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차(進箚)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신(臣) 이이(李珥)는 삼가 아룁니다. 소신이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미한 생명으로 천지 같은 넓은 은혜를 입었사오니, 은혜는 바다보다 깊고 의리는 산보다 중합니다. 지혜와 정성을 다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우러러 보답하고자 하오나, 오직 타고난 기질이 순수하지 못하고 공부도 얕사옵니다. 재주로 보더라도 엉성하여 실제로 쓰이기에 적당하지 않고, 학문을 보더라도 거칠어 실효(實效)를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안으로는 시종관(侍從官)이 되었으나 임금의 계책을 돕지 못하였고, 밖으로는 감사(監司)가 되었으나 덕화(德化)를 펴지 못하였사오니, 백번 생각하여도 돌아가서 농사를 짓는 수밖에는 다른 계책이 없사옵니다. 그렇지만 임금을 사랑하는 일념(一念)만은 천성[秉彛]에 근거한 것이어서 잊으려고 하여도 잊지 못하여, 여러 번 망설이고 생각하여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간절히 그리워서 물러갔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나무하고 꼴 베는 사람 수준의 별 볼 일 없는 지혜로라도 반드시 성상[冕旒]께 모두 아뢰어, 아주 적은 도움이나마 드린 뒤에야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사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제왕(帝王)의 도(道)는 심술(心術)의 은미[微]한 데 근거를 두고 문자(文字)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현(聖賢)이 잇달아 일어나서 때에 맞게 가르침을 세우고 반복해서 이치를 따져 밝혔기 때문에, 책이 점점 많이 엮어져 경전(經典)과 훈고(訓詁), 제자서(諸子書)와 역사서가 이루 다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것인들 도(道)를 기록한 문자(文字)가 아니겠사옵니까. 지금부터는 성현이 다시 나오더라도 더 이상 미진(未盡)한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만 성인의 말로써 이치를 살피고, 이치를 밝혀서 행동으로 옮겨, 자신을 완성하고 사물을 이루는 노력을 다하면 될 뿐이옵니다. 후세에 도학(道學)이 밝지 않고 행해지지 않는다면 폭넓게 독서하지 못한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이치를 살피지 못한 것을 근심해야 하며, 지식과 견문이 넓지 못한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실천함이 독실하지 못한 것을 근심해야 할 것입니다. 살피는 데 정밀하지 못한 것은 그 요령을 얻지 못해서요, 실천하는 데 독실하지 못한 것은 성의를 다하지 못해서입니다. 그 요령을 얻은 뒤에 그 맛을 알게 되고, 그 맛을 안 뒤에 그 성의를 다하게 된다는 말을 신이 해 온 지 오래이옵니다. 전부터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어서 요령을 얻는 방법으로 삼아, 위로는 우리 임금에게 바치고 아래로는 후생(後生)에게 가르치고 싶었사오나, 저 자신을 돌아볼 때 부끄러운 점이 많아 뜻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계유년(1573, 선조6)에 특별한 조서[特召]를 받고 감히 끝까지 사양하지 못하고 명을 받들어 직무를 맡아 신하의 대열에서 수행(隨行)하였사오나, 나라에는 공을 세우지 못하고 학문에는 해(害)가 되었사오니 스스로 탄식할 뿐입니다. 많은 은혜를 입고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비로소 책을 엮어 보려는 계획을 정하여 경전(經傳)을 탐색하고 사적(史籍)을 추리다가 절반도 채 이루지 못하고 병이 들어 조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도 작은 정성이나마 그치지 않고, 한가하게 혼자 있을 때 하던 일을 계속하였사옵니다. 그런데 탈고(脫藁)도 하기 전에 또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공문서를 처리하느라 시달려 이 일만 잡고 있지 못하였고, 게다가 병까지 나 여러 달을 덮어 두었다가 올해 초가을에 비로소 편(編)을 만들어 그 이름을 《성학집요(聖學輯要)》라고 하였습니다. 제왕(帝王)의 학문하는 본말(本末)과, 정치의 선후(先後)와, 덕을 밝히는 실효(實效)와, 백성을 새롭게 하는 실적(實跡)에 대해 모두 대충이나마 큰 틀을 잡아 놓았습니다. 작은 것을 미루어 큰 것을 알게 하고 이것을 통해 저것을 밝혔습니다. 천하의 도(道)는 실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사옵니다. 이것은 신의 글이 아니오라 성현(聖賢)의 글이옵니다. 비록 신의 식견이 비루(卑陋)하여 목차를 정하는 데 실수가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모은 말[言]들은 글귀마다 약이 되는 것들이니, 자신에게 절실한 교훈이 아닌 것이 없사옵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이 지극하지 않더라도 말이 지극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말을 좇으면 도(道)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신의 손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또한 사람을 보고 말을 폐(廢)해서는 안 될 것이온데, 하물며 성현(聖賢)의 말씀이겠사옵니까. 이에 만번 죽음을 무릅쓰고 3책을 흰 보자기에 싸서 단지(丹墀 조정)에 절하고 바치옵니다. 