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시문집 제9권

책문(策問)

 

 

동서남북(東西南北)에 대하여 물음

 

묻는다. 아득히 중앙에 위치하여 사방을 향해서 외곽으로 나아가면 이것이 이른바 동서남북이 아닌가. 동(東) 자는 태양(太陽)이 솟아오르는 것을 본떴고 서(西) 자는 새가 깃드는 것을 본떴고, 남(南) 자는 오(午)자를 따라 만들었고 북(北) 자는 배(背)자를 본뜬 것이다. 그런데 글자의 모양을 상형(象形)으로도 하고 회의(會意)로도 한 예(例)가 어찌 이처럼 산만하고 질서가 없을까. 북극(北極)과 남극(南極)은 만고(萬古)에 옮겨지지 않는 것이니 이는 일정한 자리가 있는 것이고, 동해(東海)와 서해(西海)는 위치에 따라 명칭이 바뀌니 이는 일정한 명칭이 없는 것이다. 일정함이 없는 위치로 일정함이 있는 위치에 배열시켜 사방(四方)에 넣었으니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를 사방에 배열하였다. 그러나 남극도 북극처럼 추우니 화열(火熱)을 취한 근거가 어디 있는가. 진(震)ㆍ태(兌)ㆍ이(离)ㆍ감(坎)을 사방에 배열하였다. 그러나 남극도 북극처럼 어두우니 이명(离明)을 취한 근거가 어디 있는가. 중국(中國)은 적도(赤道)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북극을 북극이라 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반대로 북호국(北戶國 중국 남부에 있었던 나라)은 적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극을 북극이라 할 수는 없단 말인가. 중국도 밝은 곳을 향하여 집을 짓고 북호국도 밝은 곳을 향하여 집을 짓는데, 중국은 북이 되고 북호국은 남이 된다면 어찌 공론(公論)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대하(大夏)에서는 촉(蜀)을 동쪽이라 하고 촉 사람들은 제(齊)를 동쪽이라 하니, 동쪽을 확고하게 정할 수 있겠는가. 일본(日本)은 우리나라를 서쪽이라 하고 우리나라는 중국을 서쪽이라 하니, 서쪽을 임의로 확고하게 정할 수 있겠는가.
동지선(冬至線)은 태양 궤도의 최남단(最南端)이요 하지선(夏至線)은 태양 궤도의 최북단이다. 이 두 선의 거리가 과연 몇 도나 되는가. 태양이 뜨는 곳에는 오전이 짧고 태양이 지는 곳에는 오후가 짧아야 하는데, 동방과 서방 사람들이 모두 오정(午正)을 하루의 중앙으로 삼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을 사방에 배열하였다. 그러나 북극과 남극은 1년이 반은 낮이고 반은 밤이니, 이곳에는 사시(四時)도 사방도 없을 것이 아닌가.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를 사방에 배열하였다. 그러나 동선(冬線)과 하선(夏線)의 아래는 사시가 상반(相反)되니, 이곳에서는 육십갑자(六十甲子)로 사방을 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황제(黃帝)는 동쪽으로 환산(丸山)에, 서쪽으로 계두산(鷄頭山)에, 북쪽으로 부산(釜山)에 이르렀다. 전욱(顓頊)은 동쪽으로 반목(蟠木)에, 서쪽으로 유사(流沙)에, 남쪽으로 교지(交阯)에, 북쪽으로 유릉(幽陵)에 이르렀다. 우순(虞舜)은 동쪽으로 장이(長夷)와 조이(鳥夷)에, 서쪽으로 거수(渠廋)에, 남쪽으로 교지(交阯)에, 북쪽으로 발(發)과 식신(息愼)에 이르렀다. 옛지명과 현재의 지명이 각각 다른데, 현재의 지명으로 각각 옛날의 어느 곳이었는가를 지적할 수 있겠는가. 요전(堯典)에서 동은 우이(嵎夷), 남은 남교(南交)라 하여 그곳을 분명히 가리켰으나 서쪽과 북쪽에 대해서는 지명을 말하지 않았다. 우공(禹貢)에서는 동은 바다, 서는 유사(流沙)라 하여 분명히 한계점을 가리켰으나 남쪽과 북쪽은 지명을 말하지 않았으니,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소략(疏略)이 어찌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곳과 지는 해를 전송하는 곳은 의당 한 곳에 있어야 할 터인데,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의 후일법(候日法)은 극동(極東)과 극서(極西)로 나누어 살폈으니, 해가 뜨고 지는 시각(時刻)에 혹 틀린 점이 있지 않겠는가. 아침과 저녁의 해 그림자는 의당 하나의 막대기를 준칙(準則)으로 삼아야 할 터인데, 《주례(周禮)》의 측일법(測日法)은 동쪽 끝과 서쪽 끝으로 나누어 관측하였으니, 길고 짧은 도수(度數)에 혹 틀린 점이 있지 않겠는가.
