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초(蓍草)에 대한 변증설
(고전간행회본 권 11)
오주연문장전산고 >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1 - 경전류 1 > 역경(易經)
《역(易)》에, “하늘이 신물(神物)을 내니 성인이 그를 법받았다.” 했다. 시초가 뿌리는 하나이고 줄기는 1백 개인데, 그것을 둘로 나누어 사용하면 각각 50개가 되니, 이것은 대연수(大衍數)가 되는 것이다. 이 시초가 즉 하늘이 낸 신물인데, 성인이 이를 법받아 대연수로 사용하니, 참으로 변화의 도(道)는 신명이 하는 것인 줄 알겠다. “그윽이 신명을 도와 시초를 만들고, 하늘의 수 삼(三)을 더하고 땅의 수 이(二)를 더하여, 그 50수에 의하여 변화를 음양에 보아 괘를 세우고, 강유를 발휘해서 효를 만들었다.”했고, “시초의 덕은 둥글어 신통하고, 괘의 덕은 모져서 지혜로우며, 육효의 뜻은 변역하여 길흉을 고해 준다.”하였으니, 시초의 수와 괘효를 상으로 분리할 수 없음을 볼 수 있다. 책(策 점치는 산대)은 시초의 줄기 수이니, 《곡례》에, “책이 시가 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며, 시초는 책수(策數)를 늘린 것이니, 《역》의 대전(大傳)에, “건ㆍ곤 두 편의 책이다.” 한 것은 바로 산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현재 남아 있는 시초의 숫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시초를 세는 방법은, 언제나 세 번을 세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이 모두 13책이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36책이면 이것은 노양의 효가 되며, 세 번을 세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이 모두 17책이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32책이면 이것은 소음의 효가 되며, 세 번을 세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이 모두 21책이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28책이면 이것은 소양의 효가 되며, 세 번을 세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이 모두 25책이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24책이면 이것은 노음의 효가 되는 것이다. 웅붕래(熊朋來)가 지은 《시설론(蓍揲論)》이 있고 《역》전에 서의가 있으니, 참고할 만한 것들이다.
곡례에, “복(卜 거북으로 점치는 것)과 서(筮 시초로 점치는 것)를 서로 거듭하지 않는다.”한 것은 대개 거북으로 점치는 사람과 시초로 점치는 사람이 제각기 전문으로 맡은 직책이 있었기 때문에, 오직 거북점만이 거북점을 거듭할 수 있고, 시초점만이 시초점을 거듭할 수 있다. 만일에 거북점을 가지고 시초점을 거듭하게 한다거나, 시초점을 가지고 거북점을 거듭하게 한다면, 그 점치는 방법이 서로 통할 수 없는 것이다.
《예기》에, “시초점을 먼저 하고 거북점을 뒤에 한다.” 하였고, 홍범(洪範)에, “거북점도 길[從]하고, 시초점도 길하다.”는 말이 있으니, 이것을 보면 시초점과 거북점을 실로 둘 다 병용했던 것이다. 다만 옛날 사람들이 큰 일을 거북점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큰 일은 거북점으로 하고, 작은 일은 시초점으로 한다.” 말하였고, 《좌전》에 이것에 의하여, “시초점은 짧고, 거북점은 길다.”고 말하였으니, 두 가지를 한꺼번에 점쳤을 때에는 거북점을 따르는 것으로 주장을 삼았던 것이다.
《역》에는 시초점과 거북점에 대해 모두 그 훌륭한 덕을 칭찬하여, 본래에는 높고 낮음이 없었는데, 시초점이 짧고 거북점이 길다는 것은 대개 시속의 전설로부터 시작되어, 시초점과 거북점을 드디어 경중(輕重)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다만 거북점은 상(象)만을 주장하고 시초점은 수(數)만을 주장하니, 상이란 오행을 연구하는 것이요, 수란 두 체[二體 상괘(上卦) 하괘(下卦)]를 보는 것이다. 점을 올바로 쳐서 올바로 아는 것은, 역시 점치는 사람의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순(舜)이 “거북점도 길하고 시초점도 길하다.”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당ㆍ우(唐虞) 이전에도 두 가지 점치는 법이 모두 다 있었을 것이다. 혹은 “복희씨(伏羲氏)가 맨 먼저 거북점을 만들었고, 신농씨(神農氏)가 맨 먼저 시초점을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역시 증거 없는 억설(臆說)일 뿐이다. 이상의 말한 것은 시초를 가지고 써먹는 것만 말한 것이니, 다만 써먹는 것만 말하고 본체를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다만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울러 시초의 본체를 말한다.
