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 제106권 > 경사강의(經史講義) 43 ○ 총경(總經) 1 > 최종정보

 

경사강의(經史講義) 43 ○ 총경(總經) 1 계축년(1793, 정조17)에 향거(鄕擧)와 이선(里選)의 제도를 모방하여 관동백(關東伯)에게 궁경독서(窮經讀書)한 학자를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명하였는데, 춘천(春川)의 박사철(朴師轍)과 횡성(橫城)의 안석임(安錫任)과 양양(襄陽)의 최창적(崔昌迪)이 선발되었다. 특별히 질문하는 조항을 내려 보내어 부대(附對)하게 하였다.

 

음(陰)과 양(陽), 기(奇)와 우(耦)는 역(易)의 이치이고,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생성(生成)은 역의 수(數)이고, 말[馬]이니 소[牛]니 머리[首]니 배[腹]니 하는 것은 역의 상(象)이고, 정(貞)과 회(悔), 길(吉)과 구(咎)는 역의 점(占)이고, 상을 관찰하여 점을 검토하고 수를 다 계산하여 이치를 밝히는 것은 역학(易學)의 교량(橋梁)이다. 그러나 경방(京房)과 초공(焦贛)이 재앙과 상서를 추연(推衍)한 것을 왕보사(王輔嗣 왕필(王弼))는 취하지 아니하였고, 진단(陳摶)과 소옹(邵雍)의 원(元)ㆍ회(會)ㆍ운(運)ㆍ세(世)에 대한 것을 정이천(程伊川)은 달갑지 않게 여겼으며, 주자(朱子)에 이르러서야 상점(象占)과 이수(理數)를 겸하여 《주역본의(周易本義)》와 《역학계몽(易學啓蒙)》을 작성하고서도 “왕보사(王輔嗣)의 주(註)와 이천(伊川)의 전(傳)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하였다. 대개 《역경(易經)》이라는 책이 넓고 두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상점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이수로 풀이할 수도 있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 상수의 지리(支離)하고 천착(穿鑿)한 데로 잘못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의리(義理)의 평이(平易)하고 절실(切實)한 데에 전념하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공자(孔子)가 사변상점(辭變象占)을 논할 적에 반드시 ‘역(易)은 생각함이 없으며, 의식적으로 하는 것도 없으며,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感應)을 하면 마침내 통한다’는 것에 근본을 둔 것이다. 건괘(乾卦)의 건(健)에 대한 상사(象辭)에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여 쉼이 없다.”고 하였고 함괘(咸卦)의 감(感)에 대한 상사에 “군자는 마음을 비우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하였는데, 무릇 시기의 평탄함과 평탄치 못함, 그리고 지나갔거나 다가오는 것과, 지위의 귀천(貴賤)과 상하(上下)에 있어서, 덕(德)이니 재(才)니 응(應)이니 비(比)니 하는 것들은 모두 가까이 자신에게서 취하여 대업(大業)을 밝힌 것이다. 이천(伊川)이 의리학(義理學)을 위주로 하면서 배우는 자들에게 왕보사(王輔嗣)의 《주역(周易)》 주(註)를 먼저 보게 한 것은 아마 공자의 십익(十翼)에서 터득함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건괘(乾卦)의 원형이정(元亨利貞)과 같은 경우, 공자가 하늘의 도와 성(性)의 깊이를 유추(類推)하여 설명하면서 이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네 가지 덕으로 밝혔고 여러 학자들도 네 가지 덕으로 해석하였는데, 오직 주자만 이를 점사(占辭)로 풀면서 “크게 형통하면서 정고(貞固)함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하여 점사로 단정한 것인가? 계사(繫辭)에서는 “기구 만드는 것으로 보는 이는 괘효(卦爻)의 상(象)을 위주로 하고, 복서(卜筮)로 보는 이는 괘효의 점을 위주로 한다.”고 하였으니, 기구를 만드는 것과 복서를 하는 것은 역(易)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주자는 “《역경》은 점(占)을 보는 책으로서 그 점을 통하여 의리(義理)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위의 성현(聖賢)이 전수(傳授)한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안석임(安錫任)이 대답하였다.]
신(臣)이 삼가 살펴보건대, 주자의 “《역경》은 점을 보는 책으로서 그 점을 통하여 의리를 유추할 수 있다.”라는 말은 대개 《역경》의 대의(大意)입니다.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의 단사(彖辭)와 상사(象辭)는 복희(伏羲)의 괘획(卦畫)을 근거로 상수(象數)를 깊이 연구하여 점치는 자가 길흉의 의심스러움을 단정할 수 있게 하였고, 공자가 십익(十翼)을 지은 것은 세 성인(聖人)의 상점(象占)을 바탕으로 의리를 미루어 넓혀서 배우는 자가 진덕수업(進德修業)할 요체를 밝힐 수 있게 하였으니, 이는 각각 따로 한 부(部)의 역(易)이 된 것이지만 마침내 병행(竝行)을 하면서 사실상 서로 보충해 주는 것이 됩니다. 소자(邵子)는 오로지 상수(象數)로 보았고 정자(程子)는 주로 의리로 보았으나, 이 역시 서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방(京房)과 초공(焦贛)이 소수(小數)로 풀이한 것과 왕필(王弼)이 이단(異端)으로 흐른 것과 같은 경우는 순수하지 못하고 자잘한 것인데 어찌 거론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자가 지은 《본의(本義)》의 경우는 단사(彖辭)와 상사(象辭)와 십익(十翼)에 대해 각각 그 근본 취지에 따라 풀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책의 이름을 《본의》라고 하였으니, 그 의의는 아마 “이 책은 곧 세 성인의 본뜻이다.”라고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건괘(乾卦)의 단사(彖辭)를 풀이하여 “크게 형통하면서 정고(貞固)함이 이롭다.”고 하면서 점사(占辭)로 단정하였고, 십익의 단사를 풀이할 적에는 마침내 ‘원형이정’의 네 가지 덕에 입각하여 거듭 밝혔던 것입니다. 대개 곤괘(坤卦) 이하의 여러 괘(卦)에서 일컬은 원형(元亨)과 이정(利貞)은 마침내 네 가지 덕을 이룰 수가 없으니, 이를 통하여 점사가 된다는 것을 증험할 수 있습니다.


