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8권_
잡저(雜著)_
족계(族契)를 중수(重修)하는 서
애석하게도 구보(舊譜)가 전하지 않아 대종(大宗)의 밖에 별도로 소종(小宗)이 된 것이 모두 몇 파(派)나 있는지 알지 못하며, 또 소종 가운데에 어느 대(代)의 분파(分派)가 가장 번성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대략으로 헤아려보면 내 몸으로부터 위로 5대와 6대 이전에는 관작(官爵)과 품계(品階), 사적(事蹟)과 문장(文章)이 혹 편록(編錄)에 기재되어 있고 혹 옛 집안에 전해져 오는바,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갑족(甲族)을 꼽을 적에 반드시 옥산 장씨(玉山張氏)를 들곤 하니, 그렇다면 그 현달하고 또 번성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 중에 토착 성씨가 된 자들은 언제나 번성하지 못하고, 비록 번성하더라도 혹 벼슬살이하고 혼인함으로 인하여 흩어지고 이사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대대로 그 지방에 거주하는 자들이 참으로 적은데, 오직 우리 장씨는 20여 대를 전해오도록 이 지방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집안이 효도하고 대대로 화목하며 덕을 쌓아 복을 오게 함이 진실로 유래가 있는 것이다.
가문이 번성할 때를 당해서는 온 집안이 한 가족이 되고 온 가문이 한 마음이 되었을 것이니, 우애가 돈독하고 화목한 가운데 각자 그 도리를 다할 뿐이었다. 어찌 계(契)를 만들어 통일시킬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러다가 대를 전해옴이 이미 멀어져 분파(分派)가 많아지자 정(情)에 간격이 없을 수 없고 형세가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유지하고 모으는 도리가 있어야 하였으니, 이 때문에 종족(宗族)의 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계를 처음 만든 자는 누구인가? 바로 나의 족조(族祖)이신 진사(進士) 휘(諱) 잠(潛)께서 나의 선친(先親)과 함께 상의하여 만드셨다. 내가 들으니, 진사공(進士公)은 성품이 가장 순후(淳厚)하고 착하며 효도하고 우애하는 행실이 돈독하여, 대대로 쌓아온 덕을 미루어 가문이 전해오는 유풍(遺風)을 이었으며, 우리 선친도 소종(小宗)의 장(長)으로 선조를 추모하는 효성이 간절하였는바, 진사공에 있어서는 단문(袒免)의 조카가 되신다. 그리하여 지기(志氣)와 취미가 깊이 서로 합함이 있었으니, 이 계를 우리 종족간에 세울 것을 의논한 것은 그 뜻이 진실로 심원하다.
타성(他姓)을 넣지 않아 반드시 기운의 등속을 오로지하였으며, 은혜를 돈독히 하여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규칙을 정하여 일을 통일시켜 때로 화목을 다져 좋은 정을 융합하고 일에 힘을 함께하여 서로 돕는 의를 통하였다. 그리하여 부유한 자는 나누어 주고 가난한 자는 구제받게 하여 경사가 있으면 기쁨을 함께 하고 근심이 있으면 서로 구휼하게 하였으니, 이 또한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깊은 생각과 원대한 계책이었다.
나는 비록 미처 진사공(進士公)을 절하고 모시지 못하였으며 우리 선친도 일찍 별세하시어 가정(家庭)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못하였으나 오히려 남은 가르침의 훌륭함을 볼 수 있었다. 자신 이상으로 증조(曾祖)의 항렬(行列)이 된 자가 있으며 이하로는 손자의 항렬로 처음 난 자가 있었는데, 늙은이와 어린이, 적자(嫡子)와 서자(庶子)를 합하여 모두 계에 가입되어 있는 자가 30여 명이었으며, 나이가 어려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하여 부형(父兄)의 아래에 딸려 있는 자도 또 많았다.
