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10권_
발(跋)_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발문
사람은 다섯 가지 떳떳한 성(性)을 간직하고 있는데 예(禮)가 인(仁)의 다음인바, 하늘에 있으면 형(亨)의 도가 된다.고요(皐陶)가 계책을 아뢸 적에 예(禮)를 쓰는 것으로써 떳떳한 법을 돈독히 함에 뒤이었으니,떳떳한 법(法)을 하늘이 편 것이라 하고, 예(禮)를 하늘의 질서라 말한 것은 그 이치가 하늘에 근본함을 이른다. 하늘이 편 떳떳한 법을 돈독히 함은 요컨대 하늘의 질서인 예를 씀에 달려 있는데, 그 의장(儀章)과 도수(度數)가 주(周) 나라에 이르러 분명하고 또 갖추어졌다.
공자(孔子)가 가르침을 베풀 적에 예(禮)로 요약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었고, 인(仁)을 행하는 것은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으며, 덕(德)에 나아감은 예에 서는 것이라 하였으니,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성(性)을 따르는 도(道)와 도를 품절(品節)한 가르침은 그 규범이 모두 예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단 하루라도 예를 떠나서는 안 되며 천하와 국가는 단 하루라도 예가 없어서는 안 되니, 이른바 예가 다스려지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예가 혼란하면 나라가 혼란하며, 예가 보존되면 나라가 보존되고, 예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어찌 확고한 의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가르침은 예교(禮敎)보다 먼저할 것이 없고, 배움은 예학(禮學)보다 간절한 것이 없으니, 예로부터 성인(聖人)이 예를 중히 여기심은 이 때문일 것이다.
아! 예서(禮書)가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 천착(穿鑿)하는 의논이 일어나 사람들은 서 있을 만한 자리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세상에는 모범이 될 만한 교화(敎化)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상도(常道)에 처함에 있어서도 오히려 법을 어김이 많으니, 하물며 사변(事變)에 따라 대응함에 어찌 그 알맞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인륜(人倫)이 확립되지 못하고 예속(禮俗)을 보지 못함이 진실로 당연하다.
송(宋) 나라의 다섯 선생이 차례로 나와 예(禮)를 강명(講明)하고 서로 이어 발휘(發揮)해서 거의 빠뜨리고 누락된 바가 없게 하지 않았더라면 후세의 사람들이 어떻게 성인(聖人)이 예를 제정한 본의를 연구하며, 때에 따라 사변(事變)에 대응하는 자가 어찌 시의(時宜)에 적절하게 저울질하여 절충하는 정론(定論)을 알 수 있겠는가.
한강 선생(寒岡先生)은 우리 나라에 늦게 태어나 예학(禮學)에 유념한 지 여러 해였다. 비로소 마침내 여러 예서들을 모으고 분류하여 한 책을 만들고 이름하기를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이라 하였으니, 이로부터 천리(天理)의 절문(節文)과 인사(人事)의 의칙(儀則)이 서로 갖추어지고 상호 보완되었으며, 융회(融會)하고 관통(貫通)하여 현혹된 것이 밝혀지고, 의심스러운 것이 정해지고, 다투던 것이 종식되었다. 그 사문(斯文)에 공이 있음을 어찌 보통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생각하건대, 지(知)에 지나친 지혜로운 자와 행(行)에 지나친 어진 자는 혹 이 예를 번문욕례(繁文縟禮)라 하여 소홀히 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와 불초한 자는 항상 이 예를 너무 높고 예[古]스럽다 하여 숭상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이 두 가지 병통에 걸리지 않는다면 마땅히 다섯 선생이 분명히 가르쳐 주심과 우리 한강 선생이 여러 가지를 모은 공을 알게 되어 이 책이 반드시 백세(百世)에 소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다만, 다소의 한이 없지 못한 것은 선생의 말질(末疾)이 이미 고질이 되어 다시 손수 교정(校正)을 가하여 더욱 정하고 극진함을 다하지 못한 점이다. 그러나 보는 자가 유추(類推)하여 통하고, 또 본서(本書)를 취하여 참고하고 연구한다면 모두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문인(門人)인 이 사문 윤우(李斯文潤雨)가 호주(湖州)의 읍재(邑宰)가 되어 마침내 방백(方伯 도백(道伯)을 가리킴)에게 청하고 동지(同志)와 여러 수령(守令)들에게 두루 알려 책을 간행할 길을 마련하고, 인하여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전말(顚末)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의리상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초고(草稿)를 써서 아뢰는 바이다.
숭정(崇禎) 2년 기사(1629,인조7) 중하(仲夏) 생명(生明 초사흘)에 후학(後學) 옥산(玉山) 장현광(張顯光)은 삼가 쓰다.
[주D-001]다섯 가지……도가 된다. : 다섯 가지 떳떳한 성(性)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괘사(卦辭)에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이다.” 하였는데, 주자(朱子)는 “원은 사시(四時)에 있어서는 봄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인이 되며, 형은 사시에 있어서는 여름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예가 되며, 이는 사시에 있어서는 가을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의가 되며, 정은 사시에 있어서는 겨울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지가 된다.” 하였다. 이 중에 신(信)은 성실한 것으로 원, 형, 이, 정 모두에 해당된다. 《周易本義》
[주D-002]고요(皐陶)가……뒤이었으니, : 고요는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의 명신(名臣)으로 일찍이 순 임금에게 경계하기를, “하늘이 차례를 펴서 법을 두시니 우리 오전(五典)을 바로잡아 이 다섯 가지를 돈독하게 하시며, 하늘이 차례하여 예를 두시니 우리 오례(五禮)를 따라 다섯 가지 예를 떳떳하게 쓰소서.[天敍有典 勅我五典 五惇哉 天秩有禮 自我五禮 五庸哉]” 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후세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천서(天敍) 천질(天秩)과 돈전(惇典) 용례(庸禮)란 말을 자주 쓰는바, 주자(朱子)는 서(敍)는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의 윤서(倫敍)이고, 질(秩)은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에 대한 등급의 높고 낮은 품질(品秩)이며, 돈(惇)은 돈독함이요, 용(庸)은 떳떳이 쓰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오전은 바로 인간의 오륜(五倫)이며, 오례는 이 오륜에 대한 예절을 가리킨다. 《書經 皐陶謨》
[주D-003]공자(孔子)가……하였으니, : 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는 일찍이 “문(文)에 대하여 널리 배우고 몸을 예(禮)로 묶으면 또한 도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였으며, 또 안연(顔淵)은 공자의 가르침을 말하면서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인도하시어 나에게 문을 넓게 가르쳐 주시고 몸을 예로 묶게 했다.” 하였다. 또 공자는 인(仁)을 행하는 방법을 묻는 안연에게 “자신의 사욕(私慾)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라고 대답하였으며, 또 학문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시(詩)에 흥기하고, 예에 서고, 음악에 완성한다.” 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論語 雍也, 子罕, 顔淵, 泰伯》
[주D-004]말질(末疾) : 말초의 병으로 수족이 마비되는 등의 병을 이른다.
[주D-005]호주(湖州)의 읍재(邑宰) : 호서(湖西) 지방인 충청도의 원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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