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山水蒙




山水蒙
蒙 어두울 몽. ㉠어둡다 ㉡어리석다 ㉢어리다 ㉣무릎쓰다 ㉤덮다 ㉥받다 ㉦속이다 ㉧입다 ㉨괘 이름 ㉩몽고
童蒙 어려서 아직 사리(事理)에 어두운 아이. 미성년(未成年)의 소년(少年)
艮 괘 이름 간/그칠 간, 은 은 ⓐ은(銀) (은) ㉠괘 이름 ㉡한계(限界) ㉢그치다, 멈추다 ㉣한정하다(限定--)
㉤어렵다, 가난하다 ㉥머무르다
[주] 산수몽(山水蒙): 감은 하괘이고 간은 상괘, 간 역시 3으로 그려져 있어 괘의 이름이 되었다.
2음의 위에 1양이 멎어 있어 그 덕은 멎어 있고 산으로서 본뜨고 있는데 몽매(蒙昧)함을 나타낸다.
괘로서 감이 간을 만나면 산아래 험난하고 어둔 땅이 있다는 것이고, 안에서 험난하고 밖에서 멎어 있는게
몽의 뜻이다. 때문에 괘의 이름은 몽(산수몽)이라 했다.
*초서고(初筮告): 서는 산가지, 최초의 문점
*독(瀆): 더렵혀지다.
山水蒙(4, 雜而著)
大義 : 果行育德, 文明教化(師道尊嚴).
[참고 : 師道]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무엇이 세상을 善하게 만듭니까?”하니 스승이 그러한다고 답하였다.
“무슨 뜻입니까?”하고 묻자 “性이라는 것은 剛柔善惡과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中의 다섯 가지 일뿐이다”고 답하였다.
중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강한 것 가운데의 善은 의로움, 올곧음, 단호함, 엄하고 굳셈, 줄기가 단단한 것이고(爲義爲直爲斷爲嚴穀爲幹固),
惡은 사나움, 편협함, 強暴함이다(爲猛爲隘爲強梁).
柔한 것 가운데 善은 인자함, 순종함, 공손함이고(爲慈爲順爲巽),
惡은 나약함, 무단함, 사특함이다(爲懦弱爲無斷爲邪佞).
오직 中만이 調和이고, 中道이며, 천하에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도이며 성인의 행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가르침을 세우되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惡을 바꾸어 中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깨우친 사람은 뒤에 깨우칠 사람을 깨우쳐 주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밝음을 찾아야 스승의
도가 확립된다. 師道가 바로서면 선한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한 즉 조정이 바르게 되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通書]
穀 곡식 곡, 어린아이 누 ⓐ어린아이 (누) ⓑ젖 (누) ⓒ젖 먹이다 (누) ㉠곡식(穀食) ㉡녹(祿), 복록(福祿) ㉢녹미(祿米: 녹봉으로 받는 쌀) ㉣정성(精誠) ㉤기르다, 양육하다(養育--) ㉥살다,
強 강할 강
隘 좁을 애, 막을 액 ⓐ막다, 저지하다(沮止--) (액) ⓑ방해하다(妨害--) (액) ⓒ제한하다(制限--) (액) ⓓ멀리 떨어지다 (액) ㉠좁다, 협소하다(狹小--) ㉡곤궁하다(困窮--) ㉢험하다(險--) ㉣가득 차다 ㉤요해처(要害處)
懦弱 의지(意志)가 굳세지 못함 .
懦 나약할 나, 겁쟁이 유 ⓐ겁쟁이 (유) ⓑ나약하다, 여리다 (유) ⓒ무기력하다 (유) ⓓ부드럽다, 유연하다 (유) ⓔ낮다, 낮아지다 (유) ㉠나약하다, 여리다 ㉡무기력하다 ㉢부드럽다, 유연하다 ㉣낮다, 낮아지다 ㉤겁쟁이
佞 아첨할 녕(영) ㉠아첨하다(阿諂--) ㉡간사하다(奸詐--) ㉢(말을)잘하다 ㉣미혹하다(迷惑--), 홀리다 ㉤유약하다(柔弱--), 부드럽다 ㉥재능(才能), 재주 ㉦말재주 ㉧아첨(阿諂)하는 사람 ㉨바르지 못함 ㉩위선(僞善)
[풀이] 몽은 동몽 유치 몽매의 형상이므로 교육에 의해 그 몽이 계발되면 형통한다.
교육의 이상은 나 즉 스승의 자로부터 구하여 어린이에게 가르치는게 아니고, 자제 동몽의 쪽에서
자청하여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는데 있다. 점의 경우에도 성의를 다한 최초의 문점(問占)에는 답을 얄려
주어야 하겠지만 두번 세번 점을 되풀이 한다면 복서의 신성함이 더렵혀지므로 알릴것이 못된다.
이는 정정의 태도를 견지하는게 좋다.
[蒙卦의 卦畫은 革卦에서 유래한다. 혁괘의 괘변에서 초육변은 鹹卦, 구이변은 大過卦, 육삼변은 困卦, 육사변은 坎卦, 육오변은 師卦, 상구변은 蒙卦이니 몽괘는 곧 상구의 괘형으로 변화를 이룬 후의 결과이다.
또한 蒙卦는 屯卦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설괘전에서 屯은 始生을 뜻하는데 物이 初生하면 반드시 幼小하므로 둔괘의 뒤를 몽괘가 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어리면 반드시 無知하고 無知하면 반드시 우매한 일을 저지른다.
그러므로 몽괘의 주제는 바로 우매무지한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고 대우할 것인가이다.
역사적 결과에서 보면 혁명이 이루어진 후에 있어서 우매무지한 자는 바로 周族에게 정권을 빼앗긴 후의
상나라 유족이 될 것이다.편자].
鹹 짤 함/다 함 ㉠짜다 ㉡소금기가 있다 ㉢두루 미치다 ㉣널리 미치다 ㉤같다 ㉥부드러워지다 ㉦물다 ㉧씹다 ㉨차다 ㉩충만하다 ㉪덜다 ㉫줄이다 ㉬다 ㉭모두 ㉭함괘
산 아래 험난한 물이 있다. 험난하여 갈 바를 모르고 멈춰 있는 상태가 蒙(몽)괘의 상징이다.
蒙(몽)은 蒙昧(몽매)하다는 뜻이다. 몽매한 상태에서는 오직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형통할 수 있는 도리를 수행한다면 때에 적중한 시책이 될 것이다. 발전할 것이다.
