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7권_
잡저(雜著)_
봉대설(鳳臺說)
문소(聞韶 의성(義城)의 별칭)의 금성산(金城山) 서쪽에 한 시냇물이 있으니 이름을 하천(下川)이라 하고, 하천의 상류에 한 석벽(石壁)이 있으니 이름을 봉대(鳳臺)라 한다. 석벽의 높이는 몇 길[丈]이 될 만하고 길이는 높이에 비하여 10배나 된다. 냇물의 위아래 각각 20리 사이에는 모두 기이한 절경(絶景)이 없으므로 이 지역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마침내 이 석벽을 제일 좋은 곳으로 여긴다. 나는 봉(鳳)으로 대(臺)를 이름한 뜻을 알지 못하여 옛 노인들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에 주산(主山)의 모양이 비봉형(飛鳳形 나는 봉황새의 모양)이라 하였으며, 봉(鳳)은 영특한 새인데 날아가면 머물지 않아서 복과 경사의 누림이 이에 따라 길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봉이 날아가지 않고 머물게 하는 방법을 모두 갖추어 설치하였는바, 그물을 높이 펼치면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여 남쪽에 횡으로 있는 산을 이름하여 백장산(百丈山)이라 칭하였고, 또 여기에 절을 설치하고 산명(山名)을 따라 백장사(百丈寺)라 칭하였으니, 이는 우리의 그물이 백 길이나 되어 봉황이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봉황새는 서식(棲息)하는 곳을 가릴 때에 반드시 오동나무를 취한다 하여 서산(西山)의 봉우리를 칭하기를 오동령(梧桐嶺)이라 하였으니, 이미 그 둥지를 지키면 봉황이 딴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며, 또 흙을 모아 알 모양을 만들어서 앞뒤에 펼쳐 놓고 이름하기를 봉란(鳳卵)이라 하였으니, 이곳에서 알을 까서 대대로 새끼가 끊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그 동남쪽에 산이 돌고 물이 굽어서 땅이 넓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이름하여 가음(佳音)이라 하였으니, 봉황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항상 이곳에서 들린다는 뜻이며, 이 석벽은 한 경내의 절경이 되니, 봉황이 이 위에서 놀면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다 하여 마침내 봉대(鳳臺)라 이름하였으며, 봉황새가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여기면 감히 날아갈 뜻을 두지 못한다 하여 따라서 절을 설치하였다. 이는 백장(百丈), 동령(桐嶺), 가음(佳音) 등의 명칭이 나라가 멸한 뒤에도 없어지지 아니하여 봉대(鳳臺)의 명칭이 함께 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옛날 삼한(三韓)이 솥발처럼 서 있을 때에 각각 속국(屬國)이 있었는바, 그 속국들은 각기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각기 칭호를 붙여 큰 나라는 수백 리이고 작은 나라는 백여 리였다. 또한 이들을 칭하기를 나라라 하여 대국(大國)에 속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소문(召文)이라는 것이 어찌 또한 그러한 나라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현(縣)의 별호(別號)도 문소(聞韶)라 하니, 이 또한 소문(召文) 비봉형(飛鳳形)의 설(說)에 따라 ‘구성(九成)에 와서 춤추었다’는 뜻을 취하여 이러한 칭호가 있었나 보다.
대체로 비봉형이라는 말은 그러한 이치가 없음이 분명하다. 산과 물의 이치는 축(丑)에서 땅이 개벽된 이래로 진실로 있었다. 그리하여 반드시 산 모양이 모여들고 물의 형세가 감싼 뒤에야 풍기(風氣)가 모여 인물이 많이 번성하였으니, 나라를 세우는 자가 진실로 지역을 가리지 않을 수 없으나 나라를 누림의 성쇠(盛衰)와 역년(歷年)의 길고 짧음으로 말하면 오로지 군덕(君德)의 후하고 박함과 정치의 잘하고 잘못함에 달려 있으니, 어찌 지리의 좋고 나쁨에 달려 있겠는가. 설령 길흉(吉凶)이 반드시 지리(地理)에 달려 있다 하더라도 어찌 명칭을 가칭(假稱)함으로써 풍기의 향하고 등짐을 제재할 수 있겠는가.
