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1권

부(賦)

야은(冶隱)의 대나무에 대한 부(賦)

 

세모가 되어 날씨가 추우니 / 方歲暮而天寒
말라서 떨어지는 모든 식물들 안타깝네 / 憫衆植之枯落
마침내 청려장 짚고 짚신을 신고는 / 遂杖藜而鞋芒
설한풍 속에 금오산 찾았다오 / 訪金烏於風雪
산 언덕에 대나무 있는데 / 爰有竹兮山之阿
푸른 색깔 천고에 일색이네 / 綠千秋兮一色
이것은 야은이 손수 심으신 것으로 / 云是冶隱之手栽
시원한 바람 어제와 똑같다오 / 凛寒風之如昨
선생은 고려의 백이와 숙제라 / 先生麗代之夷齊
수양산의 뛰어난 대나무 전해 오네 / 傳首陽之孤竹
일찍이 가정에서 학문을 익혔고 / 夙種學於鯉庭
행실은 효도에 근본을 세웠다오 / 行立本於孝德
난초 심어놓고 혜초 가꾸며 / 紛滋蘭而樹蕙
국가에 동량이 되려 하였네 / 擬棟樑乎王室
조정에서 잠시 손에 홀을 잡았으나 / 暫手笏於朝端
큰 집이 장차 무너질 것을 알고 / 知大廈之將傾
북풍이 차가움을 인하여/ 因北風之其涼
고향의 큰 소나무 밑으로 돌아왔네 / 歸故山之松欞
세한의 고상한 뜻 흠모하여/ 得歲寒之雅契
기욱의 남은 푸르름 맞이하였네 / 邀淇隩之遺綠
몸소 바위 곁에 심어 / 躬自植乎巖畔
눈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대하게 하였네 / 對雪嶺之松柏
여러 성상을 함께 지내니 / 共星霜兮屢閱
어느덧 아들과 손자들 나열하였네 / 奄兒孫之森列
푸른 뿌리에 얼음이 어니 쇠가 엉겨 있는 듯 / 氷綠根兮凝鐵
푸른 가지에 바람이 부니 옥소리 일어난다오 / 風翠枝兮戛玉
산인의 관과 야인의 복장으로 / 山冠兮野服
푸른 그림자 밑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 幾婆娑於碧影
아침에 보고 저녁에 의지하여 / 朝看兮暮倚
적막 속의 깊은 경치 함께 하네 / 共寂寞之深境
저절로 취미가 서로 부합하니 / 自趣味之相符
어찌 이 사람과 저 물건을 구분하겠나 / 寧此人而彼物
주 나라의 일월이 밝고 은 나라는 망하였는데 / 周家日月兮殷室丘墟
선생은 대나무를 얻고 짝이 있었으며 / 先生得竹而有匹
모든 산에 차가운 서리로 풀들 모두 시들었는데 / 萬山風霜兮百草俱拉
대나무는 선생을 얻고 외롭지 않았네 / 竹得先生而不獨
선생이 대나무를 저버리지 않으니 / 先生不負竹兮
우주에 윤리 강상이 지켜지게 되었고 / 宇宙有綱常
대나무가 선생을 저버리지 않으니 / 竹不負先生兮
천지에 순수히 굳센 기운이 있게 되었네 / 天地有純剛
선생은 떠나가도 대나무는 그대로 있으니 / 先生去兮竹尙在
빛이 더욱 늠름하고 바람이 더욱 시원해라 / 光凛凛兮風颯颯
조물주가 은근히 보호하여 / 得非造物之陰護
외로운 뿌리 끊기지 않게 해서 / 俾孤根而不絶
빼앗기지 않는 곧은 정조 표창하고 / 旌不奪之貞操
우뚝한 큰 절개 드러낸 것이 아니겠는가 / 表特立之大節
그렇지 않다면 충성스러운 혼과 의로운 넋이 / 不然則忠魂兮義魄
차가운 숲과 서릿발의 잎에 의탁하여 / 托寒䕺兮寄霜葉
말세의 쓰러지는 풍속 일깨우고 / 風末俗之委靡
나약한 사람의 모발 곧추 세우는 것이리라 / 竪懦夫之毛髮
내 장차 우거진 나무 베어내고 흙덩이 제거하고 / 吾將芟榛莽而除糞壤
꺾이고 시든 것 거의 붙들어 주리라 / 庶扶植乎摧薾
마침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遂爲之歌曰
어떤 나무인들 식물이 아니겠는가마는 / 何卉非植
선생은 유독 대나무를 좋아하였고 / 先生獨愛竹
어느 곳인들 대나무가 없겠는가마는 / 何地無竹
나는 선생이 심으신 것 좋아한다오 / 我愛先生植
서산의 고사리를 조종(祖宗)으로 하였고/ 祖西山薇蕨
율리의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였네/ 友栗里松菊
천지 사이의 원기에 뿌리하였고 / 根柢於天地間元氣
설한풍 속의 강역에 빛나누나 / 光輝於風雪中疆域
선생이 돌아가신 지 수백 년이 되었건만 / 距先生數百載
아직도 정정히 창벽에 의지함 보겠으니 / 猶見亭亭倚蒼壁
생각을 붙일 곳 없다고 말하지 마오 / 毋曰寓思之無地
바로 이 대나무가 있지 않소 / 有此竹

[주D-001]북풍이 차가움을 인하여 : 《시경(詩經)》 패풍(邶風) 북풍(北風)에 “북풍이 차갑게 불어오며 함박눈이 펑펑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 잡고 함께 길을 가리라.[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携手同行]” 하였는데, 이는 국가에 혼란이 닥쳐오게 되었으므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감을 읊은 시이다. 야은(冶隱) 역시 국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고 고향으로 은둔하였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세한의 고상한 뜻 흠모하여 : 세한은 날씨가 추워지는 것으로 공자(孔子)는 일찍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하여, 난세를 당하여야 군자의 절의(節義)를 볼 수 있음을 비유하였다. 기욱(淇奧)은 기수(淇水)의 벼랑인데 이곳에는 대나무가 잘 자라므로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다.”라고 읊은 내용이 보인다. 여기서는 대나무 역시 소나무와 똑같이 항상 푸르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주D-003]서산의 고사리를……하였고 : 서산은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어 먹었다는 수양산(首陽山)으로, 곧 백이·숙제의 충절(忠節)을 조종(祖宗)으로 삼았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4]율리의 소나무와……벗하였네 : 율리는 진(晉) 나라의 처사(處士)인 도연명(陶淵明)이 은둔한 곳으로, 도연명은 일찍이 소나무와 국화를 좋아하였다. 그가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있다.[三徑就荒 松菊猶存]”고 읊은 내용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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