남북으로 말하면 적도(赤道)가 천하의 중심이고 동서로 말하면 곤륜산(崑崙山)이 천하의 중심이 될 터인데, 주공(周公)이 낙양(洛陽)을 천하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성탕(成湯)은 동쪽을 정벌하면 서쪽 사람이 원망하고 남쪽을 정벌하면 북쪽 사람이 원망하여 모두 성탕이 오기를 기다렸으며, 무왕(武王)은 동서남북이 모두 복종하기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한다. 이 두 시대(時代)의 사방(四方) 지명을 모두 상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태원(泰遠)ㆍ빈국(邠國)ㆍ복연(濮鉛)ㆍ축률(祝栗)을 사극(四極)이라 하고, 고죽(觚竹)ㆍ북호(北戶)ㆍ왕모(王母)ㆍ일하(日下)를 사황(四荒)이라 하는데,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 비추어보건대 각각 어느 지방에 해당될까. 동방에는 태평(太平), 서방에는 대몽(大蒙), 남방에는 단혈(丹穴), 북방에는 공동(空桐)이 있는데, 오늘날 확실히 어느 나라에 해당될까. 동방에는 비목(比目), 서방에는 공허(邛虛), 남방에는 비익(比翼), 북쪽에는 비견(比肩)이 있는데, 《본초(本草)》에 따로 무슨 이름이 있는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를 이미 사방에 배열하였으니, 중국 사람은 단지 신덕(信德)만 있는 것일까. 청(靑)ㆍ백(白)ㆍ적(赤)ㆍ흑(黑)을 이미 사방에 배열하였는데, 중국 땅을 어찌하여 적현(赤縣)이라 부르는가. 저풍(諸馮)ㆍ명조(鳴條)ㆍ기주(岐周)ㆍ필영(畢郢)에 대하여 시비(是非)가 분분하고, 목릉(穆陵)ㆍ무체(無棣)ㆍ동해(東海)ㆍ서하(西河)는 그 땅이 너무나 넓다. 이런데 지금 낱낱이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겠는가.
큰 자라의 네 발을 잘라 사극(四極)을 받쳤다는 말을 지어낸 사람은 누구이며, 태장(太章)과 수해(豎亥)가 사방을 걸어서 잰 걸음수는 얼마인가. 이(夷)ㆍ적(狄)ㆍ융(戎)ㆍ만(蠻)을 사예(四裔)라 하는데, 사유(四維)에 사는 인종(人種)은 또 몇 종류나 되는가. 기(奇)ㆍ제(鞮)ㆍ상(象)ㆍ역(譯)으로 사방의 백성들과 통화(通話)를 하는데 만방(萬邦)에 흩어져 사는 인종들에게 있는 언어가 이 네 가지뿐인가. 동방은 창룡(蒼龍), 서방은 백호(白虎), 남방은 주조(朱鳥), 북방은 현무(玄武)라 한다. 이 별자리는 이리저리 옮겨 항상 그 자리에 붙박혀 있지 않는데, 이것을 사방에 배열한 것은 억지가 아닐까. 동풍을 곡풍(谷風), 서풍을 양풍(涼風), 남풍을 개풍(凱風), 북풍을 태풍(泰風)이라 한다. 이 바람은 이리저리 산란하여 반드시 정방(正方)으로만 불지는 않는데, 팔풍(八風)에 대해 상세히 말할 수가 있을까.
남극(南極)은 땅 밑에 있고 북극(北極)은 땅 위에 있는데 《천문록(天文錄)》에 ‘남극은 높고 북극은 낮다.’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늘은 서북이 기울어졌고 지구는 동남쪽이 이지러졌는데도 역법가(曆法家)들은 하늘과 땅은 모두 둥글다 하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후천도(後天圖)의 진(震)ㆍ태(兌)ㆍ이(離)ㆍ감(坎)의 배열이 선천도(先天圖)에서는 이(離)ㆍ감(坎)ㆍ건(乾)ㆍ곤(坤)으로 배열되었다. 하도(河圖)의 8ㆍ9ㆍ6ㆍ7의 배열이 낙서(洛書)에서는 3ㆍ7ㆍ1ㆍ9로 배열되어 있다. 따라서 동ㆍ서ㆍ남ㆍ북의 위치가 모두 틀려서 맞지 않으니, 이것을 천지의 바른 위치라 할 수 있겠는가. 종묘(宗廟)의 제도를 옛적에는 남북으로 소목(昭穆)을 삼았었는데 지금은 동서로 소목을 삼으며, 천맥(阡陌)의 제도는 혹 동서로 밭두둑을 만들기도 하고 혹 남북으로 밭두둑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법의 득실(得失)과 이 설의 시비(是非)에 대해서 모두 분석하여 설명할 수 있겠는가.
동쪽엔 장인국(長人國), 남쪽엔 조제국(雕題國), 서쪽엔 뇌연(雷淵), 북쪽엔 증빙(增氷)이 있는데 지금의 어느 나라가 이에 해당되는가. 동쪽엔 의려(醫閭), 남쪽엔 양산(梁山), 서쪽엔 곽산(霍山), 북쪽엔 유도(幽都)가 있는데 여기에서 무슨 보물이 생산되었는가. 추연(鄒衍)은 사해(四海)에 대한 설(說)이 있고 회남자(淮南子)는 팔인(八寅 팔역(八域))에 대한 설이 있지만 이들이 과연 몸소 가서 눈으로 보고 말한 것인가. 불교(佛敎)에는 사주(四洲)의 명칭이 있고 외기(外紀)에는 오주(五洲)의 명목이 있지만, 이것이 모두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말을 들은 것은 아닌가.
공자(孔子)는 ‘나는 동서남북으로 주거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하였는데, 몸소 갔었던 끝 지점을 모두 지적하여 말할 수 있을까. 황제(皇帝)의 도읍(都邑)은 동경(東京)ㆍ서경(西京)ㆍ남경(南京)ㆍ북경(北京)이 있는데, 그 웅거한 형세가 어느 곳이 가장 나은가.

