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선생집 제4권

설(說) 10수

 

화당설(化堂說) 속고(續稿)

 

 

천지(天地) 사이에 있는 존재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매가 비둘기로 바뀌고 참새가 대합으로 바뀌며 뱁새가 수리로 바뀌고 올챙이가 개구리로 바뀌며 풀이 썩어 반딧불로 바뀌는 것 등은 다른 물건으로 서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초목이 처음 나와 싹을 틔웠다가 줄기와 가지로 바뀌고 다시 꽃과 열매로 바뀌며 또 누렇게 낙엽이 지고 마는데, 이는 하나의 물건이 자체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곤(鯀)은 황웅(黃熊)이 되었고 망제(望帝)는 두견새가 되었으며 용(龍)의 입에서 나온 거품이 포녀(褒女)가 되었는가 하면 우애(牛哀)는 호랑이로 바뀌고 팽생(澎生)은 돼지로 바뀌었는데, 이는 요망스럽게 변하여 재앙을 끼친 사례들이다.
어찌 만물만 그러하겠는가. 천지(天地) 또한 그러하다. 낮에 밝았다가 밤에 어두워지는 것은 1일(日)의 변화요, 봄에 내놓고 여름에 키우며 가을에 죽이고 겨울에 마감하는 것은 1년(年)의 변화요, 자회(子會)와 축회(丑會)에 개벽(開闢)했다가 술회(戌會)와 해회(亥會)에 다시 혼돈(混沌) 상태가 되는 것은 1원(元)의 변화이다.
사람의 이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태어나 적자(赤子)가 되었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가 장년기를 거치면서 쇠해지고 쇠해진 뒤에 노년을 맞아 마침내는 죽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것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다.
성정(性情)의 경우 또한 어찌 유독 그러하지 않겠는가. 대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 것으로 말하면 환히 밝아 지극히 신령스럽고 티 없이 맑아 지극히 선한 것으로서 잘나거나 못나거나 간에 모두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질(氣質)에 구애받고 습관이 잘못 형성되면서 충동이 일어나고 감정이 앞서게 된 나머지 신령스러운 체성(體性)이 미혹스럽게 변화하고 선한 성품이 악하게 바뀌게 되고 마니, 이것이 바로 선하지 않게 변화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성인께서 이를 걱정하시어 이런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고 학문을 익히게 하면서 쇠를 녹여 틀을 조형하고 도구를 사용해 나무를 재단하듯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것인데, 그 결과 어리석은 사람도 명철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소신있게 행동하고 번잡스러운 사람도 평정을 되찾고 오염되었던 사람도 깨끗해지고 한쪽에 치우쳤던 사람도 바른 위치에 서게 되고 이것 저것 뒤섞였던 사람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보면, 이 세상 사람으로서 변화될 수 없는 자가 또한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학문에 뜻을 두는 것[志學]으로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경지[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어 보았으면 하는 선인[可欲之善]으로부터 성스러워 알 수 없는 신인[聲而不可知之神]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학문을 계속 탐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공효(功效)요 그 덕성이 단계적으로 성취되는 것들이라 할 것이니, 교화하는 그 도가 그야말로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
아,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나 사람의 생사(生死)와 장로(壯老) 같은 것은 천명(天命)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니 이는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정(性情)이 왜곡되는 것이나 학문을 통해 변화되는 것으로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일 뿐 천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하루도 그 방면에 힘을 쓰려 하지 않고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있으니, 겉모습만 사람일 따름이지 그 속마음은 이미 금수(禽獸)로 화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어찌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친구인 평산(平山) 신공보(申功甫 신민일(申敏一))는 순수하고 소박한 자질의 소유자로서 일찍이 우계 선생(牛溪先生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세상 변고를 두루 거치면서도 평소에 지닌 뜻을 더욱 확고하게 견지하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임금에게 아뢴 일 때문에 벌을 받고 서쪽 변방에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나이가 벌써 60이었다. 그런데 괴로운 상념이 마음속에 교차하는 가운데에서도 거백옥(蘧伯玉)이 60세에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말에 느낀 바가 있어 마침내는 화당(化堂)으로 자신의 호(號)를 삼았다고 한다.
대저 거백옥으로 말하면 옛날의 훌륭한 대부(大夫)로서 50세에도 49세 때까지의 잘못을 깨달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60세가 될 때까지 계속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고 보면, 그가 실제로 얼마나 개과천선하여 발전하면서 끊임없이 새롭게 되었을지를 상상해 볼 수가 있으니, 우리 부자(夫子 공자)로부터 인정받았던 것이 또한 당연하다 하겠다. 나아가 장생(莊生 장자(莊子))처럼 세속의 일을 우습게 보는 사람마저도 그의 훌륭함을 인정하고서 극구 칭찬을 하였고 보면, 공보가 이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노력하려 한 그 뜻이 탁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보가 조정에 돌아오고 나서 언젠가 한 번 나를 찾아왔는데 얼굴 모습은 물론 수염이나 머리칼 하나 손상된 것이 조금도 없었을 뿐더러 몸 속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가 충만하여 마치 예전과는 다른 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 역시 변화되는 경지를 실제로 체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공보는 60이 되어서도 변화되는 데에 뜻을 두고 있는데, 나는 지금 나이 50을 먹도록 잘못된 것을 아직껏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공보에게 너무도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화당설(化堂說)을 지어 공보에게 주는 동시에 나의 부끄러운 심정을 스스로 토로하는 바이다.