몽매한 童蒙(동몽)을 교육하는 방법은 동몽이 스스로 선생에게 배우기를 원하는 의욕이 생기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선생이 어린이에게 배우기를 강요하는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 그리하여야만 선생과 제자는 배우고 가르치는 데 서로 마음이 호응할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배우는 자가 선생의 가르침을 믿게 하는 데 있다. 어린이의 몽매를 깨우쳐 주는 데는 처음 한 번 한 말을 변경하지 말고 한결같아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속에 신념을 가지게 된다. 말을 두 가지 세가지로 바꾸면 어린이의 의심은 더욱 혼란하여지면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점치는 경우과 같다. 전일한 마음으로 한번 점치면 최초의 점에서 진실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두번 세번 같은 점을 되풀이한다면 이것은 점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바른 계시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蒙의 도로써 바른 덕성을 기르는 것은 곧 성인의 길에 들어 가게 하는 공이 되는 것이다.
【傳】蒙,序卦,屯者,盈也,屯者,物之始生也,物生必蒙,故受之以蒙,蒙者,蒙也物之穉也,屯者,物之始生,物始生,穉小,蒙昧未發,蒙所以次屯也,爲卦,艮上坎下,艮,爲山爲止,坎,爲水爲險,山下有險,遇險而止,莫知所之,蒙之象也,水必行之,物始出,未有所之,故爲蒙,及其進則爲亨義.
穉 어릴 치. ㉠어리다 ㉡유치하다 ㉢작다 ㉣늦다 ㉤더디다 ㉥오만하다(傲慢--) ㉦어린 벼 ㉧작은 벼 ㉨만생종(晩生種) ㉩치자(稚子: 열 살 전후의 어린아이)
蒙昧 어리석고 어두움
[서괘전]屯은 천지간에 기운이 충만함이니 만물의 始生이다. 만물이 처음 생겨나면 어려서 무지하기 때문에 몽괘로 받았다(몽은 몽매하고 어린것이다. 둔은 物의 시생이고 物이 처음 생겨나면 어리고 몽매한 상태이므로 둔괘의 다음이 되었다). 본주가 艮上坎下이다. 艮의 뜻은 산이고 그침(止;고요함)이며 坎은 물(水)이고 위험(險)이므로 산 아래에 위험이 있고, 위험을 만남에 그쳐서 갈 곳을 모르는 것이 몽의 象이다. 물은 반드시 흐르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 솟아나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때는 몽이지만, 이내 흐르게 되면 곧 형통하는 뜻이 있다.
蒙卦는 <序卦傳>에 “屯은 가득함이요, 屯은 물건이 처음 생겨난 것이니, 물건이 나면 반드시 어리다. 그러므로 蒙卦로 받았으니, 蒙은 어림이니, 물건이 어린 것이다.” 하였다. 屯은 물건이 처음 생겨난 것이니, 물건이 처음 나와 어려서 몽매하여 개발되지 못했으니, 蒙卦가 이 때문에 屯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卦됨이 간이 위에 있고 감이 아래에 있으니, 艮은 山이 되고 그침이 되며, 坎은 물이 되고 험함이 된다. 산 아래에 험함이 있으니, 험함을 만나 그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蒙의 象이다. 물은 반드시 가는 물건이나 처음 나와서 갈 바가 없으므로 蒙이 된 것이니, 나아감에 미치면 형통하는 뜻이 된다.
蒙 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初筮 告 再三 瀆. 瀆則不告 利貞.
亨 형통하다. 여기서는 교육울 통해 무지가 게발되다. 또는 깨우치다.
童蒙 무지한 어린아이
筮 신한테 吉凶, 禍福을 묻는 占.
告 신의 계시를 말한다.
瀆 도랑 독/더럽힐 독, 구멍 두 ⓐ구멍(竇) (두) ⓑ땅 이름 (두) ⓒ고랑 (두) ㉠도랑 ㉡더럽히다 ㉢업신여기다 ㉣깔보다 ㉤버릇없이 굴다
蒙亨(몽형) : 몽은 형통하니
匪我求童蒙(비아구동몽) : 동몽을 구함이 아니라
童蒙求我(동몽구아) : 동몽이 나를 구함이니,
初筮告(초서고) : 처음 점치거든 알려주고
再三瀆(재삼독) : 주번 세번하면 더럽히는 것이라.
瀆則不告(독칙불고) : 더럽힌 즉 알려주지 말지니
利貞(이정) :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蒙은 형통하다. 내가 童蒙을 찾는 것이 아니고 동몽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誠意를 다하여 초심으로 물어오면 깨우쳐 주고, 거듭(再三)으로 묻는 것은 불손함이니 瀆蒙은 깨우칠 수 없다. 점이 이롭다.
蒙 : 어리다(穉=稚), 어리석다(愚昧)=>童蒙 : 어려서 사리에 어두운 아이. 순수한 초심자.
蒙은 說文에 王女라 하였으며, 주석에 소나무겨우살이(女蘿)의 별명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蒙은 일종의 가냘
프고 작은 草本의 기생식물이다. 옛날 사람들이 이러한 幼小한 특징을 사람에 비유하여온 것이다.
특히 그 생장방식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타 식물에 기생하여 자란다는 면에서 昏暗(陰暗)、愚昧、無知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童은 어린아이(8세 이상 15세 이하의 남녀아이)라는 뜻과 奴隸(得童僕貞:旅卦)라는 뜻이 있다.
또한 초목이 없는 민둥산(童土 : 山無草木曰童,동자가 아직 머리에 관을 올리지 않은 상태에 있으므로)이란 뜻도 있으며, 죄를 지어 노비가 된 사람도 지칭한다.
初筮告 : 筮는 시초로 괘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서는 未發상태의 동몽에게 처음으로 괘를 지어주는 것이니 곧 순수한 초심의 동몽이 마땅히 가야할 바를 일러주는 것이다.
告 : (곡) 뵙고 청하다, 고하다, (고)알리다(報), 여쭈다(白)의 뜻이 있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 告이다(臣下가 임금에게 가르치는 것).
*곡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고한다. / 핵심적인 부분을 찔러 알려준다(正鵠).
*고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고한다. / 일반적으로 알린다(告知)
再三瀆 : 再三은 “거듭”의 의미이므로 초서에 상대한 말이다. 곧 초서가 未發의 순수한 동몽을 깨우침에 반하여 再三은 旣發의 더럽혀진 몽(瀆蒙)을 깨우치는 것이므로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깨우칠 수가 없다.
[所以“發蒙”者,用於未發,既發則無用。既發而用者,瀆蒙也。“桎梏”者,用於未刑,既刑則說。既刑而不說者,瀆刑也。發蒙者慎其初,不可使至瀆。故於初雲爾. 동파역전]
瀆 : 더러워지다. 불손하다(輕慢, 不敬). 번거롭다(형용사;煩瑣). 문장의 선후를 살펴서 적절히 해석할 것이다.
