 어룡魚龍은 날짐승과 같은 부류이고 거북과 수달은 길짐승과 같은 부류이다.
■ 사상四象은 한데 어울려 뒤섞여야 용用이 된다. 해와 달은 하늘의 음陰과 양陽이고 물과 불은 땅의 음陰과 양陽이다. 성星과 신辰은 하늘의 강剛과 유柔이고 토土와 석石은 땅의 강剛과 유柔이다.
■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열 가운데 하나라도 피할 수 없으며, 사람이 지은 재앙은 열 가운데 아홉을 피할 수 없다.
■ 양陽은 서서히 자라나고 음陰은 급하게 추워진다. 해[日]가 영도盈度에 들면 음陰은 양陽에 따르고 해가 축도縮度에 들면 양陽이 음陰에 따른다.
■ 날짐승이면서 걷는 것은 닭과 오리의 무리이고 길짐승이면서 나는 것은 용龍과 용마龍馬의 무리이다.
■ 선천先天의 학문은 심心이고 후천後天의 학문은 적迹이다. 유무有無와 사생死生에 드나드는 것은 도道이다.
■ 신神은 있는 곳이 없으니 있지 않는 곳이 없다. 지인至人과 타심통자他心通者는 그 근본이 같다. 도道와 일一은 신神의 억지 이름이다. 신神을 신神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옳은 말이다.
■ 몸은 땅이며 정靜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른바 움직이는 것은 기혈氣血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 하늘땅은 만물을 낳고 성인은 만민萬民을 기른다.
■ 끊임없이 생기게 하고 종류를 늘리는 것은 하늘땅의 성공成功이고 나누어 기르고 종류를 가름하는 것은 성인의 성능成能이다.
[券 六]觀物外篇 下 [2]
■ 신神은 사람 몸의 주인이다. 자려고 하면 지라에 있고 잘 때에는 신장에 있으며, 깨려고 할 때는 간肝에 있고 깨어 있을 때는 심장에 있다.
■ 사물로 사물을 보는 것은 성性이고 나로 사물을 보는 것은 정情이다. 성性은 공변되고 밝으며, 정情은 편벽되고 어둡다.
■ 양陽은 열고 나가는 것을 맡아보고, 음陰은 닫고 들어오는 것을 맡아본다.
■ 해가 물 속에 있으면 살고 떠나면 죽는데 교交와 불교不交를 이르는 것이다.
■ 음陰은 양陽과 대립하기에 2 이다. 그러나 양陽이 오면 살고 양陽이 떠나가면 죽는다. 천지 만물의 생사生死는 음양陰陽이 맡아보며 1 로 돌아간다.
■ 신神은 구역이 없으며, 성性은 질質이 있다.
■ 성性에서 발하면 정情에 나타나고 정情에서 발하면 색色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종류로 응하기 때문이다.
■ 하늘땅은 여름에 크게 깨어 있고, 사람의 신神은 심장[心]에 있다.
■ 하늘땅이 만물을 생기게 하였을지라도 만물은 만물이며, 도道가 하늘땅을 생기게 하였을지라도 하늘땅도 마찬가지로 만물이다.
■ 물 속에 사는 짐승의 족속은 음陰을 으뜸으로 하고 양陽을 다음으로 하며, 뭍에 사는 짐승의 무리는 양陽을 으뜸으로 하고 음陰을 다음으로 한다. 그러므로 물 속에 사는 짐승은 물에서 나오면 죽고 공중에 사는 짐승은 물 속에 들어가면 죽는다. 그러나 물 속에 드나드는 무리가 있는데 거북 · 게 · 거위 · 오리의 무리이다.
■ 하늘땅이 한데 어울려 뒤섞임은 열 가운데 셋이다.
■ 1 이 변하여 2 가 되고 2 가 변하여 4 가 되며 3 이 변하여 팔괘八卦를 이룬다. 4 가 변하여 16 이 되고 5 가 변하여 32 가 되며 6 이 변하여 육십사괘六十四卦를 빠짐없이 갖춘다.
■ 천화天火는 형체가 없는 불이고 지화地火는 형체가 있는 불이다.
■ 사람이 귀한 것은 만물의 형상을 아울러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중히 여기어 그 귀함을 얻기 때문에 만물의 형상을 쓸 수 있는 것이다.
■ 무릇 사람의 선악善惡은 말에 드러나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사람은 겨우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나 마음에서 싹트고 생각에 나타나는 것을 귀신은 미리 깨달아 알아내니, 이 때문에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한다.
■ 기氣는 변變이고 형形은 화化이다.
■ 사람은 만물의 성性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 불은 형체가 없으나 사물로 말미암아 형체를 갖게 된다. 금석金石의 불은 초목草木의 불보다 세찬데 사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 기氣와 형形이 기운차면 혼魂과 백魄도 왕성하며, 기氣와 형形이 쇠약하면 혼魂과 백魄도 또한 따라서 쇠한다. 혼魂은 기氣를 따라 변하고 백魄은 형形을 좇아 멈춘다. 그러므로 형체가 있으면 백魄이 있고 몸이 죽으면 백魄은 흩어져 없어진다.
■ 사람의 신神은 천지의 신神이다. 사람이 스스로 속이는 것은 천지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 사람은 귀신을 두려워하는데 귀신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두려워한다. 사람이 선善한 일을 많이 하면 양陽이 많아져 귀신이 더욱 두려워하게 되며, 악惡한 행위를 많이 하면 귀신이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대인大人은 귀신과 길흉吉凶을 같이하니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 지리至理의 학문은 지극한 정성[誠]이 아니면 이룰 수 없다.
■ 물리物理의 학문은 통하지 아니하는 곳이 있는데 억지로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억지로 통하게 하면 주관적인 견해만 가지게 되고 주관적인 생각만 가지게 되면 이치를 잃게 되어 술術에 빠진다.
■ 성星은 해의 나머지이고 신辰은 달의 나머지이다.
■ 별의 번지같이 아주 자잘한 것이 떨어져서 언덕이 된다.
[券 六]觀物外篇 下 [3]
■ 마음은 하나여서 나누지 못하지만 온갖 변화에 응한다. 이것이 군자가 마음을 비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이다.
■ 장藏은 하늘의 행함이고 부府는 땅의 행함이다. 하늘땅과 나란히 함께 하니 팔괘八卦와 짝이 된다.
■ 성인聖人은 사물을 이롭게 하지만 나[我]는 없다.
■ 밝은 것에 해와 달이 있고 어두운 것에 귀鬼와 신神이 있다.
■ 역易에 진수眞數가 있으니 3 이다. 3 의 하늘은 3 에 3 을 곱하면 9 가 되고 2 의 땅은 2 에 3 을 곱하면 6 이 된다.
■ 팔괘八卦는 서로 한데 어울려 뒤섞이는데, 한데 어울려 뒤섞이어 육십사괘六十四卦를 이룬다.
■ 무릇 역易은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근본을 두고 구괘?卦와 복괘復卦에 삶을 둔다. 대개 강剛이 유柔와 한데 어울려 뒤섞이어 복괘復卦가 되고 유柔가 강剛과 어울려 뒤섞이어 구괘가 되는데 이로부터 끝없이 확대되는 것이다.
■ 『소문素問』과 『음부경陰符經』은 전국戰國 시대의 책이다.
■ 성인의 육경六經은 혼연渾然하여 자취가 없는데 마치 천도天道와 같다. 그러므로 『춘추春秋』는 사실을 기록하여 그 속에서 선악善惡을 드러내었다.
■ 중용中庸의 법에서 스스로 중中인 것은 하늘이고 스스로 외外인 것은 사람이다.
■ 운법韻法에서 개폐開閉는 율천律天이고 청탁淸濁은 여지呂地이다.
■ 운법韻法에서 먼저 닫히고 나서 나중에 열리는 것은 봄이고 순전히 열리는 것은 여름이며 먼저 열리고 나서 나중에 닫히는 것은 가을이다. 겨울은 닫혀서 소리가 없다.
■ 『소문素問』의 비밀스런 말은 술術의 이치에서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인仁에서 드러내고 용用에서 감추는데 맹자孟子는 용用을 잘 감추었다.
■ 적연부동寂然不動하여 근본으로 되돌아가 가만히 있는 것은 곤坤의 때이다. 감이수통感而遂通하여 모든 천하의 일을 통하는 것은 가운데에서 양陽이 동動한 것이다. 머리털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이 없는 것은 복괘復卦의 뜻이다.
■ 장자莊子와 순자荀子의 무리는 변辯을 잃었다.
■ 동東은 봄의 소리이고 양陽은 여름의 소리이다. 이것을 작운作韻으로 보면 알맞은 바가 있다. 함銜은 무릇 겨울의 소리이다.
■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데 움직이는 것은 속임이다. 비괘否卦의 때에 움직이는 것이 옳다. 움직임이 보이면서 움직이는 것은 진실되고 속임이 없다. 그러나 재앙이 있는 까닭은 양陽이 미약하여 응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응應하여 움직이면 이롭다.
■ 정기精氣는 물형物形이 되고 유혼游魂은 변신變神이 된다. 또 이르기를 정기精氣는 물체가 되고 유혼游魂은 변용變用이 된다.
■ 군자의 학문은 자신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며, 사람을 다스리고 사물에 응應하는 것은 모두 그다지 요긴하지 않은 일이다.
■ 전극?劇은 재력才力이고 명변明辯은 지식智識이며 관홍寬弘은 덕기德器이다. 이 셋중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 덕德이 없으면 사람을 꾸짖고 사람을 탓하며, 쉽게 노는 데에 빠져서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 용龍은 작아졌다 커졌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제한이 있는데 음양陰陽의 기氣에 제한을 받는다. 때를 얻으면 변화하는데 끊임없이 변화할 수는 없다.
■ 백이伯夷는 의義 때문에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는데 다만 인仁을 얻었을 뿐이다.
■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 하는바, 한 고을의 어진 이를 사귀는 것에 이르나 천하의 현인賢人이 천하에 족한 것이 아니라 위의 고인古人이 논한 바에 더 가하지 못한다.
[券 六]觀物外篇 下 [4]
■ 의義를 중히 여기면 안을 중시하고 이利를 중히 여기면 밖을 중시한다.
■ 태兌는 `기쁘다`는 뜻이다. 다른 기쁨은 모두 해로움이 있다. 벗과 더불어 학문을 익히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 그러므로 그 지극한것을 말하는 것이다.
■ 천리天理를 좇아 움직이는 것은 조화造化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 학문이 하늘과 사람에게 이르지 않으면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 군자는 역易에서 상象 · 수數 · 사辭 · 의意를 연구하고 생각한다.
■ 일반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병에 능하다고 해서 양의良醫라고 부르지 않으며, 일반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병에 능해야 천하의 양의良醫이다. 사람이 불가능한 일에 처하게 되면 불가능한 일을 해내게 된다.
■ 사람은 스스로 노는 데에 정신이 팔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노는 데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왕禹王은 노는 것과 일 없이 쉬는 것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진 이 이지만 배움에 힘쓰면서 늘 모자라고 깊은 데에 이르지 못하는 것같이 여겼기 때문에 존귀하게 되었다.
■ 사람이 참되게 마음을 쓰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다. 다만 많고 적음의 다름이 있고 지식이 깊고 얕음이 있을 뿐이다.
■ 이치를 깊이 파고든 뒤에야 성性을 알 수 있고, 성性을 깨우친 다음에야 명命을 알 수 있으며 명命을 안 뒤에야 지극함을 알 수 있다.
■ 무릇 잃은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으면, 설령 얻었더라도 또한 기쁘지 아니하다. 만일 얻은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을 경우, 잃으면 난처해지고 반드시 곤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 사람은 덕기德器를 가진 뒤에는 기쁨과 노여움이 모두 거짓됨이 없게 되고 재상도 되고 필부도 되며, 학문이 천하보다 높은 데에 이르렀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하다.
■ 사람은 반드시 안이 무거워야 하는데 안이 무거우면 밖은 가볍다. 만일 안이 가벼우면 반드시 밖은 무겁다. 이익과 명예를 좋아하면 이르지 않는 데가 없게 된다.