대저 자연(自然)이 만든 것은 모두 둥글고 사람이 만든 것은 모두 모가 났다. 따라서 모난 물건은 저절로 사방이 있게 마련이니, 동ㆍ서ㆍ남ㆍ북의 명칭이 여기에서 생긴 것이다. 몸에는 한몸의 사방이 있어서 왼쪽과 오른쪽을 정하게 되고, 방에는 한방의 사방이 있어서 밝은 남쪽과 어두운 북쪽을 분별하게 된다. 각국(各國)에는 각기 본국(本國)의 사방이 있어서 사방의 문(門)을 통하게 되고, 중국(中國)에는 중국의 사방이 있어서 사방 국경을 통하게 된다. 위아래를 아울러 말하자면 육합(六合)이라 하고, 모퉁이까지 모두 들어 말하자면 팔굉(八紘)이라 한다. 하늘과 땅은 이것으로 위치가 바르게 되고 만물은 이것으로 차례를 이루게 된다. 이것에 의하여 음(陰)을 등지고 양(陽)을 향하며, 이것에 의하여 왼쪽은 성(聖), 오른쪽은 인(仁)이 된다.
그러므로 왕자(王者)가 나라를 세우게 되면 방위(方位)를 분간하여 관위(官位)를 설치함으로써 육관(六官)의 대의(大義)로 삼고, 명당(明堂)에서 조회(朝會)할 적엔 병풍(屛風)을 등지고 남면(南面)하여 신하들에게 답례한다. 이것이 하(夏)ㆍ은(殷)ㆍ주(周) 삼대(三代)의 좋은 법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대(世代)가 내려갈수록 풍속이 퇴폐되어 이설(異說)이 분분하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역법(曆法)을 연구하고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자들이 북극(北極)ㆍ남극(南極) 이외에 따로 연신(年神)의 방위(方位)를 세웠고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설치하는 제도에 있어서도 왼쪽에는 종묘(宗廟), 오른쪽에는 사직(社稷)을 세우는 이외에 별도로 풍수설(風水說)의 이해(利害)에 구애받게 되었다.
봄에 씨뿌리고 가을에 추수하는 절후(節候)가 밝지 않게 되자, 방위(方位)에 따른 타당성과 꺼리는 점을 살피게 되었고, 남쪽엔 창을 내고 북쪽엔 담장 쌓는 법이 허물어지자, 용호(龍虎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를 말함)에 의한 길흉(吉凶)을 묻게 되었다.
집을 동향으로 짓는 법제는 없는데, 마을터는 북향이 많다. 빈계(賓階)와 조계(阼階)는 때에 따라 그 동서의 위치가 바뀌기도 하고, 내당(內堂)과 외당(外堂)은 때에 따라 남북을 반대로 하기도 한다. 자연적인 음양(陰陽)의 형세를 괴리(乖離)시키고 바꿀 수 없는 건곤(乾坤)의 이치를 어기면서, 옛 선왕이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에 맞도록 만들어 놓은 예의(禮儀)를 상고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제 사방의 본래 뜻을 분변하고 사방의 실제 이치를 연구하여, 만물(萬物)의 차례를 순(順)하게 하고 삼대(三代) 때의 의제(儀制)를 회복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겠는가. 여러 선비들은 사방에서 왔으니 반드시 이에 대하여 본디부터 강구(講究)한 바가 있을 것이다. 각자 그것을 마음껏 기술하라.

