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속집 제1권_

사(詞)_

 

영춘사(迎春詞)

 

삼동이 굳게 닫힌 나머지요 / 三冬閉錮之餘
여러 음이 지극히 쌓인 뒤이니 / 群陰凝積之極
천지가 구분되기 전의 홍몽과 같고 / 同鴻濛之未判
태양이 없는 긴긴 밤과 같았다오 / 若長夜之不日
가난한 집에 칩거하는 이내몸 / 蟄余躬於窮廬
심기를 펴지 못할 것만 같더니 / 若心氣之莫伸
갑자기 삼양이 돌아와 / 忽三陽之已發
건곤에 비로소 봄이 됨을 기뻐하네 / 喜乾坤之始春
나는 병든 몸 부축하고 문 밖으로 나와 / 余乃扶病出戶
청려장(靑藜杖) 손에 잡고 마루에 임하니 / 杖藜臨軒
찬란한 아침 햇살 동쪽에 떠올라 / 旭朝陽之生東
내 얼굴에 따사로이 비추누나 / 照余顔兮溫溫
시냇물 돌 사이로 졸졸 흐르고 / 泉有聲於石間
새들은 대나무 언덕에서 지저귀네 / 鳥和音於塢竹
매화는 남쪽 가지에 향기로움 간직하고 / 梅抱香於南枝
버들은 물가에 노오란 새싹 감싸고 있네 / 柳蘊黃於水曲
진실로 반가운 동군이 왔으니 / 信乎東君至矣
이 내 마음 위로되고 기뻐지네 / 覺余懷之慰悅
너는 일 년 중 첫번째요 / 爾其一歲之首
사시의 으뜸이라 / 四時之尊
절기에서는 가장 먼저이며 / 在氣而先
덕에서는 원이 된다네/ 於德爲元
산과 들의 어두운 음기 모두 몰아내고 / 驅去山野中陰昏
하늘과 땅의 온화한 양기 피어나니 / 發出天地間陽和
동면하던 곤충들 움직이고 숨어 있던 것들 나오며 / 蟄者動兮藏者啓
껍질 속의 씨앗 싹트고 뿌리에 새싹 돋아 / 甲者萌兮根者芽
하늘에 날고 물 속에 잠겨 있는 동물과 식물들 / 使兩間飛潛動植
모두 살려는 뜻 가득히 머금었네 / 莫不含生意之融融
원기를 펴 넓히고 대화를 아름답게 꾸밈 모두가 이 공이며 / 鋪張元氣賁飾大和總厥功
조화의 묘용과 귀신의 능사 또한 여기에서 나온다오 / 造化妙用鬼神能事儘厥工
만약 너 봄이 물건을 내지 않는다면 / 若非爾春之生物
여름에도 자라는 것 없고 / 夏無所長
가을에도 수확할 것 없으리니 / 秋無所收
겨울에 또 어찌 일 년의 공이 있겠는가 / 又何歲功之可藏於冬也
그렇다면 오늘 이 봄이 돌아옴을 / 夫然則今日之來復
내 어이 오두막에서 기꺼이 맞이하지 않겠는가 / 敢不歡迎於斗室
아 / 嗚呼
저 옛날 삼황이 우주를 다스릴 때에는 / 曰昔三皇之御宇
세상이 순박하여 교화가 깊고 깊었으니 / 世道淳厖兮大化沕穆
백성들 모두 상서로운 바람 쐬고 / 民皆囿於祥風
물건들 역시 상서로운 비를 맞아 / 物咸沐於瑞雨
천하에 따뜻한 누대 열리고 / 開春臺於普天
온누리가 장수하는 지역이 되었다오 / 置壽域於率土
이는 일원의 봄으로 / 此則一元之春兮
내 미처 보지 못하였네 / 吾未及見之
세상이 큰 난리를 겪은 뒤에 / 至如世經大亂之後
성인이 한 세상을 깨끗이 쓸어 내어 / 聖人掃淸乎一時
죽임과 벰을 그치고 오로지 사람을 살리려 하여 / 息斬伐兮專生意
갑주를 상자에 넣어 두고 예악을 일으키니 / 櫜甲胄兮興禮樂
원망하던 자들 기뻐서 노래 부르고 / 怨苦者謳歌懽悅
부상한 자들 날뛰며 춤을 추네 / 瘡夷者蹈舞踊躍
이는 한 세상의 봄인데 / 此則一世之春兮
내 다행히 오늘날 보게 되었다네 / 何幸得見於當日
회맹비색의 나쁜 인심이 / 若乃晦盲否塞之人心
하루아침 착한 마음으로 변하여 / 一朝善端之始發
수오와 사양하는 마음 불이 처음 타오르는 듯 / 羞惡辭讓之火然
측은과 시비의 마음 샘물이 처음 솟아나오는 듯 / 惻隱是非之泉達
충만하여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며 / 充之而心廣體胖
나타나 얼굴에 윤기 흐르고 등에 덕기(德氣) 가득하네 / 發之而面睟背盎
천하가 인(仁)을 허여하니 온 세상이 나의 문이요 / 天下歸仁兮八荒我闥
봄 기운을 간과 폐에 거두어들이니 태연히 굽어보고 우러러보네 / 春收肝肺兮泰然俯仰
이는 한 몸의 봄으로 / 此則一身之春兮
내 일찍이 뜻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네 / 夙余有意而無得
이제 일 년의 봄이 돌아오니 / 玆焉一年春兮歸來
생각이 아득하고 아득해 막기 어려워라 / 思悠悠兮難遏
이 봄을 어떻게 맞이할까 / 迎之兮若之何
내 스스로 봄의 행락이 있다오 / 余自有一春行樂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온화하여 / 日煖兮風和
병든 몸에 생기 돋고 근심 모두 흩어지며 / 痾去體兮愁散臆
봄 저물어 봄옷이 이루어지면 / 春旣暮兮春服成
아름다운 꽃들 산마다 붉게 피고 파아란 풀싹 들판마다 가득할 제 / 千山紅兮四野綠
행단에서 네 분이 뜻을 말씀한 것생각하며 / 懷杏壇四子之言志
증점이 비파를 내려놓은 것깊이 흠모하네 / 深有契於點也之舍瑟
관을 쓴 어른 대여섯과 동자 예닐곱과 / 冠童兮五六七
옛날의 아름다운 자취 뒤이어 / 續曠古之芳躅
목욕하고 바람 쐬고 / 浴于兮風于
시(詩) 읊으며 돌아와 한가롭게 지내면서 / 詠而歸兮閒自適
천 년 전 요순의 기상 거슬러 상상하고 / 遡千載堯舜之氣像
천 길 높이 나는 봉황의 풍격 이해하네 / 會千仞翔鳳之風格
이것은 우리들 분수에 맞는 즐거움이니 / 此便是吾分內樂地
부디 이 좋은 계절 저버리지 않으리라 / 願不負乎佳節也

