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九 視履 考祥 其旋 元吉.

 

  

   上九

   乾 天

 

    

   兌 澤

 

 

 

上九 視履 考祥 其旋 元吉.

上九(상구) : 상구는

視履考祥(시리고상) : 밟아온 것을 보아서 상서로운 것을 상고하되

其旋元吉(기선원길) : 그 시행을 두루 잘했으면 크게 길하리라.

 

祥 상서 상. ㉠상서(瑞) 조짐(兆朕) 제사 재앙(災殃) 상서롭다(瑞--) 자세하다(仔細ㆍ子細--)

旋 돌 선. ㉠돌다 물이 돌며 흐르다 회전하다 원을 그리다 굴곡을 이루다 굽다 돌아오다 둥글다 두르다 빠르다 구슬, 옥 행동 거지 오줌, 소변 도리어, 오히려 빨리, 갑자기 조금  

 

視履  이행한 바를 반성하다.

考祥  吉凶을 고찰하다.

旋     용의가 주도하다.

 

<上九> 행동을 반성하여 길흉을 살핀다. 그리하여 잘못된 일을 바로 잡음에 용의주도하다면 크게 길하니, 큰 경사가 아닐 수없다.

 

[주] 고상(考祥): 고상은 조짐을 생각하다.

[풀이] 상구는 이괘의 극치, 예도가 완성된 때이다. 그 밟아 행하고저 하는 바를 자세히 살피고 선악사정을

반성하여 항상 정도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길이다.

 

[上陽] : 행동을 반성하여 길흉화복의 징상을 상고한다. 그리하여 잘못된 것을 고친다. 크게 길하다. 최고의 위치에서 크게 길하니 큰 경사가 있으리라.

 

[상구]행적을 돌아보아서 두루 살피고 힘쓴바가 善하고 지극하였다면, 크게 길하다.

 

視履 : 행적을 살피다(視는 휘둘러 보다 또는 회고하다-視瞻-. 履는 자신이 밟아온 자취의 의미로도 말할 수 있겠으나, 그 보다는 자신을 따라온 從徒의 현재모습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더 어울릴것 같다. 자질은 謙

[裒多益寡稱物平施] 지괘는 兌[朋友講習])

 

考祥其旋 : (길흉의 조짐을)살펴서 두루 살피고 힘쓴바가 좋은 결과로 돌아오다[考祥은 조짐(길흉-善惡禍福-의 징조 ; 현대에서는 주로 길한 징조로 많이 쓰임)을 살피는 것이고, 旋은 대가로 되돌아오는 것(反)이므로 周旋(일이 잘 되도록 이리저리 힘을 써서 변통해 주는 일)과 같다. 즉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夬決의 결과가 길한 징조를 보이면 크게 길하다는 것. 편자]

모을 부, 자락 큰 옷 보 ⓐ자락 큰 옷 (보)㉠모으다㉡모이다㉢줄다㉣덜다㉤사로잡다㉥많다㉦포로

 

   上九는 視履하야 考祥호대 其旋이면 元吉이리라.                  
  【傳】上處履之終,於其終,視其所履行,以考其善惡禍福,若其旋則善且吉也,旋,謂周旋,完備无不至也,

人之所履,考視其終,若終始周完无疚,善之至也,是以,元吉,人之吉凶,係其所履善惡之多寡,吉凶之小大也.             

                                                      
周旋 ①일이 잘 되도록 이리저리 힘을 써서 변통(變通)해 주는 일 ②제 3국이 외부(外部)에서 분쟁(紛爭) 당사국(當事國)간의 교섭(交涉)을 원조(援助)하는 일

動容周旋  동작() 의용()과 진퇴(退). 거동(). 행동() 거지(

疚 고질병 구. ㉠고질병(痼疾病), 오랜 병 상(喪), 거상(居喪: 상중(喪中)에 있음) 병으로 오래 고생하다 근심하다 가난하다 빈궁하다(貧窮--) 부끄러워하다 꺼림하다(마음에 걸려 언짢은 느낌이 있다) 해치다

 

[정전]상구는 履道의 끝이다. 종국에 이르러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善惡과 禍福을 상고하되, 여러모로 두루 살펴서 힘을 쓴 바가 있었다면 善이고 또한 吉이다(旋은 두루 살피고 힘쓴바가 완벽하고 지극하지 않음이 없음이다).

