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8권_

잡저(雜著)_

 

용졸당설(用拙堂說)

 

당(堂)의 주인이 현광(顯光)에게 글을 보내오기를, “당(堂)은 임천군(林川郡) 남당강(南塘江)의 서쪽 강안(江岸)에 있으니, 바로 제가 터를 잡아 세운 것이며, 당호(堂號) 역시 저의 호입니다. 옛날 우리 선친(先親)께서는 양졸(養拙)로 당호를 삼으셨으므로 우리 형제 세 사람이 모두 졸당(拙堂)을 계승하여 호를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형 성도(聖徒)는 수졸(守拙)이라 하였고 아우 성복(聖復)은 지졸(趾拙)이라 하였으며, 지금 이 성징(聖徵)은 용졸(用拙)로 저의 당호를 삼았으니, 졸(拙)은 진실로 집안 대대로 전하여 함께 숭상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형세의 빼어남과 경치의 풍부함을 모두 기록하여 보여준 다음 인하여 한 문자(文字)를 청해서 잊지 않는 자료로 삼으려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졸(拙)은 덕(德)의 바탕이니, 졸함으로써 마음을 잡으면 마음이 망녕된 생각이 없고 졸함으로써 몸을 가지면 몸이 망녕된 행동이 없으며, 일에 응할 때에 졸로써 응하면 일이 순하지 않음이 없고 남을 대할 때에 졸로써 대하면 남이 믿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졸은 만복(萬福)의 기초가 아니겠는가.
이 졸함을 길러 대대로 전하여 한집안이 적덕(積德)하는 자료로 삼았는데, 이에 이것을 지켜 수졸(守拙)이라 하고 이에 이것을 따라 지졸(趾拙)이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선친의 뜻을 계승하고 선친의 일을 따르는 효도이며, 주인은 또 졸을 써서 용졸(用拙)이라 하였으니, 그 뜻을 나타낸 것이 더더욱 깊다.
졸하면 재주가 없고 재주가 있으면 졸하지 않으니, 졸하여 졸함을 따르는 자는 언제나 일을 하는데 부족하고, 재주로 재주를 부리는 자는 항상 작위(作爲)하여 병통이 있다. 그러므로 오직 재주가 있으면서도 졸함을 쓴 뒤에야 재주로써 졸함을 구제하고 졸함으로써 재주를 억제하여 활용함에 맞고 행함에 마땅한 도가 되는 것이다.
주인은 또한 재주에 뛰어나다고 말할 만한데 마침내 졸을 쓰는 것을 뜻으로 삼아 당호를 삼고 가슴속에 새겨두니, 그렇다면 주인이 이 졸에 힘을 얻은 것이 필경 어떠하겠는가. 나는 주인을 위하여 거듭 축하하는 바이다.
강산의 빼어난 형세와 보기 좋은 경치로 말하면 이 당에 오르는 자 중에 반드시 문장(文章)으로써 그림을 대신하는 솜씨가 있을 것이다. 나는 실로 졸하여 졸을 따르는 자인데 주인이 글을 요구하므로 감히 졸한 말로 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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