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7권_
잡저(雜著)_
도통설(道統說)
도(道)는 우리 인간이 일상 생활에 항상 행하는 도이다. 어찌하여 도라 이르는가? 우리 인간이 천지의 형체(形體)를 받고 천지의 덕(德)을 받고 천지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이로써 사람이 되었다. 이 형체가 없으면 이 덕을 실을 수 없고, 이 덕이 없으면 이 형체를 운용할 수 없고, 덕을 싣고 있는 형체와 형체를 운용하는 덕이 없으면 그 임무를 다할 수 없는 것이다.
형체가 덕을 싣고 있기 때문에 형체가 헛된 형체가 되지 않고, 덕이 형체를 운용하기 때문에 덕이 진실한 덕이 되며, 형체와 덕이 서로 걸맞기 때문에 곧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형체가 천지에서 받은 형체를 따르고 덕이 천지에서 받은 덕을 충만하고 지위가 천지 중간에 위치한 책임을 다하여, 그 도를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도라는 것은 바로 이 도이니, 이것을 일상 생활에 떳떳이 행하는 것이라고 이름하는 까닭은 어째서인가? 진실로 사람이 사람이 될 때에 안에는 오장(五臟)과 육부(六腑)가 있고, 밖에는 머리와 배와 사지(四肢)가 있으며, 위에는 눈, 귀, 코, 입이 있고, 아래에는 손, 발, 손가락, 관절이 있어서 모두 각각 맡은 바가 있고 반드시 각각 이에 따른 법칙이 있는 것이다.
안에 있는 오장과 육부는 주장을 하고, 밖에 있는 머리와 배와 사지는 받들며, 위에 있는 눈, 귀 등은 살피고, 아래에 있는 손, 발 등은 공급하니, 그렇다면 안과 밖의 온갖 형체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구비하지 않음이 없어서 합하여 완전한 형체가 된 것이 바로 이 몸이며, 크고 작은 온갖 형체가 각각 해야 할 직책을 맡고 각각 따라야 할 법칙을 본받아서 날로 쓰는 사업이 바로 이 도이니, 이는 형체를 따르고 덕을 충만하고 책임을 닦음을 이른다.
책임이란 무슨 사업을 하는 것인가? 바로 우주 안에 있는 사업이다. 우주 안에 있는 허다한 사업이 모두 우리 인간에게 있으니, 만약 우리 인간이 그 사업을 해내지 못한다면 우주는 빈 그릇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미 사람이 되어 이 몸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히 이에 대한 도리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몸은 도 때문에 몸이 되고 도는 몸을 얻어 도가 되어서 도와 몸을 합한 것을 사람이라 하니, 사람이 진실로 도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떳떳이 행하지 않을 수 없어 잠시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도라고 이름한 것이니, 도는 도로를 빌려 비유한 것이다. 저 도로의 도(道) 자를 빌려서 이 도리의 도를 비유하였으니, 그렇다면 사람은 마땅히 잠시도 도를 떠날 수 없는 묘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통(統)이란 전수함이 있고 계승함이 있음을 이른다. 이른바 전수와 계승은 반드시 몸으로 전수하고 대면하여 계승하여야만 통(統)이라 이르는 것이 아니요, 그 심법(心法)과 덕업(德業)이 서로 합하면 비록 백세(百世)의 간격이 있고 천리(千里)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전수하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성실하여 천지에 참여함이 있는 자가 아니면 이 도의 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도는 비록 인간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우리 인간을 낸 것은 하늘과 땅이니,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스스로 그 도를 도라고 하겠는가. 도의 본원(本原)은 바로 말미암아 나온 곳이 있는 것이다.
《서경(書經)》 탕고(湯誥)에 “훌륭하신 상제(上帝)가 충(衷)을 하민(下民)에게 내려주어 순히 하여 떳떳한 본성을 소유하였다.” 하였고, 자사자(子思子)는 말씀하기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품절(品節)한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 하였으며, 동자(董子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킴)는 말하기를,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으니, 하늘이 망하지 않으면 도 역시 망하지 않는다.” 하였는바, 이는 모두 도의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을 낳은 것은 하늘과 땅이며 하늘과 땅을 낳은 것은 태극(太極)이니, 이른바 태극이라는 것이 어찌 도의 큰 근원이 아니겠는가. 태극은 바로 이 이치의 가장 위에 있는 원두(原頭)를 칭하니,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에 이 이치가 스스로 항상 있었다. 이 이치가 스스로 항상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원기(元氣)를 내어서 위에 위치하고 있는 하늘을 내니 하늘이 이에 처음으로 생겨났고, 하늘이 이미 생겨나자 아래에 위치한 땅을 내니 땅이 이에 비로소 생긴 것이다. 하늘과 땅이 이미 모두 생겨나자 하늘은 위에서 동(動)하고 땅은 아래에서 정(靜)하니, 동(動)에 의뢰하여 시작되고 정(靜)에 의뢰하여 생겨서 조화가 유행한다. 이에 우리 인간과 만물이 또한 모두 각기 그 받은 것을 얻어서 하늘과 땅 두 사이에 인간과 만물이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태극의 이치가 자연히 하늘이 될 이치가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하늘이 된 것이며, 또한 땅이 될 이치가 있었기 때문에 땅이 땅이 된 것이며, 또 모름지기 사람이 될 이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이 된 것이다. 비록 하찮은 만물에 이르러도 그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물건이 되었는데, 다만 만물은 모두 조화의 도구와 우리 인간의 쓰임이 될 뿐이다.
