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闍婆)의 칼. 전배(前輩)의 운(韻)을 쓰다.

 

 가정집(稼亭集) > 가정집 제14권 > 고시(古詩)

 

동쪽으로 접해로부터 서쪽으로 봉파까지 / 東自鰈海西蓬婆
육지엔 요기(妖氣)가 없고 바다엔 파랑(波浪)이 없다 / 野無氛祲水無波
이 어찌 용이 날아오르매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아 / 此豈龍飛萬物覩
은택이 금수와 수중 동물까지 미친 덕분이 아니리오 / 澤及禽獸兼蛟鼉
명당이 크게 열려 왕도 정치를 펼치나니 / 明堂大闢布王政
서기(瑞氣)가 무성하게 사아 주위에 감도누나 / 鬱蔥佳氣纏四阿
요 임금 백성들 희희하여 스스로 오변하니 / 堯民熙熙自於變
어찌 인의로 수고롭게 점마할 것이 있으랴 / 寧將仁義勞漸摩
인민이 기약하는 것은 단지 경착하는 일뿐 / 黔蒼但期事耕鑿
반백의 노인이 차과를 또 알지 못한다오 / 班白不復知差科
성조가 이제는 무력을 잘 행사하지 않지만 / 聖朝雖已不好武
일이 있으면 창칼을 비껴들어야 하고말고 / 有事徑須橫劍戈
땋은 머리 풀지 않은 저 조그만 사바 나라 / 蕞彼闍婆不解辮
얕고 좁은 식견이 관려에 비교할 수도 없네 / 淺狹那容比管蠡
회음이 부월(斧鉞)을 받고 자방이 작전을 세우고 / 淮陰受鉞子房籌
군량이 모자란 것은 소하의 힘을 빌렸다네
/ 餉饋不及煩蕭何
돛 올리고 북 울리며 거친 파도 헤치고서 / 張帆擊鼓駕高浪
송골매가 신라를 지나듯 빠르게 진격하였다오 / 疾如鷂子逾新羅
남만(南蠻)의 임금은 단지 항복의 깃발을 들 수밖에 / 蠻君徒自豎降旌
고황의 형세 군박해서 손쓸 수 없는 걸 어떡하나 / 膏肓勢窘難醫痾
사방을 포위한 중국 군대 물처럼 적요한 가운데 / 漢軍四擁寂如水
초가를 듣고 장막 아래 얼굴 가리며 울었다오 / 帳下掩泣聞楚歌
개선(凱旋)할 때 누군가 가지고 온 보검 하나 / 班師誰得寶刀來
방금 간 것처럼 북두성 무늬도 선명해라 / 斗文赫赫如新磨
용처럼 가끔 신음도 하고 자기도 내쏘는지라 / 龍吟有時紫氣迸
정원 나무에 깃들인 새도 놀라 떨어진다네요 / 棲禽驚墮庭之柯
온 천하가 한집안이 된 뒤로부터 / 自從六合爲一家
서쪽 보물 남쪽 재화 산하를 통행하지만 / 西賝南貨通山河
사바의 이 명검과 어떤 물건이 견줄까 / 闍婆之刀孰與竝
자격도 없이 허리에 차면 칼이 질책하는지라 / 佩非其人刀所呵
간사한 자는 가슴이 떨려 바로 보지도 못하나니 / 姦邪寒心敢正看
그래서 다른 보물들과 이 칼이 다른 줄 알겠노라 / 故知此物殊於他
요컨대는 시를 지어 뒷면에 새겨 둠으로써 / 要當作詩銘其背
천년토록 이 보검에 딴소리 없게 해야 하리 / 千年爲寶傳無訛
차가운 역수에 갈바람 물결을 일으키며 / 秋風吹波易水寒
장사 한번 떠나고는 형가 같은 장부 없어
/ 壯士一去無荊軻
서생 이 칼 대하고서 괜히 탄식을 발할 뿐 / 書生對此空嘆息
머리 위 해와 달만 북처럼 빨리도 내달리네 / 頭上歲月如飛梭

