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하면 떠오르는 말이 외로움입니다. 물설고 낯선 타향에서 특별한 일 없이 지내다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 처지에 대한 쓸쓸한 감정이 밀려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쓸쓸함은 마음먹기에 따라 담박함으로 바뀔 수 있고, 외로움은 새로 만난 인연들을 통해 정겨움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다산은 꽃그늘 아래서 손님을 맞아 시집을 읽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처지에 대한 쓸쓸한 감정을 잊습니다. 승려가 찾아왔다 남기고 간 염주를 주워들며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담박한 마음을 챙깁니다.
장다리 밭에서 잉잉거리는 벌들도, 보리밭에서 꺼겅대는 꿩들도 모두 고향에서 익히 보았던 풍경입니다. 이런저런 번잡한 생각이 다 날아가고 고향에서 이런 풍경을 한가로이 지켜보던 때의 평화로운 마음 상태가 됩니다. 타향살이라 해도 낯설지만은 않다고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벗들입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오며가며 만나는 이웃 영감은 언제라도 만나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입니다. 일엽편주에 앉아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었을지, 세상 살며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배를 잡고 웃었을지, 달을 보며 아무 말 없이 눈빛을 주고받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동이 술을 함께 비울 만큼 허물없는 사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고향이 주는 편안한 느낌은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대상들과의 조화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향에 산다 해도 그곳의 자연이나 새로 만난 사람들과 좋은 감정들을 나누고, 생활 속에서 담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건 내 고향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일터도 그렇습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 채워 주고, 누군가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 주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일을 성취해 간다면, 일터 또한 고향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향기로운 차를 마시다 한 잔 타 주고 싶은 사람, 어깨가 아플 때 망설임 없이 찾아가 주물러 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아무 얘기나 생각나는 대로 해도 듣고 바로 잊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수고로운 고비들을 함께 잘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한없이 담박하게 먹는다면 세상 어디도 내 고향 같을 것이고, 세상 누구도 고향 친구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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