산맥이 이미 천지가 개벽한 초기에 뭉쳐져서 자연히 일정한 모양이 있으니, 우연히 그와 비슷한 것이요 실제 봉황새가 아니므로 진실로 날아갈 리가 없는 것이다. 가명(假名)의 봉황이 어찌 깃들여 사는 곳이 있겠으며 어찌 알을 깔 일이 있겠는가. 이미 울지 않는데 무슨 소리가 아름다우며, 이미 날지 않는데 무슨 그물을 설치하여 날아가는 것을 막겠는가. 그렇다면 이른바 봉대(鳳臺)라는 것도 어찌 참으로 봉황새가 노는 곳이었겠는가.
내가 들으니, 왕자(王者)가 진실한 덕이 있으면 참으로 이른바 봉황새라는 것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옛날 주(周) 나라 문왕(文王)이 기산(岐山) 아래에 계실 적에 천지가 만물을 내는 마음을 체득하여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화(和)한 기운이 상서를 이루어 오채의 아름다운 깃털로 홰홰(噦噦)히 우는 것이 과연 기산에 이르렀다.
이때를 당하여 봉황새가 놀라게 해도 날지 않고 쫓아도 가지 않았으니 굳이 백장(百丈)의 그물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으며, 태화(太和)의 기운에 의하여 둥지를 삼았으니 굳이 오동나무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으며, 성덕(聖德)의 가운데에 알을 까서 새끼치니 굳이 흙을 모아 알의 모양을 빌릴 필요가 없으며, 천하가 함께 그 우는 소리를 들으니 굳이 가음(佳音)으로 마을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왕의 조정에 와서 춤을 추니 또 하필 가명(假名)의 대(臺)를 만들 것이 있겠는가. 진짜 봉황새가 이르렀기 때문에 역년(歷年)이 장구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끝내 8백 년의 오랜 복록(福祿)을 누린 것이니, 이것이 실제 징험이 아니겠는가.
만일 소문국(召文國)의 군주가 스스로 문왕의 어진 정사를 행했더라면 기산의 봉황새가 다시 금성산(金城山)에서 울어 굳이 가명(假名)을 붙이지 않아도 저절로 주 나라 왕실의 복록이 있었을 것인지 어찌 알겠는가.
나는 소문국의 군주가 나라를 누린 것이 몇 대(代)였으며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산형(山形)이 가봉(假鳳)이라는 말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멸망을 재촉한 것이 가봉을 만든 때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깊이 믿은 것이 이미 지리(地理)에 있다면 그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나는 백장산(百丈山)을 가지고 있으니 내 봉황새가 도망할 수 없을 것이요, 나는 오동산(梧桐山)이 있으니 내 봉황새가 여기에서 서식(棲息)하고 알을 까서 새끼를 기를 것이요, 대(臺)가 있어 놀 수 있으니 내 봉황새의 아름다운 소리가 영원히 끊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에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여야 하고 국맥(國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는 날마다 안일과 향락을 일삼고 사냥을 다녔을 것이니, 그렇다면 비봉의 모양이 백성들이 이산(離散)하고 하늘이 노여워하는 것을 구원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소문국의 군주가 반드시 이러한 일로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요, 다만 대의 이름으로 인하여 그 미혹됨을 증명할 뿐이다.
지금 대 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봉황은 떠나가고 빈 대만 있는데 강물은 절로 흐른다.[鳳去臺空江自流]”는 옛 시구(詩句)를 나는 다시 오늘에 읊는 바이다.
[주D-002]축(丑)에서 땅이 개벽된 이래 : 축은 축회(丑會)를 가리킨다. 소옹(邵雍)의 《황극경세(皇極經世)》에 “30년을 1세(世)라 하고, 12세 즉 3백 60년을 1운(運), 30운 즉 1만 8백 년을 1회(會)라 하며, 회는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모두 12회가 있는데, 하늘은 자회(子會)에서 열리고 땅은 축회에서 열리고 사람과 만물은 인회(寅會)에서 생겨났다.[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 하였으며, 12회 즉 12만 9천 6백 년을 1원(元)이라 하는데, 이 1원이 지나면 현재의 천지가 없어지고 새로운 천지가 개벽된다 하였다.
[주D-003]홰홰(噦噦)히 우는 것 : 홰홰는 새의 울음소리로 곧 봉황새를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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