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3권_

소(疏)_

진언소(進言疏)기사년 9월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금년 여름에 거듭 은혜로운 명령을 받았사온데, 스스로 심히 노쇠하고 기력이 쇠진하였으므로 명령에 달려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병을 아뢰는 즈음에 초정(椒井)에 목욕하겠다는 뜻을 감히 아뢰었사온데, 성상(聖上)의 비지(批旨)에 목욕을 한 뒤에 다시 올라오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신은 지극히 노쇠함을 헤아리지 않고 과연 가서 한번 목욕을 하였사오나 기력이 허약하고 살갗이 다 말라서 작은 효험도 보지 못하고 더욱 기력만 감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몸을 싣고 거처하던 소굴로 돌아왔으나 병을 털고 일어날 계책이 없습니다. 다만 받든 명령을 마음속에 명심하였기에 다시 몸을 추스르고 조리하여 다소라도 몸을 기동할 수 있으면 모름지기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어둔 정신을 가다듬고 쇠약한 몸을 부축하고 대궐 아래에 나아가서 쌓인 은혜를 한번 사례하고 오랜 소원을 다소 펴리라고 스스로 계획하였사온데, 두 달을 조리하였으나 소생할 기약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곤궁한 형세가 이에 이르렀사오니, 어쩔 수가 없어서 쓰러져 엎드려 울적해 할 뿐이옵니다.
설령 신이 대궐에 나아가더라도 지체(肢體)가 마비되고 절뚝거려 대궐의 뜰을 걷기 어렵고, 몰골이 추루하여 대열에 낄 수가 없으며, 귀먹음이 이미 심하여 성상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치아(齒牙)가 모두 빠져서 말해도 발음이 제대로 안 되며, 정신이 이미 나가서 말이 잘못됨이 많습니다. 이 한 흙덩어리와 썩은 나무등걸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장차 천위(天威)의 아래에서 어떻게 인간의 일을 하겠습니까. 신은 백 번 생각하고 천 번 계산하여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몸은 이미 나아갈 수 없으나 정은 스스로 억제할 수 없으므로 감히 노망한 말에 의탁하여 작은 정성을 바칠까 도모하오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한번 굽어 살피소서.
우리 국가는 비록 궁벽하게 바다의 동쪽에 있으나 풍토의 아름다움과 산천의 빼어남이 원래 먼 변방의 딴 나라에 비할 것이 아니오며, 중간에 기자(箕子)의 홍범 구주(洪範九疇)의 교화를 입어서 풍속이 예의(禮義)를 지키고 겸양하며 돈후하고 올바른 풍습이 있으므로 소중화(小中華)라 칭해지고 혹은 동쪽의 노(魯) 나라라 칭해져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일찍이 오랑캐로 여겨 가벼이 대우하지 않았으며, 이웃 나라들은 감히 흠모하고 숭상하며 정성을 바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또 아조(我朝 조선조)에 들어온 이래로는 여러 선왕들이 대대로 계승하여 덕을 쌓고 교화를 밝히며 번병(藩屛)의 예(禮)를 지키고 직책을 다하여, 황조(皇朝 명 나라)에게 중한 대접을 받고 오랑캐와 왜적들에게 공경을 받아온 것이 또 전대(前代)에 미칠 바가 아닙니다.
불행히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온 나라가 탕진(蕩盡)되어 섬오랑캐들이 비로소 우리를 능멸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양서(兩西) 지방이 패하자 손을 놓고 적과 싸우지 못하여 오랑캐들이 또 우리를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두 번 패전을 겪은 뒤로는 자립할 가망이 없어서 기미(覊縻)의 계책을 따라 오직 권도(權道)와 구차한 일을 일삼자, 명(明) 나라에서도 차츰 불만스럽게 여기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를 우대하여 용납하고 드러내놓고 견책하지는 않으나 그들이 예우하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전만 못하니, 이 어찌 본국의 수치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때와 형세를 당하여 우리 나라의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어찌 태연자약한 체 깊이 근심하고 멀리 생각하며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하여 진작하고 분발할 줄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만약 이러한 때에 스스로 자립할 방도와 영구한 계책을 세우지 않고, 오직 서쪽의 적이 이미 물러가 숨었고 남쪽의 요망한 기운이 이미 안정되었으며, 중국에서 때로 견책함이 없다 하여, 내외에 경보(警報)가 없고 우선 당장에 다소 편안함만을 요행으로 여겨서 모두 마음을 놓아 태평성대처럼 여기고 하루하루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면서 각려(刻勵)하는 바가 없다면, 비단 측량하지 못한 화가 혹 형체가 없는 데에서 싹틀 뿐만 아니라, 오랑캐들의 끝없는 욕심과 왜구의 측량할 수 없는 계략이 남쪽과 북쪽에서 이빨을 갈고 입술을 물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나라는 외지고 궁벽한 곳에 나라를 세우고 있으면서도 윤리강상(倫理綱常)이 문란하지 않고 예악(禮樂)과 문명(文明)이 볼 만한 것은 모두 중국이 자식처럼 보살펴 준 덕택입니다. 전후에 걸쳐 병력을 출동하여 위급하고 혼란한 때에 구원해 주어서 오늘날 옛 나라를 새롭게 하였으니, 그 은혜의 높고 깊음을 과연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만약 우리의 나약한 형세를 보고는 가벼이 여기고 도외시하려는 뜻을 품어 은혜를 내려주는 예전(禮典)을 줄여서 옛날처럼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의 불행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을 바꾸어 진작하고 분발하는 기틀은 바로 오늘날에 달려 있으며 이것을 바꾸어 진작하고 분발하는 방법은 또한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도리를 다하고 자립함에 달려 있을 뿐이옵니다.
이른바 ‘도리를 다한다’는 것은 또한 마음을 세우기를 성실하게 하고 몸을 닦기를 공경으로 하며, 일을 하기를 바름으로 하고 정사를 내기를 공정하게 함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음을 세우기를 성실하게 하면 마음의 이치를 얻게 되고, 몸을 닦기를 공경으로 하면 몸의 이치를 얻게 되고, 일을 하기를 바름으로 하면 일의 이치를 얻게 되고, 정사를 내기를 공정하게 하면 정사의 이치를 얻게 되니, 자신에게 있는 이치를 얻지 않음이 없으면 밖에 대응하는 것이 순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로써 하늘과 땅을 섬기면 하늘과 땅이 그 덕을 돕고, 이로써 신하와 백성을 통솔하면 신하와 백성이 그 교화에 복종하고, 이로써 상국(上國)을 섬기면 상국이 그 의(義)를 신임하고, 이로써 이웃 나라를 대하면 이웃 나라가 그 정성에 감화되니, 이것이 국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큰 도이며 영구히 할 수 있는 지극한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큰 도를 세우고 지극한 계책을 세우는 것은 어찌 심상한 뜻과 생각으로 해낼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망할까 망할까 우려하여 단단한 뽕나무에 매어 놓듯이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인군이 천하의 악을 멈추게 하는 덕이며, 군주만을 생각하고 자기 몸을 잊으며 국가만을 생각하고 자기 집을 잊으며 공(公)만을 생각하고 사(私)를 잊는 것은 신하가 의리를 다하는 도입니다.
위태로울까 우려하는 것은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망할까 우려하는 것은 그 보존함을 간직하는 것이요, 혼란할까 우려하는 것은 그 다스림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하여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하여도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혼란함을 잊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몸이 편해지고 국가가 보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편안하다 하여 위태로움을 잊으면 그 편안함을 잃게 되고, 보존한다 하여 망함을 잊으면 그 보존함을 잃게 되고, 다스려진다 하여 혼란함을 잊으면 그 다스려짐을 잃게 되니, 더구나 편안하지 않은데 편안하게 여기고 겨우 보존하면서 보존한다고 여기고 다스려지지 않는데 다스려진다고 여겨서 옛 것을 고치고 새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위태로움과 혼란과 멸망을 면할 자가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군주를 원수(元首 머리)라 칭하고 신하를 이목(耳目)과 고굉(股肱)이라 칭하니, 신하가 이미 군주의 이목과 고굉이 되었으면 진실로 자기 집안을 생각하고 자기 몸을 돌보아 자신의 사사로움을 사사로이 할 겨를이 없습니다. 만약 신하가 자기 몸을 잊지 못한다면 반드시 군주를 섬김에 마음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자기 집을 잊지 못한다면 반드시 나라를 보필함에 마음을 다하지 못할 것이니, 자기 몸을 잊지 못하고 자기 집을 잊지 못하여 마음이 사(私)에 매여 있으면 군주를 섬기고 나라를 보필하는 것은 한갓 껍데기일 뿐이요 지위만을 지키며 무릅쓰고 있을 뿐이니, 반드시 혈성(血誠)에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고서 내수외양(內修外攘)의 사업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이 전하에게 바라는 것은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혼란함을 잊지 않고 망함을 잊지 않는 것이며,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 몸을 잊고 자기 집을 잊어서 사사로움을 잊는 것입니다.
인군은 이 세 가지 잊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군주의 도리를 다할 수 있으니, 인군이 이 세 가지를 잊지 않는다면 마음에 어찌 성실하지 않음이 있으며, 몸에 어찌 공정하지 않음이 있으며, 일에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으며, 정사에 어찌 공경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신하는 이 세 가지 잊는 것이 있은 뒤에야 신하의 도리를 다할 수 있으니, 신하가 이 세 가지를 잊는다면 군주를 사랑함에 어찌 불충할 수 있으며, 나라를 보필함에 어찌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겠으며, 공무를 수행함에 어찌 진력하지 않음이 있겠습니까.
성(聖)스럽고 밝으신 전하(殿下)께서 어찌 인군된 도리와 훌륭한 제왕들이 마음에 간직하고 덕으로 여기신 것을 모르겠으며, 조정에 가득한 여러 현자(賢者)들 또한 어찌 신하된 도리와 훌륭한 공경(公卿)들이 자임(自任)한 바와 일삼은 바를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국가의 형세가 날로 쇠퇴해지고 세상의 도가 날로 나빠짐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은 전하께서 세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혹 잊음이 있으시며, 여러 신하들이 세 가지 잊어야 할 것을 혹 잊지 않음이 있는가 염려스럽습니다.
전하께서 만일 먼저 진실한 덕을 다하여 항상 전복(顚覆)됨과 위태로움과 혼란과 멸망이 당장 앞에 닥쳐올 듯이 여기신다면 아랫사람들이 그 누가 마음을 하나로 하여 자기 몸을 생각하고 자기 집안을 생각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한 뒤에야 근본이 서서 도가 생기며, 도가 다하여 사업이 융성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서 뽕나무에 매어놓듯이 나라가 튼튼하기를 바라며 반석(磐石)과 같이 편안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또 술 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억지로 술을 마시며 뒷걸음질을 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도모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고 마땅히 잊어야 할 것을 잊는 것은 모름지기 모두 올바른 성정(性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이 이미 성정을 언급하였사오니, 자사(子思)의 가르침으로 감히 거듭 말씀드릴까 하옵니다.
《중용(中庸)》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는 것으로 천지가 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길러지는 방도로 삼았습니다. 중(中)이라는 것은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이니, 이 마음의 체(體)가 확립되어 허(虛)하고 고요하고 광명(光明)하여 편벽되거나 치우침이 없음을 이르는바, 곧 천하의 대본(大本)입니다. 그리고 화(和)라는 것은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이미 발한 것이니, 이 마음의 용(用)이 유행되어서 각기 그 절도에 맞아 어그러지거나 잘못됨이 없음을 이르는바, 곧 천하의 달도(達道)입니다. 그렇다면 중과 화는 우리 인간의 마음의 성(性)·정(情)에 불과할 뿐인데, 이것을 지극히 한 효험은 천지가 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길러짐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또한 이것을 지극히 하지 않은 응험(應驗)은 천지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만물이 잘 길러지지 못함에 이를 것입니다.
자사(子思)는 비록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네 가지를 들었을 뿐이나 칠정(七情)의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고자 함이 모두 이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또 비록 다만 지극한 공효로 천지가 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길러짐을 들었으나 그 사이에 여러 공적(功績)이 이루어지고 백 가지 응험이 순히 나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습니다. 한 마음의 성(性)·정(情)에 나아가 모든 사람의 덕행과 사업이며 득실(得失)과 성패(成敗)의 변함과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의 응험이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으니,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도 이 마음의 성·정을 삼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인군의 성·정은 그 관계됨이 어떠하다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모름지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드러나지 않고 나타나지 않은 곳에 항상 존양(存養)과 성찰(省察)의 공부를 쏟으시어 정(情)이 아직 발하기 전에는 반드시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생각하기를 “이 마음이 편벽되거나 치우침이 있지 않은가?” 하여 하나라도 편벽되거나 치우침이 있으면 공경하여 마음을 곧게 하시며, 정(情)이 막 나오려 할 적에는 반드시 잘 살피고 삼가서 생각하기를 “이 정이 과(過)하거나 불급(不及)함이 있지 않은가?” 하여 하나라도 혹 과하거나 불급함이 있으면 의(義)로써 절제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때때로 본성(本性)을 돌아보아 보존하고, 생각할 때마다 더욱 살펴서 천하의 대본(大本)을 세우고 천하의 달도(達道)를 내신다면 아무리 넓은 천하라도 손바닥 위에 놓고 운용할 수가 있으니, 하물며 작은 한 나라이겠습니까.
천지가 편안하게 자리잡고 만물이 잘 길러지게 함은 비단 천하를 소유한 자에게만 이러한 사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는 한 나라의 천지와 만물이 있고 집안에는 한 집안의 천지와 만물이 있으며, 몸에 이르러서도 또한 한 몸의 천지와 만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성인(聖人)의 능사(能事)와 지극한 공효(功效)’라는 것은 실로 모두 사람마다 할 수 있는 분수 안의 일인데, 다만 그 중에도 특별히 큰 사업은 인군의 사업보다 더 큰 것이 없을 뿐입니다.
기자(箕子)의 홍범 구주(洪範九疇)에 이른바 탕탕(蕩蕩)하고 평평(平平)하며 정직(正直)한 방도가 모두 여기에 있으며, 황제(皇帝)의 극(極)을 세우고 구주(九疇)를 운용함도 바로 이 이치입니다. 이 이치를 체행함을 도(道)라 이르니, 도는 진실로 잠시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어지럽고 경황없는 사이와 급박하고 곤궁한 가운데에 있더라도 이 이치 밖에는 따로 하늘을 돌리고 사람을 격려하여 전화위복(轉禍爲福)할 수 있는 방도가 있지 않습니다.
신이 아뢰는 것은 진실로 인간 세상을 초월한 기이한 계책이 아니오라, 실로 전하께서 경연(經筵)에 있는 유신(儒臣)들과 일찍이 강론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다스려지고 혼란하며 흥하고 멸망하는 중요한 관건은 실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정교(政敎)와 풍화(風化)의 근원도 이 마음을 버리면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활함을 꺼리지 않고 공허한 말씀을 무릅쓰고 아뢰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자(聖慈)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신은 감격하여 우러러보고 두려워하며 진동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와 삼가 죽을 죄를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주D-001]번병(藩屛)의 예(禮) : 제후왕(諸侯王)의 예절을 이른다.