마침내 글을 강(講)하고 외우는 과정을 만들어 종족의 어린이들의 학문을 권장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모여 앉아서 글을 강하게 한 다음 그 등급을 정하여 장려하였으니, 이는 더욱 우리 계의 아름다운 일이었다. 또 이것을 미루어 넓혀 비록 우리 장씨 성(張氏姓)이 아니더라도 우리 성(姓)의 외손(外孫)이 된 자들이 제 스스로 계에 들어오려고 하면 동참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이는 비록 본래의 규정이 아니었으나 또한 후(厚)함을 따르는 뜻이었다.
아! 임진년(1592,선조25)과 계사년(1593,선조26)에 왜란(倭亂)을 겪은 이래로 온 집안이 일소(一掃)되어 패망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남아 있는 자가 어른은 채 열 명이 되지 못하고 어린이는 겨우 6, 7명뿐인데 이들도 모두 유리(流離)하고 곤궁하여 의식(衣食)을 장만하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누가 종족을 합하여 화목을 닦는 방도에 뜻을 두겠는가.
지금은 왜적(倭賊)이 바다를 건너간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명(明) 나라 군대도 또한 철수하여 부역이 잠시 느슨해지고 생업도 다소 여유가 있다. 이 때문에 전쟁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이 차츰 인간의 일을 갖추고 있으니, 우리 종족이 된 자가 우리 종족의 고사(故事)를 다시 거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마침내 집안의 노인들에게 청하여 우리의 계를 다시 회복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장씨 성을 가진 자는 몇 사람이 안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외척(外戚)으로서 연계가 되거나 혹은 친함을 맺고 의(義)를 합한 자로 지방에 있는 자는 아직도 그러한 사람이 많았는바, 이들이 우리 종족을 버리지 않고 함께 약속을 지킬 것을 생각하여 모두 입계(入契)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책을 만들어 이름을 등사(謄寫)하고 규약을 정하니, 모두 약간 명이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계(契)라는 것은 합한다는 뜻이니, 합한다는 것은 겉과 속이 간격이 없어 근심스러운 일과 기쁜 일을 반드시 함께하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반드시 같이한 뒤에야 참다운 합함이라 이를 수 있으니, 겉으로만 따르고 마음은 다르며 입으로만 허락하고 몸은 어기는 자는 참다운 합함이 아니다.
덕의(德義)로 서로 좋아하여 오직 선(善)을 권면하고 잘못을 타이른 뒤에야 올바른 합함이라 이를수 있으니, 사사로이 친하고 바르지 못하게 따라다니며 구차히 함께하고 간사하게 친하는 자로 말하면 올바른 합함이 아니다. 이는 또 우리 계중(契中)에 있는 자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번 약속한 뒤에는 비록 길가는 사람이라도 곧 형제가 되니, 하물며 함께 계에 든 사람이겠는가. 나는 우리 계원(契員) 중에 반드시 계(契) 자(字)의 뜻을 깊이 알아서 진사공과 우리 선친이 계를 만드신 처음 뜻을 실추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
아! 우리는 한 가문인데 원초(元初)에는 종족만 있고 계가 없었으며, 중간에는 처음에 계가 있다가 끝에는 나라가 혼란하고 사람들이 모두 죽어 계가 폐지되었는데 이제 또 몇 명밖에 되지 않은 잔약(孱弱)한 후손들이 다시 옛날의 계를 복구할 것을 의논하니, 이 또한 한 가문의 성쇠(盛衰)의 운수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이후로 다시 몇 번이나 성하고 쇠함이 있을 터인데, 뒤를 이어가는 자들이 계를 처음 만들고 계를 복구한 뜻을 생각할지 모르겠다.
