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서지
권수제  춘당선생문집(春塘先生文集)
판심제  춘당선생문집(春塘先生文集)
간종  활자본(木活字)
간행년  1898년 간행
권책  4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2.2×17.4(cm)
어미  上下二葉花紋魚尾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도서번호  한46-가872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속 3
 저자
성명  오수영(吳守盈)
생년  1521년(중종 16)
몰년  1606년(선조 39)
 겸중(謙仲)
 춘당(春塘), 도암(桃巖)
본관  고창(高敞)
특기사항  이황(李滉)의 문인. 금보(琴輔), 이숙량(李叔樑), 조목(趙穆) 등과 교유
 가계도
 吳碩福
 縣監
 吳彦毅
 縣監
 眞城李氏
 參判 李堣의 女
 吳守貞
 
 安瓘의 女
 
 吳守盈
 
 全州柳氏
 柳應賢의 女
 吳漘
 寺正
 宋德崇의 女
 
 吳奫
 
 李惟仁의 女
 
 吳㵓
 奉事
 李希說의 女
 
 吳淦
 
 鄭元默의 女
 
 女
 
 全漑
 直長
 女
 
 權再成
 監正
 女
 
 琴
 僉樞
 女
 
 權晅
 
 女
 
 李瑒
 

기사전거 : 行狀(柳 撰), 墓碣銘(金㙆 撰), 家狀, 吳彦毅墓碣銘(李滉 撰, 退溪集 卷47), 高敞吳氏世譜 등에 의함
 행력
왕력 서기 간지 연호 연령 기사
중종 16 1521 신사 正德 16 1 9월 23일, 咸安 茅谷里에서 태어나다.
중종 20 1525 을유 嘉靖 4 5 宣城의 溫惠로 가서 외조부 李堣의 가르침을 받다.
중종 28 1533 계사 嘉靖 12 13 봄, 李滉과 조부, 부친이 檜山 月影臺에 유람하자 따라가다.
중종 31 1536 병신 嘉靖 15 16 李滉의 문하에 들어가다.
~ ~ ~ ~ ~ ~ ~ ○ 趙穆, 琴應壎과 淸凉山에서 독서하다. ○ 이황이 손수 써 준 「二程全書」를 받다.
중종 39 1544 갑진 嘉靖 23 24 4월, 周世鵬을 모시고 淸凉山을 유람하다.
명종 7 1552 임자 嘉靖 31 32 6월, 장남 吳漘이 태어나다.
명종 9 1554 갑인 嘉靖 33 34 3월, 차남 吳奫이 태어나다.
명종 10 1555 을묘 嘉靖 34 35 進士試에 합격하다. 韓濩가 試券을 보고 글씨를 칭찬하다.
명종 15 1560 경신 嘉靖 39 40 5월, 3남 吳㵓이 태어나다.
명종 19 1564 갑자 嘉靖 43 44 1월, 4남 吳淦이 태어나다.
명종 21 1566 병인 嘉靖 45 46 12월, 부친상을 당하다.
선조 3 1570 경오 隆慶 4 50 12월, 이황을 곡하다.
선조 6 1573 계유 萬曆 1 53 7월, 모친상을 당하다.
선조 10 1577 정축 萬曆 5 57 서울에 갔다가 외조부 李堣의 遮日巖詩를 얻어 차운시를 짓고 서문을 쓰다.
선조 19 1586 병술 萬曆 14 66 여름, 易東書院에서 「退溪集」을 찬집하다.
선조 26 1593 계사 萬曆 21 73 11월, 부인상을 당하다.
선조 31 1598 무술 萬曆 26 78 淸吟石을 유람하다.
선조 34 1601 신축 萬曆 29 81 〈退溪先生履歷草記〉를 짓다.
선조 38 1605 을사 萬曆 33 85 龍驤衛 副護軍이 되다.
선조 39 1606 병오 萬曆 34 86 12월 2일, 溫惠에서 졸하다.
선조 40 1607 정미 萬曆 35 1월 11일, 羊坪에 장사 지내다.
순조 9 1809 기사 嘉慶 14 軍威의 南溪書院에 봉안되다.
고종 35 1898 무술 光武 2 11대손 吳鼎洛이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다.