 

여헌선생문집 제1권_

부(賦)_

공중누각부(空中樓閣賦)

 

괘에 진이 위에 있고 건이 아래에 있는 것을 대장이라 하니 / 卦震上乾下曰大壯
궁실을 지을 때에 이것을 보고 들보기둥과 들보를 만들게 되었다오 / 制宮室棟宇之有作
침전과 관사를 차례로 일으키지만 / 紛寢殿館舍之迭起
누각보다 더 상쾌한 것은 없네 / 最莫快乎爲樓爲閣
그러나 경영하여 세움이 땅을 떠나지 못하니 / 然營建不離乎下土
저 사방이 어찌 막힘이 없겠는가 / 伊四方豈得無限隔
만약 공중에 한 누각이 있다면 / 若有一樓閣兮于空中
어찌 그 사통팔달함을 따르겠는가 / 孰如其四通八達
그 이름을 기이하게 여기고 멀리 생각하면서 / 奇其號而遐想
그 실제를 아득한 속에 연구한다오 / 究厥實於沖漠
이것은 흙과 나무와 쇠와 돌로 재목을 만든 것이 아니니 / 玆非土木金石之爲材
또한 어찌 칼과 톱과 먹줄을 쓰겠는가 / 亦何用夫刀鉅繩墨
상서로운 오성이 규성(奎星)에 모여 / 祥五星之聚奎
천운이 송 나라에 열려졌네 / 天啓運於宋德
좋은 정기 모여 철인을 우뚝이 탄생시키니 / 儲精會淑兮挺生哲人
한 세상의 영걸이라오 / 蓋一世之英特
기운이 맑고 바탕이 순수하여 / 氣淸質粹兮
우주를 담당하고 / 宇宙擔當
마음이 웅장하고 뜻이 호걸스러워 / 心雄志豪兮
천지를 파악하였네 / 天地把握
몇 년 동안 겨울에도 화롯불을 쬐지 않고 여름에도 부채질을 하지 않으면서 / 幾年冬而不爐夏而不扇
호정을 나가지 않고 시초와 거북점을 쳐보지 않으며 / 不出戶庭不假蓍龜
다만 고요한 속에서 공부하였네 / 止在靜裏而做得
누대는 누대가 아닌 누대였고 / 爲樓也不樓之樓
각은 각이 아닌 각이라오 / 爲閣也不閣之閣
그 경영한 것은 / 其所以爲經營也
태허를 점거하여 터를 열고 / 則占太虛而開基
마음의 솜씨를 운용하여 일을 하였네 / 運心匠而辦役
선천에서 법을 얻고 / 得成法於先天
복희의 괘효에서 묘한 기틀을 얻어 / 契妙機於羲畵
무극의 태극을 종주로 하고 / 宗無極之太極
마침내 이것을 법으로 삼았네 / 遂以爲其極
둘에서 넷으로 나누어지고 넷에서 여덟으로 나누어진 것은 / 二而四四而八者
바로 소성의 법이며 / 卽其小成之法也
육십사괘와 삼백팔십사효는 / 六十四三百八十四者
바로 대성의 업이라오 / 乃其大成之業也
고명하고 박후한 천지의 이치를 다하고 / 際高明博厚之覆載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는 경지를 궁구하였네 / 窮無始無終之區域
건곤에 자리하여 상하가 정해지고 / 位乾坤上下以定
감리를 문으로 하여 좌우가 나열되니 / 門坎离左右斯列
산과 못이 이에 기운을 통하고 / 山澤於是乎通氣
우레와 바람이 때에 따라 서로 이르렀네 / 雷風以時而相薄
북쪽으로는 발로 천근을 밟고/ 北可以足躡天根
남쪽으로는 손으로 월굴을 더듬었네 / 南可以手探月窟
동서의 황도와 아홉 길은 / 東西黃道與九行
또한 삼광의 출입을 통할 수 있었다오 / 亦可以通三光之出入
물건을 관찰할 적에 / 其所以觀夫物也
음양이 상을 이룬 것은 해와 달과 성신이요 / 則陰陽成象者日月星辰
강유가 바탕을 이룬 것은 물과 불과 흙과 돌이었네 / 剛柔成質者水火土石
더위와 추위, 낮과 밤이 오고 가며 / 暑寒晝夜之來往
비와 바람, 이슬과 우레가 서로 번갈아드네 / 雨風露雷之交錯
사물에는 성정과 형체가 있고 / 物焉而性情形體
유별에는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과 풀과 나무가 있네 / 彙焉而飛走草木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내 갖추었고 / 目耳鼻口焉我具
색깔과 소리와 기운과 맛을 밖에서 감촉하였네 / 色聲氣味焉外觸
원·형·이·정은 하늘에 있는 떳떳한 도이며 / 元亨利貞兮在天常道
인·의·예·지는 사람의 아름다운 덕이라오 / 仁禮義智兮爲人懿德
세상의 변은 황제와 왕패이며 / 世變則皇帝王覇
사업은 도덕과 공력이라오 / 事業則道德功力
춘·하·추·동은 일년의 절서이고 / 春夏秋冬兮一歲節序
역·서·시·춘추는 이 도의 기축이네 / 易書詩春秋兮斯道機軸
가까이 보면 해와 달과 날과 때를 나눌 수 있고 / 近觀則歲月日辰之可分
멀리 보면 원과 회와 운과 세를 포괄하였네 / 遠視則元會運世之包括
이(二)는 나뉘어 사(四)가 되지 않을 수 없고 / 二不得不分爲四
사(四)는 나뉘어 팔(八)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 / 四不得不分爲八
이 사와 팔을 가지고 횡으로 보고 종으로 보면 / 用是四八橫看竪看
크고 작고 굵고 가는 것이 / 大小巨細
어느 것인들 실정을 숨길 수 있겠는가 / 孰或逃得
나아가고 물러가고 보존되고 망함과 / 進退存亡
길하고 흉하고 뉘우치고 부끄러움이 / 吉凶悔吝
은미한 것에 관계없이 / 無微無隱
마음과 눈에 밝게 보이네 / 昭在心目
이치에 있으면 혼연하여 조짐이 없고 / 在理則渾然無眹
수가 되면 백천만억이 되어 / 爲數則百千萬億
달관하고 궁극히 보는 가운데에 모두 있으니 / 莫不畢會於達觀窮視之中
어찌 털끝만큼인들 가리우고 숨김이 있겠는가 / 焉有毫毛之掩匿
이는 우주에 누각이 되어 / 此其爲樓閣乎宇宙者
바로 공중에 우뚝이 선 것이라오 / 乃於空中焉是立
주인옹은 평상시에는 공을 가지고 희롱하는 여가에 / 主人翁居業則弄丸餘暇
바람을 타고 벼락을 채찍질하며 자취가 없는 곳에 정신이 놀고 있었네 / 駕風鞭霆兮神遊無迹
관직을 맡아서는 산중 사람의 네 가지 일 하였으니 / 官守有山人四事
바람과 꽃과 눈과 달 감상하는 것이었지 / 品題者風花雪月
한가한 가운데 지금과 옛날을 살펴보니 / 閒中今古兮
송 나라의 늦은 해였고 / 宋代晩日
취한 속에 건곤을 굽어보니 / 醉裏乾坤兮
한 안락와라오 / 一窩安樂
가슴 속의 조화는 / 胸中造化兮
격양집(擊壤集)의 시는 귀신의 실상을 빼앗고 / 擊壤吟咏神鬼情奪
마음 위에 경륜함에 / 心上經綸兮
황극경세의 규모가 스스로 각별하였네 / 皇極經世規模自別
다만 한스러운 것은 세상이 말세가 되어 / 獨恨夫世到叔季
이미 이 불세출의 누각이 있었으나 / 旣有此不世出之樓閣
위로 남훈전의 뜰을 잇지 못하고는 / 而不得上接乎南薰殿陛
한 세상의 빈 기물이 되어 / 俾作一世之空器
맑은 그늘이 억조창생에게 미치지 못한 것이라오 / 淸陰不及乎億兆蒼赤
나와 같이 몽매한 사람은 / 如余蒙生
또 누각을 공중으로 칭한 것을 의심하니 / 又疑夫樓閣以空中爲稱
평지에 있는 사람들이 / 其奈平地上人
사다리를 타지 않으면 올라가기 어려움을 어찌 하겠는가 / 不階梯難能登躐也