읽어 보시고 성현의 가르침을 깊이 음미하시고, 빛나는 업적을 이어가도록 더욱 노력하시어 높고도 밝으며 넓고도 두터운 경지에 이르신다면,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소신의 뜻도 조금은 펼 수 있을 것이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제왕의 학문은 기질(氣質)을 바꾸는 것보다 절실한 것이 없고, 제왕의 정치는 정성을 다해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기질을 바꾸는 데는 병을 살펴 약을 쓰는 것이 성과를 거두고, 정성을 미루어 어진 이를 쓰는 데는 상하(上下)가 틈이 없는 것이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삼가 뵈옵건대, 전하께서는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지혜로우시며 천성적으로 효도와 우애와 공손과 검소함을 지니셨습니다. 성색(聲色)과 이욕(利欲)은 뿌리부터 싹 끊어졌으니, 역사상 견줄 만한 이가 드뭅니다. 이것이 신이 황극(皇極)에 마음을 두고 왕궁[紫闥]에 정(情)을 걸고서, 참다운 덕을 성취하시어 삼황(三皇)ㆍ오제(五帝)를 따르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병통을 논하자면 영특한 기질이 너무 드러나다 보니 착한 것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넓지 못하시고, 노기(怒氣)를 쉽게 발[易發]하여 남과 겨루어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이러한 병폐를 제거하지 않으시면 도에 들어가는 데 방해가 될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부드러운 말을 하는 자가 많이 받아들여지고, 면전에서 직언하여 과실을 지적하는 자는 반드시 거슬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제(聖帝)와 명왕(明王)이 자신을 비워 남을 따르는 도(道)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여러 가지 일을 두고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전하께서는 부인과 내관을 엄격하게 대하시어 조금도 정에 연연하는 생각은 없으십니다. 그러나 언관(言官)들이 편애하여 비호한다고 지적하면 갑자기 고함을 질러 도리어 편애하여 비호하는 뜻을 보이십니다. 또 나랏일이 날로 망가지는 것을 보고 바로잡을 뜻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관들이 고집하신다고 나무라면 문득 더 완강히 거절하여 도리어 고집하는 뜻을 보이십니다. 말씀하시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 비록 모든 신하들이 성상(聖上)의 마음을 알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전하께서 도량이 넓지 못하시고 사사로움을 극복하지 못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옛날의 성왕(聖王) 중에는 그렇지 않은 이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순 임금께서는 함부로 놀면서 오만하고 포학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백익(伯益 순 임금의 신하)이 경계하기를, “단주(丹朱 요 임금의 아들)처럼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무왕(武王)은 작은 행실 하나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소공(召公)이 경계하기를, “끝까지 조심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功虧一簣]”라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순 임금과 무왕은 마음을 비우고 공경스럽게 받아들였으니,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서로 알지 못하는 유감이 있었겠사옵니까. 이제 전하께서는 자질이 순수하고 학문이 고명하시어, 순 임금이나 무왕과 같이 되시는 것을 감히 막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하온데 어찌하여 뜻을 세우기를 돈독히 하지 않으시고 착한 것을 취하기를 널리 하지 않으십니까. 여러 신하들이 잘못을 바로잡아 허물이 없게 해드리고자 하면 반드시 이해를 못한다고 의심하시고, 착한 말을 아뢰고 어려운 일을 권하여 요순의 도로 인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감당할 수 없다고 거절하십니다. 전하께서 한가하시거나 은미한 가운데 읽으시는 것이 무슨 책이오며, 힘쓰시는 것이 무슨 일이옵니까. 자질이 아름다운데도 충분히 기르지 못하고 병통이 깊어도 고치지 못하시면, 어찌 신하들만이 아래에서 통탄할 뿐이겠습니까. 황천(皇天)의 조종께서도 위에서 근심하실 것이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큰 뜻을 세우셔서 반드시 성현(聖賢)을 표준으로 삼으시고, 꼭 삼대(三代 하ㆍ은ㆍ주)와 같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 기약하시옵소서. 전심하여 글을 읽으시고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하시어 말이 내 마음에 거슬리거든 반드시 도리에 맞는가를 생각하시고, 말이 내 뜻에 맞거든 반드시 도리가 아닌가를 생각하시어 곧은 말을 즐겨 들으시고, 간하는 것을 싫어하시지 마십시오. 착한 것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시고, 의리(義理)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피시며, 자신을 굽히는 것을 부끄러워 마시고 남에게 이기려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십시오. 일용(日用)하는 사이에 실천하는 것이 성실해져서 한 가지 일도 실수가 없으시고, 조용히 혼자 있는 가운데 마음가짐이 돈독하여 한 가지 생각도 잘못되는 게 없으시고 중도에서 게으르지 않으시고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으시어, 병통의 뿌리를 모두 버리시고 아름다운 자질을 온전히 하신다면 제왕의 학문을 완성할 수 있으실 것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옵니까.