소 강절(邵康節)의 선천도(先天圖)는 희이(希夷 진단(陳摶))로부터 전수(傳受)된 것인데, 그 근본은 《태현경(太玄經)》에서 나온 것 같다. 대개 《태현경》의 수는 3방(方)에서 비롯하여서 이를 3×3하여 9주(州)가 되고, 또 이를 3×9하여 27부(部)가 되고, 또 이를 3×27하여 81가(家)가 되었으니, 이는 곧 선천도의 태극(太極)ㆍ양의(兩儀)ㆍ사상(四象)ㆍ팔괘(八卦)가 배수(倍數)로 더하여지는 것과 비슷하다. 《태현경》의 진행(進行)은 중(中)ㆍ선(羨)ㆍ종(從)에서 비롯하여 경(更)ㆍ수(睟)ㆍ곽(廓)이 중간이 되고 감(減)ㆍ침(沈)ㆍ성(成)으로 끝마쳤는데, 이는 선천도가 복(復)에서 시작하여 건(乾)에서 끝나고 구(姤)에서 시작하여 곤(坤)에서 끝나는 순서와 비슷하다. 또 수(首)의 수는 9, 9를 쓰고 책(策)의 수는 6, 6을 쓰니, 이것은 선천도에서 괘(卦)의 수는 8, 8을 쓰고 책의 수는 7, 7로 쓰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소 강절은 《태현경》을 깊이 신복(信服)하여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까지 하였다. 그런데 주자(朱子)가 그 선천도는 천명(闡明)하여 《역학계몽》에 실었으면서도 《태현경》에 대하여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최창적(崔昌迪)이 대답하였다.]
주자(朱子)가 선천도(先天圖)에 대하여 논평하기를, “《역경》이 있은 이후로 오직 소자(邵子)만이 이 도(圖)에 대해 정연하게 설명하였다. 양웅(揚雄)의 《태현경》 같은 경우는 엉성하게 모아 놓았으니, 가소롭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천도는 방사(方士)의 무리가 비밀히 전한 지가 오래였으니, 아마도 반드시 《태현경》 이후에 나온 것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태현경》의 3방(方)ㆍ9주(州)ㆍ27부(部)ㆍ81가(家)는 선천도의 배수(倍數)로 가해지는 법과 비슷하고, 또 그 중(中)ㆍ선(羨)ㆍ종(從)에서 비롯하여 경(更)ㆍ수(睟)ㆍ곽(廓)이 중간이 되고 감(減)ㆍ침(沈)ㆍ성(成)으로 끝마치는 것은 선천도의 건(乾)ㆍ곤(坤)ㆍ구(姤)ㆍ복(復)의 순서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중(中)의 첫머리에서 양기(陽氣)가 싹트는 것은 복(復)에서 양기가 처음 생기는 것과 같으니, 소 강절이 “복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고 한 것에 비유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태현경》의 망(罔)ㆍ직(直)ㆍ몽(蒙)ㆍ추(酋)ㆍ명(冥)을 《주역》의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에 끌어다 붙인 것은 비록 그럴듯하기는 하나, 하늘의 운행(運行)은 음양(陰陽) 이기(二氣)인데 《태현경》에서는 삼원(三元)을 내세웠으니 이미 홀수 짝수와는 맞지 않습니다. 또 하지(夏至)는 오중(午中)인데, 도리어 지중(地中)에 있으며 왕래(往來)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주자가 “전혀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 이유입니다.


