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푸는 사람 이야기[抒廁者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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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曾子)가 임종에 가까워 맹경자(孟敬子)가 문병하자, “새는 죽으려 할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그 말이 선한 법이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라고 하며 말을 시작한 적이 있다. 이 글은 저자가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기 2주 전에 쓴 글이다. 3개월 가까이 병으로 누워 있다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글의 주제를 “가치 있는 노동이란 무엇인가?”로 잡은 것이다.
남의 묘를 도굴하는 사람의 눈에 온종일 똥이나 퍼서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을 기롱하니, ‘똥이나 푸는 주제에 어디 감히 지적질이야?’ 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 만도 하다. 똥 푸는 사람은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필요한 일을 하는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태,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천시하는 풍조를 이미 수도 없이 겪으면서 다시 한 번 자조(自嘲)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맹자는 직업을 택하는 것과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구절이다. 생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한 선한 의지와 행위로 이익을 얻느냐 자신만을 위한 의도와 행위의 대가로 이익을 얻느냐에 따라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좋은 직업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해 걸맞은 대우를 해 주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한데도 천대를 받고, 노동 강도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는다. 또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해 부당한 방법으로 부귀를 얻은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이유 없이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
윗글의 똥 푸는 사람은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먹고살 거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면서 이익을 얻는다. 무덤을 도굴하는 사람은 남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서 이익을 얻는다. 필요한 일을 하느라 더러워진 옷을 입고 맑은 눈빛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사람과, 부끄러운 일을 하여 마음은 초조하면서도 번드르르한 옷을 입고 점잔을 빼고 있는 사람 가운데 우리는 누구를 선망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신분 사회를 막 지나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평등을 지향하는 데 유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익이 최상의 가치가 된 요즘 사회에서는 오히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말을 사회 변화의 모토로 내세워야 할 듯하다. 그리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귀한 직업으로 여겨 그에 맞는 대접을 해 주고, 부도덕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을 천한 직업으로 여겨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윤기 선생이 80여 년을 살고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가 오늘날 직업을 선택하고 바라보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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