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구는 뉘우침이 없어지니, 말을 잃고 쫓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올 것이다.[初九 悔亡 喪馬 勿逐 自復]
○ ‘마(馬)’는 감(坎)의 상이다. 초효가 사효와 응(應)의 관계가 아닌데 사효는 삼효와 비(比)의 관계에 있으니, 말을 잃어버리는 ‘상마(喪馬)’의 상이 있는 것이다. 감함(坎陷) 안으로 들어가므로 쫓지 않는 것이다. ‘자복(自復)’은 태(兌)의 열(說) 상이다.
○ ‘주(主)’는 오효를 가리키니 임금의 자리이다. ‘항(巷)’은 음(陰)의 우(偶) 상이다. 괘의 뜻을 인하여 만난다는 ‘우(遇)’ 상을 취하였다.
○ ‘우(遇)’는 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상을 취한 것이다.
○ 삼효의 호체는 감(坎)으로, 감(坎)은 여(輿)가 된다. 육삼이 두 강(剛)의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아래로 이효에게 제압을 당하니, 수레가 뒤로 끌려가는 ‘여예(輿曳)’의 상이 있는 것이다. 또 감(坎)은 예(曳)가 된다. 위로는 사효에 막혀 있는데 사효는 이체(離體)로 우(牛)가 되니, 소가 앞이 가로막히는 ‘우체(牛掣)’의 상이 있는 것이다. ‘천(天)’은 머리가 깎이는 것[髡首]이고, ‘의(劓)’는 코가 베이는 것[截鼻]이다. 감(坎)은 형(刑)이 되고 태(兌)는 훼절(毁折)의 상이 된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천(天) 자는 이(而) 자로 되는 것이 합당한바, 수염을 깎는 것이다.[天合作而 剃鬚也]” 하였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이(離)는 이구(頤口)의 상이 된다. 육삼은 이체(離體)의 아래에 붙어 있으니 수(鬚)의 상이며 태(兌)의 상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태(兌)는 손(巽)의 반체인데 손(巽)이 과발(寡髮)이 되니 머리가 깎이는 ‘천(天)’의 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태(兌)의 복체는 간(艮)인데 간(艮)은 비복(鼻伏)이 되며 태(兌)는 훼절(毁折)이 되므로 코가 베이는 ‘의(劓)’의 상이 있는 것이다. ‘종(終)’은 삼효가 끝인 상이다. ‘초(初)’는 종(終)에 대치되는 말이다.” 하였다.
○ ‘왕(往)’은 유(柔)한 음효가 위에서 행하는 상이다. 오효는 사효로부터 나아가 중간에 위치해 있으면서 응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나아감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 ‘규고(睽孤)’에 대해서는 구사효(九四爻)에 대한 운봉 호씨의 설에 나온다. ‘견(見)’은 이(離)의 목(目) 상이다. ‘시(豕)’는 감(坎)의 상이다. ‘도(塗)’는 감(坎)의 상이다. 삼효가 감체(坎體)의 아래에 있으니 진흙을 진 ‘부도(負塗)’의 상이 있는 것이다. ‘귀(鬼)’는 감(坎)의 상인데 감(坎)은 유음(幽陰)의 방위이니 귀신인 ‘귀(鬼)’의 상이 있는 것이다. ‘거(車)’는 감(坎)의 상이다. 삼효가 감체의 안에 있으니 귀신이 수레에 실려 있는 ‘재귀(載鬼)’의 상이 있는 것이다. ‘호(弧)’는 전체에서 상을 취하였다. 또 감(坎)은 궁(弓)의 상이다. 쌍호 호씨가 말하기를, “태(兌)는 손목(巽木)의 반체이니 궁(弓)의 상이 있다. 손승(巽繩)은 현(弦)의 상이 된다.” 하였다. ‘우(雨)’는 감(坎)의 상이다.
○ ‘군의(群疑)’는 돼지[豕]가 아닌데도 돼지라고 여기고 귀신[鬼]이 아닌데도 귀신이라고 여기는 따위를 말한다.
[주D-002]규고(睽孤)에 …… 나온다 : 구사(九四)에 대해 운봉 호씨가 말하기를, “양효인 구(九)는 본디 오효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효의 구(九)와 서로 비(比)의 관계가 되어서 외롭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구(九)가 와서 사효의 자리에 있으니, 상효가 외롭고 사효 역시 외롭다. 그러므로 모두 고(孤)의 상이 있는 것이다. 다른 효에서 어그러졌다가 합해지는 것은 강(剛)과 유(柔)가 서로 만난 것이다. 그런데 사효와 초효가 어그러졌다가 합해지는 것은 강(剛)과 강(剛)이 만난 것이니, 피차간에 강실(剛實)로써 서로 사귀어야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위태로워야만 허물이 없는 것은, 다른 괘에서는 삼효의 자리가 위태로운 자리이므로 대부분 여(厲)로써 말하였다. 그런데 규괘(睽卦)의 사효는 위태로운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규(睽)의 때를 당해서는 반드시 위태로움에 처하는 방도로 대처하여야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