선천원도(先天圓圖)에서 소자(邵子)가 “지난 것을 셈하는 것은 순이고, 미래를 셈하는 것은 역이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주자(朱子)는 “진(震)의 처음에서 건(乾)의 끝까지가 순으로 계산하는 것이고, 손(巽)의 처음에서 곤(坤)의 끝까지가 역으로 계산하는 것이 된다.”고 하였다. 무릇 진괘(震卦)의 초효(初爻)는 양(陽)이지만 건괘(乾卦)가 되어야 순양(純陽)이 되며, 손괘(巽卦)의 초효는 음(陰)이지만 곤괘(坤卦)가 되어야 순음(純陰)이 되는 것이니, 진(震)에서 건(乾)까지와 손(巽)에서 곤(坤)까지는 미래를 아는 것이지, 그 순으로 계산하고 역으로 계산하는 상반된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이치로 미루어 보더라도 건괘의 순양에서 태(兌)ㆍ이(離)를 거쳐 일양괘(一陽卦)인 진(震)에 이르고 곤괘의 순음에서 간(艮)ㆍ감(坎)을 거쳐 일음괘(一陰卦)인 손(巽)에 이른 것은 지난 것을 셈하는 순수(順數)가 아닌가? 이것이 이른바 “나아가면서 그 이생(已生)의 획(畫)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진괘의 일양에서 이ㆍ태를 거쳐 건의 순양괘(純陽卦)에 이르고 손의 일음에서 감ㆍ간을 거쳐 곤의 순음괘(純陰卦)에 이르는 것은 미래를 아는 역수(逆數)가 아닌가? 이것이 이른바 “나아가면서 그 미생(未生)의 획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좌로 돌고 우로 돌면서 음과 양이 생생(生生)하는 이치인데, 《역학계몽》에서 선천원도(先天圓圖)의 좌우를 가지고 이생과 미생으로 나눈 것은 마침내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들려주기를 원한다.