사람의 행적은 종국에 상고하여 마침과 시작이 일관되게 완벽하고 흠이 없다면 선이 지극한 것이므로 곧 크게 길하다. 사람의 길흉은 자신이 걸어온 행보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선악의 과다는 곧 길흉의 대소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上은 履의 終에 처했으니, 그 종말에 행한 것을 살펴보아 善惡과 禍福을 상고하되 만일 그 주선함이 완벽하면 善하고 또 吉할 것이다. 旋은 周旋함이 완비하여 지극하지 않음이 없음을 이른다. 사람이 행한 것은 그 종말을 상고하여 보아서 만일 終과 始가 두루하고 완벽하여 하자가 없다면 善이 지극한 것이다. 이 때문에 크게 善하고 吉한 것이다. 사람의 吉凶은 그 행한 바에 달려 있으니, 善惡의 많고 적음은 바로 吉凶의 작고 큼이다.

 

  【本義】視履之終,以考其詳,周旋无虧則得元吉,占者禍福,視其所履而未定也. 

履行함의 종말을 보아 그 吉凶을 상고하되 주선함에 이지러짐이 없으면 ‘元吉’을 얻을 것이다. 점치는 자의 禍福은 그 행한 바를 살펴보아야 하니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象曰 元吉在上 大有慶也.

象曰(상왈) : 상에 가로되

元吉在上(원길재상) : 크게 길함이 위에 있음이

大有慶也(대유경야) : 큰 경사가 있음이라

 

상전에서 크게 길로서 상위에 머물러 있으면 크나큰 경사와 복이 주어진다고 했다.

 

[상왈]元吉在上은 크게 경사가 있음이다.

 

 

   象曰元吉在上이 大有慶也1니라.                                  
  【傳】上,履之終也,人之所履,善而吉,至其終,周旋无虧,乃大有福慶之人也,人之行,貴乎有終.         

                                                          
虧 이지러질 휴. ㉠이지러지다 부족하다, 모자라다 줄다, 기울다, 이울다 탄식하다(歎息ㆍ嘆息--) 저버리다, 배신하다, 해 입히다 손해(損害) 유감스럽게도 ~이면서도 실례하지만, 무례임을 알지만 다행히, 덕분에

 

[정전]상구는 이괘의 종극이다. 사람이 이제까지 지키고 따라온 도가 선하여 길하고, 종국에 이르러 지나온 행적에 경주한 노력에 흠이 없다면 크게 경사가 있고 복을 받는 것이다. 사람의 행실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上은 履의 終이다. 사람이 이행한 바가 善하여 길하고 그 종말에 이르러 周旋함에 이지러짐이 없다면 이는 크게 福慶이 있는 사람이니, 사람의 행실은 끝이 있음을 귀하게 여긴다.

 

  【本義】若得元吉則大有福慶也.  

만약 元吉을 얻으면 크게 福慶이 있을 것이다.   

 

 

履(리)는 밟는다는 뜻이다. 이 괘는 범의 꼬리를 밟는 것 같은 위험의 속에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良順(양순)하게 연장자, 손윗 사람, 선배의 의견에 좆아 행동하면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인들의 성공한 일, 실패한 일들을 잘 살펴서 그것을 거울 삼아 행동하라.

 

그러므로 남을 앞서서 일을 일으키면 실패하리라. 남의 뒤를 이어 받아 하는 일이면 처음에는 매우 곤란한 것같이 보이지만 결국 성공할 것이다. 노고가 많은만큼 성과도 크다.

 

성실한 마음으로 예의를 지키며 바른길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공하는 길이다.

 

애매한 태도와 아무렇게나 적당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 대해서도 뒤에 커다란 불안이 생길 것이니 조심하라

 

色情過多(색정과다)의 징조가 있으니 이성관계에 조심하지 않으면 아주 난처한 일이 생길 것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01권 [履]

 

[履]

 

素履之素。有曰貧賤之素也。曰潔素也。曰質素也。曰雅素也。潔素之素。果異於質素之素。雅素之素。又異於潔素之素。而潔素質素雅素之外。別有所謂貧賤之素也歟。朱子所謂不爲物遷者。果統言之耶。

 

