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집_언행록3_유편(類編)
임금 섬김
선생은 공문(公門)에 들어갈 때, 반드시 양손을 모아잡고 종종걸음하여 한번도 느린 걸음을 하지 않았다. 일찍이 삼전(三殿 임금의 내외와 대비(大妃))에 숙배한 일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공경하고 조심하여 피로나 권태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김성일-
군명(君命)이 집에 이르면 반드시 공경하고 두려워해서, 급히 관디(冠帶)를 갖추고 문에 나아가 공경스러이 받들어 정청(正廳)의 책상 위에 놓고, 뜰에 내려 네 번 절한 뒤에야 당에 올라 꿇어앉아 읽었으며 다시 뜰에 내려서 네 번 절했다. -김성일-
소명(召命)이 내릴 때마다 비록 병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였으나, 항상 앉아도 자리에 편안히 앉지 않았고, 밤낮으로 근심 걱정을 하면서 다음의 명령을 기다렸다. 만약 윤허를 얻지 못하면, 때로는 아픈 몸으로 길을 떠났으나, 길을 가면서도 사장(辭狀)을 올려 기어코 임금의 허락을 얻은 뒤에야 그만두었다. -김성일-
선생은 명종(明宗)의 상사를 만나 서울에 있는 동안에 여러 달을 소식(素食)을 하여 기운이 아주 쇠진해졌다. 제자와 자제들이 번갈아 들어가 뵙고 권도(權道)를 따르시기를 간하고 청했지만, 모두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탱할 수가 없게 된 뒤에야 비로소 7, 8일 동안 권도를 행했다. 떠나서 집에 돌아온 뒤에는 다시 소식(素食)으로 졸곡(卒哭 삼우제(三虞祭) 후 사흘 만에 지내는 제사)까지 마쳤다. -우성전-
무진년(1568, 선조1)에 선생은 서울에 들어갔을 때, 곧 강릉(康陵)에 헌관(獻官)으로 가기를 청하였다. -우성전- 처음에 명종(明宗)의 인산(因山)이 가까워졌을 때, 선생은 병으로 고향에 돌아가 있었기 때문에, 곡하는 반열에 참여하지 못했었다. 그래 지금 와서 헌관으로 가기를 구한 것이다. -이안도-
국휼(임금의 상사) 3년 동안 삭망제(朔望祭)에 참여하였는데, 해가 지기 전에 부중(府中)에 들어가 그때 선생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있었다. 재계하였다. -우성전- 이 1절은, 그때에 행하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선생이 처음 행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기록하는 것이다. 본주(本註)이다.
명종이 승하하였을 때, 조정에서 선생에게 그 행장을 짓게 했다. 동료 관원들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상고하여 자료를 뽑아냈다. 그 가운데에는 명종이 어진 이를 좋아한 일에 대해 적혀 있고, 명종이 선생을 부른 경위가 자세히 실려 있었다. 선생이 뒤적이다가 이것을 보자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하고, 곧 일어나 나갔다. 대신들이 선생이 아니면 안 된다 하여 그 말을 삭제하고 짓도록 하였다. -우성전-
임금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르니 영명하고 슬기로워서, 사람들은 모두 그 거룩한 덕이 이루어질 것을 바랐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세상의 속된 말들이 날로 앞에서 시끄러웠다. 선생이 소명을 받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 임금은 비록 선생께 사랑과 공경의 예는 다하나,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선생이 혹은 경연 석상에서 아뢰고 혹은 글을 올려 성인의 학문을 힘쓰시라고 권했지만, 임금은 그저 관대하게 대우할 뿐이었다. 선생은 본래 물러갈 것을 고집한 데다 또 자기의 말이 채용되지 않는 것을 보고 돌아갈 뜻을 더욱 굳게 했다. 이에 선현들이 그린 그림을 모으고 자기 뜻을 보태어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고 말하기를,
하였다. -이이-
〈성학십도〉를 올리자, 임금이 그것을 병풍으로 만들라 하시고, 또 그것을 인출하여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번은 임금이 야대(夜對)에서 이 그림을 진강(進講)하라고 했으나, 경연에 모시고 있는 사람 중에 아무도 그 뜻을 밝히지 못하여 모두 모른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끝내 강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은 모두 한스러워했다. -김성일-
비록 물러 나 한가히 지낸 지 오래였으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늙을수록 더욱 두터웠다. 그래서 가끔 학자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다가 국사에 말이 미치면, 그때마다 탄식하고 통분해하였다. -정유일(鄭惟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나아가나 물러가나 한결같았다. 잘 된 정령(政令)을 들으면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라의 조처가 못마땅하면 걱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항상 임금의 덕을 도와 기르고 선비들을 붙들어 보호하는 것으로써 제일의 의무로 삼았다.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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