[최창적이 대답하였다.]
지난 것을 셈하는 것은 ‘순(順)으로 셈하는 것’이고 미래를 아는 것은 ‘거슬러 셈하는 것’이라는 학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자(邵子)의 뜻으로 보면 건(乾)에서 진(震)까지와 곤(坤)에서 손(巽)까지가 순수이고, 진에서 건까지와 손에서 곤까지가 역수이며, 주자(朱子)의 뜻으로 보면 진에서 건까지는 이생(已生)이 되고 손에서 곤까지는 미생(未生)이 되는데, 두 학설이 다 성립될 수 있습니다. 대개 주자는 횡도(橫圖)의 건 1에서 곤 8까지를 괘(卦)가 생기는 순서로 보았기 때문에 모두 ‘거슬러 셈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고, 선천원도(先天圓圖)의 경우는 진 4, 이 3, 태 2, 건 1을 이생의 괘로 삼은 것이니 이를 ‘순으로 셈하는 것’이라고 하고, 손 5, 감 6, 간 7, 곤 8을 미생괘로 삼은 것이니 이를 ‘거슬러 셈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선천팔괘(先天八卦)에서는 남북을 경(經)으로 삼아 천지(天地)가 거기에 있으니 이는 체(體)가 되고, 동서를 위(緯)로 삼아 수화(水火)가 거기에 있으니 이는 용(用)이 되며, 후천팔괘(後天八卦)에서는 천지가 체가 되어 네 모서리에 있고, 수화가 용이 되어 네 정위치에 있다. 이는 체가 도리어 모서리에 있고 용이 도리어 정위치에 있는 것인데, 거기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천팔괘의 간(艮)과 손(巽)은 위아래의 효(爻)가 바뀌어서 후천팔괘의 건(乾)과 곤(坤)이 되었고, 선천팔괘의 건과 곤은 중간의 효가 바뀌어서 후천팔괘의 감과 이가 되었으며, 선천팔괘의 감과 이는 위아래의 효가 바뀌어 후천팔괘의 진과 태가 되었고, 선천팔괘의 진과 태는 위아래의 효가 바뀌어 후천팔괘의 간과 손이 되었다. 경(經)과 위(緯), 그리고 정위치와 모서리의 변환(變換)은 사실상 양효(陽爻)와 음효(陰爻)가 바뀐 것으로 인한 것이니, 천지(天地), 수화(水火), 산택(山澤), 뇌풍(雷風)이 서로 감응(感應)하며 선회(旋回)하는 것도 반드시 그러한 이치가 있을 것인데,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박사철(朴師轍)이 대답하였다.]
후천팔괘는 본래 선천팔괘에 근거한 것이나 팔괘(八卦)의 방위가 호환(互換)하는 데는 지극한 이치가 있습니다. 진(震)이 동쪽에 있고 태(兌)가 서쪽에 있는 것은 소녀(少女)와 장자(長子)가 진퇴(進退)의 초기에 나누어 있는 것이고, 감(坎)이 북쪽에 있고 이(離)가 남쪽에 있는 것은 중남(中男)과 중녀(中女)가 각각 진퇴의 중간에 있는 것이며, 건(乾)과 곤(坤)의 노부모(老父母)는 쓰이지 않는 곳에 물러나 있고, 간(艮)과 손(巽)의 두 남녀는 또 반만 쓰이는 곳에 물러나 있으니, 이것이 바로 경(經)과 위(緯), 그리고 정위치와 모서리가 변환(變換)하는 이치입니다. 그리고 그 나아가고 물러나며 밀어주고 옮겨 갈 적에 서로 감응(感應)을 하고 선회(旋回)하는 것은 쉼이 없는 자연의 이치가 있는 것이니, 신(臣)의 얕은 식견(識見)으로는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초(蓍草)를 뽑는 법에 대하여,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서는 세 번 변한 것을 모두 괘(掛)로 삼고, 뽑고 남은 왼손과 오른손의 것으로써 기(奇)로 삼는데, 정이천(程伊川)과 장횡거(張橫渠)는 괘일(掛一)하는 것을 기로 삼고 뽑고 남은 왼손의 것과 오른손의 것으로써 늑(扐)으로 삼아 처음 변한 것만을 괘(掛)로 삼고 두 번째 변한 것과 세 번째 변한 것은 괘로 삼지 않았다. 대개 괘일(掛一)을 뽑고 남은 데로 돌리는 것은 곧 경문(經文)에서 “기(奇)를 늑(扐)으로 돌려보내어 윤달을 상징한다.”고 한 뜻이고, 한 효(爻)가 이루어진 다음에 괘(掛)를 하는 것은 곧 경문에서 “재륵(再扐)을 한 다음에 괘하여 두 번째 윤달을 상징한다.”고 한 뜻이다. 그리고 구(九)와 육(六)의 변동은 정책(正策)을 쓰면 순하여서 밝히기 쉬우나 여책(餘策)을 쓰면 복잡하여 밝히기 어려운 것이니, 정이천과 장횡거의 말은 진실로 따를 만한 것이다. 그런데 주자(朱子)는 정이천의 말에 대해서는 근거할 만한 문자가 없고 장횡거의 말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고 하여 마침내 여책을 써서 구(九)와 육(六)을 정하고 세 번 변한 것을 모두 괘(掛)로 삼았으니, 어째서인가? 혹 정밀한 뜻이 그 속에 있어서 후세의 학자로서는 감히 언급(言及)할 수 없는 것인가?

