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집 제3권

시(詩)

月夜。女兒輩登寒碧樓。久不下。余方坐翛然齋。不覺起興隨至。眞所謂老子於此。興復不淺也。

 

달밤에 딸들이 한벽루(寒碧樓)에 올라가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소연재(翛然齋)에 앉아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나서 뒤따라가 한벽루에 이르렀으니, 진정 이른바 “내 이 늙은이가 이런 곳에서는 흥이 물씬 일어난다.”고 한 경우라 하겠다.

 

명월 아래 웃음소리 떠들썩하니 / 月明笑語喧
누각 위 아이들이 놀고 있구나 / 樓頭兒女游
얼음 녹은 푸른 강 봄날 같은데 / 綠江渙如春
청둥오리 한 쌍이 물위에 둥둥 / 花鴨一雙浮
주렴 걷고 어울려 바라보면서 / 卷簾相指似
추운데도 누각을 아니 내려와 / 夜寒不下樓
늙은 몸 바야흐로 혼자 앉아서 / 老子方獨坐
빈 배만 마주하고 시를 읊노라 / 微吟對虛舟

두 번째
별세계라 한적한 여기 이곳은 / 洞天此窈窕
사계절 맑은 기운 간직하였네 / 淸眞蘊四時
이곳에 저 옛날의 옥부자 신선 / 何年玉斧子
영지 캐는 이 몸을 기다렸겠지 / 期我采玄芝
허나 백학 밤 깊어도 오지를 않아 / 白鶴夜不來
누구를 기다리듯 앉아 있는데 / 高樓坐待誰
서른 여섯 늘어선 누각의 난간 / 闌干三十六
달빛 아래 그림자만 어수선하네 / 明月空參差

세 번째

밤안개 자욱한 금병산 보소 / 錦屛凝夜煙
그림자 깊은 강 빠져 들어가 / 綠影淪江深
흐르는 물결 함께 가지 않으니 / 波流不俱逝
도사의 속마음과 흡사하여라 / 一似靜者心
초라한 복건 하나 머리에 쓰고 / 蕭然一幅巾
사방을 둘러보며 누굴 찾는지 / 四顧誰招尋
구름 가의 밝은 달 저게 내 촛불 / 雲月皎我燭
바람결 물소리는 나의 거문고 / 風瀨鳴我琴

내 이 …… 일어난다 : 진(晉)나라 태위(太尉) 유량(庾亮)이 무창(武昌)에 있을 때, 어느 날씨 좋은 가을밤 은호(殷浩)와 왕호지(王胡之) 등 젊은이들에게 남루(南樓)에 올라가 놀도록 하고 혼자 남아 있다가 자기도 흥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따라가 그들에게 한 말이다. 《晉書 卷73 庾亮列傳》

옥부자(玉斧子) : 옥부는 전설상의 신선 허훼(許翽)의 어릴 적 이름으로, 신선을 뜻한다.

농암집 제3권

시(詩)

子益將登舟。賦得寒碧樓前一樹梨。與洪生和之。

자익이 배에 오르기 전에 한벽루(寒碧樓) 앞의 배나무 한 그루를 읊었는데, 홍생(洪生)과 함께 그에 화답하다.

 

 

한벽루라 누각 앞에 한 그루 버드나무 / 寒碧樓前一株柳
금병산의 안개를 천 가지가 얽어맸네 / 千條綰盡錦屛煙
봄바람아 부질없이 왜 저리 길러냈나 / 春風長得空如許
가는 사람 탄 배를 잡아매지 못할 것을 / 不繫歸人下瀨船

금병산(錦屛山)의 …… 얽어맸네 : 버드나무 잎이 다 자라 무성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농암집 제3권

시(詩)

凝淸閣。又得壺字。[응청각에서 또 ‘호(壺)’ 자 운을 얻어 짓다.]

 

한벽루라 누각 위에 한 병 술 앞에 놓고 / 寒碧樓頭酒一壺
술 마시는 높은 흥취 봄 강물이 있음이라 / 含杯高興在春湖
강변에 두루 핀 꽃 하양 땅의 오얏이요 / 岸花開徧河陽李
모래 위 나는 물새 섭현 고을 오리로세 / 沙鳥飛依葉縣鳧
주렴 아래 방울 둬도 관아의 공무 없고 / 簾下掣鈴無簿牒
수령 함께 휘호(揮毫)하는 선비들도 많다네 / 席前揮筆盛文儒
이다음 지금 이 일 쓸쓸히 추억하며 / 異時此事空相憶
금병산(錦屛山) 외로이 지는 해를 마주하리 / 閒對屛山落日孤

