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3권_

소(疏)_

성지(聖旨)에 응하여 진언한 소계유년 10월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파리하고 쇠진하여 쓰러져 엎드려 있는 중에 상언(上言)을 구하는 성지(聖旨)를 내리시어 지방에 유시(諭示)하였다는 말을 듣자옵고, 몸은 비록 거의 죽음에 임박하였으나 주인을 그리워하는 견마(犬馬)의 마음은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놀라고 감발(感發)하지 않을 수가 없사와 급히 성지의 글을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금년 7월 중순(中旬) 17일 밤에 천둥과 번개가 쳐서 대궐 안에 혹독한 변괴가 있었으므로 상(上)께서 진동하고 놀라시어 마침내 이 성지를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성지의 내용에 “법궁(法宮)의 정전(正殿)은 바로 인군이 정치를 내는 곳인데 전고(前古)에 없던 변이 갑자기 이 곳에 내렸으니, 하늘의 깊은 뜻이 반드시 있어서일 것이다.” 하셨습니다. 신의 노망한 생각에도 하늘의 깊은 뜻이 반드시 있어서일 것이라고 여겨지오니, 어찌 한갓 오고가는 심상한 재앙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역경(易經)》을 보오니, 팔괘(八卦) 가운데에 한 양효(陽爻)가 두 음효(陰爻) 아래에 있는 것이 곧 우레의 상(象)이므로 곧 괘의 이름을 진(震)이라 하였습니다. 공자(孔子)의 계사(繫辭)와 설괘전(說卦傳)에 “진(震)은 동(動)함이다.” 하였고, “우레로써 동(動)한다.” 하였으며, “뇌정(雷霆)으로 고동(鼓動)한다.” 하였고, “만물을 동하게 하는 것은 우레보다 더 빠른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근거하여 생각해보면 우레는 하늘과 땅이 만물을 동하게 하는 떳떳한 도입니다.
중춘(仲春 2월)의 달에 우레가 처음 소리를 내고 중추(仲秋 8월)의 달에 처음 소리를 거두니, 1년 가운데에 봄과 여름·가을 세 철에 우레가 있는바, 우레가 봄에 행해지는 것은 만물의 낳는 뜻을 고동시키기 위한 것이요, 여름에 행해지는 것은 자라나는 뜻을 고동시키기 위한 것이요, 가을에 행해지는 것은 이루는 뜻을 고동시키기 위한 것이니, 이 어찌 조화의 신묘한 공(功)이 아니며 만물을 생성하는 묘한 기틀이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이 우레가 있은 뒤에야 답답하게 울폐(鬱閉)되었던 것이 열려지고 침체되었던 것이 진작되고 막혔던 것이 통하고 게으른 것이 진작되고 무너진 것이 분발되니, 이는 작동하는 도리 아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년에 대궐 가운데에 우레가 친 것은 이 무슨 울폐(鬱閉)된 것을 연 것이며 무슨 침체된 것을 일으킨 것이며 무슨 막힌 것을 통한 것이며 무슨 게으른 것을 진작한 것이며 무슨 무너진 것을 분발한 것입니까. 벼락이 교야(郊野)의 산림(山林)에 치지 않고 법궁 안에 쳤으며, 외간(外間)의 나무나 돌에 치지 않고 대궐의 기둥과 문지방에 쳤으니, 오늘날 하늘과 땅의 깊은 뜻은 과연 오로지 전하에게 있는 듯하옵니다.
옛사람들은 “하늘이 인군을 인애(仁愛)하여 반드시 변고를 내려 경계하는 뜻을 보인다.”고 말하였으니, 오늘날 우레의 변고가 일어난 것은 또한 어찌 하늘이 전하를 인애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를 놀라게 하고 전하를 진작하게 한 것은 모두 인애한 뜻일 것입니다.
무릇 인간의 일에 있어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등용하여야 할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며, 또는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않고 마땅히 정지하여야 할 것을 정지하지 않고 마땅히 제거하여야 할 것을 제거하지 않음이 있으면, 이는 모두 답답하게 울폐되고 편벽되어 정체되고 게으르고 무너지는 병폐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 이러한 병폐가 전혀 없다고 여기십니까? 만약 성지(聖旨) 가운데에 열거한 열 가지 조항을 가지고 말한다면 또한 어찌 오늘날 모두 없는 것이겠습니까.