[주C-001]공중누각부(空中樓閣賦) : 공중누각은 명철하고 통달함을 비유한 말로, 정자(程子)가 송 나라 때 학자 소옹(邵雍)을 ‘공중누각’으로 일컬은 바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이 소옹을 두고 읊은 것이다. 《朱子語類 卷一百》
[주D-001]북쪽으로는 발로 천근을 밟고 : 천근(天根)은 《주역》의 복괘(復卦)를 가리키고 월굴(月窟)은 구괘(姤卦)를 가리킨다. 동지(冬至)에는 한 양(陽)이 처음 아래에서 생기는데 이것을 복괘라 하며, 하지(夏至)에는 한 음(陰)이 처음 아래에서 생기는데 이것을 구괘라 하는바, 동지는 자월(子月)이므로 북쪽이라 하고, 하지는 오월(午月)이므로 남쪽이라 한 것이다.
[주D-002]남훈전 : 당(唐) 나라 때에 있었던 대궐 이름으로 순(舜) 임금이 지은 시가(詩歌)의 ‘남풍지훈(南風之薰)’에서 따온 명칭이다

여헌선생문집 제1권_

부(賦)_

관물부(觀物賦)

 

이치를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 理豈難知
하나이면서 만 가지이고 만 가지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 一而萬萬而一者
나누어 말하면 / 分而言
도와 물건이요 물건과 나이며 / 道與物物與我也
합하여 말하면 / 合而言
나 또한 물건이요 물건 또한 도이다 / 我亦物物亦道也
사람이 형기에 국한되지 않으면 / 人能不局於形氣
안목이 상하와 사방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 眼可通於四方上下
우뚝이 솟은 공중의 누각에 / 屹空中之樓閣
뛰어난 사람이 규성(奎星)이 모인 천지에 태어났다 / 挺人豪於聚奎之乾坤
일찍 방외에서 한 그림을 얻으니 / 早從方外而得一圖
포희씨의 심사가 여기에 들어있었다 / 庖犧心事兮此焉存
육십사괘를 둥글게 배열하고 네모지게 배열하니 / 卦六十四兮圓而方之
그 가운데에 우주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 宇宙乎其中
몇 년 동안 겨울철에 화롯불을 쬐지 않고 여름철에 부채질을 하지 않으며 / 幾年冬不爐夏不扇
종횡하고 착종하여 벼락을 채찍질하고 바람을 타고 다녔다 / 縱橫錯綜兮鞭霆駕風
나이 50에 하늘과 인간의 실정을 모두 배워 / 年五十學盡乎天人之情
이기심의 잔재를 찾고자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 欲求己滓兮無可得
안락와의 호정을 나가지 않고 / 不出乎安樂窩戶庭
천지만물의 아득한 이치를 연구하였다 / 悠悠兮天地萬物
저 푸르고 푸른 하늘은 움직이고 둥그니 / 觀夫蒼蒼然者動而圓
해와 달과 별이 갖추어져 있으며 / 日月星辰其斯備
두텁고 두터운 땅은 고요하고 네모지니 / 膴膴然者靜而方
물과 불과 흙과 돌이 나란히 있다 / 水火土石之攸比
하늘이 변하여 덥고 추우며 낮이 되고 밤이 되며 / 天以變兮暑寒晝夜
땅이 변화하여 비바람과 이슬과 우레가 울린다 / 地以化兮雨風露雷
이에 서로 느끼고 서로 감응하여 / 爰交感而互應
구해에 물건이 분분히 있다 / 物紛紜於九垓
종으로 나누면 성정과 형체이며 / 縱分而性情形體
횡으로 나누면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과 풀과 나무이다 / 橫別而飛走草木
물건의 크고 작은 것이 천만 가지로 나뉘어지고 / 物大小於焉千萬
사람의 어질고 어리석음이 억조로 구별된다 / 人賢愚于以兆億
체는 귀와 눈과 입과 코에 갖추어지고 / 體備於耳目口鼻
용은 기운과 냄새와 소리와 색을 다한다 / 用悉乎氣味聲色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상승하여 변화해서 / 十與十二相乘而變化
터럭으로 나뉘고 실끝으로 분석된다 / 可毫分而縷析
세대는 황·왕·제·패가 서로 이어지고 / 世皇王帝覇之相承
경서는 역·서·시·춘추가 차례로 나왔다 / 經易書詩春秋之迭作
성현의 재주와 학술로 응하고 / 應之以聖賢才術
도덕과 공력으로 다하였다 / 盡之以道德功力
크게는 원·회·운·세이고 / 大而元會運世
작게는 해와 달과 날과 때이다 / 小而歲月日辰
번갈아 종과 시가 되어 가고 오며 / 迭終始而往來
치와 난, 흥과 망이 분별된다 / 治亂興亡之可分
하나에서 둘로 나뉘고 둘에서 넷으로 나뉘고 넷에서 십육으로 나뉘어 / 一而二二而四十六
천지의 수가 다하였다 / 而天地之數窮矣
줄어들고 자라나는 것은 하늘의 도이고 / 消而長者天道
인습하고 개혁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 因而革者人事
그 사이에 권도가 있으니 / 曰有權存乎其間
성인과 신인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다하겠는가 / 非聖神其孰盡
이것으로 관찰하니 / 于以觀之
비록 작은 물건이라도 어찌 도망하겠는가 / 物雖微而孰遁
크게는 천지로부터 / 大自天地
작게는 호홀에 이르며 / 小至毫忽
가까이는 내몸으로부터 / 近自吾身
멀리는 육합에 이르기까지 / 遠至六合
물건 아닌 것이 없는데 / 無非物兮
이치가 내 몸에 있어 빠짐이 없다 / 理在我而無闕
통합하여 말하면 도이고 / 統言之而曰道
나누어 말하면 이치이며 / 散言之而曰理
형기로 구분하면 물건이고 / 形器之則物也
미루어 헤아려 보자면 수이다 / 推步之則數耳
모여서 나의 한 마음에 있고 / 會在我而此心
하나로 꿰어 포괄된다 / 一以貫兮包括
이는 요부가 물건을 관찰함이 / 是堯夫之觀物
일반인의 눈과 달라서 / 其諸異乎衆目
마음과 몸 / 心與身兮
물건과 세상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 物與世擧
만 가지가 한 이치임을 보니 / 觀萬之以一
어찌 다만 맑은 물과 거울 같을 뿐이며 / 豈特水鑑
물건의 형체를 하나로 꿰뚫으니 / 能一乎物形
물건의 실정을 통일시킬 수 있는 것이다 / 玆可以物情之能一
이에 어느 것이 하늘이고 어느 것이 땅인가? 한 마음에 들어 있고 / 於是孰天孰地一方寸兮
어느 것이 옛날이고 어느 것이 지금인가? 한 가슴 속에 있다 / 何古何今一胸中兮
높고 깊은 것을 연구하지 못함이 없으니 / 無高深其不致
어찌 세미한 것을 상고하지 못하겠는가 / 寧微細而未稽
이것을 보려면 어찌하여야 하는가 / 觀之兮何爲
돌이켜서 내몸에 모이게 할 뿐이다 / 反而會諸吾身
성을 다하여 천명에 순종하고 / 性可盡兮命可順
마음이 인(仁)하여 물건이 모두 봄이 된다 / 心而仁兮物皆春
당시에 그 포부를 다 폈더라면 / 使當年獲盡其蘊抱
내성외왕의 큰 사업을 보았을 것이다 / 庶見夫內聖外王之大業
남쪽 사람들의 난리를 막을 수 있으니 / 可杜南人之構亂
어찌 정강의 큰 재앙이 있었겠는가 / 豈有靖康之巨孼
마침내 이름없는 한 분이 되었으니 / 竟作無名之一公
아! 이는 운수인가 천명인가 / 吁嗟乎數耶命耶
물건의 이치를 관찰함은 다만 홀로 즐길 뿐이요 / 觀物只足以爲獨樂
만물로 하여금 각각 제자리를 얻고 천하로 하여금 한 집안이 되게 하지 못하였다 / 不能使萬物各所天下一家
그러나 황극경세의 한 책은 / 然皇極經世之一書
마땅히 천지와 더불어 종말을 함께 할 것이다 / 當與天地而終始
선생을 통하여 공자를 알고 / 因先生而知孔子
공자를 통하여 복희를 알며 / 因孔子而知伏羲
또 복희를 통하여 천지의 이치를 안다 / 又因伏羲而知天地
선천학이 만세에 발명됨은 / 先天學發明於萬世
실로 소자에게서 열려졌으니 / 鑰實啓於邵子
지금의 천지는 바로 옛날의 천지이고 / 而今天地昔日之天地
지금의 만물은 바로 옛날의 만물이다 / 萬物昔日之萬物
이 이치가 사람의 마음에 있으니 / 此理之在此心
또 어찌 옛날과 지금이 다르겠는가 / 又何異夫今昔
주역의 이치를 알면 천리(天理)를 아는 것이니 / 知易理爲知天
나는 상수학(象數學)을 연구할 겨를이 없다 / 余未暇乎數學
만물을 조용히 관찰하면 모두 자득한다는 것은 / 萬物靜觀皆自得
정백자 역시 이러한 말씀이 있었다 / 程伯子亦有是說
수는 이치 가운데를 벗어나지 않으니 / 數不外乎理中
나는 진리를 연구하는 공부에 종사하기를 원한다 / 願從事於窮格
물건은 소이연의 이치를 찾고 / 物求所以然兮
일은 소당연의 도리를 찾아야 한다 / 事求所當然
이로부터 가면 / 由是而往兮
본성을 다하고 천명에 이를 수 있다 / 可以盡性至命
도리가 다하는 곳에는 수가 그 가운데에 있으니 / 道理盡處數在其中
신명의 이치를 연구하고 조화를 아는 것인들 또한 어찌 이 경(敬)에서 벗어 나겠는가 / 窮神知化亦何外乎此敬

[주D-001]구해 : 원래 구천(九天) 또는 중국의 구주(九州)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천지(天地)의 사이를 말한 것이다.
[주D-002]원·회·운·세 : 30년을 1세라 하고 12세를 1운이라 하며 30운을 1회라 하고 12회를 1원이라 한다. 《皇極經世 觀物內篇》
[주D-003]내성외왕 : 안에는 성인(聖人)의 덕을 쌓고 밖에는 왕자의 도를 행함을 이른다.
[주D-004]정강의 큰 재앙 : 정강은 송 나라 흠종(欽宗)의 연호인데, 정강 2년(1127)에 금군(金軍)이 남하하여 송 나라의 수도인 변경(汴京)이 함락되고 상황(上皇)인 휘종(徽宗)과 흠종이 모두 사로잡힌 일이 있었다.