■ 천리天理를 깨달으면 몸만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도 윤택해지며, 마음만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고 성性과 명命도 윤택해진다.
■ 세상에 책을 본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잘 보는 사람은 적다. 만일 천리天理와 참된 즐거움을 깨달았다면 어떤 책이라도 보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깨뜨리지 못할 것이 없으며 어떤 이치라도 정밀하지 않으리오.
■ 역曆은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역曆을 배우는 사람들은 역법曆法만 알 뿐 역리曆理는 알지 못한다. 산가지를 펼칠 줄 알았던 사람은 낙하굉落下? 이고 천문天文을 미루어서 셈할 줄 알았던 사람은 감공甘公과 석신石申이었다. 낙하굉은 다만 역법曆法만 알았고 양웅揚雄은 역법曆法도 알고 역리曆理도 알았다.
■ 1 년年의 윤閏은 6 음陰 과 6 양陽이다. 3 년에 36 일이 남으므로 3 년마다 한 번의 윤년閏年을 두며, 5 년에 60 일이 남으므로 5 년마다 두 번의 윤년閏年을 둔다. 천시天時 · 지리地理 · 인사人事 이 세 가지를 알면 바뀌지 않게 된다.
■ 자성資性을 얻는 것은 하늘이고 학문으로 얻는 것은 사람이다. 자성資性은 안에서 나오고 학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스스로의 정성[誠]으로 밝아지는 것은 성性이며, 스스로의 밝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은 학문이다. 안회顔回는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아니하고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아니하였는데,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고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모두 정情이고 성性이 아니다. 성명性命에 이르지 못하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는 성인의 한 부분을 얻었는데 백이伯夷는 성인의 청淸을 얻었고 유하혜柳下惠는 성인의 화和를 얻었다. 공구孔丘는 청淸할 때도 있고 화和할 때도 있었으며, 행行할 때도 있고 멈출 때도 있었으므로 성인의 시時를 얻었다.
■ 태현太玄은 9 일은 2 괘卦와 같고 나머지 1 괘卦는 4 1/2 일과 같다.
■ 양웅揚雄은 『태현太玄』을 지었는데 하늘땅의 마음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 군사를 부리는 방법은 반드시 백성이 잘살고 곡식창고가 꽉 차며 무기고에 무기로 가득하고 병사가 굳세며 명분이 바른 것을 기다려 하늘의 도움이 있는 시기에 따르고 땅의 이로움을 얻은 뒤에 움직이는 것이다.
■ 역易은 형체가 없다. 가로되 이미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은 형체가 있는 것이다. 형체가 있다고만 하는 것은 안 되는바, 고로 전요典要라 하는 것은 불가하다. 이미 법칙이 있으니 불변의 상常인 것이요, 전요典要라 하는 것이 불가함은 변變이 된다.
■ 장주莊周의 웅변은 수천 년 동안 한 사람뿐이었다. 예컨대 포정이 소를 잡으면서 말하기를 머뭇거리며 이곳저곳을 찬찬히 살펴본다고 한 것과 공구孔丘가 여량呂粱의 물을 보며 말하기를 촐랑촐랑 흘러가는 저 물은 사사로움이 없다고 한 것은 모두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이다.
[券 六]觀物外篇 下 [5]
■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대개 사물의 이치를 밝힌 것이다.
■ 지금 어떤 사람이 두 개의 대臺에 올라간다고 하자. 만일 두 개의 대臺가 높이가 똑같으면 높음을 알지 못한다. 한 개의 대臺가 높고 다른 한 개의 대臺가 낮은 뒤에야 높고 낮음을 알 수 있다.
■ 학문이 즐거움에 이르지 아니하면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 한 나라와 한 가정과 한 몸은 모두 같다 .한 몸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한 가정을 감당할 수 있고 한 가정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한 나라를 처리할 수 있으며 한 나라를 처리할 수 있으면 온 세상을 감당할 수 있다. 마음은 몸의 근본이고 가정의 나라의 근본이며 나라는 천하의 근본이다. 마음은 몸을 부릴 수 있는데 만일 마음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몸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사람의 정신은 감추고 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만일 밖으로 내보이면 손상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예컨대 날카로운 칼로 물건을 벨때 만일 칼의 날카로움만 믿고 물건을 베려고 한다면 칼과 물건이 모두 망가지는 것과 같다.
■ 말이 거짓 없는 참된 정성에서 나오면 마음은 수고롭지 않고 편안하며 남이 오래도록 믿는다. 거짓된 술수로 한때 남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오래지 않아 반드시 망하게 된다.
■ 사람은 덕德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바 소인 가운데도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재주는 믿을 수 없고 덕德은 얻기가 어렵다.
■ 하늘 · 땅 · 해 · 달은 그지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있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 군자는 시골에 살면 시골의 일을 하고 조정에 있으면 조정의 일을 한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 만족하지 않음이 없다.
■ 슬기로운 꾀는 더러 한 왕조에서 시행될 수 있으나 대개 때와 끝남이 있다. 오직 지극한 정성만이 하늘땅과 더불어 끝없이 오래간다. 하늘땅이 없어지면 지극한 정성도 사라지게 된다. 만일 하늘땅이 없어지지 않으면 지극한 정성도 사라지지 않는다.
■ 집안에서 수레를 만들더라도 온 세상에 널리 쓰이게 되는데 수레바퀴가 서로 꼭 들어맞기 때문이다. 만일 의리義理에 따르고 인정人情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해와 달이 비추는 모든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 중용中庸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 속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알며 그 마땅한 바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 온 세상의 슬기를 거두어 모아 지智로 삼고 온 세상의 착함을 거두어 모아 선善으로 여기면 넓고, 자기 것만을 쓰면 작다.
■ 한漢나라의 선비들은 경經에 반反하고 도道에 부합하는 것을 권權이라고 하였는데 일단을 얻은 것이다. 권權은 무게를 고르게 하는 것이다. 성인이 권權을 사용할 때 그 무게를 헤아려 쓰기 때문에 그 마땅함에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집중執中하였더라도 권權이 없으면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왕통王通이 말하기를 『춘추春秋』는 왕도王道의 권權이라고 하였는데 왕통王通이 아니면 여기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權은 한 몸에 있으면 한 몸의 권權이 되고 한 고을에 있으면 한 고을의 권權이 되며 천하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권權이 된다. 쓰임이 비록 다르더라도 권權은 하나이다.
■ 무릇 활에는 본디 세고 약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활을 두 사람이 잡아당기더라도 활이 세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힘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이 남기에 활이 약하다고 여기고 힘없는 사람은 자기의 힘이 모자라기에 활이 세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이 심하지 않은가? 활에 세고 약함이 있지 아니하고 두 사람의 힘에 세고 약함의 다름이 있을 뿐이다. 지금 한 대접의 음식이 앞에 놓여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이 너무 굶주리고 있다가 보았다면, 만일 서로 양보를 한다면 똑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서로 빼앗기 위해 다툰다면 싸움이 벌어질 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사람의 정情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적고 이것을 알면 온 세상의 일은 모두 이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 역易은 성인이 군자를 많게 하고 소인을 적게 하는 수단이다. 많게 함에 있어서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에 도와야 하고 적게 함에 있어서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에 막아야 한다. 한 번 적게 하고 한 번 많게 하며, 한 번 막고 한 번 돕는 것은 크고 넓어서 흔적이 없다.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면 그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券 六]觀物外篇 下 [6]
■ 대과괘大過卦는 처음과 끝이 약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큰 덕德과 높은 지체를 가진 뒤에야 구제받을 수 있다. 일정한 지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허물이 용납되는 것이 있고 용납되지 않는 것이 있다. 큰 덕德과 높은 지체를 가지고 있으며 허물이 용납된 사람은 이윤伊尹과 주공周公인데 그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큰 덕德은 가지고 있으나 높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허물이 용납되지 않은 사람은 공구孔丘와 맹가孟軻인데 그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지체가 덕德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도다, 위位여! 재주와 능력을 기다리는 집이라.
■ 복괘復卦 다음이 박괘剝卦인데 다스림은 어지러움에서 생겨남을 뚜렷하게 나타내 보인다. 구괘 다음은 쾌괘인데 어지러움은 다스림에서 생겨남을 뚜렷이 드러내 보인다. 아아! 박괘剝卦가 없으면 복괘復卦가 없고 쾌괘가 없으면 구괘가 없을 것이다. 막을 것을 미리 막으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자손이 번성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미리 막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이것을 역易의 큰 대강大綱이라고 일컫는다.
■ 선천先天의 학문은 심법心法이다. 그러므로 하도河圖는 모두 한복판으로부터 끝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모든 일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 선천先天의 학문은 성誠을 위주로 한다. 지극한 정성이면 신명神明에 통하고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도道를 깨칠 수 없다.
■ 선천도先天圖는 안에 동그라미가 있고 안에 또 동그라미가 있다. 즉 공허空虛하므로 융통자재한다.
■ 일을 할 때 반드시 능력을 헤아려야 하는데 능력을 헤아리면 오래 갈 수 있다.
■ 길을 갈 때 너그럽지 아니하면 안 되는데 너그러우면 거리낌이 적다.
■ 역易을 아는 사람은 설명을 인용할 필요가 없는데 이것이 역易을 아는 것이다. 맹가孟軻는 일찍이 역易을 말한 적이 없으나 그의 말 속에 역도易道가 들어 있다. 다만 아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사람이 역易을 잘 쓰는 것은 역易을 제대로 안 것이다. 마치 맹자가 선善을 말하면서 역易을 쓴 것과 같다.
■ 학문은 인사人事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의 경전經典은 옛 사람의 인사人事이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춘추곡량전春秋穀粱傳』외에 육순陸淳 · 담조啖助도 함께 『춘추春秋』를 정리하였다.
■ 이른바 황皇 · 제帝 · 왕王 · 패覇는 삼황三皇 · 오제五帝 · 삼왕三王 · 오패五覇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위無爲를 쓰면 황皇이고 은혜와 믿음을 쓰면 제帝이며, 공정公正을 쓰면 왕王이고 지력智力을 쓰면 패覇이다. 패覇 아래는 오랑캐이고 오랑캐 아래는 짐승이다.
■ 계찰季札의 재주는 백이伯夷와 비슷하다.
■ 숙향叔向 · 자산子産 · 안자晏子의 재주는 서로 비슷하다.
■ 관중管仲은 지혜와 권모술수로 사물의 이치를 늦게 알았지만 무릇 재주와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 오패五覇는 공로도 첫째이지만 허물도 첫째이다. 『춘추春秋』는 공구孔丘가 지은 형서形書이다. 공로와 허물을 감추지 아니하였는데 성인은 먼저 공로를 칭찬하고 나서 나중에 허물을 깎아 내려서 폄하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도 공로가 있으면 또한 반드시 기록하였으니 불가불 용서함이다.
■ 두 개의 관觀을 처음으로 지었다는 글에서 `처음`은 깎아 내려서 나쁘게 말한 것이며, 옛적에 없던 건축물을 새로 지은 일을 꾸짖는 것이다. 처음으로 육우六羽를 바쳤다는 글에서 `처음`은 칭찬한 것이며, 이로서 옛적에 분에 넘치게 팔일八佾을 행한 사실을 드러내어 보인 것이다.
■ 어떤 사람이 『춘추春秋』를 윤사로尹師魯에게서 받았는데 윤사로尹師魯는 목백장穆伯長에게서 받았다. 어떤 사람이 나중에 목백장穆伯長을 공격하며 말하기를 『춘추春秋』에는 칭찬한 글은 없고 죄다 깎아 내려서 나쁘게 말한 것 밖에 없다. 전술고田述古가 말하기를 `손복孫復이 또 이르기를 『춘추春秋』에는 깎아 내려서 나쁘게 말하는 것만 있고 칭찬한 글이 없다` 고 하였다. 말하건대 『춘추春秋』에 예법禮法이 없다면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어지러워졌을 것이고, 그 기간에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어떻게 좋아졌겠는가? 하물며 오패五覇는 참으로 천하에 공로가 있었지만 오히려 왕王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오랑캐보다 나은 것이 없었는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었겠는가? 『춘추春秋』를 정리할 때 명名과 실實을 가름하지 못하고 오패五覇의 공로와 허물을 결정하지 못하면 『춘추春秋』를 정리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먼저 오패五覇의 공로와 허물을 결정하고 나서 『춘추春秋』를 정리하면 대의大意가 서게 된다. 만일 모든 일을 찾다 보면 두서가 없어지게 된다.
