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易) 1 계묘년(1783, 정조7)에 선발된 이현도(李顯道)ㆍ조제로(趙濟魯)ㆍ이면긍(李勉兢)ㆍ김계락(金啓洛)ㆍ김희조(金煕朝)ㆍ이곤수(李崑秀)ㆍ윤행임(尹行恁)ㆍ성종인(成種仁)ㆍ이청(李晴)ㆍ이익진(李翼晉)ㆍ심진현(沈晉賢)ㆍ신복(申馥)ㆍ강세륜(姜世綸) 등이 답변한 것이다
[건괘(乾卦)]
선대 학자의 말에 의하면 “《역경(易經)》은 세 성인(聖人)을 거쳐서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세 성인은 곧 복희(伏羲)ㆍ문왕(文王)ㆍ공자(孔子)를 가리켜 말한 것으로, 주공(周公)은 문왕에게 포함시켰다. 복희는 아주 오래된 분이니 문왕과 주공, 공자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건(乾) 자 아래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문왕의 단사(彖辭)이고, 초구(初九) 아래의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주공의 효사(爻辭)이며, 단왈(彖曰)과 상왈(象曰)은 공자가 경(經)을 풀이한 말로서, 이것이 바로 대상(大象)ㆍ소상(小象)ㆍ단전(彖傳)ㆍ상전(象傳)이다.
성인의 생각은 다름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원형이정으로 말하자면, 크게 형통함을 위주로 하고 이로움이 정고(正固)함에 있는 것은 문왕의 생각이고, 공자의 경우는 네 덕으로 나누어서 말하였으니, 이는 공자의 생각이 문왕과 다른 것이다. 단사와 효사로 말하자면, 단사에서는 ‘순전히 길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라도 효사에서는 “쓰지 말라.[勿用]”고 하고 “위태롭다.[厲]”고 하고 “후회가 있다.[有悔]”고 하였으니, 이는 주공의 생각이 문왕과 다른 것이다. 괘사(卦辭)와 효사, 계사(繫辭)에서는 점서(占筮)의 응용을 위주로 말하였으나 단전과 상전에서는 오직 성인의 지위와 덕망의 측면에서만 말하였으니, 이는 또 공자의 생각이 문왕과 주공과 다른 점이다. 원형이정을 이미 네 덕으로 나누어 놓고서도 둔괘(屯卦) 이하에서는 문왕의 생각을 따랐으니, 이는 공자의 말이 또 그 자체로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모두 《역경》의 중요한 강령(綱領)인데, 성인이 입언(立言)하여 가르치신 말씀이 이렇게 다르니, 어느 것을 따라야 하겠는가?
《역경》 한 부(部)가 세 성인을 거쳐서야 비로소 크게 갖추어졌으니, 말의 표현은 비록 다르나 그 뜻은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왕이 괘사(卦辭)를 붙이게 된 것은 복희의 괘(卦)에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원형이정이란 네 글자에는 이미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괘의 기본 덕만을 말하고 괘의 응용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주공이 효사를 붙이게 된 것인데, 효(爻)는 움직여 변하는 것으로서 길(吉)ㆍ흉(凶)ㆍ회(悔)ㆍ인(吝)이 거기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쓰지 말라.”고 하고 “후회가 있다.”고 하고 “위태롭다.”고 하고 “흉하다.”고 하였으나, 사실은 그것이 문왕의 괘사 속에 들어 있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학설을 내세움에 있어서는 상(象)과 수(數)를 근본으로 하여 점(占)으로 쓰이는 것뿐이었고, 행사(行事)에 절실한 의리(義理)에 대해서는 그래도 미비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단전과 상전을 지어서 네 덕의 명목(名目)을 나누고 성인의 지위를 설명하여 문왕과 주공 때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공의 역(易)은 곧 문왕의 역이고 공자의 역은 곧 주공의 역이니, 이 어찌 다른 가운데에서도 자연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둔괘(屯卦)에서 말한 원형이정의 경우는 다시 “크게 형통함을 위주로 하고 이로움이 정고함에 있다.”고 풀이하였는데, 그것이 어찌 문왕의 본뜻이 건괘(乾卦)에는 쓰이지 않고 둔괘 이하에만 처음으로 쓰여서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진실로 네 덕을 완전히 겸한 것이 건괘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건괘의 다섯 효(爻)는 모두 용(龍)이라 일컬었는데 구삼(九三)에 대해서만 용이라 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운봉 호씨(雲峯胡氏 호병문(胡炳文))는 “삼효(三爻)와 사효(四爻)는 사람의 자리이기 때문에 삼효는 용이라 하지 않고 군자(君子)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만약 그 말대로라면 사효에서는 어찌하여 “혹 뛰어오른다.[或躍]”고 하였는가? 단사(彖辭)에서 육위(六位 육효(六爻)를 가리킴)라고도 하고 육룡(六龍)이라고도 하였는데,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육허(六虛 육위(六位)를 가리킴)를 종합적으로 가리킬 때는 육위라 하고, 육획(六畫)만을 가리킬 때는 육룡이라 한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것인가? “내괘(內卦)는 덕학(德學)으로 말하고 외괘(外卦)는 시위(時位)로 말한다.”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어찌하여 공부의 조건(條件)이 되며, 어찌하여 공부의 공정(功程)이 되며, 어찌하여 성(誠)은 건괘(乾卦)의 한 획[一畫]에서 나오고, 어찌하여 경(敬)은 곤괘(坤卦)의 한 획에서 나오는가? 이 몇 가지 학설에 대해 상세히 듣고 싶다.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강이면서도 중은 아니다.[剛而不中]”라고 하였고, 또 “가운데로는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中不在人]”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구사(九四)가 비록 사람의 자리이기는 하나 사람 자리의 정위치는 아니고 구삼만이 사람 자리의 정위치에 있으니, 그 점이 바로 다른 효의 예(例)를 바꾸어 용이라 하지 않고 군자라 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실제로 있는 자리가 아니고 그 용은 가설적인 말이니, 단사에서 말한 육위는 사실 육허를 종합적으로 가리킨 것이고, 단사에서 말한 육룡은 사실 육획만을 가리킨 것입니다. 내괘의 덕학과 외괘의 시위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논하면, 덕학을 말할 적에는 시위가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고 시위를 말할 적에는 덕학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덕을 닦은 뒤에 때에 따른 일을 행하고 학문이 밝아진 다음에 그 지위에 처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분명히 내외(內外)와 선후(先後)의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덕학은 내괘에서 말하고 시위는 외괘에서 말한 것이니, 이는 성인(聖人)이 《역경》을 만든 깊은 뜻일 것입니다. “충과 신을 쌓는 것이 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忠信進德]”라고 한 것과 “할 말 안 할 말 가려 하여 성을 세운다.[修辭立其誠]”라고 한 것은 이른바 공부의 조건(條件)이고, “이를 데를 안다.[知至]”고 한 것과 “마칠 데를 안다.[知終]”고 한 것과 “기미에 대해 함께 대처할 만하다.[可與幾]”고 한 것과 “의리를 함께 보존할 만하다.[可與存義]”고 한 것은 이른바 공부의 공정(功程)입니다. 선대 학자들의 학설은 명확하여 의거(依據)할 만한 것입니다. 건괘의 한 획에서 성(誠)이 생기는 것은 그 양(陽)이 실(實)하기 때문이고, 곤괘의 한 획에서 경(敬)이 생기는 것은 그 음(陰)이 허(虛)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이(九二)에서 어찌하여 성을 말하고 육이(六二)에서 어찌하여 경을 말하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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