여헌선생문집 제1권_

부(賦)_

일식부(日食賦)

 

명나라 만력 24년 가을에 / 皇明萬曆二十有四秋
나는 친구들과 춘추를 읽었는데 / 余從朋友而讀春秋
성인은 일식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기록하였으니 / 觀聖人日食焉必志
재앙이 크므로 깊이 근심하신 것이었네 / 蓋災大而深憂
어찌 일찍이 형상이 없이 그림자만 있겠는가 / 曾豈無形而有影
당시 난신적자들이 발자취를 이어서라오 / 時亂臣賊子之接跡
서로들 성인의 기록 훌륭하게 여기며 그 당시 서글퍼하였네 / 遂相與大聖筆而傷其時
강설을 마치기 전 / 方講說之未訖
갑자기 앉아 있던 집이 어두워지므로 / 忽坐堂之失晝
놀라 사방을 돌아보니 모두 깜깜해졌네 / 驚四顧而皆黑
우러러 하늘의 해를 바라보니 / 仰見天日
하늘은 그대로 검은데 해가 밝은 빛이 없어졌다오 / 天則自玄兮日乃無白
이에 동자를 불러 동이에 물을 부어놓고 / 於是招童子供盆水
비추어 기록하며 해가 먹히는 것 살펴 보니 / 照以誌視其食也
처음에는 보름 뒤의 달과 같아 / 旣初如望後之月
이지러져 반달 모양이 되었다가 그믐달의 모양이 되어 / 缺而弦弦而晦
손괘와 간괘, 곤괘의 상이 번갈아 이루어지고/ 巽艮坤之遞象
마지막에는 보름 전의 달과 같아 / 終如望前之月
초하루 모양에서 반달 모양이 되었다가 다시 가득차 / 朔而弦弦而盈
진괘와 태괘, 건괘의 상이 번갈아 이루어졌네/ 震兌乾之迭像
바야흐로 한쪽이 낫과 같아 / 方一邊之如鎌
아직 남은 빛이 일렁이더니 / 猶餘輝之蕩瀁
갑자기 전체가 모두 감추어 / 奄全體之盡韜
우주를 깜깜한 속으로 몰아넣었네 / 納宇宙於混罔
화륜이 청니에 빠지고/ 沒火輪於靑泥
금오가 칠갑에 갇혀 있어 / 囚金烏於漆匣
산은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흐리고 / 山不雨而矇矇
들은 밤이 아닌데도 캄캄하여 / 郊不夜而窣窣
하늘은 눈을 잃었고 / 天爲之失目
양(陽)은 정기를 상실하니 / 陽爲之喪精
천지가 참담하여 색깔이 없어지고 / 乾坤慘慘其無色
온갖 물건이 모두 광명을 잃었다오 / 百物俱晦其光明
이 태양의 아래에 있는 물건들 / 凡在此日之下者
어느 것인들 혼이 놀라고 넋이 나가지 않겠는가 / 孰不驚魂而禠魄
길을 가는 자들은 말을 돌리며 두려워하고 / 行者班馬而震怖
방에 있는 자들은 하던 일 놓고 탄식하였네 / 居者釋業而歎息
부귀한 자는 마치 부귀를 잃은 듯 / 富貴者若失其富貴
선인과 악인은 모두 선악을 잃어 / 善惡者都忘其善惡
하늘이 이로부터 무너질까 의심하고 / 天疑從此而亦崩
땅도 이로 인해 장차 꺼질까 우려하니 / 地恐因是而將坼
혼돈 시절이 다시 돌아오는가 놀라고 / 驚混沌之當日
우주가 암흑으로 변하는가 염려하였네 / 念寰宇之長夜
새와 짐승들도 모두 날기를 멈추고 달리기를 그치며 / 飛禽走獸亦莫不止飛而停走
발이 얼어붙은 듯 입이 벙어리가 된 듯 / 足若凍而口啞
아! 이 무슨 영상인가 / 嗚呼是何等影象
변괴가 참으로 혹독하였네 / 其變也斯酷
때는 윤팔월 초하루로 / 玆惟閏八月初吉
일진(日辰)은 을축일이라오 / 日則乙丑
나는 이 변괴 이상히 여기고 / 余怪其變
그 이치 연구하여 논리를 찾았노라 / 原其理以求其說
하늘에는 해가 있으니 / 惟天有日
천지가 개벽할 때로부터 시작하여 / 曰自開闢
그 형체 하나 밖에 없고 / 其體不雙
그 도 똑같은 것이 없다오 / 其道莫竝
조화에 기강이 되고 / 綱紀乎造化
동정에 추기가 되어 / 樞機乎動靜
천지가 이로 말미암아 생성되고 / 乾坤用之而生成
귀신이 이것을 타고 굴신하네 / 鬼神乘之而屈伸
별자리의 도수가 이 때문에 정해지고 / 星度數之以定
달의 그믐과 초하루가 여기에서 나오네 / 月晦朔之是因
이것이 가고 옴으로 인해 낮과 밤이 나누어지고 / 以其有往來晝夜分
이것의 길고 짧음에 따라 추위와 더위가 구별되네 / 以其有永短寒暑別
천지간에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물건들이 / 天地間洪纖高下形形色色者
모두 그 빛을 받아 물건이 되며 / 莫不受其光而爲物
우주 사이에 사라지고 자라며 번성하고 시들어 오고 가는 물건들이 / 宇宙來消長榮悴去去來來者
모두 그 운행을 얻어 변화되니 / 莫不得其運而成化
이는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 此乃有覆載
반드시 이 태양이 있었으리 / 必有是日
이 태양이 있으므로 온갖 조화가 있어 / 有是日斯以有萬化
광명하고 빛나 / 光明烜赫
만고에 비추고 쉬지 않으니 / 揭萬古而不息
하루인들 어찌 태양이 없을 수 있겠나 / 一日烏得無是日
만약 하루라도 태양이 없으면 / 一日而若無是日
천도가 폐하고 연사(年事)가 이뤄지지 못하며 / 天道廢兮歲功息
낮과 밤이 없고 그믐과 초하루가 없으며 / 無晝夜無晦朔
또 추위와 더위가 없을 것이니 / 又無寒暑
어찌 다시 양의와 삼재가 있겠는가 / 復安得有兩儀三才
그 성대한 공용을 연구해 보면 / 究功用之盛大
일식의 재앙이 심함을 알 수 있네 / 知厥蝕之劇災
일식은 어찌하여 생기는가 / 蝕之也伊何
내 일찍이 선유들에게 들으니 / 曾聞之於先儒
달은 해를 따라 교대로 운행하여 / 月隨日而代行
떨어지고 모임이 서로 연관된다네 / 有離合之相須
그믐과 초하루가 교차하는 때에 / 方晦朔之際交
저 음이 가려 일식이 일어나네 / 彼陰掩而有食
그 수치는 일정함이 있어 / 其數也有常
천년 뒤의 것도 계산할 수 있으니 / 隔千歲而算得
일정한 수치에 당연한 것이라 핑계하여 / 夫旣諉諸常數之當然
어리석은 군주와 아첨하는 신하들이 항상 소홀히 하니 / 故暗君諂臣之每忽
음과 양의 높고 낮음이 / 殊不知陰陽之尊卑
자연 구분이 있어 넘기 어려움을 알지 못하네 / 自有分而難越
떨어졌다가 반드시 모이는 것은 / 離而必合者
해와 달이 서로 사귀는 이치이며 / 乃日月相交之理也
모일 때에 마땅히 피하는 것은 / 會而當避者
해와 달이 서로 다른 뜻이라오 / 乃日月相異之義也
이미 피하지 않고 핍박하니 / 旣不避而有逼
어느 변괴가 이보다 크겠는가 / 爲變孰大於此也
한 초목의 요망함도 재이(災異)라고 이르며 / 一草一木之妖尙謂之異
한 별자리의 어그러짐도 변괴라고 이르는데 / 一星一辰之差亦謂之怪
하물며 태양이 먹힘을 당하니 / 況太陽之見食
참으로 더할 수 없는 괴변이라오 / 誠怪戾之莫最
어떤 벗이 나에게 묻기를 / 有友詰余而言曰
마땅히 먹혀야 할제 먹히지 않는 것은 / 當食不食
양을 붙드는 자 그 누구이며 / 扶陽者誰
마땅히 피하여야 할제 피하지 않는 것은 / 當避不避
음을 순하게 만드는 자 그 누구인가 / 馴陰者誰
그 먹힘이 일정한 도수가 있으니 / 其食也旣有常度
어찌 물러나 피함이 때가 다르단 말인가 / 何退避之異時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余曰
그대는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모르는가 / 子不知天人之理乎
상은 하늘에 드리워져 있으나 / 象垂乎天
도는 바로 사람에게 있다오 / 道在于人
하늘의 마음을 사람이라 하니 / 天之心曰人
하늘과 사람은 두 가지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네 / 天與人非二眞也
상의 이치를 도라 하니 / 象之理曰道
상과 도는 바로 한 뿌리라오 / 象與道乃一根也
사람이 감동하면 하늘이 응하고 / 人感而天應
도가 어그러지면 상이 변하는 법 / 道悖而象變
마음이 병들면 형체가 마르고 / 心病者形枯
자식이 잘못하면 아버지가 꾸짖나니 / 子惡則父譴
하늘에 상을 드리운 것은 똑같지만 / 觀夫象于天者雖一
도는 사람에 따라 종류가 나누어지네 / 道於人而類別
해는 하늘에 있는 양의 상이 되는데 / 日爲在天之陽象
양의 유는 사람에 있어 한 가지가 아니며 / 陽之類固在人非一
달은 하늘에 있는 음의 상이 되는데 / 月爲在天之陰象
음의 유 또한 사람에 있어 한 가지가 아니라오 / 陰之類亦在人非一
한집안으로 말하면 / 家以言
아버지는 양이고 자식은 음이며 남편은 양이고 부인은 음이며 / 父陽子陰兮夫陽婦陰
나라로 말하면 / 國以言
군주는 양이고 신하는 음이며 정직한 사람은 양이고 간사한 사람은 음이며 / 君陽臣陰兮正陽邪陰
천하로 말하면 / 天下以言之
양은 중국이고 음은 이적이다 / 陽爲中國兮陰爲夷狄
군주와 아버지와 남편과 군자와 중국은 / 曰君曰父曰夫曰君子曰中國者
비록 사람에게 있는 양의 종류라 하나 / 雖曰在人之陽類
그 이치는 모두 해에 관계되고 / 其理則皆係于日
신하와 자식과 부인과 소인과 이적은 / 臣也子也婦也小人也夷狄也者
비록 사람에게 있는 음의 종류라 하나 / 雖曰在人之陰類
그 기운은 모두 달에 속한다 / 其氣則咸屬于月
도가 아래에서 순하면 / 道順於下
상이 따라 순하고 / 象從而順
도가 아래에서 문란하면 / 道紊於下
상이 따라 문란해지니 / 象從而紊
만약 성인이 높은 자리에 있어 / 若乃聖人在上
이 도가 빛나서 / 此道煥赫
삼강이 바루어지고 / 三綱旣正
구법이 확립되며 / 九法亦立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 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 하며 군주는 군주 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 하며 / 夫夫婦婦父父子子君君臣臣
군자가 안에 있고 중국이 다스려지면 / 君子內而中國理
바로 이러한 때에 / 當是時也
해와 달이 빛난다 / 日月光華
어찌 희미해지고 먹히는 이변이 있겠는가 / 寧有薄食之異
말세가 되어 혼란해지면 / 至於叔季昏亂
이 도가 밝지 못하여 / 此道不明
하늘의 질서가 제대로 서지 못해서 / 天秩不紀天敍不經
부인이 남편을 거역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해치며 / 婦逆夫兮子賊父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간사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모함하며 / 臣弑君兮邪陷正
중국 사람이 금수가 되고 / 夏之人乃禽乃獸
이적이 덩달아 성해지니 / 夷狄於是乎亦盛
이러한 때를 당하면 / 方是時也
음으로서 양에 항거하여 / 以陰抗陽
해와 달이 서로 먹힌다 / 日月爲之相食
벗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友曰
그렇다면 오늘의 변고는 / 然則今日之變
과연 어디로부터 일어났는가? / 果何從而作也
나는 해외의 어두운 학자라서 / 余海外之昏儒
하늘과 인간의 이치를 배웠으나 통달하지 못하였다 / 學天人之未達
더구나 아무 재앙은 아무 응험이라는 것은 / 況某災之某應
한 나라 학자들의 잘못된 말이다 / 是漢儒之謬說
나는 아직 중국을 가보지 못하였으니 / 足未躡於中國
어찌 무슨 도리에 잘못이 있는지 알겠는가 / 寧知何道之有失
다만 오늘의 천하를 보면 / 但見今日之天下
어찌 재앙을 부를 만한 허물이 없겠는가 / 亦豈致災之無愆
저 천박한 일본 사람들이 / 彼日本之孼奴
감히 천자국인 명 나라에 항거하여 / 敢抗大明於當天
5년 동안 황제국의 군대가 해변에 있었으니 / 五載王師於海陲
이는 사방의 오랑캐들이 황제국을 섬기는 것과 다르다 / 蓋異乎四夷之來王
음이 여러 양의 종주를 잠식하니 / 陰蝕乎衆陽之宗
재앙이 어찌 까닭없이 일어나겠는가 / 災豈作於无妄
벗이 다시 다음과 같이 논란하였다 / 友復爲之難曰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 天無二日
백성에겐 두 임금이 없으니 / 民無二王
이 해를 상대하는 자는 / 對是日者
천하에 한 사람인 황제이다 / 天下之一人
허물이 어찌 우리 작은 나라에 말미암겠는가 / 咎豈由於小邦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余曰
그렇지 않다 / 不然
해가 비추는 곳은 / 日所照
모두 이 도가 있는 곳이다 / 皆此道所存
물건이 모두 음양에 소속되어 있으니 / 物咸囿於陰陽
한 몸에도 각기 한 건곤이 있는 것이다 / 一身各有一乾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 벗들도 / 今此在座者諸友
또한 이 이치가 모인 것이다 / 亦莫非此理之所聚
만약 인욕으로 천리를 멸하고 / 若以人欲滅天理
혹 자식이 되어 아버지를 무시하여 / 或爲人子無其父
한 몸의 음이 한 몸의 양을 이긴다면 / 一身之陰勝一身之陽
이는 한 몸의 해와 달이 서로 먹히는 것이요 / 一身之日月薄蝕也
한 집안의 음이 한 집안의 양을 이긴다면 / 一家之陰勝一家之陽
이는 한 집안의 해와 달이 먹히는 것이니 / 一家之日月薄蝕也
반드시 미천한 사람과 작은 집안이 / 不必謂人之微家之小
모두 하늘의 변고를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 皆足以致天變
어찌 사물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 豈不曰物無巨細
이치가 하나로 꿰고 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 理貫于一
더구나 신하와 백성과 사직을 소유하여 군주가 되었다면 / 況乎有臣民社稷而爲君
어찌 감응할 수 있는 기축이 되지 않겠는가 / 曷不足爲感應之機軸
그러므로 춘추시대의 난신적자가 / 故春秋之亂賊
반드시 모두 종주(宗周)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 不必皆作於宗周
그렇다면 오늘날의 이 변고가 / 夫然則今日之是變
어찌 우리 나라의 큰 우환이 아니겠는가 / 寧不爲我國家憂也
동남 지방에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큰 고래가 뛰놀고 / 東南起橫海之長鯨
서북 지방에는 으르렁대는 늙은 개가 엎드려 있으며 / 西北伏傍狺之老狗
안에는 나라에 인물이 없어 텅 비었고 / 內邦國之空虛
백성들은 역적질하는 자가 뒤이어 처형당하니 / 民逆竪之繼誅
마땅히 인군의 상이 흉함을 알릴 것이다 / 宜君象之告凶
어찌 천도를 속이겠는가 / 豈天道之可誣
이에 벗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友曰
하늘과 사람이 감응하는 이치는 / 天人感應之理
삼가 가르침을 들었으나 / 謹聞敎矣
또한 다시 재앙을 막을 방도가 있습니까 / 亦復有弭災之道乎
이에 나는 다시 그 말을 거듭하여 설명하였다 / 余爲之申其說曰
하늘이 재앙을 보여주기 전에는 / 天之示災之前
사람이 반드시 재앙을 부르는 잘못이 있고 / 人必有召災之失
하늘이 재앙을 보인 뒤에는 / 天之示災之後
나라에서 반드시 하늘에 응하는 실제가 있어야 하니 / 國必有應天之實
재앙을 보이는 것은 군주를 사랑하기에 / 示災者乃所以仁愛
먼저 화를 내려 경계를 보이는 것이다 / 故先禍而示警
사람이 만일 스스로 돌이켜서 행실을 닦는다면 / 人苟能自反而修省
재앙을 바꾸어 복과 경사로 만들 수 있다 / 災可轉爲福慶
덕이 있는 정사로 상곡을 마르게 하여/ 枯桑穀於德政
상 나라 고종(高宗)의 영원한 천명을 이루었고 / 致商宗之永籙
좋은 말로 형혹을 물러가게 하여/ 退熒惑於善言
송 나라 임금의 패업을 이룩하였으니 / 立宋侯之覇業
화와 복은 실로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 禍福實自人召
하늘이 어찌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겠는가 / 天何愛惡於人哉
나와 같은 자들은 지위가 가르침을 드리고 선언을 올릴 대열에 있지 않으니 / 若余徒者位不在納誨陳善
마땅히 어찌 오늘날의 재앙을 닦겠는가마는 / 當何修於今日之災
다시 천리를 돌이켜서 / 盍復還其天理
한몸의 백일을 밝혀 / 明一身之白日
허물이 있을 때에는 모두 보게 하고 / 過也皆見
허물을 고쳤을 때에는 모두 우러르게 해서 / 改也皆仰
광명한 본체로 하여금 / 毋使光明之本體
끝내 식멸하도록 하겠는가 / 終爲之息滅也哉
이에 날짜와 때를 서술하고 문답한 내용을 기록하여 / 於是乎陳日時而記問答
성인이 재앙을 삼가한 기록을 발명하는 바이다 / 發聖人謹災之筆也