이에 하늘이 하늘이 된 이치를 순히 하는 것은 하늘의 도이고, 땅이 땅이 된 이치를 순히 하는 것은 땅의 도이고, 사람이 사람이 된 이치를 순히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니, 그 도는 곧 한 태극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그 이치를 순히 하여 하늘이 항상 하늘이 됨을 잃지 않고, 땅이 그 이치를 순히 하여 땅이 항상 땅이 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오직 우리 인간은 기질(氣質)이 잡되고 물욕(物欲)의 유혹이 없지 않아서 혹 스스로 사람이 된 이치를 순히 하지 못하여 삼재(三才)에 참여된 도를 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도(道)의 통(統)을 얻은 자만이 덕이 지극히 성스럽고 도가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사람으로서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성실한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이는 하늘과 땅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균등하지 않음이 있어서가 아니요, 인간이 태어나 우리 인간이 되어서 스스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도의 통이 스스로 돌아가는 곳이 있어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도통(道統)을 얻은 자가 몇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도는, 하늘과 땅을 가지고 말하면 하늘은 음(陰)과 양(陽)이 있는데 음과 양은 또 대소(大小)로 나뉘고, 땅은 강(剛)과 유(柔)가 있는데 강과 유는 또 대소로 나뉘니, 해와 달과 별이 하늘에 형상하고, 물과 불과 흙과 돌이 땅의 형질을 간직하며, 낮과 밤, 추위와 더위가 교대로 운행하고, 비와 바람, 이슬과 우레가 때로 일어나며,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일정함이 있고, 낳고 자라며 거두고 감춤이 반드시 차례가 있는 것이 모두 이 도이다.
그리고 만물을 가지고 말하면, 성(性)과 정(情), 형(形)과 체(體)가 서로 인하고 나는 짐승과 달리는 짐승, 풀과 나무가 무리로 나누어지며, 약하고 건장하고 늙고 죽음이 필연적인 것과 귀하고 천하고 성하고 쇠함이 똑같지 않은 것이 모두 이 도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가지고 말하면, 성(性)에 오상(五常)이 있으니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고, 이것이 발하여 칠정(七情)이 되니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이며, 인륜에는 오품(五品)이 있으니 부자간의 친함과 군신간의 의와 부부간의 분별과 장유간의 차례와 붕우간의 믿음이며, 세상에는 네 가지 사업이 있으니 집안에 있어서는 집이 가지런해지고 나라에 있어서는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에 있어서는 천하가 고르게 되고 우주에 있어서는 옛 성인을 잇고 오는 후학들을 열어주는 것이다.
오상(五常)은 이 도의 체(體)이니 하늘에서 나온 것이고, 칠정(七情)은 이 도의 용(用)이니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며, 오륜(五倫)은 이 도의 조리(條理)이니 친소(親疎)를 두루 다하는 것이고, 네 가지 사업은 이 도의 공용(功用)이니 법이 가까운 곳과 먼 곳에 미치는 것이다. 그러하니 우리 인간의 도가 여기에서 벗어남이 있겠는가.