시초는 신농 본경(神農本經 《본초강목(本草綱目)》을 가리킴.)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그 성질과 맛이 사람의 원기를 더하고 창자를 채우고 눈을 밝힌다. 《설저(說儲)》에는, “복희와 문왕의 무덤 위에 모두 시초가 난다.” 하였다.
복희씨 능묘(陵墓)는 《사기》에는 “남군(南郡)에 있다.” 하였고, 황보밀(皇甫謐)은, “누구는 산양(山陽) 고평현(高平縣)에 있다고 한다.” 하였고, 《여도비고(輿圖備考)》에는, “섬서성(陝西省) 진주(秦州)에 있다.“ 하였고, 청나라 《일통지(一統志)》에는 “진주 회령현(淮寧縣)에 있으니, 바로 옛 완구(宛丘)다.” 하였고, 또는, “연주(袞州) 어대현(魚臺縣)에 있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복희의 무덤이 모두 다섯 곳인데, 다섯 능에 다 시초가 나는 것일까? 주 나라 문왕의 능은 옹주(雍州) 함양현(咸陽縣)에 있다. 상고하건대, 《청회전(淸會典)》과 《일통지》에, “회령으로 복희의 능이라 하고, 함양으로 문왕의 능이라 하여 모두 관원을 보내어 제사지낸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회령의 복희의 능과 함양의 문왕 능 위에 시초가 나는가 보다
반거연(潘去然)은 “공림(孔林)의 시초가 여섯 모다.” 하였고, 《물리소지》에도 “또한 공림 시초가 여섯 모다.” 했다. 《물리소지》에 방중리(方中履)가 말하기를, “시호(蓍蒿)ㆍ인진(茵蔯)ㆍ애(艾)ㆍ유(薷)가 모두 다북쑥 종류인데, 시초는 오래 묵어서 끝 부분이 밑둥보다 크기 때문에 신명의 도움이 시초에 돌아오는 것이다. 한 줄기가 곧바로 올라가서 백 년을 묵으면 줄기가 백 개가 되고 길이가 여덟 자가 되며, 복희와 공자의 묘 위에 나는데 공림의 시초는 여섯 모졌으니, 지금의 인진과 호(蒿)가 바로 시초다.” 했다.
《자서》에, “시초는 쑥 종류로서 시초점을 치는 데 사용한다. 천 년이 되면 뿌리 하나에 줄기는 백 개가 되며, 그 아래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지키고 있다.” 하였다. 호(蒿)는 봉(蓬)의 종류니 봉호(蓬蒿)는 어란초(禦亂草)다. 공자의 묘는 노(魯) 나라 곡부현 궐리 공림(曲阜縣闕里孔林)에 있다.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이 저술한 《지봉유설》에, “옛날에 시초를 사용하여 점을 쳤는데, 상고하건대 《본초》에, “시초는 사철쑥과 비슷하고 꽃은 국화꽃과 같다.” 했으며, 또 “밑둥 하나에 줄기가 백 개다.” 했는데, 지금 사람들이 그 모습이 같은 것은 구하지 않고, 꼭 밑둥 하나에 줄기가 백 개인 것만을 구하다가 구하지 못하면 “시초는 우리나라에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니, 이것은 잘못이다. 교수(敎授) 박자우(朴子羽)가, “요전에 채마밭에서 이상한 풀을 보았으니, 한 뿌리에 30~40줄기인데 사철쑥과 비슷하나 사철쑥은 아니다. 잎이 가늘고 길며, 꽃은 국화꽃처럼 생겼는데 엷은 자주색이다. 그래서 《본초도경(本草圖經)》을 대교해 보니, 이것이 시초임에 의심이 없다.”고 하였다. 옛날에 어느 부인이 시초를 베어 땔감을 만들다가 쑥이 하도 많아 비녀를 쑥 속에 잃고 못 찾았다. 의방(醫方)에, “시초는 실지로 약에 쓰이니, 지금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는 것인데도, 이것이 시초인 줄을 아는 사람이 없다. 대개 시초는 희귀한 물건은 아니다. 다만 그 오래 묵은 것을 취하여 길ㆍ흉을 점치기 때문에 천 년 묵어서 밑둥 하나에 줄기 백 개인 것을 구하기 어려울 뿐이다.” 하였다.