큰 자라의 …… 받쳤다 : 옛날 공공(共工)이 축융(祝融)과 싸워 이기지 못하자 머리로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았으므로 천주(天柱)가 부러지고 지유(地維)가 끊어졌다. 그리하여 여와씨(女媧氏)가 오색(五色)의 돌을 다듬어 하늘을 깁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방을 받쳤다 한다. 《淮南子 覽冥訓》
태장(太章)과 …… 걸어서 : 태장과 수해(豎亥)는 모두 우(禹)의 신하로서 걸음을 잘 걷는 사람. 《회남자(淮南子)》추영훈(墜形訓)에, “우가 태장을 시켜 동극(東極)에서 서극(西極)까지를 재게 하였더니 2억 3만 3천 5백 리 75보(步)였고, 수해를 시켜 북극(北極)에서 남극(南極)까지 재게 하였더니 2억 3만 3천 5백 리 75보(步)였다.” 하였다.
사유(四維) : 동ㆍ서ㆍ남ㆍ북의 사잇방위인 동남ㆍ동북ㆍ서남ㆍ서북을 말한다. 《小學紺珠 地理類 四維》
기(奇)ㆍ제(鞮)ㆍ상(象)ㆍ역(譯) : 사방의 외국(外國)과 통역(通譯)하는 통역관을 말한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동방을 기, 남방을 상, 서방을 적제(狄鞮), 북방을 역이라 하는데 이는 사방 외국의 통역을 맡은 관원이다.” 하였다.
소목(昭穆) : 옛날의 묘제(廟制)로 위패(位牌)를 모시는 차례. 천자(天子)는 시조(始祖)를 가운데 모시고 2세(世)ㆍ4세ㆍ6세는 소(昭)라 하여 왼편에, 3세ㆍ5세ㆍ7세는 목(穆)이라 하여 오른편에 모시어 7묘(廟)가 되고, 제후(諸侯)는 5묘이고 대부(大夫)는 3묘이다.
명당(明堂) : 임금이 정치와 교화(敎化)를 펴는 곳. 임금은 남향(南向)으로 앉기 때문에 밝은 곳을 향하여 지었다.
연신(年神)의 방위(方位) : 동남ㆍ동북ㆍ서남ㆍ서북의 네 간방(間方)을 강(綱)으로 하여 24방위를 벌여놓고, 해당 방위에 각각 해당하는 신(神)을 안배하여 그해의 건축(建築) 및 보수(補修) 등의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
빈계(賓階)와 …… 바뀌기도 하고 : 빈계는 손님이 오르내리는 서쪽 층계이고 조계는 주인이 오르내리면서 손님을 맞고 전송하는 동쪽 층계. 옛날에는 대체로 남향(南向) 집을 짓기 때문에 빈계와 조계의 위치가 변할 수 없었으나, 후세(後世)에는 풍수지리설의 길흉에 현혹되어 위치를 바꾸기도 하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