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 제101권

 

경사강의(經史講義) 38 ○ 역(易) 1 계묘년(1783, 정조7)에 선발된 이현도(李顯道)ㆍ조제로(趙濟魯)ㆍ이면긍(李勉兢)ㆍ김계락(金啓洛)ㆍ김희조(金煕朝)ㆍ이곤수(李崑秀)ㆍ윤행임(尹行恁)ㆍ성종인(成種仁)ㆍ이청(李晴)ㆍ이익진(李翼晉)ㆍ심진현(沈晉賢)ㆍ신복(申馥)ㆍ강세륜(姜世綸) 등이 답변한 것이다

 

[고괘(蠱卦)]

 

선갑(先甲)과 후갑(後甲)에 대해서는 그 학설이 같지 않다. 마융(馬融)은 “갑(甲)은 십일(十日)의 첫머리다.”라고 하였고 공영달(孔穎達)은 “갑이란 명령을 창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두 학설은 그 갑(甲)이란 글자의 해석에는 가깝지만 선삼(先三)과 후삼(後三)의 뜻에는 덜 맞지 않겠는가. 오직 주자(朱子)의 신신(辛新)과 정녕(丁寧)이라는 해설만이 제가(諸家)보다 월등한데, 운봉 호씨(雲峯胡氏)의 “역수(逆數)로는 간(艮)을 얻고 순수(順數)로는 손(巽)을 얻는다.”고 한 말도 상당히 새로운 것 같으니 한 부분의 뜻에는 보탬이 되겠는가?

[성종인이 대답하였다.]
《정전(程傳)》에서 갑을(甲乙)이니 갑령(甲令)이니 하는 말은 마융과 공영달의 학설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삼일(先三日)에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를 강구하고 후삼일(後三日)에는 장차 어떻게 될까를 염려한다.”고 한 것은 두 학자가 미처 말하지 않았던 것이니, 이러한 곳에서 한대(漢代)의 학자가 경학(經學) 해설에 소홀했고 《정전》이 더 완벽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의》에서 “선삼일은 신(辛)을 얻고 후삼일은 정(丁)을 얻는다.”고 한 말은 《정전》에서 밝히지 않은 것을 더욱 밝힌 것입니다. 대개 앞의 일이 허물어지려고 하면 새로운 생각을 하여 다음 일의 단서로 삼아야 하고, 다음 일이 시작되면 더 확실하게 하여 앞의 일의 잘못을 거울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제사를 지낼 적에도 신해일(辛亥日)과 정해일(丁亥日)을 많이 사용하였으니, 《본의》의 말은 또한 근거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운봉 호씨의 말과 같은 경우는 고괘(蠱卦)의 구성이 간(艮)과 손(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손과 간에서 보아야 하는데, 갑(甲)은 이(離)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역(逆)으로 헤아려 세 번째 자리에서 간을 얻고 또 순(順)으로 헤아려 세 번째 자리에서 손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선천팔괘(先天八卦)로써 말한 것이니, 이 또한 《본의》의 뜻을 미루어서 연역(演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괘(蠱卦)의 다섯 효사(爻辭)에서는 다 부자(父子)의 관계로만 말하였고 군신(君臣)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구(上九)의 한 효사에서만 “왕후(王侯)를 섬기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소식(蘇軾)의 말에 의하면 “어떤 일이 허물어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효사에서는 모두 부자 관계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도 취할 만한 것이 있는가?

[김계락이 대답하였다.]
고괘에서 군신 관계는 말하지 않고 부자 관계로만 말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대개 신하가 임금의 일을 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의 일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 다섯 효사에서 비록 군신 관계는 말하지 않았으나 부모 섬기는 일을 임금에게 옮기는 도리는 진실로 포함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상구에서 유독 “왕후를 섬기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해 말씀드리자면, 아들이 부모의 일에 대해서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군신 관계는 의리로 합한 것이기 때문에 군자가 자신의 뜻을 숭상하면서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양강(陽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일의 권(圈) 밖에 있는 것이 되므로, 그 효사와 상사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무릇 천하의 일은 한집이 근본이 되고 한집의 책임은 아들이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몽괘(蒙卦) 구이(九二)의 경우 “아들이 집일을 맡아서 해낼 수 있다.”라고 특별히 말하였고 가인괘(家人卦)의 단사(彖辭)에서도 ‘부자(父子)’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모두 가(家)에서 국(國)으로 나아가며 근본을 앞세우고 말단을 뒤로하는 뜻입니다. 그러니 고괘에서 취한 상(象)도 역시 이러한 뜻으로 여겨지는데, 소식이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모두 부자 관계로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은 아마도 딱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상은 고괘(蠱卦)이다.


 

[주D-001]선삼(先三)과 후삼(後三) : 선갑 삼일(先甲三日)과 후갑 삼일(後甲三日)의 준말인데, 갑(甲)은 시작의 뜻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적에 삼일(三日) 전에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미리 생각해 보고, 일을 한 뒤에도 삼일까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周易 蠱卦 卦辭 程傳》
[주D-002]신신(辛新)과 정녕(丁寧) : 선갑 삼일(先甲三日)은 십간(十干)의 순서로 볼 때 갑일(甲日)보다 삼일(三日) 전인 신일(辛日)에 해당하는데, 어떤 일을 할 적에 착수하기 삼일 전인 신일부터 계획을 세울 경우 신일은 사실상의 새로운 일의 시작이 되기 때문에 신(辛)은 신(新)의 뜻이 있게 되어 ‘신신’이라 한 것이고, 후갑 삼일(後甲三日)도 역시 십간의 순서로 볼 때 갑일의 삼일 후인 정일(丁日)에 해당하는데, 일을 끝마치고서도 뒤탈이 있지나 않을까 하고 재확인을 할 경우 정일은 사실상의 재확인하는 날이 되기 때문에 정(丁)은 재확인의 뜻이 있게 되어 ‘정녕’이라 한 것이다. 《周易 隨卦 卦辭 本義》
[주D-003]역수(逆數)로는 …… 얻는다 : 복희(伏羲)의 선천팔괘도(先天八卦圖)에 의하면, 이(離)는 동쪽, 태(兌)는 동남쪽, 건(乾)은 남쪽, 손(巽)은 서남쪽, 감(坎)은 서쪽, 간(艮)은 서북쪽, 곤(坤)은 북쪽, 진(震)은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천간(天干)의 갑(甲)은 방위에 배속하면 동쪽에 해당하고 이(離)는 곧 갑의 방위가 되므로 그 갑을 기준하여 역수(逆數) 방향의 세 번째 것이 간(艮)이 되기 때문에 ‘역수로 간을 얻는다’고 한 것이고, 순수(順數) 방향의 세 번째 것이 손(巽)이 되기 때문에 ‘순수로 손을 얻는다’고 한 것이다. 《周易 蠱卦 卦辭 小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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