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선생집 제3권
잡저(雜著) 76수
덕에 길흉이 있다는 설에 대한 변론[德有凶有吉辯] 과작(課作)
한자(韓子 당(唐) 나라 한유(韓愈))는 원도편(原道篇)에서 “도(道)와 덕(德)은 중립적인 성격[虛位]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도에는 군자의 도와 소인의 도가 있고 덕에는 흉한 덕과 길한 덕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일찍부터 이 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한 번 변론해 보려 한다.
대저 덕(德)은 얻을 득(得) 자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선(善)을 행하여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 이것을 덕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늘이 뭇 백성을 내셨는데 그때에 어떤 일이나 물건을 막론하고 당위적(當爲的)인 법칙성이 그 속에 내재해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가운데에 각각 마땅히 행해야 할 도가 있는 법인데, 마땅히 행해야 할 이것이야말로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었을 때 그것을 비로소 덕이라고 하는 것이니, 얻어서는 안 될 것을 얻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덕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밭을 갈아 수확을 할 때에 곡식을 얻어야 얻은 것이지 잡초를 얻은 것을 어떻게 얻었다고 하겠는가.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 때에 샘을 얻어야 얻은 것이지 흙을 얻은 것을 어떻게 얻었다고 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선(善)의 방향에서 얻은 것을 덕(德)이라고 하는 것이니 덕은 바로 길(吉)한 것이다. 그리고 선과 위배되는 것을 덕에 어긋난다고 하는 것이니 덕에 어긋나면 바로 흉(凶)한 것이다. 천하에 어찌 내용이 정반대되는 것에 같은 이름을 붙여 줄 수가 있겠는가.
대저 한자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이면에는 아마도 나름대로 근거한 바가 있을 것이다. 가령 《주역(周易)》에서 ‘항덕(恒德)에도 흉한 때가 있다.[恒德之凶]’고 한 것이라든가 《시경(詩經)》에서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린다.[二三其德]’고 한 것이라든가 주공(周公)이 ‘상 나라 왕 수가 술주정을 부렸다.[商王受酗于酒德]’ 고 한 것이라든가 이윤(伊尹)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면 하는 일마다 흉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德二三 動罔不凶]’고 한 것이 그 근거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그 일부분의 뜻만 차용해서 말한 것일 따름이지 그 전체의 의미를 총괄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자는 그렇게 말한 것만 고집하면서 그 전체적인 의미는 빠뜨린 채 단정적으로 도(道)와 덕(德)을 허위(虛位)라고 단정하고 길(吉)과 흉(凶)을 그 대체(對體)로 설정한 뒤 마침내 자기 주장의 요지를 수립했으니 이것이 바로 잘못된 점이라고 하겠다.
성인의 말씀을 보면 두루 통하여 한쪽에 막히게 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바르게 말씀하시면서도 반대되는 것같이 보이고 거꾸로 말씀하시면서도 결코 바름을 잃는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그 의미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직 그 언어 표현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융통성없이 막혀 버려 끝내는 편파적으로 한쪽에 떨어지는 결과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자기 주장을 내놓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이다.
그리고 한자는 굳이 도와 덕을 중립적이라고 한 반면 인(仁)과 의(義)는 그 내용이 확정되어 있는 개념[定名]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가지고 추리해 본다면 인과 의라는 것도 정명(定名)이 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대저 송양지인(宋襄之仁)에 대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다 비웃고, 부인지인(婦人之仁)에 대해서는 군자가 보잘것없이 여기고, 비의지의(非義之義)에 대해서는 맹자(孟子)가 비난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인과 의라는 것도 과연 정명이 될 수 있겠는가. 인이 아니면서도 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고 의가 아니면서도 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다. 따라서 그런 표현이 있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깎아 내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도와 덕의 경우에만 어찌하여 유독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덕이라고 하면 어느 것이고 길(吉)하지 않은 것이 없다. 흉(凶)한데도 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덕지덕(非德之德)일 따름이다. 그러니 비덕지덕까지 뒤섞어서 덕이라고 말한대서야 어찌 되겠는가.