[주D-001]홍몽 :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의 혼돈(混沌) 상태를 이른다.
[주D-002]삼양 : 세 개의 양효(陽爻)로 음력 정월을 가리킨다. 열두 달을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에 연관시켜, 동짓달에는 한 양(陽)이 처음 아래에서 생긴 복괘(復卦)가 되고 섣달에는 두 양인 임괘(臨卦)가 되고 정월에는 세 양인 태괘(泰卦)가 되므로 말한 것이다.
[주D-003]동군 : 동방의 군주란 뜻으로 동황(東皇)이라고도 칭하는바, 오행(五行)에서 봄은 동방에 해당되기 때문에 봄의 신(神)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4]덕에서는 원이 된다네 : 천도(天道)인 원(元)·형(亨)·이(利)·정(貞)은 사시(四時)의 춘(春)·하(夏)·추(秋)·동(冬)과 통하는바, 원은 봄에 해당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주D-005]삼황 : 상고 시대(上古時代)의 세 황제로 천황(天皇)·지황(地皇)·인황(人皇)이라고도 하며,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라고도 한다.
[주D-006]일원 : 12만 9600년을 가리키며, 이것을 다시 십이지(十二支)로 나누어 회(會)마다 각각 1만 800년씩 배정하는바, 자회(子會)에서 하늘이 처음 열리고 축회(丑會)에서 땅이 열리고 인회(寅會)에서 사람과 물건이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서는 태고 시대의 순박한 시절을 가리킨 것이다. 《皇極經世書 卷四 觀物內篇》
[주D-007]회맹비색 : 회는 달이 없는 그믐이고 맹은 눈이 먼 봉사이며 비는 숨이 막히는 것이고 색은 냇물이 막히는 것으로, 사람의 양심과 학문이 어두워지고 행해지지 않음을 이른다.
[주D-008]행단에서 네 분이 뜻을 말씀한 것 : 행단은 살구나무가 있는 단으로 공자(孔子)가 일찍이 강학한 곳인데,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大成殿) 앞이라 한다. 네 분은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증점(曾點)·염유(冉有)·공서화(公西華)를 이르는바, 공자가 일찍이 이들에게 각자의 포부와 경륜을 물은 적이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論語 先進》
[주D-009]증점이 비파를 내려놓은 것 : 증점은 자(字)가 석(晳)으로 증자(曾子)의 아버지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뜻을 물을 당시 증점은 비파를 타고 있었는데, 비파를 놓고 일어나 대답하기를 “늦은 봄이 되어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冠)을 쓴 어른 5, 6명과 동자 6, 7명과 함께 나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공자는 그의 뜻을 크게 칭찬하였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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