【傳】
蒙,有開發之理,亨之義也,卦才,時中,乃致亨之道,六五,爲蒙之主而九二,發蒙者也,我,謂二也,
二非蒙主,五旣順巽於二,二,乃發蒙者也,故主二而言,
匪我求童蒙,童蒙,求我,五居尊位,有柔順之德而方在童蒙,與二,爲正應而中德,又同,能用二之道,以發其蒙也,
二以剛中之德,在下,爲君所信嚮,當以道自守,待君至誠求己而後,應之,則能用其道,匪我求於童蒙,乃童蒙,來求於我也,筮,占決也,初筮告,謂至誠一意,以求己則告之,再三則瀆慢矣,故不告也,發蒙之道,利以貞正,又二雖剛中,然,居陰,故宜有戒.
發蒙 계몽(啓蒙) ①무식(無識)한 사람이나 어린아이를 깨우쳐 가르침 ②정신(精神)이 몽매(蒙昧)한 사람을 계발(啓發)하여 개화(開化)로 인도(引導)함 ③인습적(因襲的)인 기성 관념(觀念)에서 벗어나 자주적(自主的)이고 합리적(合理的)인 인식(認識)을 갖게 계발(啓發)하는 일 : 계명(啓明)
嚮 향할 향, 성 상 ⓐ성(姓)의 하나 (상) ⓑ땅 이름 (상) ⓒ나라 이름 (상) ㉠향하다(向--) ㉡나아가다 ㉢길잡다 ㉣바라보다 ㉤대하다 ㉥대접을 받다 ㉦누리다 ㉧권하다 ㉨흠향하다(歆饗--) ㉩메아리 치다 ㉪제사 지내다 ㉫방향 .
巽 부드러울 손. ㉠부드럽다 ㉡유순하다(柔順--) ㉢공순하다 ㉣사양하다(辭讓--) ㉤괘 이름 ㉥손괘(巽卦) ㉦동남쪽
[정전]蒙이 일깨워서 개발하는 이치가 있으므로 형통하는 뜻이 되고, 卦才가 時中하므로 형통을 이루는 도이다. 육오는 蒙의 주체이고 구이는 몽을 깨우치는 자이므로 我는 구이를 말한다.
구이는 몽의 주체가 아니지만 구오가 이미 구이에게 遜順하여 구이가 發蒙者가 되기 때문에 구이를 위주로 말하였다.
匪我求童蒙 童蒙求我는 육오가 존위에서 유순한 덕으로 동몽이 되고, 구이와 더불어 정응이면서 중도의 덕이 서로 같으므로 능히 구이의 師道로써 동몽을 깨우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이는 강중한 賢德으로 아래에 있으니 군주가 신임하고 따르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中道를 自守하여 군주가 誠意를 다하여 구하여 올 때를 기다린 뒤에 나아가 응한다면, 師道가 능히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동몽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고 동몽이 나에게로 가르침을 구하여 오는 것이다).
筮는 점을 쳐서 사리를 판단하는 것이다. 初筮告은 至誠으로 물어 온다면 사리를 분변하여 일러주고, 재차로 묻기를 거듭하면 믿음을 두지 않는 불경스러운 일이므로 일러주지 않는다. 몽을 깨우치게 하는 사도는 정고함이 중요하다. 비록 구이가 비록 강중한 자질이지만, 陰位에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계의 말을 두게 되었다.
蒙은 개발하는 이치가 있으니 형통하는 뜻이요, 卦의 재주가 時中을 하니 형통함을 이루는 도이다. 六五는 蒙卦의 주체이고 九二는 蒙을 개발하는 자이니, 我는 二를 이른다. 이는 蒙卦의 주체가 아니나 五가 이미 二에게 順巽하니, 二는 바로 몽매함을 개발해주는 자이다. 그러므로 二를 위주로 하여 말하였다. ‘비아구동몽 동몽구아’는 五가 尊位에 거하여 유순한 德이 있고 동몽의 때에 있어서 이와 正應이 되며 中德이 또 같으니, 능히 이의 道를 써서 그 몽매함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剛中의 德으로 아래에 있어서 군주가 신임하고 향하는 바가 되었으니, 마땅히 道로써 스스로 지켜 군주가 지성으로 자기를 구하기를 기다린 뒤에 응하면 <군주가> 능히 그 도를 쓸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내가 동몽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동몽이 와서 나에게 구하는 것이다. 筮는 점을 쳐서 결단함이다. ‘初筮告’(초서곡)은 지극한 정성과 한결같은 뜻으로 나에게 구하면 고해주고, 두 번 세 번 자꾸 물으면 瀆慢(不敬)이 되므로 고해주지 않는 것이다. 蒙을 개발하는 도는 貞正함이 이롭고, 또 이가 비록 剛中이나 陰에 거하였으므로 경계가 있는 것이다.
【本義】艮亦三劃卦之名,一陽,止於二陰之上,故其德,爲地,其象,爲山,蒙,昧也,物生之初,蒙昧未明也,
其卦,以坎遇坎,山下有險,蒙之地也,內險外止,蒙之意也,故其名,爲蒙,
亨以下,占辭也,九二,內卦之主,以剛居中,能發人之蒙者而與六五,陰陽,相應,
故遇此卦者,有亨道也,我,二也,童蒙,幼穉而蒙昧,謂五也,筮者,明則人當求我而其亨,在人,筮者,暗則我當求人而亨在我,人求我者,當視其可否而應之,
我求人者,當致其精一而扣之而明者之養蒙,與蒙者之自養,又皆利於以正也.
扣 두드릴 구.㉠두드리다 ㉡당기다 ㉢덜다 ㉣묻다 ㉤굽히다 : 扣問 의견(意見)을 물음. 질문(質問)함
艮 또한 3획괘의 이름이니, 한 陽이 두 陰의 위에 멈춰 있다. 그러므로 그 德이 그침이 되고 그 象이 山이 된다. 蒙은 몽매함이니, 물건이 난 초기에 몽매하여 밝지 못한 것이다. 이 卦는 坎으로서 艮을 만났으니, 산 아래에 험함이 있음은 몽의 처지요, 안은 험하고 밖은 그침은 몽의 뜻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몸이 된 것이다. 亨以下는 占卦의 내용이다. 구이는 內卦의 주체로 剛으로서 中에 거하였으니, 남의 몽매함을 개발해 줄 수 있는 자이며, 六五와 더불어 음양이 서로 응하므로 이 卦를 만난 자는 형통할 道가 있는 것이다. 我는 二요, 童蒙은 유치하고 몽매한 자이니, 五를 이른다. 점치는 자가 지혜가 밝으면 남이 마땅히 나에게 구하여 그 형통함이 남에게 있는 것이요, 점치는 자가 지혜가 어두우면 내가 마땅히 남에게 구하여 형통함이 나에게 있을 것이니, 남이 나에게 구할 경우에는 마땅히 <구하는 사람의> 可否를 보아 응할 것이요, 내가 남에게 구할 경우에는 마땅히 精一함을 지극히 하여 물을 것이며, 밝은 자가 몽매한 자를 길러줌과 몽매한 자가 스스로 기름이 또 모두 正道를 씀이 이로운 것이다.