[안석임이 대답하였다.]
시초(蓍草)를 뽑는 법에 대하여서는 선대 학자들이 논한 것도 한결같지가 않으며 정주학(程朱學)의 여러 현자(賢者)의 말도 서로 맞지 않으니, 이것이 의심이 가는 점입니다. 《역학계몽》의 경우 후생(後生)의 얕은 학식(學識)으로는 성급하게 논평할 수가 없어 아직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건(乾)은 건(健)하고, 곤(坤)은 순(順)하며, 진(震)은 동(動)이고, 손(巽)은 입(入)이며, 감(坎)은 함(陷)이고, 이(離)는 이(麗)이며, 간(艮)은 지(止)이고, 태(兌)는 열(說)이라고 한 것은 팔괘(八卦)의 덕(德)을 말한 것이고, 천(天)ㆍ지(地)ㆍ뇌(雷)ㆍ풍(風)ㆍ수(水)ㆍ화(火)ㆍ산(山)ㆍ택(澤)은 팔괘의 상(象)을 말한 것이고, 강(剛)ㆍ유(柔)ㆍ상(上)ㆍ하(下)ㆍ음(陰)ㆍ양(陽)ㆍ내(內)ㆍ외(外)는 팔괘의 체(體)를 말한 것이며, 강과 유에는 크고 작음이 있고 건과 손에는 강하고 약함이 있는 것은 팔괘의 재질(才質)을 말한 것인데, 이를 미루어서 중괘(重卦)의 정(貞)과 회(悔)가 되는 것도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덕은 넉넉하면서도 재질이 부족한 효(爻)가 있고 체는 올바르면서도 덕이 모자라는 효도 있으니, 시기와 위치가 서로 엇갈려서 길흉(吉凶)이 드러나는 것을 각효마다 부연 설명하여 밝혀 줄 수 있겠는가?

