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8권_
잡저(雜著)_
김 상사(金上舍)의 자설(字說)
상사(上舍)의 처음 자(字)는 자미(子美)이니, 그 이름인 휴(烋)를 아름답게 꾸민 것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휴(烋)는 진실로 아름다움이 성대한 것이니, 자미라고 자를 지은 것은 과연 이름에 걸맞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여기기만 하고, 아름다움에 처하고 아름다움을 더하는 뜻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것이 이것으로 그칠까 두려우니, 이는 길게 나아가는 도(道)가 아니다.
나는 짐작하건대, 선군자(先君子 상대방의 선친을 가리킴)께서 명명(命名)하신 뜻이 깊고 원대하니, 어찌 천근(淺近)한 데에 있겠는가. 우리 인간의 사업(事業)은 진실로 참되고 또 큰 것이 있으니, 사랑하는 어버이의 바람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이른바 ‘길게 나아가는 도’라는 것은 비록 아름답더라도 스스로 아름답게 여기지 아니하여, 또 모름지기 스스로 감추고 스스로 힘쓰는 뜻이 있은 뒤에야 그 아름다움이 전(前)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아니하여 반드시 극진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것이다.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안자(顔子)는 이미 아성(亞聖)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자기 몸에 소유함이 어떠하며 마음 속에 충실한 것이 어떠하였겠는가. 그런데도 오히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충실하여도 빈 것처럼 여겼다.” 하였으니, 이는 이미 소유한 것을 소유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미 충실한 것을 충실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서 바야흐로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그 재주를 다해서 반드시 성인(聖人)과 하늘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그만둔 것이다. 이 어찌 후학(後學)들이 숭앙(崇仰)할 바가 아니겠는가.
김 상사(金上舍)가 이에 자(字)를 고쳐줄 것을 청하므로 나는 겸가(謙可)로 대답하였더니, 김 상사는 또다시 그에 대한 해설을 청하였다. 김 상사는 내가 진실로 가장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사람이기에 마침내 그를 위해 위와 같이 서술하고 인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권면(勸勉)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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