[艮은 一陽이 二陰위에 그쳐있으므로 그 덕이 止가 되고 그 상이 산이다. 蒙은 昧(어두움)이니 만물이 시생한 때는 몽매하여 밝지 못함이다.
괘가 坎으로써 艮을 만나므로 山下有險이 몽의 처지이고, 內險外止가 몽의 뜻이므로 괘명이 蒙이다.
亨 이하는 점사이다. 구이는 내괘의 주체로 강중하므로 몽을 개발하는 자로서 육오와 음양으로 상응한다.
따라서 점을 쳐서 이 괘를 만난 사람은 형통하는 도가 있다. 我는 구이이고 童蒙은 유치하고 몽매한 육오를 말한다. 점치는 자가 밝으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구하여 형통해지고 점치는 자가 어두우면 내가 남에게 구하여 형통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나에게 구하여 올 경우에는 그 사람의 덕을 보아 응할 것이고,
내가 남에게 구할 경우에는 마땅히 성의를 다하여 물어야 하는 것이니, 밝은 자가 몽매한 자를 啓蒙함과 몽매한 자가 스스로 自養하는 것이 모두 정도에 입각해야 이롭게 이루는 것이다. 本意]
[길을 걸어가는데, 또는 우리 人生살이에 온갖 山川을 넘어야 그 結果로 光明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精神的인 工夫를 하는데 重要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蒙昧함에서 脫皮하느냐, 여기에 工夫가 필요하다. 아무리 높은 地位에 있고, 지혜가 많고, 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自進해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누구든 자신의 위에 언제나 스승이 있다 하겠다. 또한 진정한 스승은 자신의 내면속에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편자]
彖曰 蒙 山下有險 險而止 蒙.
彖曰(단왈) : 단에 가로대,
蒙山下有險(몽산하유험) : 산 아래 험한 것이 있고
險而止蒙(험이지몽) : 험해서 그치는 것이 몽이라.
彖曰蒙은 山下有險하고 險而止ㅣ 蒙이라.
【本義】以卦象卦德,釋卦名,有兩義.
卦象과 卦德으로 卦名을 해석하였으니, 두 가지 뜻이 있다.
山 外卦艮의 具象이 山임.
蒙亨 以亨行 時中也. 匪我求童蒙童蒙求我 志應也.
蒙亨 괘사를 그대로 옮긴 말. 九二 爻가 陽剛中正의 爻로 成卦의 主이고 六五를 啓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六五 역시 유순하고 겸허한 덕을 지니고 있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계발 성취의 효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以亨行 亨은 게발 성취시킬 수 있는 방법, 行은 실행하다.
時中 時는 時宜. 中은 九二의 剛中과 六五의 柔中. 兩爻가 지닌 中正의 道
蒙亨(몽형) : '몽형'은
以亨行(이형행) : 형통함으로써 행함이니
時中也(시중야) : 때로 중함이요,
匪我求童蒙童蒙求我(비아구동몽동몽구아) : '비아구동몽동몽구아'는
志應也(지응야) : 뜻이 응함이요,
[단왈]몽은 山下有險이니 안으로 험하고 밖으로 그치는 상이 몽이다. 몽이 형통한 것은 時中을 취하기 때문이며, 내가 동몽을 구함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하여 오는 것은 뜻에 대응하는 것이다. 초심(성의)로 물어오면 강중한 덕으로 깨우쳐 주고, 두세 번 묻는 것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므로 알려주지 않는 것은 독몽이기 때문이다. 동몽을 바르게 기르는 것이 성인의 공이다.
단전에서도 몽은 산(간)의 아래에 험난(감)이 있고 험난을 목전에 두면 멈추고 나아가지 않고(간)
아직 가야할 방향이 정홰지지 않은 형상이다.
몽은 행한다란 형통할 도를 갖고저 행동하고 그 시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동몽에 구함이 아니고
동몽으로부터 나에게 구한다함은 나(스승된자, 구이)와 동몽(가르침을 구하는 자제, 육오)의 마음이 상승한다
는 것이다. 첫점에는 고한다고 함은 스승인 구이가 강중(강중)의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삼이면 모둑 한다. 모독하면 고하지 않는다
함은 묻는 자 즉 동몽의 때묻지 않은 초심(초심)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계몽의 교육에 의해 바른 도덕을 함양시키는 것은 성스런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전에 이르길 蒙은 산 아래 험한 것이 있고, 험해서 그치는 것이 蒙이라. <蒙亨>은 형통함으로써 행함이니 때로 中함이오, <匪我求童蒙童蒙求我>는 뜻이 응함이오, <初筮告>은 강하고 가운데 함으로써이오, <再三瀆瀆則不告>은 蒙을 더럽히기 때문이니, 蒙으로써 바른 것을 기름이 성스러운 공이다.
蒙亨은 以亨行이니 時中也ㅣ오. 匪我求童蒙童蒙求我는 志應也ㅣ오.
【傳】山下有險,內險,不可處,外止,莫能進,未知所爲,故爲昏蒙之義,蒙亨以亨行時中也,蒙之能亨,以亨道行也,所謂亨道,時中也,時,謂得君之應,中,謂處得其中,得中則時也,
匪我求童蒙童蒙求我,志應也,二以剛明之賢,處於下,五以童蒙,居上,非是二求於五,盖五之志,應於二也,
賢者,在下,豈可自進,以求於君,苟自求之,必无能信用之理,
古之人,所以必待人君致敬盡禮而後,往者,非欲自爲尊大,蓋其尊德樂道,不如是,不足與有爲也.
盖 덮을 개, 어찌 합 ⓐ어찌 (합) ⓑ문짝 (합) ⓒ땅 이름 (합) ㉠덮다 ㉡덮어 씌우다 ㉢숭상하다(崇尙--) ㉣뛰어나다 ㉤해치다(害--) ㉥뚜껑 ㉦덮개 ㉧하늘 ㉨상천(上天) ㉩일산(日傘) ㉪모두 ㉫대략(大略) ㉬대개(大槪: 대부분)
[蒙亨以亨行時中也]산 아래 險이 있으니 안으로는 험하여 안정되지 못하고 밖으로는 그쳐서 나아가지 못하므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것이 昏蒙의 뜻이다. 몽이 형통한 것은 형통할 도로써 행하기 때문이며, 형통할 도라는 것은 바로 時中을 말한다. 時는 군주와 相應함이고, 中은 중도에 처함이니 得中이 곧 時中이다.
