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곡집
심경집의(心經集義) 제2권(卷之二) 경(經)
하(下)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으로 나누어 4절을 만들었음.
성의(誠意) 1절(1節)
[역건구이한사존성장 (易乾九二閑邪存誠章)]
문언전(文言傳) 건괘(乾卦) 구이(九二)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어 대인(大人)을 봄이 이롭다 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용의 덕으로 정중(正中)한 것이다. 떳떳한 말을 신실히 하며 떳떳한 행실을 삼가하여 사특함을 막아 그 성(誠)을 존(存)하며 세상을 착하게 하고도 자랑하지 아니하면 덕이 넓어서 교화시킨다. 《주역》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매 대인을 봄이 이롭다.’는 것은 임금의 덕이다.” 하였다. 《본의(本義)》에 이르기를, “사특함을 막아서 그 성(誠)을 존(存)한다는 것은 싫음이 없고 또한 보존한다는 뜻이다.” 하였다.
공자 이르기를, “시(詩) 3백 편을 한마디로 다할 수 있으니, ‘생각이 사특함이 없다.[思無邪]’ 한 것이다.” 하였다. 위정(爲政)
○ 정자가 말하기를, “생각이 사특함이 없는 것은 성(誠)이다.” 하였다. 소일설(少日說)
정자가 말하기를, “《주역》에 충신(忠信)은 덕에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함은 무엇인가? 사특함을 막으면[閑邪] 성(誠)이 저절로 존(存)하고, 성(誠)이 존하면 이에 충신(忠信)이 된다. 어떤 것이 사특함을 막는 것인가? 예(禮)가 아니거든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면 이것이 사특함을 막는 것이니라.” 하였다. 공경하여 안을 곧게 하는 데는 모름지기 임금은 임금 노릇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을 할 것이니, 이것인 얼마나 직절(直截)한 것이랴?” 하였다. 여(呂)
집의(集義)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것은 얼마 안 되는데 서민(庶民)은 그것을 버리고 군자는 그것을 존(存)하느니라, 순(舜)은 서물(庶物)에 밝고 인륜(人倫)에 살피나니 인의(仁義)로 말미암아서 행하는 것이요, 인의를 행하는 것은 아니리라.”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대인(大人)이란 것은 그 적자(赤子)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이니라.” 하였다. 이루(離婁) 하(下)
맹자가 말하기를, “요ㆍ순(堯舜)은 성(性)대로 한 자요, 탕ㆍ무(湯武)는 성을 회복한 자이다. 용모와 행동이 예(禮)에 맞는 것은 덕의 지극함이다. 죽은 이를 곡(哭)하기를 슬피 함이 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덕을 떳떳하게 하여 굽히지 아니함이 녹(祿)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말을 반드시 신실하게 함이 억지로 행실을 바르게 하려고 함이 아니다. 군자는 법도대로 행하여 명(命)을 기다릴 뿐이니라.” 하였다. 진심(盡心) 하(下)
○ 명도가 말하기를, “개보(介甫)가 말하되, ‘도가 이러하고 이러하다는 것을 알면 벌써 도와는 떠난 것이다. 도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다만 본분(本分)의 일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하였고, 맹자의 말에 ‘요순은 성(性)대로 하여 인으로 말미암아[由] 행한다.’고 하였으니, 어찌 심상(尋常)한 것이 아니리오. 《주역》에 이르되, ‘사람의 도를 세웠으니 인이요 의다.’ 하였으니, 성자(性字)와 유자(由字)도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이단백(李端伯)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다만 이 지견(知見)이 통투(通透)하지 못한 말에 잘못된 때문이다. 사람이 이미 능히 일체의 일이 모두 마땅히 할 바임을 알고 보면[知見] 반드시 착의(著意)하기를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다. 착의하자마자 곧 사심(私心)이 있는 것이 이 한 점(點)의 의기(意氣)가 능히 얼마 동안이나 가랴?” 하였다. 이천이 임종(臨終)할 때 문인이 묻기를, “선생의 평일에 공부한 것이 정히 오늘에 써야 할 것입니다.” 하니, “선생이 병을 참고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쓴다고 말하면 곧 틀린 것이다.” 하였다.
사씨(謝氏)가 말하기를, “공자가 이르기를, ‘인자(仁者)는 인(仁)에 편안히 하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 하셨다. 인자는 마음이 안과 밖, 멀고 가까운 것, 정(精)함과 추(麤)함의 간격이 없어서 존(存)하는 바가 없어도 저절로 잃어지지[亡] 아니하며 정리하는 바가 없어도 저절로 요란하지 아니하여, 눈의 봄과, 귀의 들음과, 손의 쥠과, 발의 행함과 같은 것이다. 지자(知者)는 본 바가 있다고 하면 옳지마는 얻은 바가 있다고 하면 옳지 아니하다. 존(存)하는 바가 있어야 잃어지지 아니하며 정리하는 바가 있어야 요란하지 않는 것은 능히 뜻[意]이 없지 못한 것이다. 인에 편안하면 하나요, 인을 이롭게 여기면 둘이 된 것이다.” 이인(里仁)
정자가 말하기를, “전일에 주무숙(周茂叔)에게 수학(受學)하였더니, 그는 매양 나로 하여금 중니(仲尼)와 안자(顔子)의 즐거워한 곳에 즐거워한 바가 무슨 일인가를 찾으라.” 하였다.