신은 또 엎드려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맡으신 책임이 중하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시고 시운(時運)의 쇠퇴함을 개탄하시며, 온 정성을 다해 다스리는 것을 도모하시어 어진 이에겐 예를 갖추시고, 선비에게는 겸손한 태도로 대하십니다. 대신을 존장(尊長)처럼 공경하시고 신하들을 벗과 같이 여기시며, 행여 다칠세라 백성을 근심하시니 참으로 삼대(三代)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정치입니다. 이 점이 신이 제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성상 앞에 함부로 호소하여 반드시 천지를 돌려놓아 세도(世道)를 쇄신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군신 간에 정성과 믿음이 서로 부합되지 못하여 신하의 정성이 임금께 가닿지 못하고, 신하가 임금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책임을 맡겨 임무 수행을 요구하여 지극한 다스림을 이루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자고로 군신이 서로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공적을 이루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삼대 이상은 진실로 논의할 것이 없거니와 광무제(光武帝)가 관중(關中)을 걱정하면서 풍이(馮異)를 깊이 믿은 경우도 그가 절대로 함양왕(咸陽王)이라고 일컫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오며, 황권(黃權)이 길이 막혀 위(魏)에 투항하면서도 소열(昭烈)을 깊이 믿은 것은, 그가 절대 처자(妻子)를 죽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이런 것은 다 충성과 신의가 본래 마음에서 맺어져서 참소와 이간하는 말이 먹힐 데가 없어서입니다. 더구나 성스러운 임금과 어진 신하는 뜻이 같고 도가 맞아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서로 기뻐하여, 하루에 세 번씩 만나 덕으로 교화하며 서로 도움을 주어 말하면 다 들어주고 간하면 다 따라 주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착한 것인들 행하지 못하였겠으며, 어떤 일인들 이루지 못하였겠사옵니까. 이것이 후세의 임금으로서 마땅히 본받아야 할 바이옵니다. 그런데 후세의 임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높은 자리에 거하고 깊은 궁궐에 있으면서, 신하들을 멀리해서 착한 줄을 알고도 등용할 뜻을 보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보고도 내치는 명을 내리지 아니하면서 스스로 중요한 기밀을 신하들이 감히 엿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임금의 체통을 지키는 것이라 여깁니다. 마침내 군자는 감히 그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소인은 그 틈을 타는 데 이르게 되어 사(邪)와 정(正)이 섞이고 시(是)와 비(非)가 모호해져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게 될 것이오니, 이것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착한 것을 좋아함이 지극하시긴 하지마는 선비들이 꼭 옳지만은 않다고 의심하시고, 악한 것을 미워함이 깊으시긴 하지마는 비열한 자들이 꼭 그르지만은 않다고 의심을 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곧은 선비나 곧은 척하는 사람이나 모두 잘못을 바로잡아 준다는 이름을 얻게 되어 어진 이가 충성을 다할 수 없게 됩니다. 또 아첨하는 자와 경험 많고 익숙한 신하가 모두 순후(淳厚)하다는 일컬음을 얻게 되어 어리석은 자가 더욱 그 절도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게다가 신하를 접견하는 일이 아주 드물어, 마음이 가로막혀서 정령(政令)은 천심(天心)과 부합하지 못하고, 출척(黜陟)은 나라 사람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됩니다. 선비의 말은 행해지지 아니하고 한갓 큰소리치며 비방하는 말만을 취하며, 백성을 병들게 하는 법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개혁의 부작용에 대해서만 근심합니다. 이 때문에 착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어진 이를 등용하는 실상이 없고, 악한 것을 미워하면서도 간사한 이를 제거하는 유익함이 없어서 의논은 갈라지고 시비는 정해지지 않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자들에게 믿고 맡기는 일이 없고, 간사하고 잘은 자들에게 틈을 노릴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전하(殿下)께서 6척(尺)의 고아를 부탁할 자가 누구이며, 백 리(里)의 명(命)을 기탁할 자가 누구이옵니까. 