하양(河陽) 땅의 오얏 :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하양 현령(河陽縣令)으로 있을 때 온 고을에 복사나무와 오얏나무를 심어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곳곳에 꽃이 만발하였다 한다. 《白孔六帖》
섭현(葉縣) 고을 오리 :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도술을 지닌 왕교(王喬)가 섭현 영(葉縣令)을 지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언제나 조정에 와서 명제를 알현하였다. 그가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자주 오고 또 수레도 타지 않았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긴 명제가 비밀리에 태사(太史)에게 그 진상을 알아보라고 명했는데, 태사가, 그가 오는 시기에 한 쌍의 들오리가 동남방에서 날아온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들오리가 다시 날아오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물로 덮쳤는데, 그물 속에는 몇 해 전에 황제가 상서대(尙書臺) 관원들에게 하사한 가죽신 한 짝만 있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82上 方術列傳 王喬》 작자가 현재 물오리가 노는 남한강 상류 청풍부에서 왕교처럼 한적한 벼슬살이를 한다는 뜻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렴 …… 없고 : 당(唐)나라 때 지방 관청에서 문밖에 쇠방울을 매달아 두고 수령에게 보고할 일이 있으면 방울을 잡아당겨 울림으로써 사람이 수령을 불러내는 것을 대신하였다 한다. 곧 지금 청풍부에 공무가 한가함을 말한 것이다.


 

농암집 제3권

시(詩)

寒碧樓月夜。聞笛聲在船。賦得一律。

달밤에 배 안에서 한벽루(寒碧樓)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감상하며 율시 한 수를 짓다.

 

 

누 위의 피리소리 격이 높은데 / 樓上吹初好
배 안에서 듣노라니 더욱 시원해 / 舟中度更寒
텅 빈 강 그 울림이 자연스럽고 / 江空易成響
먼 안개 아스라이 끝이 없는 듯 / 煙遠似無端
맑은 소리 강변의 풍혈에 닿고 / 淸籟連風穴
흐르는 음 월탄까지 울려 퍼진다 / 流音溯月灘
뜻이 통한 아양곡 여기 있으니 / 峨洋今在此
거문고 굳이 애써 탈 것이 없네 / 綠綺未須彈

농암집 제3권

시(詩)

側岸有垂楊。拂波蔭船。[강기슭에 물결을 스치는 수양버들이 있어 지나가는 배를 덮었다.]

 

기슭 누운 수양버들 금빛으로 단장하고 / 臥岸垂楊黃嚲金
긴긴 가지 나날이 강 빛 함께 푸르러 가 / 長條日與綠江深
뱃머리에 펼쳐진 봄빛 지금 이러하니 / 舟前春色今如此
한벽루 어귀에도 봄을 막지 못하리라 / 寒碧樓頭恐不禁

 농암집(農巖集) > 농암집 제2권 > 시(詩) >

 

시(詩) - 가흥(可興)을 지나는데 강물이 맑디맑아 내 마음을 기쁘게 하다.

 

머나먼 길 급하게 달려오자니 / 汩汩赴脩塗
불안해 객의 시름 쌓이더니만 / 搖搖積旅思
골짝 강에 홀연히 정신 깨이어 / 峽江忽寤懷
한가로이 말고삐 늦춰 잡는다 / 聊以緩長轡
구불구불 길 하나 이어졌지만 / 綿延雖一路
굽이마다 느낀 정취 다르고말고 / 回轉每殊致
울퉁불퉁 기암괴석 여기 또 저기 / 磊磊奇石見
반짝반짝 흰 모래 덮이었는데 / 炯炯素沙被
깊은 물엔 비단 무늬 펼쳐져 있고 / 縠文布淵淪
빠른 여울 화살보다 한층 더 빨라 / 竹箭讓湍駛
구름 태양 번갈아 서로 비추니 / 雲日遞相照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치로구나 / 景氣多變異
뉘 알았으리 사행길 고달픔 속에 / 不謂原隰勞
강변의 은자 흥취 함께 누릴 줄 / 兼領滄洲事
평소부터 이런 정취 좋아했기에 / 平生篤斯好
감탄하며 깊은 마음 쏟아낸다네 / 喟焉注深寄
물길을 거스르며 어디 향하나 / 溯洄終何向
청풍 고을 한벽루(寒碧樓) 그곳이라오 / 碧樓在延跂

]가흥(可興) : 충청북도 중원군(中原郡) 가금면(可金面)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가흥창(可興倉)은 조창(漕倉)이 있던 곳으로, 경상도 북부의 여러 고을과 충청도 일원의 전세(田稅)를 이곳에 모아 남한강(南漢江)의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수송하였는데, 덕흥창(德興倉), 경원창(慶原倉)이라고도 한다.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기묘록 보유 하권(己卯錄補遺 卷下)

 

최운 전(崔澐傳)

 