선우선(鮮于侁)은, 안자가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다는 것을 해설하기를, “도를 즐거워할 뿐이다.” 하였다. 이천이 말하기를, “가령 안자가 도로써 즐거움을 삼았다고 하면 안자가 아니다.” 하였다. 옹야(雍也) 묻기를, “이천이 말하기를, ‘만일 도로써 즐거움을 삼았다면 족히 안자가 될 수 없다.’ 하고는, 또 도리어, ‘안자의 즐거워한 바는 인(仁)뿐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인을 즐거워함이 아니라, 오직 인(仁)한 고로 능히 즐거워한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다만 지금 사람들이 도를 즐거워한다고 말한 것이 얕을 뿐이다. 실은 도를 즐거워한다고 말하여도 역시 해될 것이 없다.” 하고, 또 말하기를, “정자의 말에, ‘사람이 능히 자기를 이기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하여 우러러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구부려서는 사람에 부끄럽지 않으니, 그 즐거움을 가히 알 수 있다. 중단함이 있으면 기운이 풀어진다 하였다.”고 하였다.
정자가 조 여림(趙汝霖)으로 더불어, “정치를 하는 데는 일에 다다라서 착심(著心)하는 것을 기(忌)한다.”고 논하다가, “이것이 진실로 옳다. 그러나 오직 서(恕)에는 착심하여야 한다.” 하였다. 약(籲)이 묻기를, “옳습니까?” 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그가 말한 것은 착심하여 힘써서 서(恕)를 행하면 옳지마는, 착심하여 서(恕)함을 구하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대개 서(恕)는 스스로 가진 이치이니 나의 이 마음을 가지고 저 사람에게 행할 뿐이니,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의론은 서(恕)를 하는 데 마음이 있으니, 마침내 반드시 서(恕)할 것이다.” 하였다.
집의(集義) 맹자가 말하기를,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性)을 아나니 그 성을 아는 자는 하늘을 안다. 그 마음을 존(存)하여 그 성을 기르는[養] 것은 하늘을 섬기는 바이며 요사[殀]함과 오래 삶에 의심하지 않아서 몸을 닦아서 기다림은 입명(立命)하는 바이니라.” 하였다. 정자가 말하기를, “만일 존(存)하고 양(養)하지 못하면 다만 말[說話]뿐이다.” 하였다.
태갑(太甲 《서경》의 편명)에 이르기를, “이 하늘의 밝은 명[明命]을 돌아보라.” 하였다. 《대학(大學)》
○ 맹자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은 백성 보기를 상처[傷]가 있는 것같이 하며 도를 바라보고도 보지 못한 것같이 하셨다.” 하였다. 이루(離婁) 하(下) 《논어》에 안연(顔淵)은 말하되, “우뚝이 선 것이 있는 듯하여서 비록 좇으려 하나 할 수 없다.” 하였다. 위에 보인다.
《중용》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귀신의 덕이 거룩하구나.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물(物)의 체(體)가 되어 예외가 없도다.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재계[齋]하여 깨끗이 하고 예복(禮服)을 입게 하여 유동(流動)하여 그 위에 있는 것 같으며 그 좌우에 있는 것 같다. 시(詩)에 이르되, ‘신(神)의 이르는 것을 가히 헤아리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싫어하며 태만하랴?’ 하였다. 대저 은미(隱微)함의 나타남과 성(誠)의 가리울 수 없음이 이와 같을진져!” 하였다.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말이 없고자 하노라.” 하니,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부자[子]께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소자(小子)들이 어찌 배우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리요마는 사시(四時)가 행하며 백물(百物)이 나느니라. 하늘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하였다. 양화(陽貨)
《중용》에, “시(詩)에 이르기를, ‘나아가 신(神)에게 감동되게 하면 말이 없어도 다툴 리가 있지 아니하다.’ 하였다. 이러므로 군자는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이 권면[勉]하며 성내지 않아도 백성이 도끼보다도 무서워하느니라. 시에 이르기를, ‘깊고 그윽한 덕이 어찌 나타나지 아니하랴? 제후(諸侯)들이 법받는다.’ 하였다. 이러므로 군자는 돈독히 공경하매 천하가 다스려지느니라. 시에 이르기를, ‘내가 밝은 덕을 품었으며 소리와 빛을 크게 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공자가 이르기를, ‘소리와 빛은 백성을 교화시키는데 있어서는 말단[末]이다. 시에 이르기를, 덕이 미세(微細)하기가 털과 같다 하였으니, 털도 오히려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거니와,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한 것이라야 지극하니라.” 하였다.
안자가 그 즐거움을 …… 뿐이다.” 하였다. : 《논어》에, “회(回)는 한 바구니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데 남들 같으면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할 터인데 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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