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만필 제1권
[만필(漫筆)]
[세상에서 일본에 진 나라 때 불타지 않은 책이 있다고 하나 근거 없는 설이다
[世傳日本有未經秦火之書其說無據]]
세상 사람들이 많이들 이야기하기를, “일본(日本)에는 진(秦) 나라의 분서(焚書) 파동을 겪지 않은 경서(經書)들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고 하면서, 대체로 서복(徐福)이 바다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갔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은 매우 근거가 없다. 그렇게들 말하게 된 원인을 찾아 보건대, 대체로 구양공(歐陽公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脩)를 가리킴)에게서 비롯된다고 하겠는데, 빌미를 제공한 그의 일본도가(日本刀歌)를 보면, “전해 듣건대 바다 속의 그 나라, 비옥한 토양에 풍속 또한 좋다고. …… 선조(先祖) 때 공물(貢物) 바치러 누차 왕래하였는데, 문장에 능한 사람 가끔씩 나왔어라. 서복이 들어간 건 분서(焚書) 사건 없던 때라, 일실(逸失)된 서책 백 편 지금도 보전되었다오. 중국에 전하는 일 법령으로 엄히 막아, 온 세상 고문을 아는 이 없어졌네. 오랑캐 땅에 보관된 선왕들의 위대한 글, 넘실대는 푸른 물결 어떻게 건너올까. 가슴에서 북받쳐 흐르는 나의 눈물, 녹슬은 단도야 말할 것이 뭐 있으리.[傳聞其國居大海 土壤沃饒風俗好 …… 前朝貢獻屢往來 士人往往工詞藻 徐福行時書未焚 逸書百篇令尙存 今嚴不許傳中國 擧世無人識古文 先王大典藏夷貊 蒼波浩蕩無通津 令人感激坐流涕 鏽澁短刀何足云]”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사기(史記)》를 살펴보건대, 서불(徐巿)이 동남동녀(童男童女)를 출발시켜 바다 속에 들어가 선약(仙藥)을 구하게 한 것은 시황(始皇) 28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34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분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뒤 37년에 시황이 해상(海上)을 순유(巡游)하다가 낭야(琅邪)에 이르렀을 때, 방사(方士) 서불 등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신약(神藥)을 구하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록 비용만 많이 허비한 채 찾아내지를 못하자, 견책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하니, 바다에 들어갈 때에는 큰 물고기를 포획하는 도구를 반드시 가지고 가도록 영을 내렸다. 바로 이해에 시황이 죽었고, 그 뒤로 진(秦) 나라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서불이 처음 바다에 들어간 것이 비록 분서령(焚書令)이 내려지기 전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37년에 바다로 들어간 뒤로는 그에 대한 기록이 《사기(史記)》에 다시 보이지를 않으니, 대체로 서불이 한번 떠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된 것은 이해에 이루어졌던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면 “서복이 떠날 때엔 책이 불타지 않았다.[徐福行時書未焚]”는 시구는 미처 상세히 상고해 보지 못한 소치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서불로 말하면 단지 일개 방사(方士)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가 바다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은 것은 대체로 진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서 스스로 세상을 피해 볼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어찌 육경(六經)에 대해서 지극한 관심을 쏟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일본에 실제로 경서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네들의 입장에서는 으스대고 뻐기느라 정신이 없을 것인데, 어찌 그토록 남 모르게 감춰두기만 하겠는가. 이것은 일을 꾸며내기 좋아하는 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구공(歐公)처럼 박아(博雅)한 양반까지도 그 설에 빠져 들고 말았으니, 어찌된 영문인가.
[주D-002]일본도가(日本刀歌) : 일설에는 사마광(司馬光)이 지었다고도 하는데, 참고로 본문의 앞머리와 중간 부분에 생략된 시의 원문을 보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昆夷道遠不復通 世傳切玉誰註能窮 寶刀近出日本國 越賣得之滄海東 魚皮裝貼香未鞘 黃白閒雜鍮與銅 百金傳入好事手 佩服可以穰妖凶 …… 其先徐福詐秦民 採藥淹留丱童老 百工五種與之居 至今器玩皆精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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