[주D-001]손괘와 간괘……이루어지고 : 이들 괘의 상(象)은 가운데가 끊어진 모양이 아래에서 가운데로 다시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주D-002]진괘와 태괘……이루어졌네 : 이들 괘의 상은 가운데가 이어진 모양이 아래에서 가운데로 다시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주D-003]화륜이 청니에 빠지고 : 화륜은 해를 가리키며 청니(靑泥)는 푸른 진흙이란 뜻으로 깊은 진흙 속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4]금오 : 태양의 속에 황금색의 까마귀가 있다 하여 역시 해를 가리킨 것이다.
[주D-005]구법 :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를 가리킨다. 홍범은 《서경》의 편명(篇名)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이란 뜻이며, 구주는 아홉 가지 무리란 뜻으로 옛날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거북이가 나왔는데 그 등에 1에서 9까지의 점이 그려져 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것을 보고 홍범 구주를 만들었다 하는데, 첫번째는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오행(五行)이고, 두 번째는 모(貌)·언(言)·시(視)·청(廳)·사(思)의 오사(五事)이며, 세 번째는 식(食)·화(貨)·사(祀)·사공(司空)·사도(司徒)·사구(司寇)·빈(賓)·사(師)의 팔정(八政)이고, 네 번째는 세(歲)·월(月)·일(日)·성신(星辰)·역수(曆數)의 오기(五紀)이며, 다섯 번째는 황극(皇極)이고, 여섯 번째는 정직(正直)·강극(剛克)·유극(柔克)의 삼덕(三德)이며, 일곱 번째는 우(雨)·제(霽)·몽(蒙)·역(驛)·극(克)·정(貞)·회(悔)의 계의(稽疑)이고, 여덟 번째는 우(雨)·양(暘)·욱(燠)·한(寒)·풍(風)·시(時)의 서징(庶徵)이며, 아홉 번째는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의 오복(五福)과 흉단절(凶短折)·병(病)·우(憂)·빈(貧)·악(惡)·약(弱)의 육극(六極)이다.
[주D-006]종주(宗周) : 주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데, 처음에는 호경(鎬京)이었으나 평왕(平王)이 천도(遷都)한 뒤에는 낙읍(洛邑)으로 바뀌었다.
[주D-007]덕이 있는……마르게 하여 : 상곡(桑穀)은 뽕나무와 닥나무이며, 고종은 상(商) 나라의 임금인 무정(武丁)의 묘호(廟號)이다. 옛날 상 나라의 조정에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나와 자랐으므로 이것을 큰 변괴라 하였는데 무정이 두려워하여 덕을 닦자, 이들 나무가 말라죽고 상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한다. 《史記 殷本紀》
[주D-008]좋은 말로 형혹을 물러가게 하여 : 형혹(熒惑)은 별 이름으로 화성(火星)의 별칭인데 이 별이 나타나면 재난이 뒤따른다 한다. 춘추(春秋) 시대에 송(宋) 나라의 분야(分野)에 해당하는 곳에 형혹성이 나타났으므로 송 나라의 군주인 경공(景公)은 이를 크게 걱정하였다. 천문을 담당한 자위(子韋)라는 자가 “정승에게 재앙을 돌리자.”고 하였으나 경공은 “정승은 나의 고굉(股肱)이다.” 하고 거절하였으며, “백성에게 돌리자.”고 하였으나 “군주는 백성이 있어야 한다.” 하고 거절하였으며, “연사(年事)에 돌리자.”고 하였으나 “연사가 흉년이 들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니, 내가 어떻게 군주 노릇을 하겠는가.” 하고 거절하였다. 이에 자위는 “군주께서 군주다운 말씀을 세 번 하셨으니, 반드시 형혹성이 옮겨갈 것입니다.” 하였는데, 과연 1도(度)를 옮겨갔다 한다. 《史記 宋世家》

여헌선생문집 제1권_

부(賦)_

만활당부(萬活堂賦)병서

 