“현재의 본분대로 간다.[素履]”고 할 때의 본분[素]에 대해서 “빈천의 본분대로다.[貧賤之素]”라는 것과 “소박한 본분대로다.[潔素]”라는 것과 “순박한 본분대로다.[質素]”라는 것과 “평소의 본분대로다.[雅素]”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소박하다’고 할 때의 본분은 과연 ‘순박하다’고 할 때의 본분과 다르며, ‘평소이다’라고 할 때의 본분은 또 ‘소박하다’고 할 때의 본분과 다른 것인가? ‘소박하다’나 ‘순박하다’나 ‘평소이다’라는 뜻 외에 “빈천의 본분대로다.”라고 하는 뜻이 별도로 있는 것인가? 주자의 이른바 “사물에 끌려서 옮겨 가지 않는다.”고 한 것은 과연 종합해서 말한 것인가?

 

 

馥對。藉用白茅。貴其尙潔。白賁无咎。取其能質。則素之爲德也至矣。履初之君子。以陽剛之才。處卑下之位。而能安履其素。卓乎有裕。語其行則潔素也。語其履則質素也。語其位則雅素也。然則其曰潔素者。取其行己之潔。其曰質素者。取其質而無文。其曰雅素者。取其安於所遇。而潔素質素之素。其意差相近。至於雅素之素。與中庸素位之素同。比之兩素字。不能無別矣。而要之三素字。不出乎貧賤之素之外。此則程傳備矣。飯糗茹草。大舜之素也。疏食簞瓢。孔顔之素也。朱紱之來。不足以變其素。黃耳之吉。不足以易其素。朱子不爲物遷之訓。正說得素履之素。而三素字皆在其中矣。然而朱子亦據履之初而言耳。君子之素位而行。豈特安於貧賤之素而已哉。必如素富行富素患行患。然後其義方備矣。

 

[신복이 대답하였다.]“흰 띠풀을 깔개로 쓴다.[藉用白茅]”고 한 것은 소박함을 숭상하는 것이고, “희게 꾸미면 허물이 없다.[白賁无咎]”고 한 것은 순박함을 취한 것이니, 본분을 뜻하는 소(素)의 덕은 지극한 것입니다. 이괘(履卦) 초구(初九)의 군자(君子)는 양으로서 강한 체질을 타고났는데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본분대로 가는 것을 편하게 여기며 여유로움을 가졌으니, 그 행동으로 말하면 소박한 본분이고, 그 가는 것으로 말하면 순박한 본분이고, 그 지위로 말하면 평소의 본분입니다. 그러니 그 소박한 본분이라는 것은 그 몸가짐의 깨끗함을 취한 것이고, 순박한 본분이라는 것은 그 질박하여 꾸밈이 없는 것을 취한 것이고, 평소의 본분이라는 것은 만나는 형편에 따라 편안하게 여기는 뜻을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소박한 본분이라 하고 순박한 본분이라고 할 때의 본분이라고 한 소(素)는 그 뜻이 거의 가까우나, 평소의 본분이라 할 때의 소의 뜻은 《중용(中庸)》의 “현재 처한 위치이다.[素位]”라고 할 때의 소와 같으니, 두 소 자에 비해 차이가 없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세 소 자는 “빈천(貧賤)의 본분이다.”라는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그 뜻은 《정전(程傳)》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말린 밥과 채식으로 생활한 것은 순(舜)임금이 본분대로 살아간 것이고, 거친 밥과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생활한 것은 공자(孔子)와 안자(顔子)가 본분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주불(朱紱)이 와도 그 본분을 변하지 않는 것과 황이(黃耳)의 길(吉)함이라도 그 본분을 바꾸지 않는 것과 주자의 “사물에 끌려서 옮겨 가지 않는다.”고 풀이한 것은 바로 “현재 본분대로 간다.”고 할 때의 본분[素]과 같은 것이나, 세 본분[素]의 뜻도 모두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자도 이괘(履卦)의 초구(初九)에 의해 말했을 따름입니다.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대로 행동한다.”고 하였으니, 어찌 빈천의 본분대로 사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것뿐이겠습니까. 반드시 “본래 부자였으면 부자로 행세하고, 본래 어려운 형편이면 어려운 형편대로 행세한다.”고 한 것처럼 해야 그 의의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履虎尾一也。或咥人或不咥人者。是固由於所履之不同。而先儒以爲口實而合。有不咥之象。口虛而開。有咥人之象。何如爲實而何如爲虛。何者爲合而何者爲開歟。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은 똑같은데 사람을 물기도 하고 사람을 물지 않기도 하는 이유는 진실로 밟는 그 자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선대 학자들은 “입 안에 물건이 들어 있어 다물고 있는 것은 사람을 물지 않는 상(象)이고, 입 안이 비어서 벌리고 있는 것은 사람을 무는 상이다.”라고 하였는데, 어떤 것이 물건이 들어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비어 있는 것이며, 어떤 것이 다문 채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벌린 채 있는 것인가?