[주D-001]곤(鯀)은 …… 되었고 :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7년에 “옛날 요(堯) 임금이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죽였는데 곤의 혼령이 황웅(黃熊)으로 변하여 우연(羽淵)에 들어갔다.” 하였다.
[주D-002]망제(望帝)는 두견새가 되었으며 : 망제는 촉왕(蜀王) 두우(杜宇)의 호(號)이다. 그가 선위(禪位)하고 떠나간 뒤 혼령이 변하여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華陽國志 蜀志》
[주D-003]용(龍)의 …… 하면 : 포녀는 주(周) 나라 유왕(幽王)의 총비(寵妃) 포사(褒姒)를 말한다. 하(夏) 나라 말기에 신룡(神龍) 두 마리가 궁궐 뜰에 내려왔는데, 그 거품이 변하여 후세에 포사가 되었다고 한다. 《國語 鄭語》 《史記 周紀》
[주D-004]우애(牛哀)는 호랑이로 바뀌고 : 우애는 노(魯) 나라 사람으로 병들어 호랑이로 변한 뒤 자기 형을 죽였다고 한다. 《淮南子 俶眞訓》
[주D-005]팽생(澎生)은 돼지로 바뀌었는데 : 팽생은 춘추 시대 때 노(魯) 나라 환공(桓公)을 죽였던 제(齊) 나라의 공자이다. 환공의 부인 문강(文姜)은 제 나라 양공(襄公)의 여동생이었는데 환공과 함께 제 나라로 갔을 때 양공과 간통하자 환공이 성을 내니 양공에게 이를 알려 환공을 죽이게 했다. 이에 노 나라의 항의로 결국은 팽생을 죽였는데, 뒤에 제 나라에서 사냥을 할 때 큰 돼지로 나타나 드디어는 앙갚음을 하였다고 한다. 《春秋左傳 桓公 18年, 莊公 8年》
[주D-006]자회(子會)와 …… 변화이다 : 소 강절(邵康節)의 이른바 원(元)ㆍ회(會)ㆍ운(運)ㆍ세(世)에 대한 설을 따른 것이다. 1원(元)은 통산 12만 9600년으로, 천지(天地)가 《주역(周易)》의 복괘(復卦)와 임괘(臨卦)에 해당하는 자회(子會)ㆍ축회(丑會)에 생성되었다가 박괘(剝卦)와 곤괘(坤卦)에 해당하는 술회(戌會)ㆍ해회(亥會)에 이르러 소멸한다고 하였다.
[주D-007]학문에 …… 경지 :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08]나도 …… 신인 :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09]거백옥(蘧伯玉)이 …… 변화시켰다 :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나오는 말이다.
[주D-010]50세에도 …… 인물이었다 : 《논어(論語)》 헌문(憲問)의 “거백옥이 사람을 보내 공자에게 문안드렸다.[蘧伯玉使人於孔子]”는 조목에 대한 주석에서 장자(莊子)의 말을 인용하여 소개한 내용이다.
[주D-011]우리 …… 것 :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공자가 거백옥을 군자라고 칭찬한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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