최운(崔澐)은 □□생으로 자(字)는 운지(澐之)이다. 대대로 전의(全義)에 살았으며 일찍이 충암(冲庵 김정(金淨))과 같이 공부하였다. 무인년에 그 고을에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별과(別科)로 보관(補官)되었는데, 천목(薦目)에는, 지조와 행실이 바르고, 학식과 재행(才行)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제(下第)하여 황간 현감(黃澗縣監)이 되었다. 정사를 대범하게 다스리고 송사(訟事)는 사리에 맞으니 아전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따랐으며, 임금은 옷감 한 벌을 내려 격려하였다. 12월에 파직되어 고향에 근신하고 있었는데 경진년에 이신(李信)의 고사(告辭)에, “김 대사성(金大司成 김식(金湜))이 망명 중에 있을 때, ‘나를 받아줄 사람은 최운과 영해 부사(寧海府使) 이윤검(李允儉)뿐이다.’ 말한 바 있다.” 하였으므로, 체포되어 추국을 받고 전 가족이 강계(江界)로 추방되어 죽었다. 죄가 풀리자 그의 아내가 뼈를 가지고 돌아와 고향에 장사지냈다. 공이 일찍이 청풍(淸風) 한벽루(寒碧樓)에서 벗을 보내는 시를 지었는데,

 

머나먼 타관 길에 / 萬里關河路
나그네의 외로운 모습이여 / 羈危隻影微
바람은 성긴 버들 언덕에 많고 / 風多疎柳岸
낙엽은 늦은 산 석양빛에 떨어진다 / 葉落晩山暉
내 마음 산수에 쏠려 있고 / 山水情都在
저 일은 존망이 다 틀렸네 / 存亡事已違
고향이 이제 멀지 않으니 / 故園今不遠
행여나 더디 돌아갈까 저어하노라 / 錯莫欲遲歸

 

하였다.


 

 

 한강집 > 한강집 제9권 > 잡저(雜著) >

 

청풍(淸風) 한벽헌(寒碧軒)의, 원재 선생(圓齋先生)이 문절공(文節公) 주열(朱悅)의 운자를 따라 지은 시의 뒤에 쓰다.

 

동으로 뻗은 산줄기 해와 달을 맞이하고 / 列嶽東回賓日月
서쪽으로 쏟는 강물 구름 연기 토하누나 / 大江西注吐雲煙
청풍 고을 맑은 바람 쓸어안고 서울 가서 / 欲將一縣淸風去
솟을대문 대감님께 자랑 한번 해 볼까 / 須問黃扉閣老傳

 

문절공의 시이다.


 

해 지도록 송사 일로 괴롭히는 사람 없어 / 浹日無人煩訟牒
수시로 손님 맞아 차 연기 모락모락 / 有時迎客颺茶煙
바람 맑은 청풍 고을 산기슭에 얽은 초당 / 傍山茅屋淸風縣
한벽헌 그 이름이 상국 통해 소문났네 / 寒碧軒從相國傳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 정추(鄭樞)의 시이다.

 


선조의 문집에서 일찍이 이 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저번에 본 고을에 가서 누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벌여 있는 산줄기와 긴 강물이 마치 내 자신이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 듯 실감이 났다. 그런데 한참 동안 회상한 뒤에 보니 옛날의 편액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지금 이 시들을 판각하여 그 고을로 보내 걸어 놓게 함으로써 옛 자취를 보존하게 하였다.

청풍(淸風) …… 쓰다 : 원재 선생(圓齋先生)은 한강의 7대조인 정추(鄭樞)를 말한다. 자는 공권(公權)이며, 좌사의대부(左司蟻大夫) 정포(鄭誧)의 아들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뒤에 자를 이름으로 썼다. 주열(朱悅)은 충렬왕(忠烈王) 때의 문신으로 자는 이화(而和),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문절은 그의 시호이다. 본 글은 주열이 지은 충청도 청풍 고을의 한벽헌에 있던 시와 정추가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로 재직할 당시 그 운자에 따라 지은 시를 동시에 열거하고 이를 판각하여 다시 한벽헌에 걸어 놓게 한 전말을 간략하게 서술한 것이다.
상국(相國) : 주열(朱悅)을 가리킨다.

 

 

[원문]

 

寒岡先生文集卷之九

雜著

書淸風寒碧軒圓齋先生次朱文節公悅韻後

 

列嶽東回賓日月。大江西注吐雲煙。欲將一縣淸風去。須問黃扉閣老傳。文節公

浹日無人煩訟牒。有時迎客颺茶煙。傍山茅屋淸風縣。寒碧軒從相國傳。知淸風郡事鄭樞。

先祖集中。曾見此詩。頃到本郡。登樓觀賞。列峀長江。宛如當日。感想之餘。未見舊扁。今玆登板送揭。以存舊迹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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