[非我求童蒙童蒙求我志應也]구이가 剛明한 현인으로 아래에 처하고 육오가 동몽으로 위에 있으므로 곧 구이가 육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육오의 뜻이 구이에 응해 오는 것이다.
현인이 아래에 있으면서 어찌 스스로 나아가 써 주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스스로 써 주기를 구하여 나간다면 반드시 군주가 신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들이 군주가 정중한 예로써 청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나아간 것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서 그러함이 아니라, 道德을 숭상하지 않는 군주는 더불어 일을 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山 아래에 험함이 있으니, 안은 험하여 처할 수 없고 밖은 그쳐서 나아갈 수 없어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러므로 혼몽의 뜻이 된다. ‘몽형이형행시중야’는 蒙이 형통함은 형통할 도로써 행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형통할 도라는 것은 時中이니, 時는 군주의 應을 얻음을 이르고, 中은 처함이 中을 얻음을 이르니, 中을 얻으면 때에 맞는다. ‘비아구동몽 동몽구아지응야’는 二가 剛明의 賢者로서 아래에 처하였고 五가 童蒙의로서 위에 거하였으니, 이는 二가 五를 구하는 것이 아니요 五의 뜻이 二에 應한 것이다. 현자가 아래에 있으니, 어찌 스스로 나아가 군주에게 써주기를 구하겠는가? 만약 스스로 등용해 주기를 구한다면 반드시 군주가 信用할 리가 없다. 옛사람이 반드시 人君이 공경을 지극히 하고 禮를 극진히 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간 까닭은 스스로 존대하게 하려고 함이 아니라, 人君이 德을 높이고 道를 즐거워함이 이와 같지 않으면 더불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初筮告 以剛中也 再三瀆瀆則不告 瀆蒙也.
初筮告(초서고) : '초사곡'은
以剛中也(이강중야) : 강하고 가운데 함으로써요,
再三瀆瀆則不告(재삼독독칙불곡) : '재삼독독즉불곡'은
瀆蒙也(독몽야) : 몽을 더럽히게 됨이니,
初筮告은 以剛中也ㅣ오. 再三瀆瀆則不告은 瀆蒙也새니
【傳】初筮,謂誠一而來,求決其蒙,則當以剛中之道,告而開發之,
再三,煩數也,來筮之意,煩數不能誠一則瀆慢矣,不當告也,告之,必不能信受,徒爲煩瀆,故曰瀆蒙也,
求者告者,皆煩瀆矣.
煩瀆 ①너저분하게 많고 더러움 ②개운하지 못하고 번거로움
[初筮告以剛中也再三瀆瀆卽不告瀆蒙也]초서는 지성심으로 찾아와 몽매함을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강중한 도로써 일러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再三으로 번거롭게 묻기를 거듭하는 것은 지성심이 없이 불경스러운 행위이므로 마땅히 일깨워 주지 않는다. 혹 일러주는 바가 있더라도 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인즉 瀆蒙이라 하였다.
이는 구하는 자나 일러주는 자 모두가 번거롭고 불미스러운 일이다.
‘初筮’는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와서 그 몽매함을 결단해 주기를 구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마땅히 剛中한 道로써 告(곡; 고할))하여 개발시켜 주어야 된다. ‘再三’은 번거롭게 자주함이니, 와서 묻는 뜻이 煩數(번삭)하여 정성스럽고 한결같지 못하면 瀆慢이 되니, 고해주지 말아야 한다. 고해주더라도 반드시 믿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한갓 번독함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瀆蒙’이라 하였으니, 구하는 자와 고해주는 자가 모두 번독함이 된다.
蒙以養正 聖功也.
蒙以養正(몽이양정) : 몽으로써 바른 것은 기름이
聖功也(성공야) : 성스러운 공이라.
蒙以養正이 聖功也ㅣ라.
【傳】卦辭,曰利貞,彖,復伸其義,以明不止爲戒於二,實養蒙之道也,
未發之謂蒙,以純一未發之蒙而養其正,乃作聖之功也,發而後禁則扞格而難勝,
養正於蒙,學之至善也,蒙之六爻,二陽,爲治蒙者,四陰,皆處蒙者也.
扞 막을 한, 칠 하, 펼 간 ⓐ치다 (하) ⓑ때리다 (하) ⓒ공격하다(攻擊--) (하) ⓓ펴다 (간) ㉠막다 ㉡저항하다 ㉢막아 지키다 ㉣막아내다 ㉤용감하다 ㉥용맹스럽다 ㉦호위하다 ㉧거절하다 ㉨저촉되다(抵觸--) ㉩덮다 ㉪덮어가리다
[蒙以養正 聖功也]괘사에서 利貞이라 한 말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구이에게만 하는 경계가 아니라 실제로 몽을 깨우치고 기르는 도가 그러함을 밝힌 말이다.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이 몽이므로, 깨우침이 없는 순수한 몽의 상태에서 바르게 기르는 것이 성인이 일으키는 공이다. 깨우치고 난 후에 잘못된 것을 못하게 하려고 한다면, 거부감이 있어 감당키 어렵다.
그러므로 순수한 몽에서 바르게 깨우치는 것이 배움의 至高至善이다. 몽괘의 여섯 효중에서 두 양효는 몽을 깨우치는 사람이고, 네 음효는 모두 몽에 처한 사람이다.
卦辭에 “貞함이 이롭다.” 하였으니, <彖傳>은 다시 그 뜻을 부연하여 다만 이를 경계한 것일 뿐만이 아니요 실로 蒙을 기르는 도임을 밝힌 것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음을 蒙이라 하니, 純一하고 개발되지 않은 몽으로서 바름을 기름이 바로 성인이 되는 공부이다. 개발된 뒤에 금하면 거부하여 감당하기 어려우니, 어릴 때에 바름을 기르는 것이 배움에 지극히 좋은 것이다. 蒙의 여섯 爻 가운데 두 陽은 蒙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네 陰은 모두 蒙에 처한 자이다.
【本義】以卦體,釋卦辭也,九二,以可亨之道,發人之蒙而又得其時之中,謂如下文所指之事,皆以亨行而當其可也,志應者,二,剛明,五,柔暗,故二不求五而五求二,其志,自相應也,以剛中者,以剛而中,故能告而有節也,瀆,筮者,二三則問者,固瀆而告者,亦瀆矣,蒙以養正,乃作聖之功,所以釋利貞,義也.