내가 일찍이 《중용(中庸)》의 비은장(費隱章)을 보니,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시(詩)를 인용하고 “상하(上下)의 이치가 잘 드러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는데, 정자(程子)는 “자사(子思)가 사람을 위해 긴요하게 깨우친 것으로 활발발(活潑潑 생동감이 넘침)한 부분이다.” 하였다. 이른바 ‘활발발’이란 것은 바로 일본만수(一本萬殊 근본은 하나인데 만 가지로 달라짐)가 유동하고 충만하여 저절로 없을 수 없고 저절로 그칠 수 없어서 빈 틈이 없고 정체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치가 우주 사이에 있는 것은 어느 물건인들 그렇지 않으며 어느 때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시인(詩人)이 다만 한때에 본 것이 위에는 높이 날아 하늘에 이르는 솔개가 있고, 아래에는 깊은 못에서 뛰노는 물고기가 있었다. 그러므로 솔개와 물고기를 취하여 말한 것이니, 위에 있는 것이 어찌 홀로 솔개뿐이며, 아래에 있는 것이 어찌 홀로 물고기뿐이겠는가. 또 어찌 혈기(血氣)가 있는 동물의 무리만이 이 이치를 얻었겠는가. 모든 날짐승과 물 속에 잠겨 있는 종류와 모든 동물과 식물이 다 그것이다. 또 어찌 다만 만물의 무리뿐이겠는가. 하늘에 나타나 삼광(三光)이 되고 땅에 나타나 오악(五嶽)과 사독(四瀆)이 되며, 천지 사이에 유행하여 추위와 더위, 낮과 밤, 바람과 구름, 우레와 비가 된 것 또한 모두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활발발’하다는 것은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이 모두 다 그것이니, 다만 사람이 그 이치를 살피지 못할 뿐이다. 사람이 이 이치를 살피지 못하는 까닭은 딴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요, 스스로 형기(形氣)의 작은 것에 구애되어 이기(理氣)의 큰 것을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공적(空寂)에 두고 도(道)를 허무(虛無)한 것으로 여겨서이니 이러한 자들은 내 마음이 실로 천지 만물과 서로 유통하여 천지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마음 속에 갖추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 이미 스스로 활물(活物)이 되지 못하니, 또 어찌 우주에 가득한 것이 모두 활발발한 이치임을 알겠는가.
내 이제 궁벽하게 산재(山齋)에 거처하여 이 몸이 비록 흙덩이와 같은 한 물건에 불과하나 그 마음은 진실하여 이치가 통하지 않음이 없고 사물이 포괄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당(堂)의 이름을 ‘만활’이라 하여 스스로 살피는 자리로 삼는 바이다.
만일 이 도가 천지에 있는 것이 이와 같음을 안다면 내 몸에 있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밖에 있는 사물의 활발한 이치를 인식하여 자신에게 있는 활발한 이치를 알고, 자신에게 있는 활발한 이치를 체행하여 밖에 있는 사물의 이치를 징험하여 정(靜)할 때에 동(動)의 이치를 간직하고, 동할 때에 정(靜)의 용(用)을 행하여, 정하더라도 허무에 빠지지 않고 동하더라도 정욕에 흐르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거의 편벽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과(過)하지 않고 불급(不及)하지 않아, 위로 올라갈 수 있고 아래로 내려올 수 있으며, 행할 수 있고 그칠 수 있어, 중용(中庸)의 도가 여기에 있게 될 것이다. 다만 노쇠하고 어두운 자가 과연 이것을 잘할 지 알 수 없다. 마침내 다음과 같은 사(辭)를 짓는다.

가장 영특한 우리 인간은 / 最靈吾人
혈기를 얻어 몸을 소유하니 / 得血氣而有身
생명이 없는 마른 나무가 아니며 / 非枯木之無生
알고 깨달아 마음을 쓰니 / 能知覺而爲心
어찌 감정이 없는 꺼져버린 재이겠는가 / 豈死灰之無情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것은 모두가 하늘이요 / 戴無往而非天
발로 밟고 있는 것은 가는 곳마다 땅이라오 / 履無適而非地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가 물건이요 / 目無觸而非物
손으로 하는 것은 모두가 일이라오 / 手無爲而非事
오직 있는 곳마다 다 이치이니 / 惟在在焉皆理
이 때문에 보는 것마다 모두 활발하다오 / 故見見其都活
고요히 봄에 더욱 징험할 수 있으니 / 益可驗於靜觀
당호를 이것으로 걸어놓았네 / 堂用是而揭目
위와 아래에 드러난 것 살펴보니 / 察夫上下察者
바위는 어이하여 항상 서 있으며 / 巖何爲而常立
시냇물은 어이하여 쉬지 않고 흐르는가 / 澗何爲而不息
산은 어찌하여 높고 낮으며 / 山何爲而高低
골짝은 어찌하여 종횡으로 있는가 / 壑何爲而橫直
숲의 나무는 그 누가 꽃피고 시들게 하며 / 林孰使之榮枯
새는 그 누가 날고 멈추게 하는가 / 鳥孰使之飛止
바람은 무슨 마음으로 오고 가며 / 風何心而往來
구름은 무슨 정으로 없어졌다 일어나나 / 雲何情而滅起
소나무는 바위 모서리에 천년 동안 우뚝하고 / 松千歲於巖角
버섯은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없어지네 / 菌朝生而不夕
만일 태극이 법이 되지 않는다면 / 苟非太極之爲極
어찌 물건마다 각기 형체와 색깔을 간직하고 있을까 / 烏能物物兮各形其形各色其色
봄이면 사방에 비단 병풍 둘러쳐서 / 若乃爛錦屛於四圍
조화의 오묘함 다 펼치며 / 敷化工之妙蘊
여름이면 우레소리 구름 속에 일어나 / 虩驚雷於屯雲
온갖 물건 다투어 분발하게 하네 / 沛百彙之競奮
가을이면 시원한 바람 창문으로 들어와 / 爽涼颷之入牖
옥처럼 깨끗한 집 고요하고 넓다오 / 已玉宇之寥廓
겨울이면 골짝이 아득하여 / 恍洞天之迷茫
소나무 우뚝한 산에 눈발이 날리누나 / 見松崖之騰六
달은 겨우 차면 반드시 이지러지며 / 月纔盈而必虧
해는 남쪽으로 가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오지 / 日旣南而復北
어찌하여 한 이치가 운행하여 / 夫何一理之宰運
갖가지 변화가 차례로 일어나나 / 紛萬變之迭作
산중이라 이미 그윽하니 / 山中旣云幽邃
당은 절로 조용하네 / 堂自爲之闃寂
우두커니 책상 대해 한 해를 보내니 / 塊對案而窮年
사물을 관찰하는 요부인 듯 / 剩堯夫之觀物
귀신의 훌륭한 일을 탐구하며 / 探鬼神之能事
조화의 기이한 자취 찾아보네 / 翫造化之奇迹
떳떳한 이치를 말하면 / 以言其常兮
만고를 지나도 어제와 같이 변함 없고 / 歷萬古而如昨
변하는 이치를 말하면 / 以言其變兮
비록 하루도 측량하기 어려워라 / 雖一日而莫測
각기 다른 입장에서 관찰하면 / 自其異者而觀之
크고 작은 것이 종류로 나누어지고 / 幾巨細之類族
모두 같은 입장에서 관찰하면 / 自其同者而觀之
어느 것인들 하늘의 법칙 아니겠나 / 孰非性夫天則
소이연의 묘한 이치 발견하니 / 見得及乎所以然之妙兮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뛴다오 / 手舞足蹈之不覺
주인옹은 배고프면 산나물 먹고 / 主人翁飢喫山蔬
목마르면 차가운 샘물 마시며 / 渴飮泉寒
낮에는 서책을 대하고 / 晝伴黃卷
밤이면 여울물소리 듣는다오 / 夜聽嗚湍
한가로운 가운데 예와 지금 하나로 보고 / 一今古於閒中
고요한 속에 건곤의 이치 생각하니 / 心乾坤於靜裏
도는 이미 형체의 밖을 통하고 / 道已通於形外
생각 또한 사물의 시초 연구하네 / 思亦窮乎物始
삼재(三才)에 참여하는 사업 거두어 / 卷參三之事業
한 방의 도서(圖書)에 부쳐두며 / 付一室之佔畢
만 가지를 꿰뚫는 도리 모아 / 會貫萬之道理
마음 속에 홀로 즐거워하니 / 爲方寸之獨樂
궁벽한 산속 한 초가집에 앉고 누워서 / 夫孰知窮山裏一茅堂坐臥
천지 만물과 서로 유통하여 / 有可以與天地萬物相爲流通
항상 너르고 충만함 알겠는가 / 恒浩浩而洋洋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 到此地頭
나의 집이 천지인가 / 吾堂爲天地耶
천지가 나의 집인가 / 天地爲吾堂耶
만물이 나인가 / 萬物爲我耶
내가 만물인가 / 我爲萬物耶
금일이 태고인가 / 今日爲太古耶
태고가 금일인가 알 수 없네 / 太古爲今日耶
형체가 크고 작음으로 나뉘고 / 形分大小
바탕이 저것과 이것으로 나뉘며 / 質分彼此
때가 앞뒤로 나뉘는 것을 / 時分前後者
수(殊)라고 이르니 / 殊之謂兮
하늘과 땅은 각자 하늘과 땅이요 / 天地自天地
나의 집 역시 나의 집이라 / 吾堂自吾堂
나는 나이고 물건은 물건이며 / 我自我物自物
지금은 지금이고 옛날은 옛날이라오 / 今自今古自古也
크고 작은 것이 모두 한 이치이고 / 大小皆此理
저것과 이것이 모두 한 이치이며 / 彼此皆此理
앞과 뒤가 모두 한 이치인 것을 / 前後皆此理者
일(一)이라고 이르니 / 一之謂兮
나의 집이 바로 천지이고 / 吾堂而天地
나의 몸이 바로 만물이며 / 吾身而萬物
금일이 바로 태고라오 / 今日而太古也
이는 여헌 노인(旅軒老人)이 이 집에 임시 주인이 되고 / 此旅翁之假主乎玆堂
‘만활’을 취해 깊은 뜻을 두어 / 取萬活爲其契活
일찍이 스스로 가난함을 모르는 이유라오 / 曾不自知其貧寠者也
다음과 같이 명한다 / 銘曰
천지의 큰 덕은 물건을 낳는 것이며 / 天地之大德曰生
낳는 이치가 유행함을 ‘활(活)’이라 하네 / 生之理流行曰活
이 이치는 하루만 유행하지 않으면 / 此理一日不流行
천지가 천지가 되지 못하니 / 天地不能爲天地
하물며 만물이 만물이 될 수 있겠는가 / 萬物況得爲萬物
그렇다면 이 천지의 가운데에 서서 / 然則立此天地之中
이 만물의 우두머리가 되어 / 首此萬物之上
이 이치 알고 체행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 盍思有以體會夫此理
체행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 體之伊何
경(敬) 한 가지 뿐이라오 / 曰敬而已
풀어놓으면 육합에 가득하고 / 放之則彌六合
거두면 은밀한 이치에 감추어짐은 / 卷之則退藏於密者
한 경으로 말미암아 공부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니 / 由一敬之終始
하루라도 공경하지 않으면 / 一日不敬
하룻동안 마음이 죽게 되고 / 心死一日
한 시각이라도 공경하지 않으면 / 一刻不敬
한 시각 동안 마음이 죽으니 / 心死一刻
마음이 죽으면 / 其心死兮
낳는 이치가 종식되는 법 / 生之理息
주인은 부디 노력하여 / 勖哉主人
항상 이 마음 살아 있게 하라 / 常令此心活也

[주D-001]연비어약(鳶飛魚躍)의 시(詩)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는 구절이 있다. 이는 곧 솔개는 위로 하늘에 날고 물고기는 아래로 물 속에서 뛰놀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주D-002]삼광(三光) : 세 가지 빛나는 것으로, 곧 일(日)·월(月)·성신(星辰)을 가리킨다.
[주D-003]오악(五嶽)과 사독(四瀆) : 다섯 가지 큰 산과 네 가지 큰 물을 가리키는데, 중국에서는 동악(東嶽)인 태산(泰山), 서악(西嶽)인 화산(華山), 남악(南嶽)인 곽산(霍山), 북악(北嶽)인 항산(恒山), 중악(中嶽)인 형산(衡山)을 오악이라 하였으며, 양자강(揚子江), 황하(黃河), 회수(淮水), 제수(濟水)를 사독이라 하였다.