사바(闍婆) : 지금의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나라 이름으로, 사바바달(闍婆婆達)의 준말이다.
접해(鰈海) : 가자미〔比目魚〕가 나는 바다라는 뜻으로, 동해(東海)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고려를 의미한다.
봉파(蓬婆) : 토번(吐蕃)에 속한 산 이름으로, 대설산(大雪山)이라고도 하는데, 현 중국 사천성(四川省) 무현(茂縣) 서남쪽에 있다.
이……우러러보아 : 군신이 의기투합하여 선정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오(九五)〉에 성군과 현신이 만나는 것을 비유하여 “용이 날아올라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고 하였고, 다시 〈문언(文言) 구오(九五)〉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나니, 성인이 나오시면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게 마련이다.〔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라고 하였다.
사아(四阿) : 기둥이 넷이고 지붕이 사각추(四角錐) 형태로 된 건물을 말하는데, 보통 태묘(太廟)와 명당(明堂) 등에서 볼 수 있다.
요(堯) 임금……오변(於變)하니 : 백성들이 요순(堯舜)과 같은 성군의 덕에 힘입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노자(老子)》 20장에 “사람들 화락한 모양이, 흡사 진수성찬을 먹은 듯도 하고 봄 누대에 오른 듯도 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는 말이 나오고, 《서경》 〈요전(堯典)〉에 “백성들이 성군의 덕에 크게 감화된 나머지 온 누리에 화평한 기운이 감돌았다.〔黎民於變時雍〕”라는 말이 나온다.
어찌……있으랴 : 백성들을 교육시켜 교화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도덕이 갖추어졌다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에 “태학을 세워 국도에서 가르치고 상서를 세워 고을에서 교화하되, 인으로 백성들이 젖어들게 하고 의(義)로 백성들을 단속하게 해야 한다.〔立大學 以敎於國 設庠序 以化於邑 漸民以仁 摩民以誼〕”라는 말이 나온다.
경착(耕鑿) : 밭 갈고 우물 판다는 말로, 여기에도 태평 시대를 구가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샘을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
차과(差科) : 차역(差役)과 과세(科稅)의 준말이다.
땋은……사바 나라 : 사바국이 변발(辮髮)하는 자기의 풍속을 고쳐서 중국인의 복식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말로, 중국에 귀순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남조 양나라 구지(丘遲)의 〈여진백지서(與陳伯之書)〉에 “야랑과 전지에서 땋은 머리를 풀고 중국의 관직을 청했다.〔夜郞滇池 解辮請職〕”라는 말이 나온다.
관려(管蠡) : 국량과 견식이 협소하고 천박한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한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바가지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筦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45》
회음(淮陰)이……빌렸다네 :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과 같은 야전사령관과 자방(子房) 장량(張良)과 같은 작전 참모와 소하(蕭何)와 같은 군수(軍需) 책임자 등으로 구성된 한나라 삼걸(三傑)에 비견되는 유능한 조정 신하들이 합동으로 정벌을 수행하였다는 말이다.
신라를 지나듯 : 어떤 상황이 신속하고 민첩하게 전개되거나, 혹은 한 생각이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빠져들 때 쓰는 표현으로, 원래 선가(禪家)에서 나온 말이다. 한 승려가 ‘금강 일척전(金剛一隻箭)’에 대해서 묻자, 조사(祖師)가 “그 화살이 벌써 신라를 지나갔다.〔過新羅國去〕”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비롯해 많은 선서(禪書)에 등장한다. 소식(蘇軾)의 시에도 “나의 삶 역시 자연의 변화 따라 밤낮으로 물처럼 흘러가나니, 찰나의 한 생각이 신라를 이미 지나간 것을 앉아서 깨닫겠노라.〔我生乘化日夜逝 坐覺一念逾新羅〕”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7 百步洪》
고황(膏肓)의 형세 : 중국 군대가 사바국의 심장부인 도성에까지 진입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진 경공(晉景公)의 꿈에 병마(病魔)가 더벅머리 두 아이로 변해 고황에 들어갔는데, 결국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물처럼 적요한 가운데 : 군율(軍律)이 엄숙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초가(楚歌)를……울었다오 :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우 미인(虞美人)과 함께 비가(悲歌)를 불렀던 항우(項羽)처럼, 사바국의 임금도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서 망국의 슬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용처럼……내쏘는지라 : 전욱(顓頊)이 예영(曳影)이라는 명검을 써서 사방을 정벌하였는데, 그 검을 사용하지 않고 상자 속에 보관하고 있을 때에는 ‘용과 범이 신음하는 듯한 소리〔如龍虎之吟〕’가 새어 나왔다고 한다. 《拾遺記 顓頊》 또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풍성(豐城) 땅에 묻혀 있으면서 밤마다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자기(紫氣)를 쏘아 발산했다는 전설이 있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차가운……없어 : 전국 시대의 자객 형가(荊軻)가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떠날 적에 역수(易水) 가에서 축(筑)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의 반주에 맞추어 “바람결 쓸쓸해라 역수 물 차가운데, 장사 한번 떠나 다시 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비장한 노래를 부르고 작별한 ‘역수한풍(易水寒風)’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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