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 제103권

경사강의(經史講義) 40 ○ 역(易) 3
[귀매괘(歸妹卦)]

 

귀매괘(歸妹卦)의 육오(六五)와 태괘(泰卦)의 육오는 그 상이 대략 비슷한데, 태괘에서는 “제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냄이니 복이 있으며 크게 길하다.” 하였고, 귀매괘에서는 “그 소군(小君)의 옷소매가 그 잉첩의 소매만큼 좋지 못하다.”고 하면서 깎아내리는 뜻이 없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태괘의 경우는 육오가 구이(九二)와 정응(正應)으로서 중간에 끼어 있는 자가 없으므로 비중이 제을의 누이에게 있으면서 순수하게 길하기만 하고 해가 없기 때문이고, 귀매괘의 경우는 구이와 육오 사이에 육삼(六三)이 끼여 있으니 비중이 시집가는 누이의 잉첩에게 있기 때문에 깎아내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가? 또 점괘(漸卦)를 참고하여 보면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니 길하다.”고 한 것은 곧 음(陰)과 양(陽)이 서로 어울리는 상이고, 귀매괘는 점괘의 반대로 된 형상이다. 그래서 “귀매는 가면 흉하다.”고 한 것은 대개 음과 양이 나아가고 물러감을 위주로 말한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도 일설(一說)에 대비할 수 있겠는가?

[신복이 대답하였다.]
태괘(泰卦)의 육오는 아래로 세 양(陽)을 순종하는 뜻만을 취한 것이므로, “제을(帝乙)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낸다.”고 한 것은 대개 이것으로 저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귀매괘(歸妹卦)는 여자가 시집가는 괘이므로 육오에서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낸다.”고 한 것이나, 이는 육오가,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이 됨을 곧바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잉첩의 옷소매가 좋은 것만 못하다.”고 한 것은 육오가 모양을 꾸미지 않음을 말한 것이지 깎아내리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니, 아마도 굳이 가운데에 끼여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으로 말할 것은 아닌 듯합니다. 점괘의 경우는 남자는 올라가고 여자는 내려오는 것이며 귀매괘의 경우는 음(陰)이 올라가고 양(陽)은 내려오는 것이니, 길하고 흉함이 같지 않음은 대개 음과 양이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으로 인한 것입니다. 선대 학자의 말이 어찌 본 것이 없이 그렇게 말하였겠습니까.


단전(彖傳)에서는 “귀매(歸妹)는 사람의 마침과 시작이다.”라고 하였는데, 《경방역(京房易)》에서도 이 괘(卦)를 64괘의 마지막에 둔 것은 어째서인가? 경방전(京房傳)에 탕(湯)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말이 실려 있기를 “천자의 존귀함으로 인하여 제후를 억압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외서(外書)의 항아(姮娥)가 달나라로 달아난 것에 해당하는 점사(占辭)에 이르기를 “홀가분하게 누이동생을 시집보낸다.”고 하였는데, 이는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가 제을(帝乙)이 달을 바라보는 말을 가정적으로 만들어 내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선대 학자 중에 경방(京房)의 말에 의하여 경전(經傳)에 실은 것은 어째서인가?

[강세륜이 대답하였다.]
귀매괘(歸妹卦)는 여자가 남자를 따르고 음(陰)이 그 양(陽)을 따라가는 것이니 이는 부부(夫婦)의 도(道)가 이루어져서 생식(生息)할 수 있게 된 것이며, 지난 것은 끝이 나고 앞으로는 시작이 되는 것이니 사람의 마침과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경방(京房)이 64괘의 끝에다가 둔 것은 아마 무궁하게 생생(生生)하는 뜻을 취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개 천지 사이에 무궁한 것은 역(易)의 이치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부부의 도리입니다. 장남(長男)과 소녀(少女)의 괘(卦)를 역의 끝에다가 둔 것은 그 뜻이 또한 깊습니다. 그러나 탕(湯)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말을 실어서 천지의 도리와 음양의 학설로 존귀함을 낮추어 예의의 도리를 따라야 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간절하게 말하였으니, 그 말은 진실로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선대 학자는 오히려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가 가정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면서 제을이 곧 성탕(成湯)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항아(姮娥)가 달나라로 달아났다는 점사(占辭)는 너무도 황당한 말입니다만, 그래도 실어 놓은 것은 다만 색다른 사실을 기록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굳이 그 말을 믿어야 하겠습니까.


 

이상은 귀매괘(歸妹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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