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10권_
논(論)_
공자(孔子)가 지위를 얻지 못한 데 대한 논
다음과 같이 논한다.
“하늘이 성인(聖人)을 낳음은 반드시 뜻이 있어서이니, 장차 그 도(道)를 행하고 그 덕(德)을 베풀어 천지(天地)가 자리를 잡고 만물(萬物)이 길러지는 사업을 이룩하여 천하로 하여금 올바른 천하가 되게 하려고 해서이다. 가령 천지와 만물이 있더라도 성인(聖人)이 그 사이에 태어나 능사(能事)를 다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하늘다운 하늘이 되지 못하고, 땅이 땅다운 땅이 되지 못하고 만물이 만물다운 만물이 되지 못할 것이니, 어찌 홀로 이 사람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못할 뿐이겠는가. 그렇다면 하늘이 성인을 낳은 까닭을 알 수 있다.
이미 성인이 있어 성인이 그 능사를 다하게 되는 이유는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지위를 얻는 것이 어찌 떳떳한 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주(宇宙)가 있어온 이래로 천지간의 대세(大勢)는 자연 고금(古今)과 전후(前後)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 형세가 반드시 한때의 천지를 편안히 하고 한때의 만물을 길러 한때의 천하로 하여금 천하다운 천하가 되게 하여야 할 경우에는, 하늘이 반드시 성인을 이 때에 탄생시키고, 마침내 한때의 지위를 주어서 한때의 능사를 다하게 한다.
그리고 그 형세가 반드시 만세(萬世)의 천지를 편안히 하고 만세의 만물을 길러 주어 만세의 천하로 하여금 천하다운 천하가 됨을 잃지 않게 하여야 할 경우에는, 하늘이 또 반드시 성인을 이 때에 탄생시키되 한때의 지위를 주지 않고, 마침내 만세의 지위를 주어 만세의 능사를 다하게 한다. 혹 한때의 지위를 얻기도 하고 혹 만세의 지위를 얻기도 하는 것은 이 모두가 하늘이 하는 것이다.
사람은 다만 한때의 지위가 지위가 됨을 알고 만세의 지위가 큰 지위가 됨을 알지 못하며, 또 다만 한때의 지위가 영화스러운 것인 줄만을 알고 만세의 지위가 지극한 영화가 됨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위가 있는 지위는 그 높음을 측량할 수 있고 그 큼이 한계가 있으나, 지위가 없는 지위는 그 높음을 측량할 수 없고 그 큼이 한계가 없으니, 이 어찌 우주 사이에 다함이 없고 더 클 수 없는 지위가 아니겠는가. 오직 우리 부자(夫子 공자를 가리킴)가 마침내 이 지위를 소유하였으니, 어찌 지위를 얻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한때의 지위를 가지고 상고해 보면 삼대(三代) 이전의 성인들은 모두 이 지위를 소유하였다. 삼황(三皇)을 상고(上古) 시대에 탄생시켜 상고 시대의 천지를 편안하게 하고 상고 시대의 만물을 길러 상고 시대의 천하로 하여금 상고 시대의 천하가 될 수 있게 하였으며, 오제(五帝)를 상고 이후 삼대 이전의 세대에 탄생시켜 상고 이후의 천지를 편안히 하고 상고 이후의 만물을 길러 상고 이후의 천하로 하여금 상고 이후의 천하가 되게 하였으며, 또 삼왕(三王)을 삼대의 시대에 탄생시켜 삼대의 천지를 편안히 하고 삼대의 만물을 길러 삼대의 천하로 하여금 삼대의 천하가 되게 하였다.
이 어찌 삼대 이전에는 우주의 큰 기수(氣數)가 그 때에 크게 왕성하여 양명(陽明)한 기운이 길이 성하고 음탁(陰濁)한 기운이 적게 나온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때에는 성인(聖人)이 교대로 나와서 혹 한때에 아울러 탄생하고 혹 대를 이어 탄생하였으며, 늦어도 5백 년을 지나지 않고 탄생하였다.
이는 천지 사이의 대세가 다만 한때의 천지를 편안히 하고 한때의 만물을 길러 한때의 천하로 하여금 천하가 되게 하면 충분하였기 때문이니, 이는 바로 삼대 이전에는 하늘이 한 성인을 낳고 반드시 한때의 지위를 주어 한때의 능사(能事)를 다하게 한 이유이다.
그러나 춘추(春秋) 시대에 이르러는 우주의 큰 기수가 이미 쇠하였다. 양명한 기운이 다시는 길게 성하지 못하고 음탁한 기운이 도리어 크게 왕성하니, 만세의 천지가 이로부터 장차 비색(否塞)해지고 만세의 만물이 이로부터 잔멸(殘滅)하여 만세의 천하가 장차 다시 천하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늘이 이 때에 다만 한때의 천하만을 생각하고 만세의 천하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미 만세의 천하를 생각하여 만세의 천하로 하여금 만세에 천하가 됨을 잃지 않게 하고자 할진댄 하늘이 특별히 낳은 큰 성인이 있지 않고 이것을 능히 할 수 있겠는가. 이는 하늘이 반드시 전고(前古)에 일찍이 없었던 부자(夫子)를 춘추 시대에 탄생시키고 전고에 일찍이 없었던 지위를 부자의 몸에 주어 전고에 일찍이 없었던 사업을 만세에 하게 한 것이니, 하늘의 뜻이 원대하고 또 깊지 않겠는가.