[券 六]觀物外篇 下 [7]
■ 무릇 사람이 배울 때 자기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 주周나라 평왕平王은 이름은 비록 임금이었으나 실제로는 작은 나라의 제후諸侯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는 비록 제후국諸侯國 이었지만 실제로 임금을 참칭하였다. 이것이 『춘추春秋』의 명名과 실實이다. 자공子貢이 노魯나라에서 초하루마다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 쓰는 양羊을 없애고자 하였는데 이때 양羊은 이름이고 예禮는 내용이다. 이름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것은 오히려 이름과 내용이 모두 없는 것보다 낫다. 만일 이름이 남아 있다면 뒷세상에 만들 임금이 없다고 어찌 알겠는가? 이로서 기다리는 바가 있음이다.
■ 진秦나라 목공?公은 주周나라에 공로가 있었으며 지난날의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되어 패자覇子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진晉나라 문후文侯는 대대로 임금에게 충성하였고 주周나라 평왕平王이 낙양洛陽으로 서울을 옮기는 데 공로가 있었으므로 그 다음이며,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제후들을 아홉 번이나 불러모아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였으므로 또 그 다음이며, 초楚나라 양공襄公은 비록 패자覇子이지만 힘이 미약하였고 제후들을 불러모았으나 초楚나라에게 붙잡혔으므로 패자覇子라 말하기에 부족하다. 『춘추春秋』를 정리할 때 먼저 네 나라의 공로와 허물을 결정하지 못하면 일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하고 성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 춘추春秋시대에 공로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이 네 나라 제후들보다 큰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하였고, 허물이 있는 사람 가운데 이 네 나라 제후들보다 큰 사람을 또한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네 나라는 공로도 첫째이고 허물도 첫째이다.
■ 사람들이 『춘추春秋』를 말할 때 성명性命의 책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책에 노魯나라 제후가 교외郊外에 나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낼 때 쓰는 소의 주둥이에 흠이 있자 다른 소를 고르고 그 소를 죽였으며, 삼망三望 때도 이와 같이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천자天子만이 할 수 있는 교제郊祭를 노魯나라 제후가 하였기 때문에 깎아 내려서 나쁘게 말한 것이다. 성인이 어떻게 이러한 일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찌 성명性命으로 말미암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 말하기를 『춘추春秋』는 사건마다 포폄褒貶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어찌 사람을 받아들일 때 사사로운 뜻으로 결정하겠는가? 사람들은 다만 『춘추春秋』가 성인의 필삭筆削으로 천하의 지극히 공평함을 세웠다는 것만 알 뿐 성인이 공평하도록 한 까닭은 알지 못한다. 예컨대 소가 다친 것으로 인하여 노魯나라가 분수에 맞지 않게 교제郊祭를 지낸 사실을 알 수 있고 육우六羽를 처음으로 바쳤다는 기록으로 인하여 노魯나라가 옛날에 분수에 맞지 않게 팔일八佾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새로 치문雉門을 세운 것으로 인하여 옛날에 없던 치문雉門을 세웠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성인이 그 속에 사사로운 마음을 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춘추春秋』는 성性을 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춘추春秋』는 임금은 약하게 하고 신하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므로 명분名分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성인의 어려움은 인仁 · 의義 · 충忠 · 신信을 잃지 않는 데 있다. 그럼 사업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네 가지에 뛰어나야 한다.
■ 말[馬]은 사람이 빌려 타는 것인데 자신을 버리고 사람을 좇는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재주의 어려움은 무슨 말입니까? 대답하기를 큰일이 닥쳐야 재주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또 묻기를 어찌 재주만 말합니까? 대답하기를 재주는 천하의 좋은 것이다. 배우는 사람들이 이루려는 것은 재주이다. 또 묻기를 옛 사람 가운데 학문을 하지 않고도 공업功業을 세운 사람이 있는데 구태여 학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주발周勃과 곽광?光은 큰일을 이루었지만 배움이 없는 까닭에 선善을 다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이치에 밝지 못하고 이치에 밝지 못하면 자기의 의견만을 굳게 내세워 우기어 조금도 융통성이 없게 된다. 사람이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강剛을 이기게 된다. 강剛을 알맞게 하면 근심과 재난에 처하더라도 충분히 사업을 이룬다. 만일 다른 데에 쓰면 반대로 사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구孔丘가 말하기를 `신정申?이 어찌하여 강剛을 얻었더라도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강剛을 잃게 된다` 고 하였다.
■ 군자는 의義에 밝기 때문에 어진 이 이며, 소인은 이利에 밝을 뿐이다. 의義와 이利를 모두 잊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성인뿐이다. 군자는 의義를 두려워하기에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소인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예 없다. 성인은 마음이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규칙을 벗어나지 않기에 어찌 의義를 두려워하리오?
■ 안회顔回는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아니하였다. 공구孔丘가 말하기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 되고 똑같은 일을 두 번 되풀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옳은 말이다. 모든 일은 한 번뿐이지 두 번 되풀이할 수는 없다. 한유韓愈는 바야흐로 마음으로부터 생각이 일어나려고 하면 곧바로 없애 버렸는데 이것은 안회顔回와 일맥상통한다. 안회顔回와 일맥상통한다는 말이 사사로운 개인의 의견이라면 어찌 도의道義에 맞겠는가? 어떤 사람이 묻기를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이 나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보다 또한 낫지 않겠습니까? 대답하기를 성인은 이와 같지 않다. 사사로운 마음으로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나쁜 사람과 똑같다.
■ 학문을 하고 심성을 수양하는 것이 올바른 도덕에 의하지 않음을 근심한다. 이욕利慾에서 멀어지는 것도 올바른 도덕에 의하는 것이며, 지극한 정성에 맡기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늘땅의 도道는 올곧음이다. 마땅히 올곧음으로 구해야 하며, 만일 지혜와 권모술수로 잽싸게 구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하늘땅에 굴복하고 인욕人慾에 따르는 것이므로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 일에는 크고 작음이 없으며 모두 천인天人의 이치를 가지고 있다. 마음과 몸가짐을 바르게 닦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며, 때를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잃고 얻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천명天命을 좇기 때문이다. 위태롭게 하고도 요행을 바라는 것은 천명天命을 거스르는 것이다. 구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얻을지 얻지 못할지를 가름하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얻고 잃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천명天命을 좇기 때문이다. 억지로 빼앗아 얻는 것은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것이다. 천리天理를 거스르면 반드시 근심과 재난이 닥치게 된다.
■ 노魯나라는 두 개의 관觀을 짓고 교외에서 대체大(示+帝)를 거행하였는데 모두 예禮가 아니다. 제후가 만일 해마다 체(示+帝) 를 거행한다면 이것은 떳떳한 제사로 옳은 것이다. 그러나 5 년마다 행하는 대체大(示+帝)에 대해서는 옳지 아니하다.
■ 중궁仲弓은 노魯나라 제후로 하여금 남면南面하여 정사를 돌보도록 하였다.
■ 어느 누가 문을 통하지 아니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겠는가! 문은 도道이다. 도道에 의하지 않고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다.
■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서 좋은 것을 선택하여 따른다. 비록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들어도 반드시 좋은 것을 선택해서 따라야 한다. 많이 보고 지식을 쌓아서 다름을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비록 많이 보아도 반드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인仁에서 드러내고 용用에서 감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대답하기를 해와 달이 비추고 사시四時가 1 년을 이루는 것이 사람에서 드러낸다는 것이며, 그 도수度數가 그렇다는 것만 알고 그렇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용用에서 감춘다는 것이다.
■ 낙하굉 은 전욱 의 역曆을 고쳐서 태초력太初曆을 만들었으며, 양웅揚雄은 태초太初를 기준으로 삼아 『태현太玄』을 지었는데 무릇 81 괘卦이며, 아홉으로 나누면 모두 2 괘卦가 된다. 무릇 15 를 14 로 자세히 나누면 4 1/2 과 같으며, 1 괘卦의 기氣가 한복판에서 일어나므로 중괘中卦를 첫머리로 한다.
■ 삼천양지三天兩地는 의수倚數이지 하늘땅의 정수正數가 아니다. 의倚는 모방한다는 뜻이다. 하늘땅의 정수正數를 모방해서 생겨난 것이다.
[券 六]觀物外篇 下 [8]
■ 원元 · 형亨 · 이利 · 정貞은 늘 변하여 일정하지 않은데 천도天道의 변變이다. 길吉 · 흉凶 · 회悔 · 린吝은 늘 변하여 바뀌며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 인도人道의 응應이다.
■ 귀신은 형체가 없으나 용用을 가지고 있어서 정상情狀을 깨달아 알 수 있으며, 용用에 의하여 볼 수 있다. 사람의 귀 · 눈 · 코 · 입 · 손 · 발, 풀과 나무의 가지 · 잎 · 꽃 · 열매 · 빛깔은 모두 귀신이 하는 바이다.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을 맡아보는 이는 누구인가? 총명함과 정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느 누구인가? 빠르지 않지만 멀리 가게 하고 가지 않지만 이르게 하는 것을 맡은 이는 누구인가? 모두 귀신의 정상情狀이다.
■ 역易에 의意와 상象이 있다. 의意를 세우는 것은 모두 상象을 드러내어 보이는 것이다. 아래의 세 가지를 거느리는데 언상言象을 가지고 있으면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바로 말하여 사事를 뚜렷이 드러내 보이며, 상상像象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의意를 뚜렷하게 나타내 보이며, 그리고 수상數象을 가지고 있는데 7 일, 8 월, 3 년, 10 년 따위이다.
■ 역易의 수數는 하늘땅의 처음과 끝을 연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하늘땅도 마지막과 처음이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소장消長이 있는데 어찌 마지막과 끝이 없겠는가! 하늘땅이 비록 크지만 이 또한 형形과 기器 두 가지 사물일 뿐이다.
■ 역易에 내상內象이 있는데 이치가 이것이다. 그리고 외상外象이 있는데 하나의 사물을 가리켜 변하지 않는 것이 이것이다.
■ 사람에게 있어서 건도乾道는 남자가 되고 곤도坤道는 여자가 된다. 사물에 있어서 건도乾道는 양陽이 되고 곤도坤道는 음陰이 된다.
■ 신神은 구역이 없고 역易은 형체가 없다. 한 구역에 얽매여 변화하지 못하면 신神이 아니며, 일정한 형체를 가지고 있어 변통變通하지 못하면 역易이 아니다. 역易이 비록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이 형체는 상象이다. 가상假象으로 형체를 보는 것이며 본래는 형체가 없는 것이다.
■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을 도道라고 일컫는다. 도道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서 깨달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도로道路의 도道를 빌려서 이름으로 삼았는데, 사람이 다닐 때 반드시 길로 다니기 때문이다.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은 하늘땅의 도道이다. 만물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일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며 모두 도道가 그 속에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면 도道라 이르고 그렇지 못하면 도道가 아니라고 한다. 인仁에서 드러내는 것은 하늘땅이 만물을 낳는 공로이며, 사람이 깨달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물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 깨달아 알 수 없는데 용用에서 감추기 때문이다.
■ 바른 음률音律의 수數는 7 에서 이루어지고 그친다. 하짓날의 해는 인시寅時에 솟아 나와 술시戌時에 저물며, 해시亥時 · 자시子時 · 축시丑時 이 3 시時에는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3 수數를 쓰지 않는 것은 3 시時에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물의 수數도 그러한데 수數가 아니면 쓰지 아니하고 수數가 있어도 알 수 없다.