卦體로써 卦辭를 해석하였다. 九二가 형통할 수 있는 道로 남의 몽매함을 개발시키고 또 그 때의 알맞음을 얻었으니, 下文에서 가리킨 바의 일은 모두 형통할 도로써 행하여 그 가함에 마땅한 것이다. ‘志應’은 이는 剛明하고 오는 柔暗하다. 그러므로 二가 五에게 구하지 않고 五가 二에게 구하여 그 뜻이 서로 응하는 것이다. ‘以剛中’은 剛하고 중도에 맞기 때문에 능히 고해줌에 절도가 있는 것이다. ‘瀆’은 점치는 자가 두 번 세 번 치면 묻는 자도 진실로 번독하고 고해주는 자도 번독하다. 어릴 때에 바름을 기름이 바로 성인이 되는 공부이니, 이는 ‘利貞’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산아래 험이 있다. 곧 험을 만나 밖으로 그침이 몽이 된다. 몽이 형통한 바는 능히 사람을 형통하게 할 수 있는 스승이 時中의 도로써 가르치기 때문이다. 비록 善敎(좋은 敎訓)가 있으나 반드시 동몽이 나에게 구하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동몽이 스스로 感通하는 바가 있어야 뜻이 응하기 때문이다. 마치 물이 맑아야 달그림자를 비추일 수 있음과 같다. 初筮卽告는 剛中한 덕이 있어 응함에 기틀이 잡혀 있음이고, 瀆卽不告은 몽이 나를 더럽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몽을 더렵혀서 백해무익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함이니, 몽을 깨우침에는 정도로써 하여야 敎化하는 성인의 功이 몽으로 하여금 聖者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선해]
艮止 : 그침이라는 것은 단순한 정지의 개념이 아니다. 매사에 신중하여 그칠 데를 알아서 그치고, 이를 데를 알아 이르는 것이 진정한 그침이다. 즉 時中으로 적절한 때를 맞추어 중용의 덕을 펴는 것이다.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알고, 입을 다물어야 할 때는 입을 다물고, 말이 필요할 때는 말을 하는 바와 같이 일동일정이 때와 의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세가 곧 그침을 아는 도이다.
正은 一과 止의 合字이다. 止는, 즉, 止於至善을 가리키는 말이다.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大學].
象曰 山下出泉 蒙 君子以 果行 育德.
山 外卦艮의 具象이 山임.
泉 內卦坎의 具象이 물임. 일반적으로 비(雨)를 이르는 경우가 많으나,여기서는 蒙이 사물의 幼少한 상태를 말하기때문에 샘물(泉)에 비유됐음.
[大象] : 산 밑에 솟아 나는 샘물, 이것이 몽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바른 일을 과감하게 실천하면서 묵묵히 덕을 기른다.
象曰(상왈) : 상에 가로대,
山下出泉蒙(산하출천몽) : 산 아래 샘이 솟아나는 것이 몽이니,
君子以果行育德(군자이과행육덕) : 군자가 이로써 과감히 행하며 덕을 기르니라.
상전에서도 산(간)의 아래에서 솟는 샘(감)이 있음이 몽이다. 장애를 뚫고 나가 흐르며 쉬지 않는 물의 모습과 조용히 멈추어져 동요되는 일이없는 산의 모습을 본떠 군자는 과감히 행동하며 도덕을 함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왈]산 아래에 처음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것이 몽이니, 군자가 결단력과 덕성을 기른다.
果行 : 깨우침을 얻고자 하는 행동이 과감하다(지체함이 없다).
象曰山下出泉이 蒙이니 君子ㅣ 以하야 果行하며 育德하나니라.
【傳】山下出泉,出而遇險,未有所之,蒙之象也,
若人,蒙穉,未知所適也,君子,觀蒙之象,以果行育德,觀其出而未能通行則以果,決其所行,觀其始出而未有所向則以養,育其明德也.
[정전]산 아래에서 샘물이 처음 솟아 나와 위험을 만나니 갈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 몽의 상이다.
마치 사람이 몽매하고 어려서 사리를 분변하지 못하여 갈 바를 모르는 바와 같다. 군자는 몽의 상을 귀추로 삼아서 果行育德(나아갈 바를 과감하게 결행하며 덕을 기르는 것)한다. 즉 샘물이 나와서 능히 흐르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나아가기를 결행하게 하고, 처음으로 나와서 지향하는 바가 없음을 보고서 내면의 밝은 덕을 길러준다.
山 아래에서 샘물이 나오는데, 험함을 만나 갈 바가 없는 것이 蒙의 象이니, 마치 사람이 몽매하고 어려서 갈 바를 모르는 것과 같다. 군자가 蒙의 象을 관찰하여 행실을 과단성있게 하고 德을 기르니, 샘물이 나와서 통행하지 못함을 보면 이로써 그 행하는 바를 과단성있게 하고 처음 나와서 향하는 바가 없음을 보면 이로써 그 밝은 德을 기르는 것이다.
【本義】泉,水之始出者,必行而有漸也.
천은 물이 처음 나온 것이니, 반드시 흘러가되 점점함이 있는 것이다.
漸 ㉠점점 ㉡차츰 ㉢번지다 ㉣천천히 나아가다 ㉤스미다 ㉥흐르다 ㉦자라다 ㉧적시다 ㉨젖다 ㉩험하다(險--) ㉪차례(次例)
[샘물 : 泉 水之始出者 必行而有漸也[본의].
샘물이 처음 솟아 미약하기만 한 것이 이윽고 여울이 되어 내로 나가고 강으로 합하며 大海에 도달하듯 군자의 가르침과 배움의 도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서 행실을 바르게 하고 덕을 배양해야 한다.
산 아래에 험한 물이 있으니 나아갈 바를 모르는 무지몽매한 상태이다.
아래의 中男[坎]이 위의 少男[艮]을 교육시키는 것, 즉, 양명한 九二가 스승으로써 유약한 六五를 가르치는 것이다. 天地가 相交한 후에 어렵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싹이 트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蒙昧하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蒙泉 : 도산서원(퇴계)의 서당 幽貞門 밖에 있는 우물을 蒙泉이라 한다.
