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 쉰 일곱 번째 이야기
번역과 평설로 만나는 우리 고전, 우리 생각! ‘고전포럼’의 새이름 ‘고전산책’을 소개합니다.
산문으로 만나는 삶의 혜안 ‘고전산문’(매주 월요일), 한시에 담긴 시의 정경 ‘한시감상’(격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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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1일 (월)
공직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 - 만물을 사랑하여 사람들을 구제하라
얼마 전에는 헌법재판소장 후보 청문회로 한바탕 시끄럽더니, 그예 사달이 나고 말았다.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분이 자진하여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이다. 정식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이 분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개발독재시대였던 그 당시에는 집안 좋고, 재주 있고, 힘이 있던 사람들, 이른바 ‘방귀 꽤나 뀌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해왔던 일이었다. 그야말로 관행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관행적으로 해 왔던 것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그들의 발목을 잡아, 개인적으로는 패가망신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 국가적으로 국민을 앞에서 이끌고 갈 인물이 없는 불행한 시대가 되게 한 것이다.

앞으로 국무총리 이외에도 많은 인물을 뽑아 국정을 수행해 나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태로 보면,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고 고위직에 임명되어 국정을 수행해 갈 만한 인물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러다가는 정말 ‘능력이 있으면서 도덕적인 인물’을 뽑아서 국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어도 도덕적인 사람’을 뽑아 국정을 맡기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넘쳐난다. 다만 그런 능력에 도덕성까지 겸비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인물이 부족한 사회가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지도층에 있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은 도외시한 채,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골몰하였던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답답하기만 한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정말로 귀감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 있다. 특히 앞으로 고위직에 올라 국정을 담당하기를 꿈꾸는 공직자들은 반드시 이 분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누구인가? 바로 조선조 최고의 경세가(經世家)였던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이다.

잠곡의 어떤 점을 공직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가? 바로 잠곡이 일생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서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그가 품고 있었던 정신은 무엇인가? 바로 ‘애물제인(愛物濟人)’의 정신이다. 애물제인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만물을 사랑하여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뜻이다.

내가 10여 세 되던 때 아버지께 『소학(小學)』을 받아서 읽다가 ‘일명(一命)의 관원이 참으로 만물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두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라고 한 부분에 이르러서 척연히 마음속에 감동되는 바가 있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 보니, 반드시 일명의 관원만이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모두 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다만 아무리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반드시 일명 이상의 관직에 있는 자라야 할 수가 있다.
나의 벗 자정(子正) 이유양(李有養)이 일찍이 나에게 “자네는 성현들의 말 가운데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말이 있는가?”라고 묻기에, 내가 “성현들의 말은 모두 좋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 우연히 정자(程子)가 한 ‘만물을 사랑하여 다른 사람을 구제하라.[愛物濟人]’라는 말에 감동을 받아, 지금까지도 이를 가슴속에 새겨 두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자정이 말하기를, “나의 경우에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어진 이를 보면 같이 되기를 생각하라.[見賢思齊]’라는 말이 참으로 좋았다.”라고 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비로소 사람마다 각자 성현들의 말에 대해 좋아하는 바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문정(李文靖)은 말하기를, “공자(孔子)가 말한 '일을 공경히 하여 미덥게 하고, 용도를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하라.[敬事而信 節用而愛人]'라는 말은, 종신토록 가슴속에 새겨 외워야 한다.”라고 하였다. 옛사람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던 것이다.(하략)

余十餘歲。受小學書於過庭。讀至一命之士。苟存心於愛物。於人必有所濟。惕然有動於中。因自思。非必一命士爲然。人固當皆如此。但雖有愛物之心。若夫濟人。必一命以上者之所爲也。友人李子正有養。嘗問於余曰。子於聖賢之言。有所心悅者乎。余應之曰。聖賢之言。無非可悅。然余於小時。偶感程子愛物濟人之語。至今銘于心。子正曰。我則於論語中見賢思齊之言。心誠悅之。余於是。始知人各有好於聖賢之一言也。李文靖之言曰。敬事而信。節用而愛人。終身誦之可也。古人亦如此。(下略)

- 김육, 「종덕신편의 서문[種德新編序]」, 『잠곡유고(潛谷遺稿)』

▶ 「종덕신편서」 원문

이 글은 잠곡이 인조 22년(1644)에 백성들의 도덕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종덕신편(種德新編)』이란 책에 쓴 서문이다. 이 책은 옛사람 중에서 덕행이 높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뽑아, 그들의 행실과 일화를 모아서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은 영조 때 일반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언해본(諺解本)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명(一命)의 관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일명의 관원은, 쉽게 말하면 조선 시대의 종9품 벼슬이며, 오늘날의 최말단 공무원인 9급 공무원을 말한다. 옛날의 관직 제도를 보면, 처음 관등(官等)을 받고서 되는 최말단의 관원을 일명지사(一命之士)라고 하였으며, 최고위직 관원을 구명지사(九命之士)라고 하였다.

이 글에 나오는 이유양(李有養)이란 인물은, 잠곡의 친구이며, 인조 때 학행(學行)으로 발탁되어,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명성과 치적을 쌓았던 인물이다. 이문정(李文靖)이란 인물은, 송(宋)나라 때의 명재상인 이항(李沆)으로, 백성들로부터 거룩한 정승이라는 의미인 '성상(聖相)’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잠곡은 이 글에서 자신이 열 살 때 『소학』을 읽다가 정자가 ‘일명의 관원이 참으로 만물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두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라고 한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아, 평생 동안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겨두고, 이 말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음을 말하고 있다.

잠곡이 평생 동안 반대파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에 이 ‘애물제인(愛物濟人)’이란 말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잠곡이 평생 자신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였던 말이다.

이 글에서 보면, 잠곡은 ‘애물제인’을, 이유양은 ‘견현사제(見賢思齊)’를, 이항은 ‘경사이신(敬事而信)’과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을 종신토록 가슴에 새겨두고서 실천하여, 각자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만약 이분들처럼 성현의 말 가운데 자신에게 절실히 와 닿는 말을 하나씩 골라, 이를 가슴 속에 새겨두고서 살아간다면,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잠곡의 이 글은 나에게 있어서 나의 진로를 확정하게 해 준, 아주 소중한 글이다. 내가 이 글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약 20년 전쯤에 『잠곡유고』를 번역할 때였다. 그 때 나는 나의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잘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결과, 한문(漢文)을 정확하고 읽기 쉽게 번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선현들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나의 평생 사업이 한문 번역으로 결정되었다.

잠곡의 이 ‘애물제인’이란 말은 공직자, 특히 힘이 있는 공직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말이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판검사, 장성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잠곡의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서 실천해 나간다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며,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자연 윗사람을 따라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서 업무에 임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게 될 것이다.

잠곡의 이 말은 공직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해당하는 것이다. 각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끼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법이 필요 없는 사회, 범죄의 걱정이 없는 사회, 모든 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나의 본업인 한문 번역에 충실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다시 한 번 이 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일에 임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또 각자의 마음에 드는 성현들의 말을 하나씩 찾아 자신의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서 평생의 지표로 삼아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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