선유(先儒 주희(朱熹)를 말함)가 한자의 학문을 머리가 없다.[無頭之學]고 논하였는데, 이것은 대체로 그가 격물(格物) 치지(致知)의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 대저 격물 치지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도와 덕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그 말에 어떻게 하자(瑕疵)가 없을 수 있겠으며 이치상으로 볼 때 어떻게 막히는 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한자가 이런 주장을 내놓은 목적은 대체로 노씨(老氏)를 공격하기 위해서이다. 노씨도 도와 덕을 말하는데 그것이 인과 의가 아니기 때문에 한자가 이를 공격하여 ‘우리가 말하는 도와 덕이 아니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그의 뜻은 대체로 노씨를 흉하다고 본 것이고 우리 유가(儒家)만이 길하다고 한 것이다. 이 의리 역시 통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심각하게 비평하는 것인가.”라고.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그 말도 그럴 듯하기는 하다. 그러나 한자가 만약 노씨를 공격하려 했다면 단지 ‘도와 덕에 어긋난다.’고 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가 일단 ‘도와 덕에 어긋난다.’고 해 놓으면 노씨의 잘못이 환히 드러나면서 공격하려 했던 의도도 완전히 성취될 텐데, 어찌하여 꼭 그 덕의 내용을 스스로 훼손시키면서 불순(不醇)한 영역으로 싸잡아 들여보내야만 되겠는가.
그런데 일단 덕에 길흉이 있다고 전제해 놓고서 노씨의 덕을 흉하다고 한다면, 이는 노씨가 그래도 덕의 반절은 소유하게 되는 셈이고 우리 역시 덕 전체를 소유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니, 우리를 높이고 저쪽을 물리치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대저 도와 덕의 큰 뜻을 이미 잃은 위에 또 우리를 높이고 저쪽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옳은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한마디의 실언(失言)이 이처럼 이치에 해가 되기 때문에 내가 부득불 변론하였는데, 한자가 다시 세상에 나온다 하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르게 될 것이다.
[주D-002]항덕(恒德)에도 …… 있다 : 《주역(周易)》 항괘(恒卦) 육오효사(六五爻辭)에 “그 덕을 늘 지니면 바르게 되나 아낙네는 길하고 사나이는 흉하다.[恒其德 貞 婦人吉 夫子凶]”고 하였다.
[주D-003]이랬다 …… 부린다 : 《시경(詩經)》 위풍(衛風) 맹(氓)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4]상 나라 …… 부렸다 : 《서경(書經)》 무일(無逸)에 “은 나라 왕 수가 술에 정신없이 빠져 술주정을 부린 것처럼 하지 말라.[無若殷王受之迷亂酗于酒德哉]” 하였다.
[주D-005]이랬다 …… 것이다 : 《서경(書經)》 함유일덕(咸有一德)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6]송양지인(宋襄之仁) : 춘추 시대(春秋時代) 때 송(宋) 나라 양공(襄公)이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려 하여 초(楚) 나라와 싸울 적에 강을 건너 대열을 정비하기 전에 격파하자는 말을 듣지 않고서 “군자는 곤경에 빠진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다.”고 하다가 도리어 패한 고사이다. 《春秋左傳 僖公 22年》
[주D-007]부인지인(婦人之仁) : 한신(韓信)이 항우(項羽)를 비평한 말이다.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에 “항왕(項王)은 사람을 공경하고 자애스럽게 대하며 말도 자상하게 해 준다. 나아가 병에 걸린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눠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공을 세워 봉토와 작위를 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아까워서 손으로 매만지기만 하고 차마 주지 못한다. 이런 경우를 아낙네의 자애로움이라고 한다.” 하였다.
[주D-008]비의지의(非義之義) : 언뜻 보면 의로운 것 같으면서도 진정한 의로움은 아닌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은 예(禮) 아닌 예와 의(義) 아닌 의는 하지 않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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