산수몽(山水蒙)괘의 괘덕을 취하여 몽천이라 하였는데 몽괘는 산아래 험난한 물이 가로 놓여 있는 모양, 구름
이 산을 덮어 산이 잘 보이지 않는 자연현상을 보고, 나아갈 바를 몰라 허덕이는 무지 몽매한 어린이를 강명한 스승이 이끌어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퇴계는 “서당의 동쪽에 몽천이란 샘이 있네, 무엇으로 체득하리요 바르게 기르는 성현의 공을, 역의 산천괘(山川卦)가 몽이 되니 그 상을 내 진실로 심복하노라, 어찌 감히 가르침과 배움에 있어 중용의 도로서 때에 알맞게 행함을 잊을까 보냐, 더욱 더 어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히 행하여 바른 덕을 기른다는 성인의 말씀을 생각해야지”라고 몽괘를 인용하여 스승의 도리를 다짐하였고, 한줄기 샘물이 솟아나와 내와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를 극복한 물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바다에 이르듯, 사람도 이와 같이
학문과 인격의 함양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생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해서 한 방울의 물이
망망대해에 이르게 되듯이 훌륭한 인격자가 되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풀이] 몽은 동몽 유치 몽매의 형상이므로 교육에 의해 그 몽이 계발되면 형통한다.
교육의 이상은 나 즉 스승의 자로부터 구하여 어린이에게 가르치는게 아니고, 자제 동몽의 쪽에서
자청하여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는데 있다. 점의 경우에도 성의를 다한 최초의 문점(問占)에는 답을 얄려
주어야 하겠지만 두번 세번 점을 되풀이 한다면 복서의 신성함이 더렵혀지므로 알릴것이 못된다.
이는 정정의 태도를 견지하는게 좋다.
단전에서도 몽은 산(간)의 아래에 험난(감)이 있고 험난을 목전에 두면 멈추고 나아가지 않고(간)
아직 가야할 방향이 정홰지지 않은 형상이다.
몽은 행한다란 형통할 도를 갖고저 행동하고 그 시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동몽에 구함이 아니고
동몽으로부터 나에게 구한다함은 나(스승된자, 구이)와 동몽(가르침을 구하는 자제, 육오)의 마음이 상승한다
는 것이다. 첫점에는 고한다고 함은 스승인 구이가 강중(강중)의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삼이면 모둑 한다. 모독하면 고하지 않는다
함은 묻는 자 즉 동몽의 때묻지 않은 초심(초심)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계몽의 교육에 의해 바른 도덕을 함양시키는 것은 성스런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상전에서도 산(간)의 아래에서 솟는 샘(감)이 있음이 몽이다. 장애를 뚫고 나가 흐르며 쉬지 않는 물의 모습과 조용히 멈추어져 동요되는 일이없는 산의 모습을 본떠 군자는 과감히 행동하며 도덕을 함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初六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 吝




初六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 吝
刑人 형벌(刑罰)을 받은 사람
桎梏 차꼬는 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형구(刑具)를 말함 . 차꼬와 수갑이란 뜻으로, 즉 속박(束縛)이라는 뜻
桎 차꼬 질.㉠차꼬(=차꼬막이. 기와집 용마루의 양쪽으로 끼우는 수키왓장) ㉡쐐기 ㉢막히다 ㉣차꼬를 채우다
梏 수갑 곡, 클 각 ⓐ크다 (각) ㉠수갑, 쇠고랑 ㉡(쇠고랑을)채우다 ㉢묶다, 붙잡다 ㉣꿰다 ㉤어지럽히다
用刑人 사람을 규제하는 형벌, 즉 엄격한 교육 방침에 따라 교육을 시행하다.
用說桎梏 說은 脫의 뜻이다. 벗기다. 桎梏은 수족에 刑을 가하는 고랑. 곧 엄격한 속박에서 풀어주는 관용의 교육방침에 따라 교육을 시행한다.
[주] 형(刑): 형벌.
[풀이] 초육은 음유 부정, 무지하고 천한 어린이의 형상으로 불량해 질 염려도 있으므로 그 몽매함을 계발하여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형벌을 써서 엄하게 단속하는 게 좋다. 만일 구속을 풀어 방종으로 흐르게 한다면 오히려 나쁘다. 상전에서 사람을 행하는 게 이롭다고 함은 법을 바로 잡는 것이다.
초육은 蒙을 일깨우는 데는 사람에게 형벌을 쓰고서, 이로써 桎梏을 벗김이 이로우니, 형벌로써만 해 나가면
인색하리라. 상전에 이르길 <利用形人>은 이로써 법을 바르게 함이다.
[初陰] : 무지를 계발하는 데는 형벌을 엄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규율을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형벌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길이 지속하여 가는 것은 좋지 못하다.
[초육]몽을 깨우치는 데는 형벌을 세워서 혼몽의 질곡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이로우니, 형벌로만 나아가는 것은 인색하다.
發蒙 : 몽을 깨우치다(계몽하다. 發揚하다).
說(탈) : 벗다(脫), (설)말씀(辭), (세)달래다(浤),(열)기뻐하다(喜樂)
桎梏 :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질곡의 세월, 질곡에서 벗어나다).
初六(초륙) : 초육은
發蒙(발몽) : 몽을 일깨우는데
利用刑人(이용형인) : 사람에게 형벌함을 쓰고서
用說桎梏(용설질곡) : 질곡을 벗김이 이로우니,
以往吝(이왕린) : 형벌로써만 해 나가면 인색하리라.
初六은 發蒙호되 利用刑人하야 用說桎梏이니 以往이면 吝하리라.
【傳】初以陰暗,居下,下民之蒙也,爻言發之之道,
發下民之蒙,當明刑禁以示之,使之知畏然後,從而敎導之,自古聖王,爲治,設刑罰以齊其衆,明敎化以善其俗,刑罰立而後,敎化行,雖聖人,尙德而不尙刑,夫嘗偏廢也,
故爲政之始,立法,居先,治蒙之初,威之以刑者,所以說去其昏蒙之桎梏,桎梏,謂拘束也,
不去其昏蒙之桎梏則善敎,无由而入,旣以刑禁,率之,雖使心未能喩,亦當畏威以從,不敢肆其昏蒙之欲,
然後,漸能知善道而革其非心,則可以移風易俗矣,
苟專用刑以爲治則蒙雖畏而終不能發,苟免而无恥,治化不可得而成矣,故以往則可吝.
刑禁 헌법(憲法), 법률(法律), 명령(命令), 규정(規定) 따위의 모든 법을 통틀어 일컫는 말. 국회(國會)의 의결(議決)을 거쳐서 제정(制定)되고, 헌법(憲法)보다는 아래, 명령(命令)ㆍ규칙(規則)보다는 위인 법(法)
非心 좋지 아니한 마음
移風 풍속(風俗)을 바꿈.
移風易俗 나쁜 풍속(風俗)이 좋은 쪽으로 바뀜 : 효경
[정전]초육은 陰暗하며 下位이므로 下民의 蒙으로, 효에서는 몽을 깨우치는 도를 말하고 있다.