■ 달의 몸체는 본디 검으나 해의 빛을 받아 희다.
■ 물[水]은 사람의 몸에서 피이고 흙은 사람의 몸에서 살이다.
■ 하늘땅을 경륜經綸하는 것을 재才라 일컫고 원대한 계획을 세워 기필코 해내는 것을 지志라고 하며 한데 아우르고 받아들이는 것을 양量 이라고 한다.
■ 육허六虛는 육위六位이다. 허虛는 변동하는 일을 기다린다.
■ 형形이 있으면 체體가 있고 성性이 있으면 정情이 있다.
■ 하늘은 용用을 맡고 땅은 체體를 맡아본다. 성인은 용用을 맡아보고 백성은 체體를 맡아서 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써도 알지 못한다.
■ 쓸개와 콩팥은 음陰이고 심장과 지라는 양陽이다. 심장은 눈을 맡아보고 지라는 코를 맡는다.
■ 양陽 가운데 양陽은 해이고 양陽 가운데 음陰은 달이며, 음陰 가운데 양陽은 별[星]이고 음陰 가운데 음陰은 신辰이다. 유柔 가운데 유柔는 물[水]이고 유柔 가운데 강剛은 불[火]이며, 강剛 가운데 유柔는 흙[土]이고 강剛 가운데 강剛은 돌[石]이다.
■ 법法은 복희伏羲에서 시작하여 요임금 때에 이루어졌으며, 삼왕三王 때에 바뀌고 오패五覇 때에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진秦나라 때에 끊어졌다. 만세萬世의 치란治亂의 자취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해[日]는 염통이 되고 달[月]은 쓸개가 되고 별[星]은 지라가 되고 신[辰]은 콩팥이 되는데 장臟이다. 돌[石]은 허파가 되고 흙[土]은 간肝이 되고 불[火]은 밥통이 되고 물[水]은 오줌통이 되는데 부腑이다.
■ 역易의 생수生數는 129,600 이며 도합 4,320 세世이다. 이것은 소장消長의 대수大數이다. 확대하면 30 년의 신수辰數, 곧 그 수數가 된다. 1 년 360 일이 4,320 신辰을 얻고 여기에 30 을 곱하면 그 수數를 얻는다. 무릇 갑자甲子와 갑오甲午는 해[歲]의 첫머리이다. 이것을 경세經世의 수數라고 하는데 해[歲]는 갑甲, 달은 자子, 별은 갑甲, 신辰은 자子에서 시작한다. 또 말하기를 이것은 경세 일갑經世日甲의 수數라고 하는데 달은 자子, 별은 갑甲, 신辰은 자子를 따른다.
■ 콧구멍에서 나오는 더운 김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귀로 들을 수 있는데 비슷한 것으로 응應하기 때문이다.
■ 의개倚蓋의 견해에 의하면 곤륜산崑崙山이 사방으로 드리워져서 바다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치를 헤아리면 그렇지 않다. 땅은 네모 반듯하여 움직이지 아니하고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둥근 것을 얻어서 하늘처럼 움직이겠는가?
■ 조수潮水는 땅의 천식이며, 달에 응하는데 비슷한 것에 따르는 것이다.
■ 십간十干은 하늘이고 십이지十二支는 땅이다. 십간과 십이지는 하늘땅의 용用과 결합한다.
■ 짐승은 태어날 때 머리부터 나오고 식물은 뿌리부터 나온다. 머리부터 나오는 것은 목숨이 머리에 있고 뿌리부터 나오는 것은 목숨이 뿌리에 있다.
■ 신神은 역易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구역이 없다. 역易은 신神의 용用이다. 그러니까 체體는 없다.
■ 이치를 좇으면 상常이 되고 이치를 어기면 이異가 된다.
■ 풍風 종류와 수水 종류는 크기가 서로 반대이다.
■ 진괘震卦는 용龍이 된다. 한 개의 양陽의 두 개의 음陰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이 진괘震卦이다. 깊은 못 속에 있는 짐승은 용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券 六]觀物外篇 下 [9]
■ 1, 10, 100, 1,000, 10,000, 100,000 은 홀수로 하늘의 수數이며 20, 120, 1,200, 12,000, 120,000 은 짝수로 땅의 수數이다.
■ 하늘의 양陽은 동남쪽에 있으며, 해와 달이 위치한다. 땅의 음陰은 서북쪽에 있으며 불과 돌이 위치한다.
■ 불[火]은 성性을 으뜸으로 삼고 체體를 버금으로 삼으며, 물[水]은 체體를 으뜸으로 삼고 성性을 버금으로 삼는다.
■ 양陽은 성性이고, 음陰은 정情이며, 성性은 신神이고 정情은 귀鬼이다.
■ 진괘震卦에서 시작하여 간괘艮卦에서 끝나는 한 단락은 문왕文王의 팔괘八卦에서 뚜렷하게 나타내 보였으며, 하늘땅이 위치를 정하는 한 단락은 복희伏羲의 팔괘八卦에서 뚜렷이 드러내어 보였다. 팔괘八卦가 서로 한데 어울려 뒤섞이는 것은 한데 뒤섞이어 이루어진 육십사괘六十四卦에서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 가는 것을 세는 것은 순順이다. 하늘을 따라 운행하는 것은 왼쪽으로 도는 것이다. 모두 이미 생겨난 괘卦이므로 가는 것을 센다고 한 것이다. 앞날을 미리 아는 것은 역逆이다. 하늘을 거슬러 운행하는 것은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다. 무릇 역易의 수數는 짐작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이 한 단락은 하도河圖의 뜻을 직접 풀이한 것으로 사시四時를 미리 안다고 하는 것과 같다.
■ 『상서尙書 · 요전堯典』의 1 년은 366 일이다. 무릇 해의 남은 나머지는 6 이고 달의 모자라는 나머지 또한 6 이다. 만일 해와 달의 나머지 12 를 빼면 354 가 된다. 이것이 곧 일행日行의 수數이며, 12 로 나누면 29 일을 얻게 된다.
■ 50 을 나누면 10 이 된다. 만일 3 의 하늘을 두 번 하면 6 이 되고 2 의 땅을 두 번 하면 4 가 된다. 이것은 하늘땅이 태극太極의 수數를 나눈 것이다. 하늘의 변變은 6 이다. 6 에 6 을 곱하면 36 이 되는데 이것은 건괘乾卦 1 효爻의 수數이다. 6 효爻의 책策이 쌓여서 도합 216 을 얻게 되는데 건괘乾卦의 책策이다. 6 에 4 를 곱하면 24 가 되는데 이것은 곤괘坤卦 1 효爻의 책策이다. 6 효爻의 수數가 쌓여서 도합 144 가 되는데 곤괘坤卦의 책策이다. 2 편篇의 책이 쌓이면 11,520 이 된다.
■ 『소문素問』에 이르기를 폐는 살갗과 털을 맡아보고 심장은 힘줄을, 비장은 살을, 간은 힘살을, 콩팥은 뼈를 맡아본다고 하였는데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되어 있다. 심장은 피를, 신장은 뼈를 맡아보며 서로 교차하는바 서로 교차하여 용用이 된다.
■ 『주역周易』은 삼황三皇부터 시작하고 『상서尙書』는 이제二帝부터 시작하며, 『시경詩經』은 삼왕三王부터 시작하고 『춘추春秋』는 오패五覇부터 시작한다.
■ 건괘乾卦를 하늘과 같다고 한 것은 상象을 근본으로 한 것이고, 금金과 같다고 한 것은 상象을 벌이어 놓은 것이다.
■ 역易은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서 시작하고 감괘坎卦와 이괘離卦에서 가운데가 되며 수화水火의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에서 끝맺게 되는데 모두 지극한 이치이다.
■ 하늘과 땅이 나란히 함께 가면 장藏과 부府가 결합하게 되는데 4 장藏은 하늘이고 4 부府는 땅이다.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서부터 감괘坎卦와 이괘離卦까지는 천도天道이고, 함괘咸卦와 항괘恒卦에서부터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까지는 인사人事이다.
■ 태극太極은 1 이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2 가 생겨나는데 2 는 신神이다.
■ 불은 습濕을 생기게 하고 물은 조燥를 생기게 한다.
■ 신神은 수數를 낳고 수數는 상象을 낳으며 상象은 기器를 낳는다.
■ 태극太極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성性이고 움직이면 신神이다. 신神은 곧 수數이고 수數는 곧 상象이며, 상象은 곧 기器이고 기器는 곧 변變인데 다시 신神으로 되돌아간다.
■ 복괘復卦에서 건괘乾卦까지 모두 120 개의 양효陽爻가 있고 구괘?卦에서 곤괘坤卦까지 모두 80 개의 양효陽爻가 있으며, 구괘?卦에서 곤괘坤卦까지 모두 120 개의 음효陰爻가 있고 복괘復卦에서 건괘乾卦까지 모두 80 개의 음효陰爻가 있다.
■ 건乾은 기奇이고 건建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굳센 것 가운데 하늘만한 것이 없다. 곤坤은 우偶이고 순順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순한 것 가운데 땅만한 것이 없으며, 이것은 하늘을 따르는 까닭이다. 진震은 기寄이며 일양一陽이 움직인다. 기起는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움직임 가운데 천둥만한 것이 없다. 감坎은 함陷이고 일양一陽이 이음二陰 사이에 빠져 있다. 함陷은 `떨어지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낮은 데에 있는 것 가운데 물만한 것이 없다. 간艮은 지止이고 일양一陽이 여기에서 그친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가운데 산山 만한 것이 없다. 손巽은 입入이고 일음一陰이 이양二陽의 사이에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들어가는 것 가운데 바람만한 것이 없다. 이離는 여麗이며 일음一陰이 이양離陽에서 멀어져 간다. 그 괘卦는 한데 어울려 뒤섞이어 무늬를 이루어서 화려하다. 온 세상의 화려함 가운데 불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또 덧붙이는 것도 여麗라고 한다. 태兌는 열說이며 일음一陰이 밖으로 나와서 만물을 기쁘게 한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기쁨 가운데 못[澤]만한 것이 없다.
■ 불은 안은 어둡고 밖은 밝다. 그러므로 이괘離卦는 양효陽爻가 밖에 있다. 불의 쓸모는 밖을 쓰는 것이다. 물은 밖은 어둡고 안은 밝다. 그러므로 감괘坎卦의 양효陽爻가 안에 있다. 물의 쓸모는 안을 쓰는 것이다.
■ 인모人謀는 인人이고 귀모鬼謀는 천天이다. 하늘과 사람이 함께 꾀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일이 이루어지면 길吉하다.
[券 六]觀物外篇 下 [10]
■ 탕왕湯王은 걸왕桀王을 내쫓고 무왕武王은 주왕紂王을 정벌하였지만 시弑라고 하지 않는다. 맹가孟軻가 남자와 여자가 손수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예禮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은 권權이다. 그러므로 공구孔丘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높이고 또 탕왕湯王과 무왕武王도 높였는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인仁이고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의義이다. 오직 탕왕湯王과 무왕武王만 되고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아니면 이름을 빼앗는 것이다.
■ 모든 괘卦는 건괘乾卦 · 곤괘坤卦와 한데 뒤섞이지 않으면 비괘否卦 · 태괘泰卦에서 생겨난다. 비괘否卦와 태괘泰卦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한데 뒤섞인 것이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홀수와 짝수에서 생겨나고 홀수와 짝수는 태극太極에서 생겨난다.
■ 태괘泰卦에서 비괘否卦까지의 사이에 고괘蠱卦가 있고, 비괘否卦에서 태괘泰卦까지의 사이에 수괘隨卦가 있다.
■ 하늘이 나로 하여금 살아 있게 하는 것을 명命이라고 한다. 명命이 나에게 있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이 사물에 있는 것을 리理라고 한다.
■ 때를 따라 변하고 천하의 전고典故에 거스르지 않으면 예禮의 큰 벼리를 잃지 않으며, 때를 따라 변하고 천하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으면 의義의 큰 위세를 잃지 않는데 이것이 군자의 도道이다.
