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문집 제42권_서(序)
주자서절요 서(朱子書節要序)
회암(晦菴) 주 부자(朱夫子)는 아성(亞聖 성인(聖人) 다음이란 뜻)의 자질이 뛰어나 하락(河洛)의 전통을 이어 도덕이 높으며 공업(功業)이 크다. 경전(經傳)의 뜻을 밝혀 천하의 후세 사람에게 다행하게 가르친 것이 귀신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고, 백 대 후에 성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려도 의혹되지 않을 것이다. 부자가 돌아가신 후 두 왕씨(王氏)와 여씨(余氏)는 부자가 평일에 지은 시문류(詩文類)를 전부 모아 《주자대전(朱子大全)》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두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되었다. 그 가운데 공경대부(公卿大夫)와 문인, 그리고 친구와 왕래한 편지가 많아서 48권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글이 우리나라에 유행된 것은 아주 드물었으므로, 선비들이 얻어 본 것은 아주 적었다. 가정(嘉靖) 계묘년(1543, 중종38)에 우리 중종 대왕이 교서관(校書館)에 인쇄하여 반포하도록 하였으므로, 신(臣) 나도 비로소 이런 책이 있음을 알고 구하였으나, 아직껏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책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책을 싣고 시골에 돌아와서 날마다 문을 닫고 조용히 앉아서 이 글을 읽어 보니, 점점 그 말이 맛이 있고 그 뜻이 무궁(無窮)함을 깨달았으며, 더욱이 서찰에 느낀 바가 많았다.
대개 그 책 전체에 관해서 논한다면, 땅이 만물을 싣고 있고 바다가 온갖 만물을 포용한 것과 같아서 없는 것이 없으나, 어려워서 그 요점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오직 서찰은 각각 그 사람의 재주의 고하(高下)와 학문의 천심(淺深)을 따라 병을 살펴서 약을 쓰며 물건에 따라 알맞게 담금질을 하는 것과 같아서, 혹은 눌리고 혹은 들추며, 혹은 인도하고 혹은 구원하며, 혹은 격동하여 올리고 혹은 물리쳐 깨닫게 하여서, 심술(心術)의 은미한 사이에는 그 악을 용납하지 못하게 하고, 의리(義利)를 궁구히 하는 즈음에는 홀로 먼저 조그마한 착오도 비추어 보니, 그 규모가 넓고 크며 심법(心法)이 엄하고 정밀하다. 못에 다다르면 얼음을 밟는 것과 같아서 조심하고 조심하여 잠깐이라도 쉴 때가 없다. 분노(忿怒)를 징계하며 욕심을 막아 선에 옮기며, 악을 고치기에 불급(不及)할까 두려워한다. 강건하고 독실하여 빛이 나서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하니, 힘쓰고 힘쓰며 따르고 따르기를 마지않음이 남과 자기의 사이가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고한 것이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하고 흥기하게 함이 당시 문하(門下)에 직접 배운 사람만 그럴 뿐 아니라, 비록 백대 후라도 진실로 이 글을 보는 자는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아아, 참 지극하도다.
그러나 그 책이 너무 많아서 연구하기가 쉽지 않고 겸하여 그 책에 실려 있는 제자(弟子)의 물음이 혹 득실(得失)이 있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내 어리석은 것은 스스로 헤아리지 않고, 그중에 더욱 학문에 관계되고 수용에 간절한 것만을 뽑아내되, 편장(篇章)에 구애되지 않고 오직 그 요긴함을 얻기에만 힘쓰고, 이에 글씨를 잘 쓰는 벗과 아들과 조카들에게 주어 권(卷)을 나누어 쓰기를 마치니, 무릇 14권 일곱 책이 되었으니 대개 그 본서에 비교하면 감해진 것이 거의 3분의 2이다. 참람한 죄는 피할 바가 없다.