총명예지(聰明叡智)하신 전하로서 무슨 일인들 그 이해(利害)를 밝게 아시지 못하며, 무슨 정사인들 그 득실(得失)을 살피지 못하며, 어떤 사람인들 진위(眞僞)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이해를 밝게 아시되 행하고 멈춤을 결단하지 못하시고, 득실을 살피시되 들어쓰고 버림을 결단하지 못하시고, 진위를 아시되 취사선택을 결단하지 못하신다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반드시 하지 않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반드시 하는 실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을 반드시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반드시 행하는 실수가 있을 것이며, 마땅히 등용하여야 할 인물을 반드시 등용하지 못하고 마땅히 등용하지 말아야 할 인물을 반드시 등용하는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않고 마땅히 정지하여야 할 것을 정지하지 않고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는 일이 반드시 다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어느 때에나 지극한 선(善)에 멈추며 어느 때에나 성대(盛大)한 덕을 다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반정(反正)하고 등극(登極)하신 지가 이제 과연 11년이 되셨습니다. 그동안 10년 사이에 묘당(廟堂)의 계책과 경연(經筵)의 강론과 높고 낮은 사람들이 아뢴 상소문이나 글 가운데 과연 격언(格言)과 지론(至論)이어서 약석(藥石)으로 삼을 만하고 기축(機軸)을 바꿀 만한 것이 과연 얼마나 있었습니까. 격물(格物)·치지(致知)의 학문에 이용되고 성의(誠意)·정심(正心)의 덕에 보탬이 되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도에 보탬이 되며 나라를 경륜(經綸)하여 크게 구제하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전하께서 마음에 두고 경영하지 않음이 없으실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신하들이 계책과 말씀을 아뢸 때에 반드시 ‘깊이 체념(體念)하였다’ 하시고, 반드시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였다’ 하셨는데, 전하께서는 과연 들은 바를 체념하여 마음속 깊이 터득하신 것이 있으시며, 아뢴 말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여 몸소 실천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간언(諫言)을 따름이 물이 흐르는 듯하며 좋은 말을 들어줌이 둥근 탄환이 굴러가는 듯한 것은 바로 제왕의 아름다운 덕이온데, 전하께서는 과연 간언을 따름이 물이 흐르는 듯하셨으며 좋은 말을 들어줌이 둥근 탄환이 굴러가는 듯한 진실한 덕이 있으셨습니까?
전하께서는 본래 하늘이 내신 자질이 있으시니, 평소 용잠(龍潛)시절에 뜻하시고 이루려하신 것이 마땅히 어떠하였습니까. 도덕과 사업은 반드시 성현(聖賢)을 기약하셨을 것이며, 또 어두운 조정의 혼란한 정치를 만나 모두 직접 보면서 서글퍼하고 한탄하며 마음으로 분발하시어 강개(慷慨)한 것이 반드시 심상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번 반정(反正)하신 뒤로 담당하고 잡으심에 애당초 지극한 덕과 지극한 공(功)으로써 스스로 힘쓰지 않으셨습니까.
옛사람들은 하루에는 하루의 공부가 있고 한 해에는 한 해의 공부가 있었으니, 전하께서 지나온 10년을 회고하심에 성취하고 이룩해 놓은 것이 과연 등극하시던 날 처음 작정하셨던 마음에 부응되어 평소의 뜻과 사업을 다했다고 여기십니까? 심법(心法)은 요(堯)·순(舜)을 본받지 않으면 모두 비열하고, 정치하는 도리는 삼대(三代)를 본받지 않으면 모두 구차합니다.
공자(孔子)의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구오대인(九五大人)의 도(道)를 칭하기를 “천지와 덕이 합하며 일월(日月)과 밝음이 합하며 사시(四時)와 순서가 합하며 귀신과 길흉이 합한다.” 하였습니다. 우리 전하께서 차지하고 계신 지위는 또한 우리 동방(東方)의 구오대인의 지위이니, 책임지는 바가 또한 비룡재천(飛龍在天)의 교화입니다. 전하께서 스스로 체인(體認)하고 징험하시는 것이 공자께서 말씀한 네 가지 합한다는 도와 어떠하십니까? 그러한 지위에 있어 그러한 책임이 있는데도 스스로 다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전하에게 경계를 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후대의 인군들은 “하늘이 높고 멀어 아득하니, 우리 인간이 선(善)을 하고 악(惡)을 함을 반드시 살펴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하니 재앙을 내리고 상서를 내림은 모두 우연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몸을 닦고 살피지 못하여 끝내 나라가 혼란하고 멸망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또한 어찌 스스로 오늘날의 변고를 초래한 까닭을 알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도 반드시 중외(中外)에 상언(上言)을 구하신 것은 바로 지혜로우면서 지혜롭지 못한 이에게 물어서 언로(言路)를 넓혀 나무꾼의 말을 취하고 천근(淺近)한 말을 살피는 큰 지혜이십니다.