 

여헌선생문집 제1권

부(賦)

야은(冶隱)의 대나무에 대한 부(賦)

 

세모가 되어 날씨가 추우니 / 方歲暮而天寒
말라서 떨어지는 모든 식물들 안타깝네 / 憫衆植之枯落
마침내 청려장 짚고 짚신을 신고는 / 遂杖藜而鞋芒
설한풍 속에 금오산 찾았다오 / 訪金烏於風雪
산 언덕에 대나무 있는데 / 爰有竹兮山之阿
푸른 색깔 천고에 일색이네 / 綠千秋兮一色
이것은 야은이 손수 심으신 것으로 / 云是冶隱之手栽
시원한 바람 어제와 똑같다오 / 凛寒風之如昨
선생은 고려의 백이와 숙제라 / 先生麗代之夷齊
수양산의 뛰어난 대나무 전해 오네 / 傳首陽之孤竹
일찍이 가정에서 학문을 익혔고 / 夙種學於鯉庭
행실은 효도에 근본을 세웠다오 / 行立本於孝德
난초 심어놓고 혜초 가꾸며 / 紛滋蘭而樹蕙
국가에 동량이 되려 하였네 / 擬棟樑乎王室
조정에서 잠시 손에 홀을 잡았으나 / 暫手笏於朝端
큰 집이 장차 무너질 것을 알고 / 知大廈之將傾
북풍이 차가움을 인하여/ 因北風之其涼
고향의 큰 소나무 밑으로 돌아왔네 / 歸故山之松欞
세한의 고상한 뜻 흠모하여/ 得歲寒之雅契
기욱의 남은 푸르름 맞이하였네 / 邀淇隩之遺綠
몸소 바위 곁에 심어 / 躬自植乎巖畔
눈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대하게 하였네 / 對雪嶺之松柏
여러 성상을 함께 지내니 / 共星霜兮屢閱
어느덧 아들과 손자들 나열하였네 / 奄兒孫之森列
푸른 뿌리에 얼음이 어니 쇠가 엉겨 있는 듯 / 氷綠根兮凝鐵
푸른 가지에 바람이 부니 옥소리 일어난다오 / 風翠枝兮戛玉
산인의 관과 야인의 복장으로 / 山冠兮野服
푸른 그림자 밑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 幾婆娑於碧影
아침에 보고 저녁에 의지하여 / 朝看兮暮倚
적막 속의 깊은 경치 함께 하네 / 共寂寞之深境
저절로 취미가 서로 부합하니 / 自趣味之相符
어찌 이 사람과 저 물건을 구분하겠나 / 寧此人而彼物
주 나라의 일월이 밝고 은 나라는 망하였는데 / 周家日月兮殷室丘墟
선생은 대나무를 얻고 짝이 있었으며 / 先生得竹而有匹
모든 산에 차가운 서리로 풀들 모두 시들었는데 / 萬山風霜兮百草俱拉
대나무는 선생을 얻고 외롭지 않았네 / 竹得先生而不獨
선생이 대나무를 저버리지 않으니 / 先生不負竹兮
우주에 윤리 강상이 지켜지게 되었고 / 宇宙有綱常
대나무가 선생을 저버리지 않으니 / 竹不負先生兮
천지에 순수히 굳센 기운이 있게 되었네 / 天地有純剛
선생은 떠나가도 대나무는 그대로 있으니 / 先生去兮竹尙在
빛이 더욱 늠름하고 바람이 더욱 시원해라 / 光凛凛兮風颯颯
조물주가 은근히 보호하여 / 得非造物之陰護
외로운 뿌리 끊기지 않게 해서 / 俾孤根而不絶
빼앗기지 않는 곧은 정조 표창하고 / 旌不奪之貞操
우뚝한 큰 절개 드러낸 것이 아니겠는가 / 表特立之大節
그렇지 않다면 충성스러운 혼과 의로운 넋이 / 不然則忠魂兮義魄
차가운 숲과 서릿발의 잎에 의탁하여 / 托寒䕺兮寄霜葉
말세의 쓰러지는 풍속 일깨우고 / 風末俗之委靡
나약한 사람의 모발 곧추 세우는 것이리라 / 竪懦夫之毛髮
내 장차 우거진 나무 베어내고 흙덩이 제거하고 / 吾將芟榛莽而除糞壤
꺾이고 시든 것 거의 붙들어 주리라 / 庶扶植乎摧薾
마침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遂爲之歌曰
어떤 나무인들 식물이 아니겠는가마는 / 何卉非植
선생은 유독 대나무를 좋아하였고 / 先生獨愛竹
어느 곳인들 대나무가 없겠는가마는 / 何地無竹
나는 선생이 심으신 것 좋아한다오 / 我愛先生植
서산의 고사리를 조종(祖宗)으로 하였고/ 祖西山薇蕨
율리의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였네/ 友栗里松菊
천지 사이의 원기에 뿌리하였고 / 根柢於天地間元氣
설한풍 속의 강역에 빛나누나 / 光輝於風雪中疆域
선생이 돌아가신 지 수백 년이 되었건만 / 距先生數百載
아직도 정정히 창벽에 의지함 보겠으니 / 猶見亭亭倚蒼壁
생각을 붙일 곳 없다고 말하지 마오 / 毋曰寓思之無地
바로 이 대나무가 있지 않소 / 有此竹

[주D-001]북풍이 차가움을 인하여 : 《시경(詩經)》 패풍(邶風) 북풍(北風)에 “북풍이 차갑게 불어오며 함박눈이 펑펑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 잡고 함께 길을 가리라.[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携手同行]” 하였는데, 이는 국가에 혼란이 닥쳐오게 되었으므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감을 읊은 시이다. 야은(冶隱) 역시 국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고 고향으로 은둔하였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세한의 고상한 뜻 흠모하여 : 세한은 날씨가 추워지는 것으로 공자(孔子)는 일찍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하여, 난세를 당하여야 군자의 절의(節義)를 볼 수 있음을 비유하였다. 기욱(淇奧)은 기수(淇水)의 벼랑인데 이곳에는 대나무가 잘 자라므로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다.”라고 읊은 내용이 보인다. 여기서는 대나무 역시 소나무와 똑같이 항상 푸르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주D-003]서산의 고사리를……하였고 : 서산은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어 먹었다는 수양산(首陽山)으로, 곧 백이·숙제의 충절(忠節)을 조종(祖宗)으로 삼았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4]율리의 소나무와……벗하였네 : 율리는 진(晉) 나라의 처사(處士)인 도연명(陶淵明)이 은둔한 곳으로, 도연명은 일찍이 소나무와 국화를 좋아하였다. 그가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있다.[三徑就荒 松菊猶存]”고 읊은 내용이 유명하다.

 

 

여헌선생문집 제1권

사(詞)

포은선생(圃隱先生)의 화상(畵像)을 뵙고 지은 사(詞)

 

우주 사이에 오래갈 수 없는 것은 형기이니 / 宇宙間不可久者形氣
사람이 백년을 지나도록 몸을 보존하는 자 그 누구인가 / 人過百年兮孰存其身
그 중에 없어지지 않는 것은 덕의이니 / 而其不可泯者德義
천백 대를 지나도 교화가 사람들에게 남아 있네 / 經千百代兮敎化在人
없어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오래갈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며 / 仰其不可泯者而思其不可久
참 모습과 비슷한 것을 찾으려 하나 무엇을 근거할까 / 髣髴眞容兮曷因
얼마나 다행인가 선생이 돌아가신 지 2백여 년에 / 何幸後先生二百有餘載
오늘날 선생의 모습을 배알하게 되었으니 / 獲拜儀形於今日
아! 도덕과 절의가 우리 나라에 제일인 분이 아니면 / 噫噫非道德節義之其一人於吾東者
사람들로 하여금 유상을 보고 감격하며 기뻐하기를 이처럼 지극하게 할까 / 令人覩遺像而感激欣幸乃至此極
하늘이 선생을 말세에 탄생한 것은 아마도 뜻이 있어서일 것이니 / 天之生先生於叔季之時蓋亦有意夫
옛날 단군과 기자 이후에 일찍이 베풀어지지 못한 문교가 / 前乎檀箕以下未曾宣擧之文敎
선생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떨쳐 일어나게 되었고 / 其生也而振起
그후 우리 나라 만만세에 변할 수 없는 윤리 강상이 / 後乎東方萬萬世不可易之綱常
선생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붙들어 유지되었네 / 其歿也而扶植
이는 간직하고 있는 도덕과 / 是其所抱負之道德
성취한 사업이 / 所成就之事業
일월을 빛나게 하고 산하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네 / 有以光日月而奠山河
이것은 화려한 문장과 지엽적인 재주가 있어 유자(儒者)라 이르고 / 固非葩藻末藝而謂之儒
한 세상에 공로가 있어 충신이라 이르는 자가 / 勳勞一世而謂之忠者
만분의 일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오 / 所可得擬其萬一
지금 천지간에 서서 삼재(三才)에 참여하여 둥근 머리와 네모진 발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이 / 至今吾人之立天地參三而圓頭方足者
집안에서 부자간의 사랑을 다하고 / 得父子於有家
나라에서 군신간의 의리를 다하는 것이 / 能君臣於有邦者
그 누구의 은혜인가 / 其誰之賜乎
이 모두 선생의 한 몸이 천고의 뒤와 만년의 앞에 있었던 때문이 아니겠는가 / 此莫非賴先生一身於前千古之後後萬祀之前也哉
돌아보건대 나는 남은 교화 가운데의 후학으로서 / 顧我遺敎餘化中末學
선생의 모습 한번 뵙기를 원하다가 / 願一接形貌而不可得者
이제 비로소 소원을 이루게 되었네 / 乃今斯得焉
삼가 향불을 피우고 배알하니 / 敬焚香而展謁
엄숙한 영령이 완연하시네 / 儼精爽之宛然
형상할 수 있는 것에 나아가 / 就其所可像
형상할 수 없는 것을 알고 / 有以認夫所未像
볼 수 있는 것을 인하여 / 因其所得覿
볼 수 없는 것을 안다오 / 有以會夫所莫覿
거슬러 당시를 멀리 상상하니 / 溯遐想於當日
구천(九泉)에서 다시 나오신 듯하네 / 擬九原之有作
타고난 천품이 본래 순수하고 아름다우니 / 得於稟受本自粹美者
그의 자질 과연 빼어난 풍격이었으며 / 其資質果是秀拔之風格
스승의 가르침 받지 않고 정밀하고 심오한 진리 터득하니 / 不由師傅獨得精深者
그의 학문 그대로 덕스러운 모양 보존하였네 / 其學問猶存睟盎之容色
횡설수설이 모두 의리에 합당하니 / 橫說竪說之義理皆當
근원이 어디로부터 나왔기에 이처럼 무궁하며 / 出何從而無窮
좌우로 수응함에 모든 일이 다 적합하니 / 左酬右應之庶務咸適
기틀이 어디로부터 나왔기에 사방으로 통하는가 / 機何自而傍通
만리 아득히 막힌 중국의 궁궐에서 황제를 감동시키니 / 動冕旒於萬里逈阻之天闕
그 성의 신명에게 질정할 수 있고 / 質神明之誠意
높은 파도가 출몰하는 해뜨는 지역에서 왜적들을 감화시키니 / 孚犬羊於層波出沒之日域
그 신의 금석을 통할 수 있었네 / 開金石之信義
털끝처럼 은미하며 깊고 숨은 사이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살피지 못하는 것을 살핀 것은 / 幾人之所不能幾燭人之所不能燭於毫釐之微幽隱之間者
물처럼 맑고 거울처럼 밝은 통찰력이 아니겠는가 / 非水鏡之眼力耶
어려운 상황과 위태로운 즈음에서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고 남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한 것은 / 夯人之所不能夯當人之所不能當於顚沛之頃危亡之際者
철석과 같은 의지력이 아니겠는가 / 非鐵石之梁脊耶
아! 사람이 그 누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두터운 땅을 밟지 않겠는가마는 / 嗚呼人孰不戴蒼蒼而履膴膴
선생만이 홀로 천명대로 살았네 / 子獨生死於厥命
사체와 온갖 몸 갖추고 만물에 뛰어나니 / 備四體百骸而首庶物
그 누가 마음 속에 떳떳한 성품과 사물의 법칙 간직하지 않았겠는가마는 / 孰不有秉執之彛則
선생만이 홀로 끝까지 본성대로 하였네 / 子獨終始其所性
몸이 생존해서는 / 身之存也
국가에 기둥과 주춧돌이 되고 / 柱石于國家
묘당에 시귀(蓍龜)가 되고/ 蓍龜于廟堂
사문에 영수가 되었으며 / 領袖于斯文
몸이 죽어서는 / 身之亡也
성난 파도에 돌기둥이 되고 / 砥柱於頹波
백세에 사표가 되고 / 師表於百世
천지(天地) 사이에 원기가 되었다오 / 元氣於兩間
이처럼 남다른 것은 / 唯其所異者
일곱 자의 육신 때문이 아니니 / 非是七尺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 人欲求做人底樣子
한 폭의 화상에서 법을 취하지 않을 수 있는가 / 盍取則於一幅
저 혹시라도 물을 수 없는 가운데 밝힐 수 없는 자취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은 / 彼或致疑乎不可明之迹於不可詰之地者
실로 선생의 도덕을 연구하지 않아서이네 / 是實未究乎其道與德
그렇다면 무엇으로 선생의 마음과 일을 볼 것인가 / 然則當何以見先生之心事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있다오 / 有天地有日月