계가 이루어지자, 계중에 있는 여러 형제들은 나에게 부탁하여 전말(顚末)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집안 노인들에게 들은 것을 모두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이 계의 근본은 선친이 진사공의 명령을 받들어 처음 만든 것이니, 그렇다면 오늘날 이 계를 중수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더욱 감회가 깊다. 또 진사공의 손자인 광한(光翰)과 대종손(大宗孫)인 내범(乃範)을 오늘날 수계(修契)하는 유사(有司)로 삼았으니, 이는 모두 불초 등이 정성을 다하여야 할 처지이다.
그러나 이 어찌 우리 몇 사람의 사사로운 정성이겠는가. 실로 계중에 들어있는 여러 어른들이 함께 기뻐하여야 할 일이며, 실로 우리 선조께서 대대로 가르쳐온 지극한 뜻이요, 실로 우리 황천(皇天)이 진리를 내려주어 본성(本性)을 갖게 된 자연의 의(義)인 것이다.
만력(萬曆) 29년(1601,선조34) 7월 모일에 문말(門末) 현광(顯光)은 서(序)하다.
1. 계중에서는 족보(族譜)를 깨끗이 써서 유사(有司)가 삼가 보관하고 서로 전하여야 한다.
1. 계중에 가입되어 있는 자들은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여 항상 한집안 사람처럼 대하여야 한다.
1. 우리 계는 바로 종족의 계이다. 계를 만든 것이 이미 종족을 근본으로 하였다면 우리 계원(契員)들은 종족이 된 근원을 생각하여 먼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을 지극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 선조 이상은 법에 4대가 지나면 비록 종손(宗孫)이라도 사당에서 제사할 수 없으니, 오직 정성을 다하는 도리는 다만 성묘(省墓)하는 한 가지 일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먼 선조들의 분묘(墳墓)는 또 그 장소를 알지 못하니, 이는 후손들이 깊이 애통해하고 민망히 여기는 바이다. 오직 우리 7대 조고(祖考) 및 6대 조고(祖考)와 6대 조비(祖妣)의 분묘는 모두 성주(星州) 땅에 계시니,마땅히 1년에 한 번씩 제사하여, 한편으로는 정성을 지극히하여 남은 경사의 흐름에 보답하고 한편으로는 그 지역을 기억하여 우리 후손들의 생각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해마다 제사를 올리는 의식은 유사(有司)가 이를 주관하며, 혹 봄이나 혹 가을에 동성(同姓) 중에서 절반을 나누어 제물(祭物)을 마련하되 반드시 정성을 지극히하여 나누어 두 곳에서 제사하며 비록 외손이라도 혹 참배하고자 하면 더욱 아름다운 일이다.
1. 먼 조상의 분묘를 이미 알 수 없고 집안의 옛 족보도 난리통에 모두 잃어서 이제 미상(未詳)한 부분이 많으니, 내외손(內外孫)을 막론하고 만일 혹시라도 우리 장씨의 선대의 사적(事蹟)을 듣고 보아 아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듣고 본 것을 자세히 기록해서 우리 계중에 보고하여야 할 것이다.
1. 우리 계는 처음에 다만 동성 사람들만을 가지고 만들었으나 지금은 비록 소원한 타성(他姓)이라도 만약 우리 장씨 족보와 연관이 있으면 모두 들어오게 하였다. 이는 또한 선대의 은혜를 미루어 화목하는 도를 넓힌 것이니, 선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하는 정이 내외손(內外孫)의 간격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아들과 딸을 두지 않은 이가 없으니, 그 심정을 가지고 우리 선대의 마음을 체득한다면 이를 상상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중에서는 마땅히 동성(同姓)과 이성(異姓)을 구별하지 말고 서로 후하게 대하는 의는 간격이 없어야 할 것이나, 다만 선조를 추모하는 등의 일은 동성의 입장에 있는 자가 반드시 스스로 그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1. 이 계는 원초(元初)에는 바로 우리 장씨의 동성계(同姓契)였으니, 그렇다면 무릇 계중에 들어 있는 우리 동성인 자들이 더욱 돈독히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유사를 정할 때에 반드시 동성 한 사람과 이성 한 사람으로 인원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는 빈주(賓主)의 구별을 두기 위해서가 아니요, 다만 두 명의 유사가 모두 이성이면 본성(本姓)인 자가 더욱 계의 뜻을 소홀히 하고 잊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 한 계원 가운데에 길한 일만 있고 흉한 일이 없으며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이 없다면 이는 계중의 다행이다. 무릇 우리 계원의 처지에 있는 자들은 진실로 각자 삼가고 힘쓰고 반성하여 반드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하고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말아 모름지기 계중으로 하여금 기쁘게 들을 만한 일이 있게 하고 듣기 싫은 일이 없게 한다면 이보다 큰 다행이 있겠는가.