하늘이 전하에게 이 때에 이런 변고를 내리지 않는다면 전하를 인애(仁愛)하는 것이 아니니, 전하께서 만약 이 인애의 변고로 인하여 재앙을 돌이켜 상서로 만들고 화를 돌이켜 복으로 만드는 도를 다하지 않으신다면 하늘의 노여움은 끝내 반드시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전하의 우려가 또한 어찌 이에 미치지 않으시겠습니까. 재앙을 변하여 상서로 만들고 화를 돌이켜 복으로 만드는 도는 또한 전하의 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횡거 장씨(橫渠張氏)는 말하기를 “음기(陰氣)가 응집되어 안에 있는 양(陽)이 나오지 못하면 분격(奮擊)하여 뇌정(雷霆)이 된다.” 하였으니, 이 또한 《주역(周易)》의 괘를 근본하여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사람의 마음에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이 있으니 천리는 양이고 인욕은 음이며, 일에는 옳고 그름이 있으니 옳은 것은 양이고 그른 것은 음이며, 물건에는 사(邪)와 정(正)이 있으니 정은 양이고 사는 음입니다.
하늘과 땅의 도는 일찍이 인간에게 있는 도와 서로 유통하지 않음이 없어서 항상 반드시 감응(感應)합니다. 그러므로 인도(人道)가 아래에서 잘못되면 천도(天道)가 위에서 응하는 것이니, 변고가 어찌 헛되이 나오겠습니까. 마음에 있어 인욕이 반드시 천리를 가리우고 일에 있어 그름이 반드시 옳음을 이기고 물건에 있어 사(邪)가 반드시 정(正)을 억제하면 이는 모두 양의 도가 음의 도에게 막힘을 당한 것이니, 하늘이 뇌진(雷震)으로 경계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 변고는 궁전 안에서 일어났으니, 그렇다면 오늘날에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하는 것이 별달리 딴 방법이 있겠습니까. 다만 마음에 인욕을 제거하여 한결같이 천리를 따르고, 일에 그릇된 것을 제거하여 한결같이 옳음을 따르고, 물건에 사(邪)를 버려 한결같이 정(正)을 따를 뿐입니다. 천리와 인욕은 진실로 마음에서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며, 옳고 그름은 온 조정이 함께 통하여야 할 것이며, 사와 정은 온 나라가 함께 지적하여야 할 것이니, 세 가지가 이미 양명(陽明)한 도를 얻는다면 어찌 하늘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까 근심하며, 어찌 후일의 화를 막지 못할까 근심하겠습니까.
그러나 변고에 임하여 스스로 살핌은 어찌 다만 인군에게만 국한되겠습니까. 뇌정(雷霆)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초목과 금수까지 동하지 않음이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된 자들은 모두 마음이 있고 모두 하여야 할 일이 있으니, 누구나 다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하지 않을 수 없거늘 하물며 조정에 있어 몸은 하늘의 임무를 대신하고 손으로 하늘의 일을 대행하는 자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다만 군주는 그 도를 주장하고 큰 지위에 있으므로 반드시 먼저 몸소 반성하고 닦은 뒤에야 아랫사람들이 분발하고 진작하지 않음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하오니, 오늘날에 만약 분발하고 진작하는 마음을 두지 않으신다면 비록 날마다 큰 천둥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신은 당초 성지를 들은 날로 즉시 노망한 한 말씀을 드려서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작은 정성을 바치려 하였사오나 노쇠한 병이 중해져서 감히 즉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또 중한 병이 연속되어 아침저녁을 보장할 수 없사오니, 마침내 한 마디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땅속으로 들어갈까 두려우므로 감히 소(疏)를 올려 아뢰는 것이옵니다. 죽음에 임박한 황당한 상소가 무슨 큰 보탬이 있겠으며 또한 어찌 특지(特旨)로 널리 구하는 지극한 소망에 부합되겠습니까. 요컨대 작은 정성이나마 스스로 다할 뿐이옵니다.
현재 중국의 군대가 거의 철수하고 오랑캐가 정성을 바치고 있으니, 국가는 소강상태(小康狀態)라고 이를 만하며, 성상(聖上)의 춘추(春秋) 역시 중년에 이르시니, 이는 바로 마땅히 분발하고 진작하여야 할 기회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마침 이 때 경계를 보였으므로 이에 신은 오늘날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이옵니다.
신은 《주역》의 64괘 중에 진괘(震卦)가 혹 아래에 있어 정(貞)이 되고, 혹 위에 있어 회(悔)가 된 것 16괘를 특별히 취하여 별도로 한 책을 만들어 올리옵니다. 진괘의 쓰임이 여기에 다했사온데, 실로 오늘날 변고에 대응하는 방도에 절실하기 때문에 감히 올리는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함께 굽어 살피소서.
신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북극성을 바라보며 성상께 축원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와 삼가 죽을 죄를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주D-001]용잠(龍潛) : 용이 물속에 깊이 잠겨 있는 것으로, 용은 제왕을 상징하기 때문에 제왕이 즉위하기 전을 이른다.
[주D-002]비룡재천(飛龍在天) :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주역》 건괘(乾卦) 구오효사(九五爻辭)에 보이는 내용인 바, 제왕의 지위를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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