부자로 하여금 한때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만세의 지위를 얻게 하였다. 그러므로 만세의 아래에 하늘이 하늘다운 하늘이 되고, 땅이 땅다운 땅이 되고,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물건이 물건다운 물건이 되어 천하가 지금에 이르도록 천하다운 천하가 된 것이다. 만약 부자가 단지 한때의 지위를 얻었더라면 한때의 천지는 진실로 편안히 할 수 있었겠으나 만세의 천지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한때의 만물은 진실로 길러질 수 있었겠으나 만세의 만물은 만물이 될 수 있었겠는가. 천하가 천하다운 천하가 되지 못함이 이미 오래일 것이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부자가 만세의 지위를 얻었다고 말하는데, 천자(天子)의 지위라는 것은 천하의 제일 높은 위에 있고 사해(四海)의 부유함을 소유하여 지존(至尊)의 귀함을 누리는 것이다. 그 복식(服飾)은 곤룡포(袞龍袍)와 면류관(冕旒冠)이고 그 거처는 궁전(宮殿)이며, 백관(百官)들이 신하가 되고 만백성이 백성이 되어 조회 오는 자가 만국(萬國)이고, 공물(貢物)을 바치는 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산을 넘어오고 바다를 항해하여 온다.
그런데 이른바 부자의 지위라는 것은 과연 천자의 지위가 누리는 바를 소유하였는가. 수수(洙水)와 사수(泗水) 사이에서 거친 밥을 먹고 궐리(闕里)의 거주하는 곳에서 팔을 베개 삼아 누웠었다. 그리하여 자신은 ‘어쩔 수 없다’는 한탄을 발하였고, 사람들은 ‘덕(德)이 쇠했다’는 비난이 있었으니, 이 과연 지위를 소유하였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높음이 없는 높음이 부자의 높음이며 부유함이 없는 부유함이 부자의 부유함이며 귀함이 없는 귀함이 부자의 귀함이니, 이는 부자의 지위 없는 지위가 그 부유함이 지극히 부유하고 그 귀함이 지극히 귀하고 그 높음이 지극히 높은 것이다. 만세가 높임이 어찌 한때에 높임과 같으며, 만세에 영화롭게 여김이 어찌 한때에 영화롭게 여김과 같겠는가. 도(道)가 만세의 교화에 행해지니 누가 그 귀함에 비견될 것이며, 덕이 만세의 사람과 물건에 입혀지니 누가 그 귀함에 비견되겠는가.
천지와 똑같이 유구(悠久)하니 부자의 지위가 이 때문에 장구하며, 일월(日月)과 똑같이 광명하니 부자의 지위가 이 때문에 드러난다. 땅에 붙어 있지 않고 만세에 붙어 있으며 지위를 지위로 여기지 않고 지위가 없는 것을 지위로 여기니, 이 때문에 공자가 되신 것이다.
문선왕(文宣王)이라고 칭호를 붙이고 태뢰(大牢)의 제향으로 제사하는 것으로 말하면, 또한 지엽적인 일일 뿐이다. 앞서 만고의 위에 있는 여러 성인의 지위가 부자의 지위를 얻어 그 광채를 더하고, 뒤로 만고의 아래에 있는 백왕(百王)의 지위가 부자의 지위를 의뢰하여 그 영화로움을 누리니, 부자의 지위가 여러 성인과 백왕의 지위를 겸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인으로서 지위를 얻은 자를 칭할 적에 그 누가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을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삼황은 모두 다만 한때의 삼황이 되었고, 오제는 모두 다만 한때의 오제가 되었고, 삼왕은 모두 다만 한때의 삼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삼황은 오제의 사업을 겸할 수 없고 오제는 삼왕의 사업을 겸할 수 없었으나, 오직 우리 부자(夫子)는 삼황의 도를 행하고 오제의 덕을 얻고 삼왕의 공(功)을 공으로 여겨 도가 만세에 행해지고 덕이 만세에 입혀지고 공이 만세에 흐르니, 그렇다면 우리 부자는 만세의 삼황이요, 만세의 오제요, 만세의 삼왕인 것이다. 이것이 만세의 지위가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얻음이 있는 얻음은 혹 얻음을 잃을 수 있으나 얻지 않는 얻음은 그 얻음을 잃음이 없으며, 지위가 있는 지위는 그 지위가 끝이 있으나 지위가 없는 지위는 그 지위가 다함이 없으니, 이는 부자가 한때에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 바로 만세에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자의 지위는 그렇다 하거니와 그 지위의 사업은 무엇을 가지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경(禮經)》, 《악경(樂經)》, 《주역(周易)》, 《춘추(春秋)》가 그것이다.”
삼가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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