■ 초하룻날이 시작되면 양기陽氣가 북쪽에서 생겨나며, 북쪽에 이르러 다하게 되는데 이것을 변역變易의 순환이라고 한다.
■ 봄은 양기陽氣가 위세를 손에 넣었으므로 가뭄이 많고, 가을은 음기陰氣가 위세를 얻었으므로 비가 많다.
■ 원元에 둘이 있는데 첫째가 하늘땅을 처음 낳은 태극이고, 둘째가 만물 속에 각각 있는 처음인데 생生의 근본이다.
■ 오성五星의 학설은 감공甘公의 석신石申으로부터 비롯하였다.
■ 하늘땅의 마음은 만물을 낳는 근본이다. 하늘땅의 정情은 정상情狀으로 귀신의 정상과 같다.
■ 하늘에 오신五辰이 있는데 일日 · 월月 · 성星 · 신辰과 천天 이렇게 다섯이며, 땅에 오행五行이 있는데 금金 · 목木 · 수水 · 화火 · 토土 이렇게 다섯이다.
■ 온천溫泉은 있지만 한화寒火는 없다 .음陰은 양陽을 따르지만 양陽은 음陰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 천둥이 있으면 번개가 있고 번개가 있으면 바람이 있다.
■ 나무의 단단함은 우레가 아니면 흔들려 움직이지 않고, 풀의 부드러움은 이슬이 아니면 촉촉하게 적시지 못한다.
■ 사람의 슬기로움은 강하나 사물의 슬기로움은 약하다.
■ 양수陽數는 360 에서 남고 음수陰數는 360 에서 모자라게 된다.
■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뛰는 짐승에 귀속된다. 뛰는 짐승은 음陰이다. 그러므로 120 이 된다.
■ 비는 물[水]에서 생기고 이슬은 흙[土]에서 생기며, 우레는 돌[石]에서 생기고 번개는 불[火]에서 생긴다. 번개와 바람은 모두 양陽의 극極이므로 번개가 있으면 반드시 바람이 있다.
■ 장주莊周와 혜시惠施가 호수濠水의 징검다리 근처에서 노닐고 있었다. 장주가 말하였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으니, 이게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란 거요.` 이것은 자기의 성性을 다한 것이고 사물의 성性도 다한 것이다. 비단 물고기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사물이 모두 그러하다. 장주莊周 같은 사람을 사물에 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장주莊周가 지은 『도척편盜?篇』에서, 막돼먹은 사람은 제아무리 뛰어난 성인이라도 교화시킬 수 없음을 밝혔다. 대개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 노魯나라에 선비가 한 사람 있는데 공구孔丘이다.
■ 노담老聃[老子]은 역易의 본체를 알았다.
■ 온 세상의 일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조심하다가 마지막에는 흐지부지하게 되고, 처음에는 지나치게 삼가다가 끝판에는 엉성하게 된다. 하물며 처음부터 흐지부지하고 엉성하게 함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조심하면 잃는 것이 적고 경솔하면 잃는 것이 많으며, 삼가면 잃는 것이 적고 엉성하면 잃는 것이 많다. 그래서 군자는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항상 너무 경솔함을 근심하며, 너무 삼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박薄한것을 걱정한다.
■ 『장자莊子 · 제물론齊物論』은 교량較量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견주어 헤아리면 다투게 되고 다투게 되면 공평하지 않게 되며, 공평하지 않으면 뜻을 합하여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 무사無思와 무위無爲는 신묘하게 하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른바 일이관지一以貫之이다. 성인은 이것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조용한 데로 물러나 숨는다.
■ 인仁을 맡음에 있어서 스승에게 양보하지 않는 것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정鄭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자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맹서盟誓의 말을 하였다. 이것은 단지 패자覇者의 일에 머물지 않고 왕도王道에 가깝다. 뉘우치면 허물이 없어진다. 이것이 성인이 『상서尙書』의 끝머리에 기록하여 놓은 까닭이다.
■ 유현劉絢이 무위無爲에 대하여 물었다. 대답하기를 때가 그러한 뒤에 말하면 사람들은 그 말을 싫어하지 않으며, 즐겁게 한 뒤에 웃으면 사람들은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의로움을 행한 뒤에 얻으면 사람들은 그 얻음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위無爲이다.
[券 六]觀物外篇 下 [11]
■ 순舜의 아들 고수 가 사람을 죽이자 순舜은 나라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고 아비를 몰래 업고 바닷가로 달아나 숨어 살며, 평생토록 기꺼이 즐거워하며 천하를 잊었다. 성인은 천하가 비록 크다 하나 천성天性이 좋아함을 바꾸지 않는다.
■ 문중자文中子가 말하기를 쉽게 기뻐하는 사람은 반드시 슬픔이 많고 가벼이 베푸는 사람은 반드시 빼앗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천하가 모두 이익을 다투고 의義를 내팽개치는데 나만 홀로 어찌 합니까? 문중자文中子가 대답하기를 그 다투는 바를 버리고 내버리는 것을 얻어서 가지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리오! 이와 같은 것은 예의禮義의 말이다. 속마음으로 판단함이 오래이다. 이와 같은 것은 조화造化의 말이다.
■ 장주莊周의 성격은 호탕하다. 여량呂粱의 일은 말한 것이 지극하였고, 『도척』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을 말하였는데 비록 성인일지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어부魚父』에서 억지로 해서는 안됨을 말하였는데 비록 성인일지라도 억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말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이치에 대한 것으로 이치를 따르면 무위無爲이고 억지로 하면 유위有爲이다.
■ 쇠는 모름지기 100 번을 담글질한 뒤에야 정철精鐵이 되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 불교佛敎는 군신君臣 · 부자父子 · 부부夫婦의 도리를 저버렸으니 어찌 자연의 이치리오!
■ 도道에 뜻을 둔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지志라고 하는데 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덕德은 나에게 이르는 것이고 형체가 있으므로 의지할 수 있다. 덕德은 인仁에 온 마음을 다 기울이는 것이므로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 『장자莊子』에 이르기를 숙수熟手가 음식을 잘못 만든다고 신주나 축문이 술통과 적대炙臺를 들고 그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군자의 사려범위는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현재의 지위에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 진晉나라의 호석고狐?姑 가 양처보陽處父를 죽였는데, 『춘추春秋』는 진晉나라에서 대부大夫 양처보를 죽였다고만 쓰고 앞부분은 빼고 말하지 않았다. 임금이 꼼꼼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으므로 나라에서 죽였다고 쓴 것이다.
■ 사람이 중화지기中和之氣를 얻으면 강유剛柔가 고르게 되는데, 양陽이 많으면 강剛에 치우치고 음陰이 많으면 유柔에 치우친다.
■ 사람이 도道를 파고들 때 마땅히 귀신이 엿보지 못하는 데에 이르러야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 역易을 만드는 것은 앎[知]을 훔치는 것이다. 성인은 천하만물의 이치를 알고, 한 이치로써 모든 것을 일관한다.
■ 맛있는 국은 서로 어울리게 할 수 있고 현주玄酒는 스며들게 할 수 있다. 곧 조화造化도 마찬가지로 서로 어울리게 하고 스며들게 할 수 있다.
■ 하루의 사물이 있고 한 달의 사물이 있고 한 시간의 사물이 있고 한 해의 사물이 있고 10 년의 사물이 있으며, 심지어 100 년 · 1000 년 · 10,000 년의 사물이 모두 있다. 하늘땅도 또한 사물이며 수數를 가지고 있다.
■ 태극太極은 도道의 극極이고 태현太玄은 도道의 현玄이며, 태소太素는 빛깔의 바탕이고 태일太一은 수數의 시작이며, 태초太初는 일의 맨 처음인데 그 이루는 바는 똑같다.
■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자기 생각이 없어진다.
■ 음陰은 양陽의 그림자이고 귀신은 사람의 그림자이다.
■ 기氣는 6 변變하고 체體는 4 분分한다.
■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오는 것을 임臨이라 하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보는 것을 관觀이라고 한다.
■ 제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짐작을 하지 않고 큰소리치지 않고 자신의 행위만이 옳다고 굳게 내세우지 않고 제 생각만을 우기지 않았다. 이것은 합하여 말하면 하나이고 나누어서 말하면 둘이며, 합하여 말하면 둘이고 나누어서 말하면 넷이다. 처음부터 제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짐작을 하게 되면 제 생각만을 우기게 되며, 제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짐작을 한 뒤에는 큰소리치게 된다. 큰소리치는 것은 제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짐작을 하는 것에서 생긴다. 자신의 행위만이 옳다고 굳게 내세운 뒤에는 제 생각만을 우기게 되는데 제 생각만을 우기는 것은 자신의 행위만이 옳다고 굳게 내세우는 데서 생긴다. 제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짐작을 하는 것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먼저 큰소리를 치게 되며, 자신의 행위만이 옳다고 내세우는 것은 융통성이 없으므로 제 생각만을 우기게 된다.
■ 기억하고 있다. 남의 질문에 대답이나 하는 학문은 아직 사업을 이루기에는 부족하다.
■ 지혜롭도다. 장량張良은 그 용用을 잘 감추었다.
■ 생각이 한 번 일어나면 귀신이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에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 때가 그렇게 된 뒤에 말하는 것은 말에 제 생각이 없는 것이다.
■ 배움은 멈추지 않는 데 있다. 그러므로 왕통王通이 말하기를 한 평생을 다 바쳐 하는 것이다.
■ 성誠은 성性을 주장하는 연장으로 단서도 없고 방향도 없다.
[券 七]漁樵問對 [1]
*편의상 대화부분에서 고기잡이는 `漁` , 나무꾼은 `樵`로 표현했음.
■ 고기잡이가 이수伊水가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꾼이 지나가다 짊어진 짐을 벗어 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고기잡이에게 물었다.
樵 : 고기는 좀 낚았습니까?
漁 : 예!"
樵 : 낚싯바늘에 미끼가 없어도 됩니까?
漁 : 안 됩니다. 낚이지 않습니다. 미끼는 물고기에게 먹음직스럽지만 해害를 줍니다. 사람은 물고기를 이롭게 하는 척하면서 날찍을 얻습니다. 그 이로움은 같지만 해로움은 다릅니다.
樵 : 외람되지만 쫌 여쭙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漁 : 당신은 나무꾼입니다. 나와 하는 바가 다르므로 어떻게 나의 일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을 위해 말해 보겠습니다. 그대의 이익은 나의 이익과 같고 그대의 손해 또한 나의 손해와 같지만, 당신은 작은 것만 알 뿐 큰 것을 알지 못합니다. 물고기가 먹기에 이로우면 나 또한 먹기에 이롭고 물고기가 먹기에 해로우면 나 또한 먹기에 해롭습니다. 당신은 물고기가 종일토록 먹을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미끼의 해로움은 크고 낚싯바늘의 해로움은 가볍습니다. 당신은 내가 종일토록 물고기를 잡는 것이 이롭다는 것만 알지 내가 종일토록 물고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처럼 나의 손해는 크지만 물고기의 손해는 적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로 사람의 한 번 먹거리를 해결하면 물고기의 손해가 크며, 사람의 한 몸으로 물고기의 한 번 끼닛거리를 해결한다면 사람의 손해 또한 큽니다. 또 큰 강이나 큰 바다에서 낚시질을 한다면 입장이 바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됨을 어찌 알겠습니까? 물고기는 물에서 유리하고 사람은 뭍에서 유리합니다. 물과 뭍은 다르지만 그 이로움은 똑같습니다. 물고기는 미끼 때문에 해害를 입고 사람은 재물 때문에 해害를 입습니다. 미끼와 재물은 다르지만 그 해로움은 똑같습니다. 다시 어떻게 저것과 이것을 꼭 나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체體를 말할 수 있지만 용用을 알지 못합니다.
樵 : 물고기를 날로 먹습니까?
漁 : 삶아 먹습니다.
樵 : 저의 땔감으로 당신의 물고기를 삶겠군요!
漁 : 그렇습니다.