그러나 일찍이 송 학사(宋學士)의 문집을 보니 거기에 기록하기를, 노재(魯齋) 왕 선생(王先生)이 뽑은 주자서를 북산(北山) 하 선생(何先生)에게 교정하기를 청하였다 하였으니, 옛사람이 이미 이런 일을 하였다. 그 뽑고 교정함이 응당 정밀하여 후세에 전할 만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송공(宋公)이 오히려 그 책을 얻어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는 해동(海東)에서 수백 년 후에 태어났으니, 또 어찌 그 책을 보고서도 좀 더 간략하게 만들어 공부할 자료를 삼으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성경(聖經)과 현전(賢傳)은 어느 것이나 다 실학(實學)이 아니겠는가. 또 지금 주자가 경전에 집주(集註)한 모든 말을 집집마다 전하고 사람마다 외우니, 모두가 다 지극한 가르침인데, 자네는 홀로 부자의 편지에만 관심을 가지니, 어찌 숭상함이 그리 편벽되고 넓지 못하는가?” 하였다. 나는 대답하였다. “자네의 말이 근사하나 그렇지 않다. 대개 사람이 학문을 하는 데는 반드시 단서(端緖)를 열어 흥기할 곳이 있어야 성취하게 될 것이다. 또 천하의 영재가 적지 않으며, 성현의 글을 읽고 공자의 말을 외기를 부지런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건만, 끝내 이 학문에 힘을 쓰는 자가 있지 않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그 단서를 열고 그 마음에 징험함이 있지 않는 까닭이다.” 지금 이 서찰의 말은 그 당시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성현의 요결(要訣)을 강명하고, 공부를 권장한 것이었으니 저들과 같이 범범하게 논한 것과는 다르고 어느 것이나 사람의 뜻을 감동시키며 사람의 마음을 흥기시키지 않은 것이 없다. 옛 성인의 가르침에는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이 모두 있지만, 정주(程朱)가 칭송하여 기술할 때 《논어(論語)》를 가장 학문에 절실한 것으로 삼은 뜻도 역시 이와 같다. 아아, 《논어》 한 책으로 너끈히 도에 들어갈 것인데, 지금 사람은 이 책에 대해 다만 읽고 말하기만을 힘쓰고 도를 구하기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익에 유혹되어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논어》의 뜻은 있으나 유혹하여 빼앗는 해는 없다. 그러면 장차 배우는 자로 하여금 감발하고 흥기하여 참으로 알고 실제로 행하는 것을 일삼으려 하는 자는 이 글을 버리고 어찌하겠는가. 공자(孔子)의 말에, “학자가 나아가지 못함은 도(道)의 문에 들어갈 곳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그 맛을 즐거워할 줄 알지 못함이다. 그 들어갈 곳이 없음은 마음을 비우고 뜻이 겸손하여 번거로운 것을 견디고 다스리기를 즐기지 않는 까닭이다.” 하였으니, 지금 이 글을 읽는 자가 진실로 능히 마음을 비우고 뜻이 겸손하기를 부자의 훈계와 같이 하면, 자연히 그 들어갈 곳을 알게 되고 그 들어갈 곳을 얻은 후라야 그 맛을 즐길 것을 아는 것은, 맹자의 말에 고기[芻豢]가 나의 입을 즐겁게 함과 같이 될 뿐만 아니라, 주자의 이른 바 큰 규모[大規模]의 엄한 심법[嚴心法者]도 거의 힘쓰게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겉으로 통하고 바로 오르면, 이락(伊洛)을 거슬러 수사(洙泗)에 달하여 가히 옳지 않음이 없으니, 앞에서 이른바, 성경(聖經)과 현전(賢傳)은 과연 모두 나의 학문이 될 것이니, 어찌 편벽되게 이 한 글만 숭상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늙어 상유(桑楡 황혼)에 가깝고 궁벽한 산에서 병들어 전에 배우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전현이 남긴 자취를 깨닫기 어려움을 개탄하였다. 그러나 구구(區區)하게 단서를 연 것은 실로 이 글에 힘입음이 있다. 그러므로 감히 남들의 지목함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 뽑아 모아서 동지에게 고하고, 또 뒤에 오는 자를 무궁(無窮)하게 기다리려고 함이다. 가정(嘉靖) 무오년(1558, 명종13) 여름 4월 모일에 후학(後學) 진성(眞城) 이황(李滉)은 삼가 서문에 쓴다.
[주D-002]노재(魯齋) 왕 선생(王先生) : 송(宋)나라 왕백(王柏 : 1197~1274)을 말한다. 자는 회지(會之)이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저서에 《독역기(讀易記)》 등이 있다.
[주D-003]북산(北山) 하 선생(何先生) : 송나라 하기(何基 : 1188~1269)를 말한다. 자는 자공(子恭)이며 면재(勉齋) 황간(黃榦)을 통하여 주희의 학문을 전수받았는데, 왕백(王柏)을 가르친 적이 있다.
[주D-004]고기가 …… 될 : 추환(芻豢)은 꼴을 먹여 기르는 소나 염소의 고기를 말한다. 맹자의 말에 “이의(理義)가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함이, 추환의 고기가 나의 입을 즐겁게 함과 같다.”라고 하였다.
[주D-005]이락(伊洛)을 …… 달하여 : 정자(程子)를 거슬러 공자(孔子)의 학문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정자가 사는 낙양(洛陽)에는 이천(伊川)과 낙수(洛水)가 있고, 공자가 사는 노(魯)나라에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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