상고하건대, 시초가 밑둥 하나에 줄기가 백 개라고 말하지만 어느 것이고 다 그런 것은 아니어서, 혹은 백 개에 맞지 않고 수십 줄기도 되며 여남은 줄기도 되며 대여섯 줄기가 되어도 역시 시초라 부른다. 어쨌던 오래 묵어서 줄기가 많은 것을 귀중품으로 여긴다. 인진(茵蔯)ㆍ호(蒿)는 우리나라 명칭으로 다위직이(多魏直伊)인데, 곳곳마다 있어서 밭에나 들에 많이 자라고 있으니, 이 쑥을 시초라고 한다면 비록 수레에 싣도록 채취한다 하여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묘(正廟) 경술년(1790)에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이 별사(別使)를 따라 연경(燕京)에 들어갔을 때 부자(夫子)의 72대손인 연성공(衍聖公) 공헌배(孔憲培)를 만나 보니, 연성공이 공자묘 위에 난 시책 50개를 기증했었다. 영재가 귀국하여 마침내 딴 사람의 소유가 되어서 지금은 누구에게 소장돼 있는지 모르지만, 공자의 묘 위에 난 시초가 다행히도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으니, 어찌 보배가 아니랴? 시초점을 아는 사람이 없는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시초(蓍草)에 대한 변증설 : 점을 칠 때 사용하는 풀을 변증한 것. 시초와 같은 형태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다북쑥[茵蔯]에 비해 말하면서 즉 다북쑥이 시초라는 것을 주장했으며, 아울러 거북점[龜卜]과의 비교와 점치는 방법까지 들었다. 그리고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을 비롯하여 역대 제가(諸家)들이 말한 모든 시초에 대한 자료를 들어 변증하고 그 자료에 대해 논평까지 곁들였다.
하늘이 …… 법받았다 : 계사 상(繫辭上) 제11장에 보이는 문구로서, 성인(聖人)이 《역》을 짓게 된 네 가지 즉 “天生神物 天地變化 天垂象 河出圖洛出書” 중에 한 가지 신물(神物)은 즉 시ㆍ구(蓍龜)를 가리킨다.
그윽이 …… 만들었다 : 《주역》설괘전(說卦傳) 제1장을 인용한 것. 성인이 《역》을 지은 과정과 그 공효를 말하였다.
시초의 …… 준다 : 계사 상 제11장에 보임. 즉 시초의 변화 무방(無方)한 것, 괘의 정리(定理)가 있는 것, 효가 변역(變易)하는 것을 말하였다.
건ㆍ곤 …… 책이다 : 계사 상에, “乾之策二百一十有六 坤之策百四十有四 凡三百有六十 當期之日 二篇之策 萬有一千五百二十 當萬物之數也"에서 인용되었다.
복 …… 않는다 : 거북점을 쳐서 불길할 때 다시 시초점을 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거북점 …… 길하다 : 《서경(書經)》 홍범(洪範) 계의(稽疑)에 보인다.
큰 …… 한다 : 《예기(禮記)》 표기(表記)에 보인다.
시초점 …… 길다 : 《좌전(左傳)》 희공(僖公) 4년 조에 보인다.
거북점 …… 길다 : 《서경》대우모(大禹謨) 편에 보인다.
《설저(說儲)》 : 명(明) 나라 진우모(陳禹模)의 저서. 초집 8권, 2집 8권으로 되었는데, 내용은 대개 불교(佛敎)를 찬양한 것이 많다.
《물리소지(物理小識)》 : 청(淸) 나라 방이지(方以智)의 저서. 방중리(方中履)는 방이지의 아들인데, 본문에 “중리가 말했다.”는 것은 기록의 착오인 듯하다.
유득공(柳得恭) :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혜풍(惠風)ㆍ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 이덕무(李德懋)ㆍ박제가(朴齊家)ㆍ서이수(徐理修) 등과 규장각 검서(奎章閣檢書)로 발탁되어 4검서라 일컬었고, 북학파에 속하는 실학자로서 저서에는 《영재집(泠齋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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