기사전거 : 行狀(柳 撰), 墓碣銘(金㙆 撰), 家狀, 本集內容 등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는 松齋 李堣의 외손으로 외조부에게 학문을 배우다가 李堣의 조카 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진사시에 합격한 후 출사하지 않았다. 李叔樑, 琴輔와 ‘宣城三筆’로 칭해질 만큼 글씨에 뛰어났다.
저자의 저술은 병란과 집안의 화재로 다만 詩稿 5, 6권만 가장되어 있었다. 저자의 6대손 吳尙潝이 유집을 가지고 柳에게 교정을 부탁하고 1804년 柳에게 행장을, 1806년 金㙆에게 묘갈명을 부탁하였으나, 간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저자의 11대손 吳鼎洛(1871~1932)이 李晩寅의 刪定을 받아 2책으로 만들고 1898년 許薰, 李晩由, 琴佑烈에게 跋文을 받아 木活字로 인행하였는데, 이때 후손 吳相洛, 吳秉奎, 吳秉麟, 吳秉德이 같이 참여하였다.《초간본》 이 본은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872), 장서각(D3B-1903),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385), 성균관대학교 존경각(D3B-1380)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97년 春塘先生文集國譯刊行委員會에서 국역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저자의 11대손 吳鼎洛이 蒐集 編次하고 李晩寅의 산정을 받아 1898년 목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다.

기사전거 : 行狀(柳 撰), 墓碣銘(金㙆 撰), 家狀, 跋(許薰ㆍ李晩由ㆍ琴佑烈 撰) 등에 의함
 구성과 내용
본집은 4권 2책이다. 서문은 없고 권수에 目錄이 실려 있다.
권1은 詩(147題)이다. 대체적으로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스승이나 동문의 시를 차운한 시, 다른 이에게 준 시 등이 대부분이고 만시가 몇 편 있다. 〈會飮射亭〉은 가을의 황량한 분위기를 읊은 것이다. 〈寄琴士任〉은 적적한 심사를 읊어 琴輔에게 준 것이다. 〈次朴監司紫溪洞十六絶〉은 龍湫, 洗心臺, 獨樂堂, 觀魚臺, 澄心臺 등 紫溪洞의 절경을 읊은 것이다. 〈桃村三絶口號〉는 옛 시인 朴致安이 살았던 도촌의 月明潭, 鳴巖, 鶴頂臺의 정경을 읊은 것이다. 만시는 柳仲淹, 李秀枝, 李滉 등에 대한 것이다.
권2는 詩(144題)이다. 〈寄李大用〉은 李叔樑에게 준 시로 늙고 백발이 성성한 자신을 한탄한 것이다. 〈四美亭六景〉은 李憑이 지은 사미정의 경관을 읊은 것이다. 〈寄徐應會〉는 徐千一에게 준 시로 임진란이 일어나 임금은 義州로 파천하고 세자는 江華로 피란한 처참한 실상을 말한 것이다. 〈聞平壤勝捷喜而作〉은 明의 원군이 평양성에서 이긴 일을 듣고서 지은 것이다. 〈東都懷古〉는 新羅의 천년 사직이 망해 인물은 간데없고 靈妙寺 종소리만 들리고 있는 쓸쓸함을 읊은 것이다.
권3은 詩(72題), 序(3), 識(1), 祭文(3)이다. 〈松堂贈鄭正郞景任〉은 송당의 정경을 읊어 鄭經世에게 준 것이다. 〈過花巖〉은 일찍이 李滉과 유람할 때 자신이 花巖이라 이름 지은 곳을 지나며 옛 생각에 잠겨 지은 것이다. 〈寄定州牧使曺士友〉는 정주 목사로 있는 曺好益에게 준 시로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敬次外王父松齋先生遮日巖詩序〉는 외조부 李堣의 遮日巖詩를 얻고서 지은 차운시에 대한 것이다. 〈寄示李景亮李汝誠澐姪詩序〉는 桃巖에 대한 시를 지어 李景亮, 李汝誠, 조카 吳澐에게 준 시에 대한 것이다. 〈次贈宗師詩軸序〉는 외조부의 「松齋集」을 간행할 때 刻手로 참여한 宗師의 시축에 지어 준 시에 대한 것이다. 〈追和退溪先生與王父遊月影臺韻後識〉는 「退溪集」을 찬집하면서 1533년에 이황과 조부, 부친이 月影臺에서 유람하며 지은 시를 발견하고 감회를 느껴 화운해 지은 것에 대한 것이다. 제문은 1571년 3월 이황 장례시에 지은 것과 李冲, 李憑에 대한 제문이다.
권4는 〈退溪先生履歷草記〉와 附錄이다. 〈退溪先生履歷草記〉는 1501년 이황이 태어난 해부터 1596년 奇大升이 지은 誌石을 묻은 것까지 연보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부록은 이황이 龍壽寺에서 지어 준 시, 落帽峯에서 저자의 운을 차운해 지어서 준 시 등 4수, 柳가 지은 行狀, 金㙆이 지은 墓碣銘, 家狀, 金熙周가 1809년에 지은 〈南溪祠奉安文〉, 成彦檝이 지은 常享祝文이다.
권말에 1898년에 許薰, 李晩由, 琴佑烈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필자 : 김은정(金恩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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