樵 : 나는 쓸모가 그대에게 있음을 알겠습니다.
漁 :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땔감이 나의 물고기를 삶는 것만 알지 당신의 땔감이 나의 물고기를 어떻게 삶는 줄을 모릅니다. 땔감으로 물고기를 삶아 먹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불이 땔감을 부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의 나무가 산처럼 쌓여 있어도 그것만으론 어찌하지 못하겠지요!
樵 : 바라건대 그 도리를 듣고 싶습니다.
漁 : 불은 동動에서 생겨나고 물은 정靜에서 생겨납니다. 동정動靜은 상생相生하고 물과 불은 상식相息합니다. 물과 불은 용用이고 풀과 나무는 체體입니다. 용用은 이로움에서 생겨나고 체體는 해로움에서 생겨납니다. 이해利害는 정情에서 나타나고 체용體用은 성性에 숨습니다. 일성一性과 일정一情은 성인이 아울러 갖추고 있습니다. 당신의 땔감은 나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불이 없으면 모든 것이 썩어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또한 사람의 몸을 기를 수 있겠습니까?
樵 : 불의 보람이 땔감보다 큼을 잘 알겠습니다. 사물을 잘 태우는데 꼭 땔감을 기다린 뒤에 태울 필요가 있습니까?
漁 : 땔감은 불의 체體이고 불은 땔감의 용用입니다. 불은 체體가 없으니 땔감을 기다린 뒤에야 체體가 있게 되고 땔감은 용用이 없으니 불을 기다린 뒤에야 용用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릇 체體를 가지고 있는 사물은 모두 불에 탑니다.
樵 : 물에도 체體가 있습니까?
漁 : 그렇습니다.
樵 : 불이 물을 태울 수 있습니까?
漁 : 불의 성질은 맞아들일 수는 있지만 따르지 못하므로 꺼져 버리고, 물의 형체는 따를 수는 있지만 맞아들이지 못하므로 뜨거워집니다. 그러므로 온천溫泉은 있으나 한화寒火는 없는데 상식相息을 말하는 것입니다.
樵 : 불의 도道는 용用에서 생기는데 이 또한 체體가 있는지요?
漁 : 불은 용用을 으뜸으로 삼고 체體를 버금으로 삼기 때문에 움직이고, 물은 체體를 으뜸으로 삼고 용用을 버금으로 삼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불에도 체體가 있고 물에도 용用이 있으므로 상제相濟하고 상식相息할 수 있습니다. 비단 물과 불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천하의 사물이 모두 그러한 것입니다. 용用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지요!
樵 : 용用에 대해서 들을 수 있습니까?
漁 : 뜻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성性이고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정情이며, 상상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형形이고 살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체體입니다. 용用은 만물을 오묘하게 말하는 것으로 뜻으로 깨달을 수 있지만 말로 전할 수 없습니다.
樵 : 말로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이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漁 : 내가 깨달아 아는 바를 말로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비단 나만 말로 전해 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성인도 말로 알려 줄 수 없습니다.
樵 : 성인이 말로 전해 줄 수 없다면 육경六經은 성인의 말씀이 아니란 말입니까?
漁 : 때가 그러한 뒤에 말한 것인바 어찌 말이 있겠습니까!
樵 : (칭찬하며 말하였다) 하늘땅의 도道는 사람에게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고 만물의 도道는 자기에게 갖추어져 있으며, 여러 오묘한 도道는 신神에 갖추어져 있어 천하의 일을 끝마칠 수 있으니 또 무엇을 걱정하리오. 내가 지금 이후에야 마음으로 형形을 좇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대의 학문 근처에도 미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땔감을 쪼개어 물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역易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券 七]漁樵問對 [2]
■ 나무꾼과 고기잡이는 이수伊水가에서 노닐었다. 고기잡이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漁 : 아아, 만물의 많음이여! 잡됨이 맨 처음으로 되지 않았구나. 내가 하늘과 땅 사이에 노닐면서 만물은 모두 무심無心으로 다다를 수 있음을 알았도다. 당신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돌아가리오.
樵 : 외람되지만 좀 여쭙겠습니다. 무심無心으로 천지만물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漁 : 무심無心은 무의無意란 말입니다. 무의無意의 의意라야 나와 사물의 구분이 없어집니다. 나와 사물의 구분이 없어진 뒤에야 사물을 사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樵 : 나를 가지고 사물을 좇아가면 나 또한 사물이 되고 말며 사물로 나를 좇아오게 하면 사물 또한 내가 됩니다. 나와 사물이 모두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명히 천지 역시 만물이며, 만물 또한 나이며, 나 또한 만물입니다. 어떤 사물이 내가 되지 않겠으며 어느 내가 사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으면 천지를 주재할 수 있으며 귀신을 다스릴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며 사물이야 어떠하리오!
樵 : 하늘은 무엇에 의지합니까?
漁 : 땅에 의지합니다.
樵 : 땅은 무엇에 의지합니까?
漁 : 하늘에 의지합니다.
樵 : 그렇다면 하늘과 땅은 무엇에 의지합니까?
漁 : 스스로 서로 의지합니다. 하늘은 형形에 의지하고 땅은 기氣에 의지합니다. 그 형形은 한계가 있지만 그 기氣는 한계가 없습니다. 유무有無는 상생相生하고 형기形氣는 상식相息합니다. 끝 맺으면 처음이 있다는 것이고 끝과 처음 사이에 하늘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용用을 으뜸으로 삼고 체體를 버금으로 삼으며, 땅은 체體를 으뜸으로 삼고 용用을 버금으로 삼습니다. 용用의 드나듦을 알맞게 하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체體의 있음과 없음을 말하는 것을 성聖이라고 합니다. 오직 신神과 성인만이 하늘땅에 참여할 수 있고 소인은 날마다 써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해害가 생겨나고 실제 내용이 없어지게 되는 우려가 있게 됩니다. 명名은 실實의 손님이며, 이익은 손해의 주인입니다. 이름은 모자라는 데서 생겨나고 이익은 남는 데서 잃게 됩니다. 해害는 남는 데서 생겨나고 사실은 모자라는 데서 잃게 됩니다. 이것은 이치의 일반적인 규칙입니다. 몸을 기르는 자는 반드시 이익을 위해 하는데 탐욕스러운 사람은 몸으로 이익을 좇기 때문에 손해가 생깁니다. 출세를 하려는 자는 반드시 명예를 위하여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몸으로 명예를 좇기 때문에 실제를 잃게 됩니다. 남의 재물을 몰래 훔치는 것을 도둑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훔칠 때에는 오로지 많지 않음을 두려워하지만 그 나쁜 짓이 드러나 알려지게 되면 오직 많음을 두려워합니다.
재물과 장물贓物은 같은 물건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둘인 것은 이익과 손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훌륭한 점을 훔치는 것을 요행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할 때는 오로지 많지 않음을 두려워하지만 그 짓이 드러나 알려지게 되면 오직 많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명예와 헐뜯음은 같은 일이지만 명칭이 둘인 것은 이름과 실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조정朝廷으로 말하자면 명예가 모여드는 곳이고 시장은 이익이 모이는 곳으로 다툼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하루에 아홉 번을 옮기고 하나의 재물을 가지고 열 곱절을 남긴다 하더라도 어찌 손해가 생기고 실제를 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싸움이란 이익을 취하는 실마리가 되고 양보는 명예를 좇는 근본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익이 이르고 명예를 얻게 되더라도 손해가 생기고 실제를 상실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덕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땅에 의지하고 땅이 하늘에 붙어 있는 것이 어찌 서로 멀기만 하겠습니까?
[券 七]漁樵問對 [3]
■ 고기잡이가 나무꾼에게 말하였다.
漁 : 천하가 앞으로 다스려지려 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행위를 숭상하고 천하가 앞으로 어지러워지려 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말을 숭상하게 됩니다. 행위를 숭상하면 독실한 풍속이 행해지고 말을 숭상하면 괴상한 풍속이 유행하게 됩니다. 천하가 장차 다스려지려 하면 사람들은 의義를 떠받들게 되고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지려 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이利를 떠받들게 됩니다. 의義를 숭상하게 되면 겸양의 풍속이 행해지게 되고 이利를 숭상하게 되면 빼앗는 풍속이 유행하게 됩니다. 삼왕三王은 행위를 숭상하였고 오패五覇는 말을 숭상하였습니다. 행위를 숭상하는 자는 반드시 의義로 들어가고 말을 숭상하는 자는 반드시 이利로 들어갑니다. 의義와 이利가 서로 떨어진 거리가 어찌 이처럼 멉니까! 이로써 입으로 말하는 것이 몸으로 행하는 것보다 못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이 마음으로 다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이 얻어서 듣고 몸으로 행하는 것은 사람이 얻어서 보며 마음으로 다하는 것은 신神이 얻어서 알게 됩니다. 사람의 슬기로움을 오히려 속이지 못하는데, 하물며 귀신의 슬기로움이야! 이로써 입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몸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보다 못하고 몸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입으로 짓는 허물에 쉬움이 없다면 마음으로 짓는 허물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허물이 없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아, 마음속에 허물이 없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마음을 이야기하리오!
漁 : 당신은 천지만물을 살피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樵 : 모릅니다. 바라건대 그 방법을 듣고 싶습니다.
漁 : 무릇 사물을 살핀다는 것은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이理로 보는 것입니다. 천하의 사물에 이理가 없는 것이 없고 성性이 없는 것이 없으며 명命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이理라는 것은 깊이 파고든 뒤에야 알 수 있고 성性이라는 것은 다한 뒤에야 알 수 있으며 명命이라는 것은 이른 뒤에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앎이 바로 천하의 참 앎입니다. 모름지기 성인만이 허물이 없으며, 허물이 있으면 성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릇 거울은 밝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의 형체를 숨지 못하게 합니다. 비록 거울이 만물의 형체를 숨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물이 만물의 형체를 한결같이 비추는 것만 못합니다. 비록 물이 만물의 형체를 한결같이 비춘다 하더라도 또 성인이 만물의 마음을 하나로 볼 수 있는 것만 못합니다. 성인이 만물의 마음을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성인이 반관反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관反觀이라는 것은 나로써 물체를 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나로써 물체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물체로써 물체를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물체로써 물체를 살필 수 있다면 어찌 또 내가 그 사이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로써 나 또한 남이고 남 또한 나이며 나와 남은 모두 물체임을 알수 있습니다.
천하의 눈을 자기의 눈으로 삼으니 그 눈이 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를 자기의 귀로 삼으니 그 귀가 듣지 않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입을 자기의 입으로 삼으니 그 입이 말하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으니 그 마음이 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무릇 천하의 관觀이 봄에 있어서 어찌 넓지 않겠습니까. 천하의 청聽이 들음에 있어서 어찌 멀지 않겠습니까. 천하의 언言이 말함에 있어서 어찌 높지 않겠습니까. 천하의 모謀가 안락함에 있어서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무릇 보는 것이 더없이 넓고 듣는 것이 더없이 멀며 말하는 것이 더없이 높고 안락함이 더없이 큰 것은 더없이 넓고 멀며 더없이 높고 큰 일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하나라도 그러하지 않으면 어찌 지신至神 · 지성至聖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나만 말하는 지신至神 · 지성至聖이 아니고 천하가 말하는 지신至神 · 지성至聖이라야 합니다. 오로지 한 시대의 천하가 말하는 지신至神 · 지성至聖이 아니고 천만세千萬世의 천하가 말하는 지신至神 · 지성至聖이라야 합니다. 이것을 거쳐가야만 모르거나 혹 알 수 있습니다.
[券 七]漁樵問對 [4]
■ 나무꾼이 고기잡이에게 물었다.
樵 :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습니까?
漁 : 저는 여섯 가지 연장으로 물고기를 잡습니다.
樵 :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는 것은 하늘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漁 :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어 물고기를 잡는 것은 사람이지만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어 물고기를 잡도록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무꾼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 방법을 물었다.
