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결(睡訣)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59)
오주연문장전산고 >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 1 - 인사류 1 > 성행(性行)
내가 젊을 적에는 너무나도 잠꾸러기여서 베개에 귀만 붙이면 벌써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잠을 잘 때면 그 맛이 달콤하기가 마치 냉이[薺]와 같았고, 실컷 자고 일어나면 정신이 말끔하여 마치 진수 성찬(珍羞盛饌)을 실컷 먹은 것처럼 마음이 만족하고, 마치 무엇을 얻은 것처럼 두 눈이 배나 밝아지며, 어쩌다 한 번 잠을 설치면 머리가 흔들리고 혓바닥이 깔끄러우며, 심기(心氣)가 피곤하고 두 눈이 깜깜하여 종일토록 마치 자주 굶은 사람처럼 되어버리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불경(佛經)에 이른바 ‘눈은 잠자는 것을 밥으로 삼는다.[眼以睡爲食]’는 뜻을 알았다.
그런데 50세가 지나서는 항상 무엇을 염려한 듯이 잠을 못 이루는데, 혹은 마치 환어(鰥魚)가 눈을 감지 못한 것처럼 무우(無耦 짝이 없어 외로움)의 예증(例症)으로 빌미를 돌리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대체로 노쇠하여 기혈(氣血)이 고갈(枯渴)된 소치이므로, 매양 잠 잘자는 옆사람을 부럽게 여긴다. 그 코를 골며 쿨쿨 자는 방법을 얻으려 하나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요즘에는 고현(古賢)의 수결(睡訣)을 얻어서 따라 배운다. 손사막(孫思邈)의《천금방(千金方)》에 이르기를,
“기분 좋을 만큼 술을 마시고 혼자 자면서 유연하게 베개를 베고 발을 따습게 덮으면 마음이 안정되어 저절로 눈이 감긴다.[半醉酒 獨自宿 軟枕頭 煖蓋足 能息心 自暝目]”
하였고, 서산(西山) 채계통(蔡季通)의 수결(睡訣)에는 이르기를,
“잠을 잘 때는 옆으로 누워 몸을 굽게 하고, 깨서는 몸을 바르게 하여 펴며, 때에 따라서 일찍 자기도 늦게 자기도 하고, 먼저 마음을 재운 다음 눈을 재운다.[睡側而屈 覺正而伸 早晩以時 先睡心後睡眼]”
하였는데, 회암선생(晦庵先生 회암은 주희(朱熹)의 호)은 이를 가리켜 ‘고금에 발명하지 못한 묘(妙)이다.’고 하였다.
무림(武林) 황여형(黃汝亨)의《우림청언(寓林淸言)》에 이르기를,
“내가 병중(病中)에 잠을 못 이루다가 인하여 한 가지 방법을 깨달아 잠을 자고는 수결(睡訣)을 지었으니 ‘눈을 아래로 드리우되 아래에 붙이지 말고, 마음을 안으로 향하되 안에서는 법이 없이 하며,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지도 않는 것이 청정의 즐거움이요, 몸과 마음을 여의는 것이 큰 화락이다.[目垂下下無着 心向內內無法 不思不想淸淨樂 遺身遺心大和樂]’고 했다. 이 밖에 다시 수련가(修煉家)의
좌우 무기수(左右戊己睡)를 배우려고 하나, 또한 어렵다.”
하였다.
송(宋) 나라 나점(羅點)의《문견록(聞見錄)》에 이르기를,
“도추(道樞 도의 추요(樞要)한 곳)의 설(說)은 해박하되 요점이 적다. 왕청숙(王淸叔)은 말하기를 ‘용호교(龍虎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하였는데, 그의 설(說)에 의하면 사시(巳時)와 오시(午時)에 사려(思慮)를 끊고 거짓 잠을 자면 용호(龍虎)가 서로 교합하여 수양(修養)할 겨를이 없다.’ 하였다. 그의 총희(寵姬)가 일찍이 골증(骨蒸 허로 내열(虛勞內熱)의 증상(症狀))을 앓았는데, 이 방법을 사용한 지 10일 뒤에는 허리[腰] 부분이 마치 불을 쬔 것처럼 따뜻한 감을 느끼게 되면서 병이 저절로 나았다고 했다.”
하였다. 그윽이 내가 그 방법을 본받고 싶으나, 심력(心力)이 없으니 어떠하겠는가. 끝내 숙수(熟睡 잠을 실컷 잠)의 낙(樂)이 없기 때문에 다시 송(宋) 나라 상산(湘山) 정경망(鄭景望 경망은 정백웅(鄭伯熊)의 자)의《몽재필담(蒙齋筆談)》에 기록된 한 조목을 초(抄)하여 스스로 비유하고자 한다. 그 설(說)에,
“내가 중년기(中年期)에 잠이 적어졌으니, 대개 노인(老人)의 일정한 증상이므로 괴이할 것은 없다. 그런데 밤마다 잠을 자다가 한밤중만 지나면 깨어서 문득 다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보면, 가슴속에는 이미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서 자못 심지(心志)가 화열(和說)하고 신기(神氣)가 안정되어 무어라 이름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때로 쥐가 찍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또한 한 가지 낙사(樂事)가 되기에 족하다. 문간방의 늙은 종은 코를 고는 소리가 마치 우레 소리와 같으며, 가끔 또 잠꼬대를 하는데 혹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성을 내기도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하여, 매양 입을 벌리고 있으니, 생각건대 그는 또한 반드시 스스로 얻은 것이 있다고 여길 것이되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내가 일찍이 영천(穎川)에 있을 때, 막 한림(翰林)에서 면관(免官)되어 선군(先君)께서 원[倅]이 되어 계시므로 그곳에 귀양(歸養)차 가 있었는데, 후원(後園)의 삼간(三間) 소실(少室)에 거처하니, 곁에는 아무 이웃이 없고 좌우(左右)에는 오직 한 점(點)의 마음이 이와 같을 뿐이었다.