1. 인륜의 가운데 아버지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남편은 창도(唱導)하고 부인은 화(和)하며 미루어 동성간에 화목하고 또 미루어서 외척간에 화목하며 또 미루어 붕우간에 신의를 지키고 후하게 하여야 하는바, 이것은 바로 우리 가문이 평소 돈독히 해 왔으며 우리 계중이 마음을 다하여야 할 사항이니, 그 어찌 서로 권면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부터 더욱 서로 권면한다면 어찌 계중에 크게 축하할 일이 아니겠는가.
1. 향곡(鄕曲)에 있는 평민들이 어찌 조정에서 군주를 섬기기를 기다린 뒤에 군신간의 의리를 다할 수 있겠는가. 오직 맡은 직무를 수행하고 각기 맡은 일에 종사하여 국가에서 생양(生養)하고 길러주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백성의 의무이다.
책을 읽어 선비의 직업을 가진 자는 그 뜻이 진실로 후일을 기대함이 있거니와, 농사를 지으며 힘으로 먹는 백성에 있어서는 무릇 옷 한 벌을 입고 밥 한 그릇을 먹는 것과 한 번 앉고 한 번 눕는 편안함이 모두 국가의 은택인데, 이에 보답하는 도리는 오직 부세(賦稅)를 잘 바치고 부역을 힘써 함에 있을 뿐이다. 지금은 10년 동안 병화(兵火)를 치른 뒤라서 백성들의 재력이 진실로 고갈되었으나 오히려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으며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식을 기르는 것을 어찌 자기의 공로로 삼을 수 있겠는가. 우리 계중에 있는 자들은 함께 서로 권면하여야 할 것이다.
1. 난리를 겪은 이래로 사람들은 의식(衣食)이 곤궁하여 모두 농업이 근본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들 힘써 밭을 갈고 농사일에 부지런하니, 진실로 서로 권면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한두 해 다소 풍년이 든 뒤에는 사람들이 자못 곡식을 천하게 여기고 술마시는 것을 숭상할 것인바, 이는 바로 농사일을 게을리할 조짐이다. 우리 계중에 있는 자들은 각기 이를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1. 계원 중에 나이가 어려 공부하는 자들은 비록 평소처럼 초하루와 보름에 글을 강하지는 못하더라도 부형이 된 자들은 각기 마땅히 감독하고 권면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한 계중에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가 필경 모두 평민으로 돌아가 준수(俊秀)한 자가 그 사이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 계의 복이겠는가.
1. 농군이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고 어려서 공부를 부지런히 하지 않는 자는 유사가 살펴보았다가 계에 모이는 날에 이를 모두 계중에 알리고 혹은 그 당자(當者)를 벌하거나 혹은 그 부형이나 가장(家長)을 꾸짖어야 한다.