 

 

崑秀對。履之爲卦。以和說而遇乾剛。至艱至險。語其危則暴虎而馮河也。然苟能安履其素。下順乎上。陰承乎陽。則雖所處之甚危。而不至於傷害。此卦辭所以斷之以不咥人者也。若夫以卦象言之則履得兌爲下卦。而兌有口之象。槩二陽在下。一陰居上。以陰居陽。才弱志剛。而六三一爻。正當其缺。先儒之以實合虛開。明咥人不咥人之殊者。槩取乎卦象也。然則初九之素履。九二之履道。卽實也合也。六三之眇視跛履。卽虛也開也。以所履之地而言則安危之不同如此。以所遇之象而言則剛柔之不濟又如此。卦辭爻辭之逕庭。恐無足恠矣。以上履

 

 

[이곤수가 대답하였다.]이괘(履卦)의 성격은 화열(和說)한 자로서 강한 건(乾)을 만나 지극히 어렵고 위험한 처지에 놓인 꼴이니, 그 위태로움으로 말하면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고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야 하는 격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 평소의 본분대로 가면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순응하고 음은 양의 뜻을 받들면 비록 매우 위태로운 데 처하였다 하더라도 상해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것이 괘사(卦辭)에서 “사람을 깨물지 않는다.”고 단정한 까닭입니다. 만약 괘상(卦象)으로 말하면 이괘는 태(兌)가 하괘(下卦)가 되고 태는 입[口]의 상이 되는데, 두 양효는 아래에 있고 한 음효가 위에 있으며 음이 양 자리에 있으니, 이는 자질은 약하면서 뜻만 강한 것으로서 육삼(六三)의 한 효가 바로 그 결함에 해당합니다. 선대 학자가 “입 안에 물건이 들었다.”고 한 것과 “입을 다물었다.”고 한 것과 “입 안이 비었다.”고 한 것과 “입을 벌렸다.”고 한 말로써 사람을 물고 물지 않는 차이를 밝힌 것은 대개 괘상에서 취한 것입니다. 그러니 초구의 “현재의 본분대로 간다.”고 한 것과 구이의 “가는 길이다.[履道]”라고 한 것은 즉 입 안에 물건이 든 것과 입을 다문 것이고, 육삼의 “애꾸눈이 보는 정도이고 절름발로 가는 격이다.”라고 한 것은 즉 입 안이 비었고 입을 벌린 것입니다. 밟고 가는 바의 처지로 말하면 편안함과 위태로움의 같지 않음이 이러하고, 만나는 바의 상(象)으로 말하면 강함과 유함의 같지 않음이 이러하니, 괘사나 효사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마 괴이하게 여기실 것이 없을 듯합니다.

이상은 이괘(履卦)이다.

 

 

 

 

[주D-001]흰 띠풀을 깔개로 쓴다 : 《주역(周易)》 대과괘(大過卦) 초육(初六)에 있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2]희게 …… 없다 : 《주역(周易)》 비괘(賁卦) 상구(上九)에 있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3]주불(朱紱)이 와도 : 주불은 관복(官服)을 뜻하는 말이다. 《주역(周易)》 곤괘(困卦) 구이(九二)의 《정전(程傳)》에 “왕자(王者)의 복장에 따른 폐슬(蔽膝)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곤궁하게 지내다가 높은 벼슬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주D-004]황이(黃耳)의 길(吉)함 : 황이는 황색(黃色)의 솥귀[鼎耳]를 말한다. 정(鼎)이라는 솥은 벼슬이 높은 이라야 쓸 수 있는 것이고 황색은 중앙토(中央土)를 상징하는 색이라 하여 길함을 뜻한다.

《周易 鼎卦 六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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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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