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의 중요한 원칙
| ||
| ||
|
순암(順庵) 안정복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역사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순암은 고려 말까지 우리 역사를 강목체로 정리한 『동사강목』을 저술한 데 이어, 조선 초부터 영조 때까지를 담은 『열조통기(列朝通紀)』를 지어, 우리 역사의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순암은 역사가의 제일의 임무로 계통을 명확히 세울 것, 찬역, 충절, 시비를 똑바로 가릴 것, 또 제도, 문물을 상세히 기록할 것 등을 주장했는데, 특히 그 과정에서 ‘고증’을 중시하여 과거의 역사 기록을 단순히 취사하여 조술(祖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때문에 ‘순암 사학’을 근대 사학으로의 발전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순암이 지은 『동사강목』에는 역사가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원칙과 관련하여, 한 역사 인물의 평가가 눈에 띈다. 바로 백제의 계백(階伯) 장군에 대한 평가다. 글은 이렇다.
『동사강목』 제4상(上), 경신년 신라 태종 7년, 고구려 왕 장 19년, 백제 왕 의자 20년 추(秋)7월
이 글에서 언급한 ‘양촌’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학자로 유명한 권근(權近, 1352~1409)을 말한다. 순암이 비판한 글은 양촌이 초절(抄節)한 『동국사략(東國史略)』 해당조에 실려 있다. 같은 글이 그의 문집인 『양촌집(陽村集)』 제34권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에도 실려 있다. 여기에서 ‘안(按)’은 번역문에서 흔히 ‘상고하건대’, ‘생각건대’로 풀이하는데, 이는 저자의 평설(評說)로, 역사서인 경우 ‘사론(史論)’ 또는 ‘사평(史評)’에 해당한다. 양촌의 글은 이렇다.
『양촌집』을 보면 인륜의 도리를 밝혀 시속(時俗)을 비판한 글이 많기 때문에 공감하는 바가 많지만, 계백에 대한 이런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백제의 마지막에 나라의 버팀목이 되었던 계백! 그에 대한 온당한 역사가의 평가는 무엇일까. 지장, 덕장, 용장일까, 아니면 ‘난폭하고 잔인한’ 패장(敗將)일까, 이이화 선생의 역사에세이 책 제목처럼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사필(史筆)은 가벼이 할 일이 아니다. |
|
'고전포럼 > 고전명구.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산문] 거북이의 운명 (0) | 2018.01.03 |
---|---|
[고전산문] 귀머거리로 살아가기 (0) | 2017.12.18 |
[고전산문] 시골 선비 신송계(申松溪) (0) | 2017.12.18 |
[고전산문] 똥 푸는 사람 이야기[抒廁者說] (0) | 2017.12.02 |
[고전명구]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0) | 2017.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