하민의 혼몽을 깨우치는 데는 먼저 형벌과 禁忌를 정하고 밝혀서 형벌의 두려움을 알게 한 후에 교도해야 한다. 예로부터 聖王의 정치는 형벌을 세워서 민중을 구제하고 敎化를 밝혀서 풍속을 선하게 하였으니, 형벌이 정립된 후에 교화가 행해졌다. 비록 성인이 형벌보다는 덕을 더욱 숭상하였지만, 일찍이 둘 중 하나를 없앤 바도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시작할 때에는 立法이 선행하듯이 몽을 깨우침에 있어서는 형벌로써 위엄을 보여서 昏蒙의 桎梏을 벗겨주어야 한다(桎梏은 束縛을 말한다).
혼몽의 질곡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선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禁忌와 형벌로써 다스리면, 비록 진심으로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畏懼하는 자세를 가지게 됨으로써 몽매한 허욕을 앞세우지는 않을 것이니, 그러한 연후에 점차적으로 善道를 알게 하여 속된 마음을 혁신시킨다면 가히 풍속을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형벌로써만 다스리고자 한다면 비록 두려워할지는 몰라도 끝내 蒙을 깨우치지는 못할 것이다. 오직 형벌만을 면하려 하며 진실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면 교화로써 다스리는 일은 불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벌로써만 다스려 나가는 것은 인색하다고 하였다(以往則可吝).
初는 陰暗으로서 아래에 거하였으니, 下民의 몽매한 자이니, 爻에서는 이것을 개발하는 道를 말하였다. 하민의 몽매함을 개발함에는 마땅히 刑罰과 禁令을 밝혀 보여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한 뒤에 따라서 가르치고 인도하여야 한다. 예로부터 성왕이 정치를 할 때에는 형벌을 만들어 백성들을 통일시키고 교화를 밝혀 풍속을 선하게 하여 형벌이 세워진 뒤에 교화가 행해졌으니, 비록 성인은 덕을 숭상하고 형벌을 숭상하지 않으나 일찍이 어느 한쪽을 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치하는 초기에는 법을 세움이 우선인 것이다. 몽매함을 다스리는 초기에 형벌로써 위엄을 보이는 것은 그 혼몽한 질곡을 벗겨버리기 위한 것이니, 질곡은 구속함을 이른다. 혼몽한 질곡을 제거하지 않으면 선한 가르침이 들어갈 길이 없다. 이미 형벌과 금령으로 통솔하면 비록 가령 마음은 깨우치지 못하더라도 또한 마땅히 위엄을 두려워하여 따라서 감히 그 혼몽한 욕심을 부리지 못할 것이니, 그런 뒤에 점점 선한 도를 알아서 나쁜 마음을 고치게 하면 풍속을 바꿀 수 있다. 만일 오로지 형벌만 사용하여 정치를 하려 하면 몽매한 자가 비록 두려워하나 끝내 몽매함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요, 구차히 형벌만 면하려 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서 다스림과 교화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그대로 가면 부끄러운 것이다.
[구이와 상구 두 양을 師道로 삼고 나머지 네 음은 弟子이다.
초육은 음으로 下位에 있어 몽이 심하나 陽位이며 구이와 가까이에 있으므로 發蒙할 수 있는 기미가 있다.
대체로 심히 몽매한 자를 正道를 따르도록 인도하기 위함이 利用刑人이니, 소위 체벌로써 교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질곡을 벗은 후에는 마땅히 羞愧(부끄럽고 창피해서 볼 낯이 없음)로 징계하여 나가지 못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니, 만약 그러하지 못하고 형벌주의로만 나아가는 것은 인색한 도이다. 선해]
【本義】以陰居下,蒙之甚也,占者,遇此,當發其蒙,然,發之之道,當痛懲而暫舍之,以觀其後,若遂往而不舍則致羞吝矣,戒占者,當如是也.
음으로서 아래에 거함은 몽매함이 심한 것이니, 점치는 자가 이러한 경우를 만나면 마땅히 그 몽매함을 개발하여야 한다. 그러나 개발하는 도는 마땅히 통렬히 징계하되 잠시 놓아두어서 그 뒤를 살펴보아야 하니, 만일 그대로 가고 놓아두지 않으면 부끄러움에 이르게 된다. 점치는 자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할 것을 경계한 것이다.
暫 잠깐 잠. ㉠잠깐 ㉡잠시 ㉢별안간 ㉣졸지에 ㉤짧다 ㉥오래지 않다
象曰 利用刑人 以正法也.
象曰(상왈) : 상에 가로대,
利用刑人(이용형인) : '이용형인'은
以正法也(이정법야) : 써 법을 바르게 함이라.
[상왈]利用刑人은 법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象曰利用刑人은 以正法也ㅣ라.
【傳】治蒙之始,立其防限,明其罪罰,正其法也,使之由之,漸至於化也,
或疑發蒙之初,遽用刑人,无乃不敎而誅乎,不知立法制刑,乃所以敎也,蓋後之論刑者,不復知敎化,在其中矣.
[정전]몽을 다스리는 초기에 禁忌의 한계를 정하고 違法에 따르는 형벌을 정하여 법을 바로 세움으로써 점차 敎化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혹자는 몽을 깨우치는 초기에 급작스럽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사전에 가르침도 없이 꾸짖고 벌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혹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법을 세우고 형벌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바로 가르침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후에 이르러 형벌을 논하는 자들은 교화가 그 가운데 들어있음을 잘 알지 못하였다.
몽매함을 다스리는 초기에 防限(방한 ; 금지하는 한계)을 세우고 죄와 벌을 밝힘은 그 법을 바로잡는 것이니, 그로 하여금 이것을 따르게 하여 점점 교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혹자는 ‘몽매함을 개발하는 초기에 갑자기 사람을 형벌함은 가르치지 않고 주벌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데, 이는 法을 세우고 刑罰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가르치는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뒤에 刑罰을 논하는 자들은 교화가 그 가운데 들어 있음을 다시 알지 모하였다.
【本義】發蒙之初,法不可不正,懲戒,所以正法也.
몽매함을 개발하는 초기에는 法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으니, 징계함은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上善若水라 하였다.
法이란 물(水)이 흘러 나아감(去)과 합해져서 法자가 이루어진 것과 같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흐름을 말한다. 즉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답고,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각인각색의 본분의 지켜야 할 바 바른 도리를 말한다.
법이 없다면 죄도 없다(不知者不爲罪)는 말은 민중이 지켜야 할 법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면 형벌도
없다는 말이다. 규범이 없이 때에 따라 임의적인 판단에 맡겨두면 형벌행위에 절도가 없어지고 법질서가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몽매한 민중을 다스리는 첫 번째의 관문이 곧 형벌을 밝히고 민중을 교육하여 사전에 충고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전적 조치 없이 형벌만을 앞세우는 것은 좋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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