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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후기 개혁적 학자였던 다산(茶山) 정약용이 지은 「원목(原牧)」의 첫 구절입니다. ‘원목(原牧)’이란 목민관(牧民官)으로 지칭되는 통치자의 근본 의미를 고찰[原]해 본다는 말입니다.
정약용은 이 글에서 목민관의 출현이 애초 백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역설하였습니다. 태초에는 목민관은 없이 백성들만 있었는데, 사람간의 다툼을 공정히 판단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마을의 어른을 추대하여 대표로 삼았고, 이러한 방식이 수령, 임금, 천자로까지 확대되었으며, 법의 제정도 이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바람이 수렴되어 마을에서 고을로, 고을에서 나라로 보고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결국 모든 정치나 법의 제정이 백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이러한 원래의 모습이 변질되어 맨 위 한 명의 통치자가 형제 자식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고, 사적으로 수령을 임명하여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만들었기에 백성들은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의 투표에 의해 지방의회 의원 및 국회의원, 대통령 등을 선출하고 있으므로 다산이 말한 초기의 이상적인 형태로 되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이런 의문이 듭니다. 백성을 위해 일하라고 선출한 사람들이 과연 백성을 위하고 있는지?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백성의 위에 군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군신간의 충(忠)을 강조했던 전통사회에서도 임금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 한 경우 그를 더 이상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정의였습니다. 민주주의가 시행되는 오늘날 목민관으로 선출된 사람이 자신의 본분인 ‘백성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목민관이 아니며, 그저 목민관을 가장한 나쁜 사람에 불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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