[최창적이 대답하였다.]
괘(卦)와 효(爻)의 시기와 위치가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재덕(才德)의 우열(優劣)이 같지 않은 것이니, 이것이 역(易)을 일률적으로 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둔괘(屯卦)와 정괘(井卦)의 육사(六四)는 덕(德)은 넉넉하나 재질(才質)은 열약(劣弱)하고, 수괘(需卦)와 항괘(恒卦)의 구삼(九三)은 체(體)는 올바르나 덕은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艮)의 경우는 머물러 있으며 강한 것이라서 이길 수가 없고, 태(兌)는 기쁘게 해 주며 부드러운 것이라서 이길 수가 없으니, 덕은 넉넉하면서도 재질이 부족한 경우는 대다수가 이러한 것입니다. 이렇게 미루어 보면 아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양효(陽爻)로서 양의 자리에 있는 것이 정위치가 되고 음효(陰爻)로서 음의 자리에 있는 것이 정위치가 되지만 이와 반대면 정위치가 되지 않으며, 이(二)와 오(五)는 위아래 두 괘(卦)의 중간이고 삼(三)과 사(四)는 한 괘 전체의 중간이다. 계사(繫辭)에서 “중간 효가 아니면 갖추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과 또는 ‘강(剛)이 중(中)에 있다’느니, ‘유(柔)가 중에 있다’느니, ‘자리에 해당한다’느니, ‘자리를 얻었다’느니 하는 것들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384효를 고찰하여 보면 정위치에 있고 중간에 있는데도 후회를 면하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박사철이 대답하였다.]
《역경》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간과 정위치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혹 중간에 있고 정위치에 있으면서도 후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일률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면 둔괘(屯卦)의 구오(九五)는 중정(中正)한 것인데도 험난함 속에 빠졌고 육이(六二)는 음유(陰柔)로서 보좌가 될 수 없으므로 둔고(屯膏)의 흉함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괘의 이러한 성격은 다 예로 들 수가 없습니다.


단전(彖傳)에서 상(象)으로 취한 것 중에는 변체(變體)ㆍ사체(似體)ㆍ호체(互體)ㆍ복체(伏體)ㆍ반체(反體)가 있다. 예를 들면 소축괘(小畜卦)의 상구(上九)가 변하면 감(坎)이 되므로 비[雨]의 상을 취하였고, 이괘(頤卦)는 이괘(離卦)와 비슷하므로 거북의 상을 취하였고, 진괘(震卦)가 삼(三)에서 사(四)까지는 호괘(互卦)의 감(坎)이 되므로 마침내 빠진다는 말을 하였고, 동인괘(同人卦)의 하체(下體) 이(離)에는 감(坎)이 잠복하여 있으므로 큰 강을 말하였고, 정괘(鼎卦)의 하체 손(巽)은 태(兌)를 뒤집은 것이므로 첩을 구한다는 말을 한 것인데, 64괘에 이 의의(意義)가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그리고 육효(六爻)는 처음에서 꼭대기까지가 여섯인데, 이를 삼재(三才)로 말하면 처음의 두 효는 지(地)가 되고 중간의 두 효는 인(人)이 되고 위의 두 효는 천(天)이 된다. 또는 한 효를 한 해로 보기도 하고, 한 효를 한 달이나 하루로 보기도 하고, 한 효를 한 사람과 한 물건으로 보기도 하여 괘마다 상을 취하는 것이 자연 같지가 않으니, 여기에는 반드시 성인(聖人)이 효를 만들고 상을 취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모든 괘를 차례로 열거하면서 자세히 말하여 줄 수 있겠는가?

[안석임이 대답하였다.]
괘사(卦辭)와 효사(爻辭)에서 상(象)을 취한 것이 각각 같지 않음은 진실로 성상(聖上)의 하교와 같습니다. 그러나 삼가 생각하여 보면 이 세상의 지극히 복잡하고 변동하는 것들도 모두 괘효(卦爻)의 상이 되는 대상이니, 그 상으로 말하면 한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다만 그 한두 가지만을 취하여 괘사와 효사에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이 유추(類推)하여 넓혀 가게 한 것입니다. 그 깊은 뜻에 대하여서야 신의 얕은 식견으로는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상경(上經)은 양(陽)이고 천도(天道)이므로 양괘(陽卦)로써 네 절(節)로 나누어 건(乾)ㆍ곤(坤)에서 시작하여 감(坎)ㆍ이(離)에서 끝내었고, 하경(下經)은 음(陰)이고 인사(人事)이므로 음괘(陰卦)로써 네 절로 나누어 함(咸)ㆍ항(恒)에서 시작하여 기제(旣濟)ㆍ미제(未濟)에서 끝낸 것이다. 서괘(序卦)를 고찰하여 보면 상경과 하경의 여덟 절을 양과 음으로 나눈 것이 질서 정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잡괘(雜卦)의 차례는 서괘와 같지 않다. 서괘에서는 괘(卦)의 반대로 상경과 하경의 순서를 삼았고, 잡괘에서는 호괘(互卦)를 차례로 삼은 결과 사상(四象)이 서로 뒤섞여 16사(事)가 되고 중간의 네 효(爻)가 서로 뒤섞여 64괘가 되었으되 지극히 복잡한 중에 지극히 가지런한 것이 있다. 성인이 서괘를 짓고 잡괘를 지은 것은 반드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인데, 선대 학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호일계(胡一桂)의 《계몽익전(啓蒙翼傳)》에서 그 실마리를 약간 밝히기는 하였으나 끝마무리를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면 희이(希夷)가 9괘를 반복하여 설명한 뜻을 미루어 넓히고 소 강절(邵康節)이 사상(四象)을 서로 뒤섞는 말을 강구하여 그 착종(錯綜) 변화(變化)의 오묘함을 밝힐 수 있겠는가?