일찍이 시(詩)를 지어,
성 머리 새벽 누수 소리는 정정히 울리는데 / 城頭曉漏鳴丁丁
문창에 달 져서 밝지 않구려 / 窓間月落却未明
형양의 기러기는 회안봉(回雁峯)을 넘으려 하고 / 衡陽歸鴈過欲盡
여남의 닭은 막 한 번 우는구나 / 汝南荒鷄初一鳴
유유한 끊어진 꿈은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 悠悠斷夢了不記
초초한 읊조림만 도리어 혼자 이루누나 / 草草微吟還獨成
인생의 득의처가 얼마나 될 것인가 / 人生得意須幾許
잠 한숨 넉넉히 자고 나면 다른 생각 없다네 / 一睡稍足無餘情
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있은 지 지금 40년이 되었지만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나는 매양 스스로 생각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평생 동안에 크게 뜻을 얻은 곳을 제외하고는 대범 이와 같은 데에 불과할 것이요, 다만 이 한 가지 지(知)를 보전하고 있을 뿐이다. 불(佛)과 바사닉왕(波斯匿王)이 항하수(恒河水)를 본 것에 대해 논한 것이 묘미가 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온릉(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의 비구(比丘) 계환(戒環)의《수능엄경해(首楞嚴經解)》에 이르기를, ‘불(佛)이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고하기를「네가 끝없이 변화 천개(變化遷改)하는 것을 보았으면 너의 멸(滅)도 또한 멸(滅)의 시기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니, 너는 네 몸 가운데 불멸(不滅)이 있는 줄을 아는가.」하자, 바사닉왕이 합장(合掌)하고 불(佛)에게 사뢰기를「나는 실로 알지 못합니다.」하니, 불이 말하기를「내가 지금 너에게 불생(不生), 불멸(不滅)의 성(性)을 보여주겠다. 대왕(大王)아, 네가 몇 살 때에 항하수(恒河水)를 보았느냐?」하므로, 대왕이 말하기를「내가 세 살 적에 어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기바천(耆婆天)을 뵈러 가면서 이 강(江)을 경과하였는데, 그때에 곧 이것이 항하수(恒河水)임을 알았습니다.」하였다. 불이 말하기를「대왕아, 네 말과 같다면 20세가 되었을 때는 10세 때보다 노쇠했을 것인데, 60세에 이르러서는 일월(日月)과 세시(歲時)가 일찰라일찰라마다 변천(變遷)하였을 것이니, 네가 3세 때에 이 항하수를 볼 때와 나이 13세에 이르러 항하수를 볼 때에 그 물이 어떻게 보이던가?」하니, 대왕이 말하기를「13세 때에도 마치 3세 때에 본 것과 완연하게 다름이 없었고, 62세인 금년(今年)에 이르러서도 또한 다름이 없습니다.」하였다. 불이 말하기를「너는 지금 스스로 머리 희어 지고 얼굴 쭈그러진 것을 슬퍼하는 것은 그 얼굴이 반드시 동년(童年)보다 쭈그러진 것 때문이니, 네가 지금에 이 항하를 보는 것이 옛날 동년 시절에 이 항하를 보았던 것과 동모(童耄 아이 때와 늙었을 때)의 차이가 없겠는가?」하자, 대왕이 말하기를「아니올시다. 세존(世尊)이시여.」하니, 불이 말하기를「대왕아, 네 얼굴은 비록 쭈그러졌지만, 정성(精性)만은 일찍이 쭈그러지지 않았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變)하는 것이요,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며, 변하는 것은 멸(滅)을 받고 저 변하지 않는 것은 원래 생(生)과 멸(滅)이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그 가운데에 너의 생사(生死)를 받아가지고 오히려 저 말가리(末伽梨 불견도(不見道)의 뜻으로 곧 우매한 사람을 말함) 등을 끌어다가,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전멸(全滅)한다고 하느냐?」하므로, 대왕이 이 말을 듣고서, 죽은 뒤에는 이 생(生)을 버리고 저 생을 취하게 되는 것을 알고는, 여러 대중(大衆)과 함께 뛰면서 즐거워하여 더없는 기쁨을 얻었다.’ 하였는데, 그 주해(注解)에 의하면 ‘기(耆)는 장수천(長壽天)을 말한 것이고, 말가리(末伽梨)는 곧 가고라(迦觚羅)의 무리로서 가전라지자(迦旃羅胝子)인데 외도(外道)에 집착하는 것이다.’ 했다.”
하였다.
그의 설(說)은 자자 구구(字字句句)가 모두 잠 못 이루는 나의 형상과 같으니, 무수화(無睡畫 잠 못 이루는 형상을 그림에 담은 것)라고도 칭할 만하다.
감주(弇州 왕세정(王世貞)의 호)가 말하기를,
“손 선생(孫先生) 손사막(孫思邈)이다. 을 따라가서 환약(丸藥) 두어 개를 얻어다가 도상(道上)의 빈자(貧者)를 구하고, 돌아와서 희이(希夷 진단(陳摶)의 호)의 베개[枕] 하나를 빌어다가 오룡 수법(五龍睡法)을 전하고 싶다.”
하였고, 감릉(甘陵) 손서(孫緖)는 말하기를,
“손 선생(孫先生)의 환약 두어 개가 진 선생(陳先生)의 베개 하나만 못하다.”
하였는데, 나도 그렇게 여긴다.
좌우 무기수(左右戊己睡) : 잠자는 데 대한 오행상(五行上)의 논리(論理)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