1. 난리를 겪은 이후로 토지를 다투고 노비(奴婢) 때문에 송사하는 일이 곳곳마다 풍속을 이루고 있으니, 이는 매우 아름답지 못한 풍속이다. 만일 약자가 강자에게 침해를 당하고 정직한 자가 정직하지 못한 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졸렬한 자가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고 천한 자가 귀한 자에게 빼앗김을 당한다면 형편상 진실로 법을 맡은 곳에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을 판별해 주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 때를 틈타 요행을 바라고 비리(非理)로 남과 다투기를 좋아함은 지극히 추악한 일이다. 무릇 우리 계중에 있는 자들은 간절히 이를 경계하여 한 계원의 부끄러움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상란(喪亂)을 겪은 뒤에 여염이 빈터만 남고 밭두둑이 쑥대와 갈대만이 자라고 있으니, 만약 부지런히 농사짓는다면 어찌 의식(衣食)을 걱정하겠는가. 반드시 비옥한 토지를 널리 점유하여 자손을 위한 계책을 삼으려는 자가 이 계원 중에 있다면 지혜롭지 못함이 어찌 심하지 않겠는가. 어찌 굳이 다투어 송사하고 모질게 싸워서 난리에 살아남아 외로운 사람들과 화목하지 않겠는가.
1. 계원의 잘못을 계원이 들었으면 각기 친근한 사람이 먼저 두서너 차례 타이르고, 반드시 고치지 않음에 이른 뒤에야 유사에게 알린다. 고치지 않는 것을 보고도 유사에게 고하지 않는 자와 먼저 타이르지 않고 대번에 유사에게 알리는 자는 모두 벌을 주도록 한다. 그리고 유사는 이것을 들었을 경우 작은 잘못이면 모이기를 기다려 말해주어 함께 타이르고, 큰 잘못이면 즉시 통문(通文)을 내어 일제히 모이게 해서 꾸짖으며, 여럿이 꾸짖어도 고치지 않은 뒤에는 손도(損徒)를 하고 손도를 해도 고치지 않은 뒤에는 계원에서 축출한다. 그러나 이미 축출이 되었더라도 잘못을 뉘우치면 즉시 다시 돌아올 것을 허락한다.
1. 계원이 저지른 잘못은 계원들만이 대면하여 꾸짖을 것이요, 계원 밖의 타인들에게 퍼뜨려 말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라도 대면하여 타이르지 않고 밖에 말을 퍼뜨리는 자가 있으면 계중에서 엄중히 처벌한다.
1. 우리 계중에서는 단지 계원의 잘못만을 서로 책할 뿐이니, 외부 사람들의 잘못과 악행에 있어서는 비록 혹 얻어 듣더라도 입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1. 계원의 잘못을 외부 사람이 혹 말하는 자가 있어 계원이 이것을 들었으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른 계원을 찾아가 말해주어 잘못을 고치게 하여야 한다. 혹시라도 이러한 말을 듣고는 따라서 부화뇌동하고 조장하며 본인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계중에서 엄중히 처벌한다.
1. 관원(官員)의 선악(善惡)을 논하고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논하는 것은 가장 분수를 지키고 몸을 보전하는 도리가 아니니, 우리 계중에서는 이것을 지극히 경계하여야 한다. 이 경계를 범하는 자는 계중에서 함께 처벌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간절한 억울함과 고통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서로 하소연하여 풀리기를 구하여야 하니, 이는 또한 환난(患難)에 서로 구휼하는 도리이다.
1. 계원 중에 혹 수재(水災)나 화재(火災), 도적 등 의외의 변고가 있으면 힘을 다하여 함께 구원하여야 한다. 만일 환난을 듣고도 급히 구원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계중에서 함께 처벌하도록 한다.
1. 계원 중에 상(喪)을 당한 자가 있으면 초상(初喪)에는 염(斂)과 빈소(殯所)의 도구를 부조하고, 장례할 때에는 무덤을 경영하는 부역을 도우며 또 법식에 따라 장례에 필요한 물건을 돕도록 한다.
1. 계원 중에 남혼여가(男婚女嫁)가 있을 경우에도 법식에 따라 혼인에 필요한 물건을 돕도록 한다.