[최창적이 대답하였다.]
상경(上經)과 하경(下經)의 서괘(序卦)에 대하여서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자세히 논하였습니다만, 잡괘(雜卦)에 대하여서는 주자도 의심하였습니다. 삼가 듣기로는 근세에 이광지(李光地)라는 사람이 “잡괘는 호괘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여 그 학설이 상당히 오묘하다고 하는데, 그 글을 아직 보지 못하여 감히 억측으로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중괘(重卦)에 대한 학설은 여러 학자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왕보사(王輔嗣)는 복희(伏羲)가 만든 것이라고 하고, 정강성(鄭康成 정현(鄭玄))은 신농씨(神農氏)가 만든 것이라고 하고, 손성(孫盛)은 하우씨(夏禹氏)가 만든 것이라고 하고, 사마천(司馬遷)은 문왕(文王)이 만든 것이라고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은 왕보사의 주장을 따랐고 곽옹(郭雍)은 사마천의 주장을 따랐다. 주자는 또 공영달의 《오경정의(五經正義)》를 따르면서도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우선 선천도(先天圖)로써 밝혔는데, 주자의 이 학설이 분명한 증거로 증명하고 이치로 참조(參照)하여 학자들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안석임이 대답하였다.]
신(臣)이 듣기로는 64괘(卦)를 만든 것과 명명(命名)을 한 것은 다 복희씨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대개 태극(太極)에서 양의(兩儀)가 나와 사상(四象)이 되고 팔괘(八卦)가 되어 배로 증가되며 그치지 않으니, 이를 확대해 가면 아마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성인은 다만 삼재(三才)를 겸하여 이를 둘씩 늘렸으므로, 64괘로 끝낸 것입니다. 그러니 중괘(重卦)를 배열한 것은 진실로 이미 팔괘를 처음 작성할 때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자는 일찍이 “박괘(剝卦)ㆍ복괘(復卦)ㆍ정괘(鼎卦)ㆍ정괘(井卦)와 같은 것은 복희가 완전한 괘체(卦體)에 입각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드시 이치로 미루어서 이런 정론(定論)을 내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상은 《역경(易經)》이다.


 

[주D-001]사변상점(辭變象占) : ‘상기사(尙其辭)’, ‘상기변(尙其變)’, ‘상기상(尙其象)’, ‘상기점(尙其占)’을 줄여서 한 말이다. 《周易 繫辭傳上 第10章》
[주D-002]정(貞)과 회(悔) : 서법(筮法)에서 쓰는 용어로, 상(上)ㆍ하(下) 두 체(體)로 구성된 중괘(重卦)에서 내괘(內卦)인 하체(下體)를 정이라 하고 외괘(外卦)인 상체(上體)를 회라고 한다.
[주D-003]9괘 : 우환(憂患)에 대처하는 개념을 설명한 이(履)ㆍ겸(謙)ㆍ복(復)ㆍ항(恒)ㆍ손(損)ㆍ익(益)ㆍ곤(困)ㆍ정(井)ㆍ손(巽)의 9괘(卦)를 말한다. 《周易 繫辭傳下 第7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