이른바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성실하다는 것은 이 도의 밖에 별도로 딴 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성(聖)은 이 도를 통함으로써 성스러움이 되고 성실함은 이 도를 순수히 함으로써 성실함이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또한 이 성(性)을 온전히 하고 정(情)을 화하게 하며 윤리를 돈독히 하고 사업을 다하여 우리 인간의 도가 저절로 여기에서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곧 이른바 “천지(天地)와 그 덕이 합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이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차례가 합하고 귀신(鬼神)과 그 길흉이 합한다”는 것과 또 이른바 “동함에 대대로 천하의 도가 되고 행함에 대대로 천하의 법이 되고 말함에 대대로 천하의 기준이 되어서 멀리 있으면 바라봄이 있고 가까이 있으면 싫지 않다.”는 것과 또 이른바 “총명(聰明) 예지(叡智)가 족히 임함이 있으니, 관유(寬裕)하고 온유(溫柔)함이 족히 포용함이 있으며, 발강(發强)하고 강의(剛毅)함이 족히 지킴이 있으며, 제장(齊莊)하고 중정(中正)함이 족히 공경함이 있으며, 문리(文理)와 밀찰(密察)함이 족히 분별함이 있다.”는 것과 또 이른바 “천하의 대경(大經)을 경륜하고 천하의 대본(大本)을 세우고 천지의 화육(化育)을 아니 어찌 치우친 바가 있겠느냐.”라고 말한 것이 이 통을 얻음이 되는 것이다.
창려(昌黎) 한자(韓子 한유(韓愈)를 가리킴)가 원도편(原道篇)을 지었는데 여기에 이르기를, “요(堯)는 이것을 순(舜)에게 전하고, 순은 이것을 우(禹)에게 전하고, 우는 이것을 탕(湯)에게 전하고, 탕은 이것을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에게 전하고, 문왕, 무왕, 주공은 이것을 공자(孔子)에게 전하고, 공자는 이것을 맹가(孟軻)에게 전하였는데, 맹가가 죽자 그 전함을 얻지 못하였다.” 하였다.
그런데 송(宋) 나라의 여러 선생들은 모두 한자(韓子)의 말을 옳다고 하였다. 상고(上古)로부터 후세에 이르기까지 영달(榮達)하여 높은 지위에 있어서 큰 군주가 되고 큰 신하가 된 자가 모두 몇 명이나 있는데, 제왕(帝王)에 있어서는 유독 요·순·우·탕·문왕·무왕을 들고 보상(輔相)에 있어서는 유독 주공만을 들며, 곤궁하여 낮은 지위에 있는 자 역시 수많은 군자(君子)가 있는데, 유독공자와 맹자를 들었으니, 그렇다면 도통의 전함에 참여될 수 있는 자가 항상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이다.
반드시 마음에 간직하여 덕성(德性)이 되고 몸에 발하여 언행(言行)이 되고 세상에 베풀어 사업(事業)이 된 것이 한결같이 모두 천리(天理)에 순수하여 털끝만한 결함도 없고 털끝만한 지나침도 없고 털끝만한 치우침도 없은 뒤에야 비로소 도라고 이를 수 있으니, 이는 곧 당우(唐虞)의 중(中)이고 《대학(大學)》의 지선(至善)이고 《중용(中庸)》의 지성(至誠)이다.
그렇다면 도통의 전함을 세상에 유명한 성인(聖人)이 아니고서 얻을 수 있겠는가. 글이 있기 이전에는 비록 훌륭한 군주가 있고 훌륭한 신하가 있고 훌륭한 백성이 있었더라도 그 언행과 사업을 상고하여 알 길이 없으나, 다만 상상컨대 그 때에는 온 세상의 위아래가 모두 참된 본성과 순수한 덕을 간직한 자들이었을 것이니, 그렇다면 도가 저절로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어찌 도통이 있는 곳을 가리켜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리고 복희씨(伏羲氏) 이후에 이르러는 팔괘(八卦)가 그어지고 문자(文字)가 만들어지고 예법(禮法)이 지어지고 명분(名分)이 차등되고 정사(政事)가 행해져서 우리 인간의 도가 비로소 천명(闡明)되었고, 또다시 신농씨(神農氏)에 이르러는 생민(生民)의 본업과 화물(貨物)을 유통하는 큰 규칙과 백성을 오래 살게 하는 신묘한 의방(醫方)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으며, 또다시 황제(黃帝)에 이르러는 천지에 숨겨진 것이 모두 개발되고 조화의 은미한 것이 모두 나오고 경륜(經綸)의 관건(關鍵)이 모두 베풀어졌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경위(經緯)하며 신(神)을 감동시키고 백성을 교화하는 계책이 거행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이 도의 근본이 복희, 신농, 황제 세 성인(聖人)의 세대에 크게 열려진 것이다. 자연 굳이 도통을 말하지 않아도 그 도가 삼재(三才)의 큰 강령(綱領)이 되고 만세(萬世)의 공통된 모범이 되는 것이니, 또한 통(統) 자(字)로써 다할 수 없는 것이다.
태극(太極)이 도가 된 것이 하늘에 있어 기(氣)가 되면 음양(陰陽)이라 하고, 땅에 있어 질(質)이 되면 유강(柔剛)이라 하고, 사람에 있어 덕(德)이 되면 인의(仁義)라 한다. 기가 기가 된 것도 이 이치 때문이고 질이 질이 된 것도 이 이치 때문이고 덕이 덕이 된 것도 이 이치 때문이니, 그렇다면 곧 이 이치 아닌 것이 없다. 이 때문에 모두 도라고 이르는 것이다.