1. 세속에서 계를 하는 자들은 길흉 간의 도움에 혹 부조하는 횟수를 한정시켜 돕는다. 그리하여 이미 한정한 바의 횟수를 다했으면 일찍이 도움을 받았던 자는 다시 길흉의 일이 있더라도 계중에서 다시 돕지 않으니, 이는 단지 서로 물건을 빌린 자가 빌려온 숫자를 비교하여 반드시 상환하는 행위요, 기쁜 일과 근심스러운 일을 서로 함께하여 정으로 서로 돕는 의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 계중에서는 세속의 계에 많고 적음을 따지는 누추한 규칙을 본받지 말고 옛사람들이 한결같이 후(厚)하게 한 아름다운 뜻을 힘써 숭상하여야 할 것이다.
상(喪)은 반드시 부모나 처자만이 아니요 혹 방친(傍親)의 상도 있으며, 혼인은 반드시 본인의 자녀만이 아니요 혹 아우나 조카의 혼인이 있으며, 혹 한 사람이 여러 번 일이 있더라도 만일 자기 스스로 그 일을 주관할 경우에는 또한 일에 따라 서로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돕는 법식은 또 경중(輕重)의 등급이 없을 수 없으니, 이는 다만 때에 임하여 여럿이 상의해서 참작하여 정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일찍이 앞서의 일에 도왔다 하여 전연 뒤에 돌아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1. 딴 지방에 있는 종족들이 만약 계에 들어오기를 원하면 모름지기 여럿이 의논하고 허락하여, 화목하는 의리가 원근에 간격이 없게 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불시에 모여 준례에 따라 여러 가지 물건을 거두는 등의 일에 있어서는 그 형세가 지방에 있는 자와 일일이 똑같이 할 수 없다. 여기에서 서로 통지할 때에 혹 제때에 미치지 못하고 저쪽에서 서로 따라올 때에 역시 기약과 같이 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을 한결같이 계의 규칙으로 준례를 정한다면 끝내 영구히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오직 봄, 가을에 강신(講信)을 하여 크게 모여서 서로 참여하여 함께 상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제외하고는 굳이 모두 반드시 참석하기를 바라지 말며, 비록 일제히 모이지 못하더라도 참여하지 않은 잘못으로 벌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혹 올 수 있는데도 오지 않고 마땅히 참여하여야 하는데도 참여하지 않았다면 또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니, 계중에서는 비록 벌을 주지 않더라도 또한 본인이 마땅히 이것을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물건을 거두는 것도 이들에게는 원래 정한 규칙을 다 바랄 수 없으니, 다만 저들의 힘이 미칠 수 있고 형세가 할 수 있는 것을 따라 시한(時限)에 구애하지 말고 수량(數量)을 따지지 말고 오직 끝내 서로 협조하고 서로 돌아봄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계중에서는 또 저들이 계의 규칙대로 하지 못한다 하여 서로 돌아보는 즈음에 소홀히 하지 말고, 각기 그 정과 의리를 다할 뿐이다.
1. 강신(講信)하여 화목을 닦는 것은 봄, 가을에 각각 날짜를 정하여 행하되 사치하고 아름답게 함을 숭상하지 말고 모두 진솔(眞率)하기를 요하며 정에 맞고 즐김을 한계로 삼아야 한다. 만약 어지러이 취(醉)하여 쓰러지며 떠들고 고함쳐 예(禮)를 잃는 자가 있으면 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1. 계원이 모일 때에는 단지 계중의 일을 상의하고 정분을 서로 펼 뿐이며, 절대로 외간의 잡된 말을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1. 계를 만든 뒤에는 계원 중에 반드시 서로 좋아하는 즐거움이 있고 서로 험악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떳떳한 심정 밖에 혹 다시 출계(出契)할 것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스스로 그 글을 갖추어 유사에게 바치게 하고, 유사가 계중에 알려서 허락하도록 한다. 그러나 동성인 사람일 경우에는 그래도 그 이름을 제거하지 말고 다만 계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주D-002]손도(損徒) : 계원의 자격을 정지시키는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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