임금께서 반드시 마음 붙이신 곳이 있을 텐데, 신하들은 알지 못하오니, 이 어찌 상하(上下)에 간격이 없는 실상(實狀)이라 하겠사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믿을 만한 충성스런 대신에게 보좌하는 중임(重任)을 맡기시어, 간하면 수용하고 계책을 따라 주시어,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소서. 또 학문에 밝고 행실이 조촐한 이를 가려서 경연에 두고, 언제라도 출입할 수 있게 해서 항상 좌우에서 모시면서 마음을 다해 임금의 뜻을 열어서 이 시대의 선비들이 모두 흥기(興起)할 뜻을 품게 하소서. 숨어 있는 어진 이까지도 역시 지성(至誠)으로 불러내고, 재능을 고려하여 벼슬을 주되 반드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곳에 두시고, 끝끝내 불러오지 못하는 이도 표창하고 장려하여 그 높은 뜻을 이루어 주소서. 마땅한 때를 헤아리고 역량(力量)을 파악하시면, 비록 갑자기 세도(世道)를 바꿀 수는 없다하더라도, 조정(朝廷)에는 항상 맑은 의논이 펼쳐져 착한 것을 좋아하는 실상을 다 보이소서. 그리하여 유난스런 자가 감히 사특한 주장을 내어 선왕(先王)의 도를 드러내 놓고 배척하거나, 얼굴빛을 바꾸고는 일을 해낼 세력을 몰래 가로막으려는 자로 그 모습과 자취가 이미 드러나서 가릴 수 없는 자는, 마땅히 귀양 보내고 죽여서 악한 것을 미워하는 실상을 다 보이소서. 반드시 어진 이를 등용하고 못난 자를 물리친다면 위에서는 가려진 바가 없고, 아래에서는 의심하는 바가 없어서, 상하(上下) 간에 마음이 훤히 통하여 온 나라 백성들도 청천백일(靑天白日)같이 실오라기만큼도 다하지 않고 남겨 둔 것이 없는 성상의 마음을 우러러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군자는 믿는 바가 있어서 정성을 다하여 재능을 펼 것이며, 소인은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얼굴빛을 고쳐 착한 것을 좇게 될 것이니, 정기(正氣)가 자라고 국맥(國脈)이 튼튼해지며 기강(紀綱)이 진작되고 선정(善政)이 행해져서, 제왕의 다스림을 이루신다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사옵니다.
아, 밝은 임금이 나오는 것은 천 년에 한 번 있을 만한 귀한 일인데 세도(世道)가 추락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급히 구원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어리석은 임금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현명한 임금을 원망하라.” 하였사옵니다. 이는 어리석은 임금은 하려고 해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백성이 기대할 것이 없지마는, 현명한 임금은 할 수 있는 데도 힘쓰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의 원망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금 엮은 책을 바치면서 다른 군더더기 말씀을 드리는 게 옳지 않습니다마는, 그래도 이와 같이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로 전하께서 기질을 고치시려는 노력이 없거나, 정성을 미루어 어진 이를 등용하는 실상이 없다면, 이 책을 바치더라도 헛말로 돌아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외람된 말씀을 드리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어리석고 망녕된 것을 용서하시고 인자하게 살피시어 받아 주시옵소서. 재결해 주소서.[取進止]
[주D-002]왕궁[紫闥] : 중정(中正)의 도(道)로서, 천자가 세운 만민의 법칙이다.
[주D-003]삼황(三皇)ㆍ오제(五帝) : 중국 고대 태평 시대의 왕으로 삼황은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를, 오제는 소호(少昊)ㆍ전욱(顓頊)ㆍ제곡(帝嚳)ㆍ요(堯)ㆍ순(舜)을 말한다.
[주D-004]끝까지 …… 없다 : 공휴일궤(功虧一簣)란, 높이가 9인(仞)의 산을 쌓는 데 마지막 한 삼태기 흙이 모자라도 완성되지 못한다는 뜻으로, 거의 성취된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書經 周書 旅獒》
[주D-005]출척(黜陟) : 공이 있는 이를 올리고 죄가 있는 이를 내치는 것이다.
[자료:한국고전]
'고전포럼 > 율곡선생 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학집요(聖學輯要) 3 _ 제2 수기(修己) 중(中) (0) | 2010.08.28 |
---|---|
성학집요(聖學輯要) 2 _ 제2 수기(修己) 상(上) (0) | 2010.08.28 |
성학집요(聖學輯要) 1 _ 제1 통설(統說) (0) | 2010.08.28 |
성학집요(聖學輯要) 1 _ 범례(凡例) (0) | 2010.08.28 |
성학집요(聖學輯要) 1 _ 서(序) (0) | 2010.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