기(氣)가 있지 않으면 조화의 기틀이 될 수 없으므로 위를 덮고 있는 하늘은 반드시 기를 도로 삼으며, 질(質)이 있지 않으면 조화의 공을 이룰 수 없으므로 아래에서 싣고 있는 땅은 반드시 질을 도로 삼으며, 덕(德)이 있지 않으면 화육(化育)의 도에 참여하여 재성 보상(裁成輔相)하는 사업을 낼 수 없으므로 중간에 위치한 인간은 반드시 덕을 도로 삼는다.
한갓 기(氣)만으로는 도가 될 수 없으므로 하늘이 있으면 반드시 땅이 있고, 한갓 기(氣)와 질(質)만으로는 도가 될 수 없으므로 하늘과 땅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이 있으니, 그렇다면 삼재(三才)의 도가 반드시 우리 인간의 덕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구비되어 하늘이 하늘다운 하늘이 되고 땅이 땅다운 땅이 된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우리 인간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덮어 주고 실어 주는 큰 조화를 하여 태극의 이치가 태극이 된 묘함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통의 책임이 마침내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니,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몸을 가볍게 여겨 사람이 된 도를 스스로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주가 있은 이래로 이 도통을 계승한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삼강(三綱)이 이 때문에 삼강이 되고 오륜(五倫)이 이 때문에 오륜이 되어서 세상이 문명(文明)한 세상이 되어, 새와 짐승이 모두 잘 살고 오랑캐들이 돌아와 교화되며 해와 달이 빛나고 사시가 차례를 순히 하며 음양이 조화롭고 비바람이 제때에 불어서, 하늘은 높고 밝은 하늘이 됨을 잃지 않고, 땅은 넓고 두터운 땅이 됨을 잃지 않으니, 이 도의 공용(功用)이 어떠한가.
만약 도통이 전함이 없었다면 삼강이 삼강이 되지 못하고 오륜이 오륜이 되지 못해서 세상이 혼란한 세상이 되어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국경에 교차하고, 오랑캐의 말[馬]과 오랑캐의 병사들이 중국에 횡행하여 해, 달, 별의 삼광(三光)이 빛을 잃고 기후가 바뀌어 음양이 어그러지고 비바람이 지나쳐 하늘이 재앙을 내리고 땅이 변괴가 많아 태평의 세대와 전혀 반대가 될 것이니, 이 어찌 우리 인간의 도가 이를 초래한 것이 아니겠는가.
삼대(三代) 이전에는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성실한 분이 대대로 나와 높은 자리에 있어서 이 도를 마음에 체득(體得)하고 이 도를 몸에 체행하고 이 도를 집과 나라와 천하에 밝혔다. 그러므로 그 군주를 삼황(三皇)·오제(五帝)·삼왕(三王)이라 하였고, 그 세대를 당(唐)·우(虞)·삼대(三代)라 하였는데, 이 뒤로는 이 도의 전통을 얻은 자가 공자와 맹자였으나 곤궁하여 낮은 자리에 있어서 도를 품고 일생을 마쳤으니, 사람들이 어찌 지극한 덕의 세상을 볼 수 있었겠는가.
영달(榮達)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자 중에는 비록 혹 한두 명 도에 가까운 군주가 있었으나 제왕(帝王)의 심법(心法)을 마음에 두지 않고 제왕의 법을 따르지 않아 모두 잡된 패도(霸道)를 도로 여겼으니, 어찌 도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 하늘은 똑같은 한 하늘이고 땅은 똑같은 한 땅이다. 하늘과 땅이 일찍이 없어지지 않았으니, 도가 어찌 일찍이 망함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제 스스로 사람의 도를 다하지 못하므로 도통이 끊겨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주D-002]동함에 대대로……있겠느냐. : 이 내용은 모두 《중용》에 보인다.
[주D-003]당우(唐虞)의 중(中) : 당은 요(堯) 임금의 국명(國名)이고 우는 순(舜) 임금의 국명이며, 중은 중도(中道)로 과(過)하거나 불급(不及)함이 없음을 이른다. 《논어(論語)》 요왈(堯曰)에는,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훈계하기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允執厥中]’ 했다.” 하였고,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는,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훈계하기를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묘하니 정(精)하게 분별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중을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했다.” 하였는바, 주자(朱子)는 이것을 성현이 심법(心法)을 전수해 준 도통(道統)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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