漁 : 여섯 가지 연장이란 낚싯대 · 낚싯줄 · 낚시찌 · 낚싯봉(봉돌) · 낚싯바늘 · 낚싯밥(미끼)입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지면 물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섯 가지 연장을 빠짐없이 갖추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할 수는 있지만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지 않고도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로서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는 것은 사람이지만 물고기를 잡고 잡지 못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음을 알겠습니다.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지 않아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하늘 탓이 아니고 사람 탓입니다.
樵 : 귀신에게 기도하여 복福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복福은 기도하여 구할 수 있으며 구한다고 얻을 수 있습니까? 외람되지만 그 연유를 여쭙겠습니다.
漁 : 선善과 악惡을 말하는 것은 사람이고 화禍와 복福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천도天道는 착한 사람에게 복福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귀신이 하늘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지은 허물은 참으로 피하기 어려운데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없애 달라고 빌 수 있겠습니까? 덕德을 닦고 선善을 쌓는 것은 군자가 늘 하는 것인바 어찌 그 사이에 다른 하찮은 일이 있겠습니까?
樵 : 착한 일을 했는데 재앙을 만나고 나쁜 일을 했는데 복福을 받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漁 : 행幸과 불행不幸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幸과 불행不幸은 운명이고 당當과 부당不當은 연분입니다. 운명과 연분에서 사람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樵 : 무엇을 연분이라 하고 무엇을 운명이라 합니까?
漁 : 소인이 복福을 받는 것은 연분이 아니고 운명이며, 마땅히 재앙을 당하는 것은 연분이지 운명이 아닙니다. 군자는 재앙을 당하는 것은 연분이 아니고 운명이며, 마땅히 복福을 받는 것은 연분이지 운명이 아닙니다.
고기잡이가 나무꾼에게 말하였다.
漁 : 사람이 이른바 친하다고 하는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른바 소원하다고 하는 것은 길을 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이해利害가 마음에 있게 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길을 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 멀어지게 됩니다. 부자父子의 도리는 천성天性입니다. 이해利害는 오히려 빼앗을 수 있지만 천성天性은 그리할 수 없습니다. 무릇 이해利害가 사람에게 옮겨짐이 이와 같이 심각하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길에 오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고 서로 해害하려는 마음을 전혀 가지지 않는데 이해利害가 앞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利害가 앞에 있으면 길에 오가는 사람과 부자父子의 사이를 또 어찌 가릴 수 있겠습니까? 길에 오가는 사람은 의義로써 서로 사귈 수 있는데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의 친함에 있어서랴! 무릇 의義는 양보의 근본이고 이利는 다툼의 실마리입니다. 사양하면 인仁을 얻게 되고 다투면 해害를 입게 됩니다. 인仁과 해害가 어찌 이다지도 멉니까? 요임금과 순임금도 사람이고 걸왕桀王과 주왕紂王도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같지만 인仁과 해害는 다릅니다. 인仁은 의義로 인하여 생기고 해害는 이利로 인하여 생깁니다. 이利를 의義로써 하지 않으면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찌 길에 오가는 사람과 서로 만나 하루 동안 사귀어 길 복판에서 소매를 붙잡는 것과 같겠습니까.
樵 : 저는 일찍부터 땔감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100 근을 짊어지고도 제 몸이 다치지 않는데 여기에 10 근을 보태면 곧바로 제 몸이 다칩니다. 외람되만 그 까닭을 좀 여쭙겠습니다.
漁 : 나무하는 것을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일로 살펴보건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낚시로 큰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고기와 맞붙어 싸웠는데 낚싯대를 버리고자 하여도 버릴 수 없었고 물고기를 낚아 올리려 하여도 힘에 부쳐 못하였습니다. 종일토록 물고기와 싸운뒤에 잡았습니다. 어찌 물에 빠질 우려가 없었을 것이며 몸이 다칠 우려가 없었겠습니까? 물고기와 땔감은 다르지만 탐욕을 내어 다치는 것은 똑같습니다. 100 근은 힘이 안에서 분담하지만 10 근은 힘이 밖에서 분담합니다. 힘이 밖에서 분담하면 비록 털 하나라도 해害가 될 것인데 하물며 10 근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물고기를 탐내는 것이 어찌 당신이 땔감을 탐내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樵 : 저는 오늘 이후에야 힘을 헤아려 움직이는 것이 슬기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券 七]漁樵問對 [5]
■ 나무꾼이 고기잡이에게 말하였다.
樵 : 당신은 역易의 도道에 알고 있습니까? 외람되지만 좀 여쭙겠습니다.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는데 태극太極은 무엇입니까?
漁 : 무위無爲의 근본입니다.
樵 : 태극太極은 양의兩儀를 낳는다고 하는데 양의兩儀는 하늘과 땅을 일컫습니까?
漁 : 양의兩儀는 하늘과 땅의 뿌리인데 하늘땅뿐만이 아닙니다. 태극太極은 나뉘어 둘이 됩니다. 먼저 하나를 얻어서 하나가 되고 그 다음에 하나를 얻어서 둘이 됩니다. 일一 · 이二 를 양의兩儀라고 합니다.
樵 : 양의兩儀는 사상四象을 낳는다고 하는데 사상四象은 무엇입니까?
漁 : 대상大象은 음陰 · 양陽 · 강剛 · 유柔 를 말합니다. 음陰과 양陽이 있은 뒤에 하늘이 생겨나고 강剛과 유柔가 있은 뒤에 땅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입공立功의 근본은 바로 이 극極에 있습니다.
樵 : 사상四象은 팔괘八卦를 낳는다고 하는데 팔괘八卦는 무엇입니까?
漁 :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 태兌 · 간艮 · 진震 · 손巽 을 말합니다. 성함과 쇠퇴함 · 마지막과 처음이 그 사이에서 서로 번갈아듭니다. 이어받아 거듭하면 육십사괘六十四卦가 생겨나는데 이로써 역易의 도道가 비로소 갖추어지게 됩니다.
樵 : 복괘復卦로 어떻게 하늘땅의 마음을 알 수 있는지요?
漁 : 먼저 양陽이 다 없어진 뒤에 양陽이 비로소 생겨나는데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생기는 무렵이고 가운데로는 해와 달이 처음으로 한 바퀴 운행한 때이며 끝으로는 성신星辰의 마지막과 처음의 시기입니다. 만물의 죽음과 삶,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이 번갈아들며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 이 곳에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하늘땅은 맨 마지막에는 변하는데 변하면 통하게 되고 통하면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象에 말하기를 선왕先王은 이 날에 이르러 폐관閉關하고 장사꾼과 나그네는 나다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방위를 살피지 않는 것은 천명天命을 좇기 때문입니다.
樵 : 무망괘无妄卦는 재앙이라고 하는데 그 까닭을 외람되지만 좀 여쭙겠습니다.
漁 : 망妄은 `속이다`의 뜻입니다. 이 괘卦를 얻으면 반드시 재앙이 있게 됩니다. 속이는 것은 허망함이 있습니다. 천명天命을 좇아 움직였는데도 화禍가 이르면 그것은 화禍가 아니고 재앙[災]입니다. 예컨대 농사꾼이 풍년만 생각하고 부지런히 농사를 짓지 않아 황폐하게 되었다면 어찌 화禍가 아니겠습니까! 농사꾼이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는데도 물이 가물어 황폐하게 되었다면 어찌 재앙[災]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상象에 이르기를 선왕先王은 왕성할 때를 만나면 만물을 기르고 속임이 없는 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樵 : `구괘?卦는 어떤 것입니까?
漁 : 구 는 `만나다`의 뜻입니다. 유柔가 강剛을 만나는 것입니다. 쾌괘 와 정반대입니다. 쾌괘 는 씩씩한 것을 괴롭히면서 시작하지만 구괘 는 씩씩한 것을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음陰이 양陽을 만나면서 시작하므로 구괘 라고 부릅니다. 구괘 를 살펴보면 하늘땅의 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성인의 덕화德化가 여기에 미치니 번창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象에 이르기를 명령을 사방에 내리고 서리를 밟듯이 조심하라고 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漁 : 봄은 양陽의 첫머리이고 여름은 양陽의 최고조이며, 가을은 음陰의 첫머리이고 겨울은 음陰의 최고조입니다. 양陽이 시작하면 따뜻하고 양陽의 최고조에 이르면 더우며, 음陰이 시작하면 서늘하고 음陰이 최고조에 이르면 춥습니다. 따뜻하면 만물이 생겨나고 더우면 만물이 자라며, 서늘하면 만물이 지워지고 추우면 만물이 죽습니다. 모두 일기一氣이지만 그것을 나누면 넷이 됩니다. 만물을 생生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樵 : 사람이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신령스럽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런지 알고 싶습니다.
漁 : 눈으로 만물의 빛깔을 받아들이고 귀로 만물의 소리를 받아들이며, 코로 만물의 냄새를 받아들이고 입으로 만물의 맛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소리 · 빛깔 · 냄새 · 맛은 만물의 체體이고, 귀 · 눈 · 입 · 코는 만인萬人의 용用입니다. 체體에는 정해진 작용이 없고 오직 변變이 작용이며, 작용에는 정해진 체體가 없고 오직 화化가 체體입니다. 체體와 용用이 한데 어울려 뒤섞이는데 사람과 만물의 도道가 이 때문에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또한 물체이고 성인聖人도 또한 사람입니다. 하나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고 열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고 백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고 천千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으며, 만萬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고 억億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으며, 조兆의 물체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습니다. 하나의 물체가 조兆의 물체에 해당하는 것이 어찌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고 열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으며, 백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고 천千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으며, 만萬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고 억億의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으며, 조兆의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조兆의 사람에 해당하는 자가 어찌 성인聖人이 아니겠습니까! 이로서 사람은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나고 성인은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물체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물체 중의 물체라고 하며,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빼어난 것을 사람 중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체 가운데의 물체는 지물至物을 말함이고 사람 가운데의 사람은 지인至人을 말합니다. 하나의 지물至物은 하나의 지인至人에 해당하니 어찌 성인聖人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성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나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일심一心으로 만심萬心을 살피고 일신一身으로 만신萬身을 살피며, 일물一物로 만물萬物을 살피고 일세一世로 만세萬世를 살피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대신하고 입으로 하늘의 말을 대신하며, 손으로 하늘의 일을 대신하고 몸으로 하늘의 임무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또 위로 천시天時를 알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알며 가운데로 물정物情에 밝고 인사人事를 환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또 하늘땅의 온갖 조화를 죄다 알고 예와 지금을 꿰뚫으며 인물의 겉과 속을 환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아아, 성인이여! 세세토록 성인을 어찌 본받지 않으리오. 저는 눈으로 보아 알 수 없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아 알 수 없을지라도 마음을 살피고 자취를 살펴서 그 체體와 용用을 찾아 깊이 연구한다면 억만 년일지라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기를 천지의 밖에 따로 천지만물이 있으며 이 천지만물과 다릅니까! 저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뿐이 아니라 성인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릇 지知라는 것은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것이고 언言이라는 것은 입으로 깨달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으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데 또 어떻게 입으로 깨달아 말을 하겠습니까? 마음으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을 망지妄知라 하고 입으로 깨달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망언妄言이라고 합니다. 내 어찌 망인妄人을 좇아 망지妄知 · 망언妄言을 하겠습니까!
[券 七]漁樵問對 [6]
■ 고기잡이가 나무꾼에게 말하였다.
漁 : 공구孔丘가 말하기를 `은殷나라는 하夏나라의 예禮를 이어받았으니 그 덜고 보탬을 알 수 있고 주周나라는 은殷나라의 예禮를 이어받았으니 그 덜고 보탬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설령 주周나라를 이어받은 것이 비록 100 세世라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이와 같은바 어찌 100 세世에 그치리오. 억천만세億千萬世도 가히 알 수 있으리라. 사람들은 모두 공자가 공자인 줄은 알지만 공자가 왜 공자인줄을 모르며 공자가 왜 공자인 줄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공자가 왜 공자인 줄을 꼭 알고자 한다면 천지를 버리고 어찌하리오. 사람들은 모두 천지가 천지인 줄은 알지만 천지가 왜 천지인 줄을 모르며 천지가 왜 천지인 줄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천지가 왜 천지인 줄을 꼭 알려면 동정動靜을 버리고 어찌하리오. 무릇 일동一動 · 일정一靜 은 천지의 지극히 오묘함이고, 일동一動 · 일정一靜 사이는 천지인天地人의 도道에서 다하여 놓았는데 그 행적에 자취가 없음이라. 따라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자 한다` 하였습니다. 또 가로되 `하늘이 어떤 말을 하겠는가?` 사시四時가 행하고 만물이 생겨남이 이와 같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漁 : 크도다, 권權과 변變이여! 성인이 아니면 이를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변變이 있은 뒤에야 하늘 땅의 소장消長을 알 수 있고 권權이 있은 뒤에야 천하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알 수 있습니다. 소장消長은 때이고 가벼움과 무거움은 일입니다. 때에 비괘否卦와 태괘泰卦가 있고 일에 손괘遜卦와 익괘益卦가 있습니다. 성인이 때를 따라 비괘否卦와 태괘泰卦의 도道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변變 이 하는 바를 알겠습니까? 성인이 때를 따라 손괘損卦와 익괘益卦의 도道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권權이 하는 바를 알겠습니까? 소장消長을 다루는 것이 변變이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가름하는 것이 권權입니다. 이로써 권權과 변變이 성인의 일도一道임을 알겠습니다.
樵 : 사람이 죽어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까?
漁 : 있습니다.
樵 : 어떻게 그러한지 알 수 있습니까?
漁 : 사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눈 · 귀 · 코 · 입 · 심장 · 쓸개 · 지라 · 혈맥의 기氣를 오롯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심장의 신령함을 신神이라 하고 쓸개의 신령함을 백魄이라 하며, 지라의 신령함을 혼魂이라 하고 혈맥의 신령함을 정精이라고 합니다. 심장의 신神은 눈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본다고 합니다. 혈맥의 정精은 귀鬼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듣는다고 합니다. 지라의 혼魂은 코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냄새를 맡는다고 합니다. 쓸개의 백魄은 입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 여덟 가지를 빠짐없이 갖춘 뒤에야 사람이라고 일컫습니다. 무릇 사람이란 천지만물의 빼어난 기氣입니다. 그러나 또 들어맞지 않는 것도 있으며, 저마다 그 비슷한 것을 찾습니다. 만일 온전하게 얻어 가진 사람이라면 전인全人 가운데 전인全人이라고 합니다. 완전한 종류는 천지만물의 중기中氣로 덕德을 오롯이 갖춘 사람이라고 합니다. 덕德을 오롯이 갖춘 사람은 사람 가운데 사람입니다. 사람 가운데 사람은 인인仁人을 일컫습니다. 오직 전인全人이 된 뒤에야 주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기氣가 도는 것을 말하고 사람의 죽음은 형체가 되돌아간 것을 말합니다. 기氣가 돌면 신神과 혼魂이 한데 어울려 뒤섞이고 형체가 되돌아가면 정精과 백魄이 남게 됩니다. 신神과 혼魂은 하늘에서 떠돌고 정精과 백魄은 땅으로 되돌아갑니다. 하늘에서 떠도는 것을 양행陽行이라 하고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음반陰返이라고 합니다. 양행陽行은 낮에 나타나고 밤에 숨으며, 음반陰返은 밤에 나타나고 낮에 숨습니다. 그러므로 해는 달의 형체이고 달은 해의 그림자이며, 양陽은 음陰의 형체이고 음陰은 양陽의 그림자이며, 사람은 귀신의 형체이고 귀신은 사람의 그림자임을 알겠습니다. 사람들은 귀신은 형체가 없어서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券 七]漁樵問對 [7]
■ 고기잡이가 나무꾼에게 물었다.
漁 : 소인小人이 없어질 수 있을까요?
樵 : 그렇지 않을 겁니다. 군자君子는 양陽의 정기正氣를 받고 태어나지만 소인小人은 음陰의 사기邪氣를 받고 태어납니다. 음陰이 없으면 양陽도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소인小人이 없으면 군자君子가 이루지 못합니다. 오직 그 사邪에 성함과 쇠퇴함이 있습니다. 양陽이 6 분分이면 음陰이 4 분分이고, 음陰이 6 분分이면 양陽이 4 분分입니다. 음陰과 양陽은 서로 반씩을 차지하는데 곧 각각 5 분分씩을 차지합니다. 이로써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때에 성함과 쇠퇴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 다스려진 태평한 세상에는 군자가 6 분分입니다. 군자가 6 분分이면 소인은 4 분分으로 소인이 결코 군자를 억누를 수 없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는 이와 반대입니다. 임금은 임금의 도리를 다하고 신하는 신하의 구실을 다하며, 아버지는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며, 형은 형의 도리를 다하고 아우는 아우의 구실을 다하며,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다하고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일러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킨다고 합니다.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 신하가 신하의 구실을 다하지 않으며, 아버지가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아우가 아우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며,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아내가 아내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 제 분수를 잃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상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게 됩니다.
군자는 늘 행동이 말을 이기며, 소인은 항상 말이 행동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면 독실한 선비가 많아지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겉만 꾸미는 선비가 많아집니다. 독실한 선비가 적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겉만 꾸미는 선비가 적으면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이루어지는 것이 많으면 나라가 흥성하고 그르치는 것이 많으면 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집안도 마찬가지로 이에 따라 흥하고 망하게 됩니다. 무릇 집안을 일으키고 나라를 흥성하게 하는 사람과 나라를 멸망시키고 집안을 거덜나게 하는 사람의 차이가 어찌 이다지도 크단 말입니까!
樵 : 사람이 이른바 재주라고 하는 것이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漁 : 재주는 하나이고 이해利害는 둘입니다. 재주에 바른 것이 있고 바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재주가 바르면 이로움이 남과 자신에게 미치게 되나 재주가 바르지 못하면 자신에게는 이롭지만 남에게는 해害를 끼치게 됩니다.
樵 : 바르지 못한데 어떻게 재주를 가질 수 있습니까?
漁 : 사람이 능하지 못한 바를 능하게 하는데 어찌 재주라고 할 수 없겠습니까? 성인이 재주의 어려움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천하의 일을 이루고서도 바른 데로 돌아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른 데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재주는 재주일 뿐 인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약藥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약毒藥도 때에 따라 쓸 수 있는데 한 번은 쓸 수 있으나 두 번 써서는 안 됩니다. 병이 나으면 빨리 낫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보통 약은 날마도 써도 괜찮지만 중병重病은 고칠 수 없습니다. 중병도 치료하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양약良藥이라고 합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대군大君이 천명을 얻어 나라를 세우고 물려줄 때 소인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지만 소인도 때가 되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태평하고 안정적일 때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다른 산의 돌도 옥玉을 다듬는 데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소인의 재주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樵 : 나라의 흥망과 재능의 사정邪正에 대해 그 명命을 꼭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가려서 쓰는지요?
漁 : 신하를 선택하는 것은 임금이고 임금을 선택하는 것은 신하입니다.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각각 그 부류를 따라 그리하는데 어찌하리오.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신하가 있으며, 걸왕桀王와 주왕紂王 같은 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걸왕과 주왕 같은 신하가 있습니다.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신하가 걸왕과 주왕의 시대에 태어나고 걸왕과 주왕 같은 신하가 요임금과 순임금의 시대에 태어나면 반드시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비록 화禍가 복福이 되더라도 할 수 있을까요! 무릇 윗사람이 좋아하는 바는 반드시 아랫사람도 좋아하게 되는데 마치 그림자와 울림과 같습니다. 어찌 몰아붙인다고 해서 그렇게 되겠습니까. 윗사람이 의義를 좋아하면 아랫사람도 반드시 의義를 좋아하게 되어 불의不義가 멀어지게 됩니다. 윗사람이 이익을 좋아하면 아랫사람도 이익을 좋아하게 되어 불리不利가 멀어지게 됩니다.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천하는 날로 쇠퇴해지고 의義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천하는 날로 흥성하게 됩니다. 날로 흥성하면 번창하게 되고 날로 쇠퇴하면 멸망하게 됩니다. 흥성함과 쇠퇴함 · 번창함과 멸망함이 어찌 이다지도 멀단 말입니까. 그리고 흥성하고 쇠퇴하고 번창하고 망하는 것은 윗사람이 좋아하는 바에 달려 있습니다. 잘 다스려진 태평한 세상에 소인이 없었을 것이며, 어지러운 세상에 군자가 없었겠습니까? 쓰이지 못하면 어떻게 선악善惡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樵 : 착한 사람은 늘 적고 나쁜 사람은 늘 많으며, 태평한 세상은 적고 어지러운 세상은 많은데 어째서 그러한지 알고 싶습니다.
漁 : 사물을 살펴보건대 어떤 사물이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비유하자면 모든 오곡五穀에도 김을 매 주어도 싹이 나지 않는 것이 있고 김을 매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쑥이나 강아지풀은 김을 안 매 주어도 오히려 생겨납니다. 김을 맴에 지극하게 하여도 그 끝이 어찌 되는지 모르는 것이니,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도道가 유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자는 착한 일을 보면 좋아하고 나쁜 일을 보면 멀리합니다. 소인은 착한 일을 보면 시새움하고 나쁜 일을 보면 좋아합니다. 선악善惡이 각각 그 부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착한 일을 보면 나아가고 나쁜 일을 보면 따르지 않습니다. 소인은 착한 일을 보면 따르지 않고 나쁜 일을 보면 나아갑니다. 군자는 의義를 보면 변화하고 이익을 보면 멈춥니다. 소인은 의義를 보면 멈추고 이익을 보면 변합니다. 의義를 보고 변화하면 사람에게 이롭고 이익을 보고 변하면 사람에게 해롭습니다. 사람에게 이로운 것과 사람에게 해로운 것이 어찌 이다지도 멀단 말입니까! 집과 나라는 똑같습니다. 잘될 때에는 군자가 많고 소인이 적으며, 망할 때에는 소인은 많고 군자는 적습니다. 군자가 많으면 떠나는 것은 소인이고 소인이 많으면 떠나는 것은 군자입니다. 군자는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소인은 죽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살리는 것을 좋아하면 세상이 다스려지고 죽이는 것을 좋아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집니다. 군자는 의義를 좋아하고 소인은 이익[利]을 좋아합니다. 태평한 세상에는 의義를 좋아하고 어지러운 세상에는 이익을 좋아하는데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고기잡이가 말을 끝맺자 나무꾼이 말하였다. "저는 옛적에 복희伏羲가 있는 것을 알았는데 오늘에야 그 참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절을 하고 사례를 한 다음 아침 일찍 떠나갔다.
***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마치며..
: 저자 소강절邵康節의 아들 소백온邵伯溫의 말을 빌리자면 전해 내려오는 황극경세서는 무릇 12 권이다. 권 1 ~ 2 는 원회운세元會運世의 수數를 통하여 천지天地의 수數를 논하고, 권 3 ~ 4 는 회會로 운運을 권 5 ~ 6 은 운運으로 세世를 헤아려 천하의 이합치란異合治亂의 자취와 연표를 기술하여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서로 징험되는 바를 밝혔다. 권 7 ~ 10 은 율려성음律呂聲音의 수數를 통하여 만물의 수數를 밝혔으며, 권 11 ~ 12 는 황극경세서가 책이 되는 바를 논하였다.
블로그에 게재된 황극경세서의 원본은 `性理大全書[胡廣 等奉勅纂, 刊寫者未詳, 1415]`을 인용하였으며,
권 1 ~ 2 는 각각 찬도지요 상 · 하[讚圖指要 上 · 下], 권 3 ~ 4 는 관물내편[觀物內篇],
권 5 ~ 6 은 관물외편[觀物外篇], 권 7 은 어초문대漁樵問對[고기잡이와 나무꾼의 대화이야기]로 구성 편집되어졌다. 그러나 본문 상 누락된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이며, 단 속성에 의한 재분류에 따른 것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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