[주D-001]삼재(三才) : 천(天)·지(地)·인(人)의 세 가지를 가리킨다.
[주D-002]묘당에 시귀(蓍龜)가 되고 : 묘당(廟堂)은 의정부와 같은 높은 부서(部署)를 가리키며, 시귀(蓍龜)는 시초와 거북인데, 모두 옛날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으므로, 국가에 어려운 일이 있을 경우 자문하여 결정하는 대상임을 말한 것이다.

○ 정진(貞震)의 여덟 괘 진괘(震卦)가 하체(下體)에 있으므로 정진이라 하였다.
○ 무망(无妄)진(震)이 아래에 있고 건(乾)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에 우레가 행하여 사물마다 무망(无妄)을 주니, 선왕(先王)이 이를 보고서 성대히 천시(天時)에 순응하여 만물을 기른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하늘의 도는 성실함일 뿐이니, 어찌 망(妄)이 있겠습니까. 왕자(王者)는 천도를 본받으니 망(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망(妄)은 하늘의 이치를 어김을 이르는 바, 성대히 천시에 순응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은 바로 왕자의 무망(无妄)한 대도입니다. 신은 나아가 생각해 보오니, 재앙이 혹 무망의 재앙이 있는바 괘의 육삼(六三)이 이것이며, 재앙이 인간이 일을 잘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무망이 아닌데 혹 무망이라고 핑계하여 재앙을 막고 화를 방비하는 도를 닦지 않는다면 끝내 반드시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재앙을 막고 화를 방비하는 도로 말하면 일마다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동함에 굳세게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 수(隨)진(震)이 아래에 있고 태(兌)가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어두워지면 방 안에 들어가 편안히 쉰다.” 하였다.
신은 공자(孔子)께서 못 가운데에 우레가 있는 상(象)을 취하면서 다만 ‘어두워지면 방 안에 들어가 편안히 쉰다’고만 말씀하셨으니, 때를 따르는 뜻이 크다고 여겨집니다. 괘의 초구(初九)에 ‘맡음이 변함이 있으므로 정(貞)하여 길하다’는 것과 구오(九五)의 ‘선을 따름에 성실하여 길하다’는 것은 곧 따르는 도의 큼이니, 어찌 다만 날이 어두우면 편안히 쉴 뿐이겠습니까. 또 우레가 못 가운데에 있으면 비록 날이 어두워 편안히 쉬고 있을 때라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뜻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서합(噬嗑)진(震)이 아래에 있고 이(離)가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번개와 우레가 서합(噬嗑)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형벌을 분명히 하고 법을 삼간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이 괘는 구사(九四) 한 효(爻)가 초구(初九)와 상구(上九)의 사이에서 버티고 있으니, 이는 턱 가운데에 물건이 끼어 있는 상(象)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을 깨물어서 제거한 뒤에야 합하니, 합(嗑)은 합하는 것입니다. 무릇 중간에 있으면서 버티고 있는 물건은 어느 곳이든 없을 수 없으니, 마음에 있어서는 사욕이고 조정에 있어서는 간흉(姦凶)이고 국가에 있어서는 오랑캐와 적입니다. 만약 혹시라도 이러한 것들이 버티고 방해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일찍 제거하지 않는다면 필경 반드시 큰 재앙이 될 것이니, 서합의 뜻이 큽니다.

○ 진(震)진(震)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거듭 우레가 침이 진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한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변에 대응하는 도리는 실로 공구수성(恐懼修省)의 네 글자 가운데에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집니다. 공구하면 마음이 한결같이 바루어지고 수성하면 일이 한결같이 바루어지니, 마음과 일이 한결같이 바르지 않음이 없으면 사람의 도가 이에 다하게 됩니다. 비록 공구한다 하더라도 공구하는 마음이 혹 해이하면 마음이 한결같이 바르지 못하고, 비록 수성한다 하더라도 수성하는 도가 미진함이 있으면 일이 한결같이 바르지 못하니, 이와 같다면 어찌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체행하여 변고에 대응하는 도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 익(益)진(震)이 아래에 있고 손(巽)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바람과 우레가 익(益)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선(善)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선을 보고 반드시 옮겨가면 천하의 선을 다할 수 있고 허물이 있을 때에 반드시 고치면 한 몸의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선을 보고 옮겨가서 극진히 선함에 이르고 허물을 고쳐서 허물이 없음에 이르면 천하의 유익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습니까.

○ 둔(屯)진(震)이 아래에 있고 감(坎)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구름과 우레가 둔(屯)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경륜(經綸)한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둔(屯)은 초창기라서 혼란하여 질서가 없음을 이르며, 경륜은 바로 법을 세우고 기강을 진열하며 기축(機軸)을 건설하는 사업입니다. 창업(創業)하는 군주는 매양 이러한 형세를 타게 마련이며, 세상이 혹 중간에 쇠하여 조정의 법이 혼란할 때에 만약 난을 평정하고 반정하는 군주가 있어서 중흥(中興)의 업을 거행하게 되면 그 형세가 또한 초창기와 다름이 없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경륜하는 방도를 심상한 공력(功力)으로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창업하는 군주는 자신이 일을 일으키는 초기에 있으므로 분발(奮發)하고 진작(振作)하는 것이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기력이 한창 전일(專一)하지만, 중흥하는 사업은 매양 중간에 쇠한 뒤에 있게 되므로 반드시 비상한 역량(力量)을 발휘한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람의 상정(常情)은 점점 처음만 못하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하루로 말하면 오후에는 온갖 일을 하는 자가 나태한 뜻이 생기지 않을 수 없으며, 한 사람으로 말하면 중년 이후에는 혈기(血氣)가 비로소 쇠하여 편안하려는 욕심이 싹트기 쉬우므로 무릇 나아가 하려는 뜻이 반드시 게을러지니, 이는 심히 두려워할 만한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중흥하는 사업은 그 공력을 배로 하지 않으면 크게 형통하고 바름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 이(頤)진(震)이 아래에 있고 간(艮)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이(頤)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언어를 삼가며 음식을 절제한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턱의 상(象)을 취하여 가르침을 세웠으므로 이 괘를 보고 사용하는 도는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함에 있으니,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함은 모두가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말하고 한 번 음식을 먹는 데에도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기르고 남을 기르는 도(道)가 있으니, 기르는 도를 진실로 모두 바르게 한다면 ‘하늘이 도와주어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自天祐之 吉無不利]’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 복(復)진(震)이 아래에 있고 곤(坤)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이 복(復)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동짓날에 관문(關門)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들이 다니지 않게 하며 임금은 지방을 순시하지 않는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이 복(復)이라면 겨울에도 또한 우레가 없는 것이 아니나 다만 지상(地上)에 나오지 않으므로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선왕이 관문을 닫고 여행자들을 쉬게 하는 까닭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작은 양(陽)을 기르기 위해서이니, 하물며 내 마음에 있는 양덕(陽德)을 보호하고 기르기를 마땅히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공자(孔子)는 말씀하기를 “복괘(復卦)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셨으니, 천지의 마음이란 곧 물건을 낳아주는 마음입니다. 하늘의 명(命)이 심원(深遠)하여 그치지 않으므로 양이 위에서 다하면 반드시 아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물건이 어떻게 낳고 낳아 다함이 없겠습니까. 사람은 이 덕을 간직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천지가 만물을 낳아주는 마음을 체행하는 것은 바로 인군의 도리입니다.그리하여 마땅히 돌아와야 할 기회에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면 천덕(天德)과 왕도(王道)가 저절로 이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괘의 초구(初九)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므로 뉘우치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善)하여 길하다.” 하였으니, 사람이 성인(聖人)이 아니면 누가 허물이 없겠습니까. 안자(顔子)는 아성(亞聖)이었지만 3개월 뒤에는 인(仁)을 떠남이 없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잠시라도 이것을 알면 곧 고쳐서 다시는 이러한 마음이 싹트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 공자를 가리킴)이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고 특별히 허여(許與)하신 것입니다. 아! 허물이 있을 때에 고친다면 재앙을 막고 변고에 응함에 있어서 극진하지 못할까를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 회진(悔震)의 여덟 괘진괘(震卦)가 상체(上體)에 있으므로 회진이라 하였다.

○ 대장(大壯)건(乾)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大壯)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예(禮)가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천하의 건장함은 어찌 강건(剛健)함이 동(動)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강건(剛健)은 바르지 않고서 강건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이 괘에서 상을 취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군자가 과연 예가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서 있는 곳이 천하의 바른 자리이고 행하는 것이 천하의 바른 길이니, 천 가지 간사한 것과 백 가지 요망한 것이 어찌 그 사이에 범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또 계사(繫辭)의 하전(下傳)을 보오니, 성인(聖人)이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상을 취하여 위에 들보가 있고 아래에 기둥이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궁실(宮室)을 만드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장(大壯)의 장(壯)은 어찌 장려(壯麗)함을 이르는 것이겠습니까. 요제(堯帝)가 지붕을 띠로 이고 흙으로 계단을 만든 것과 대우(大禹)가 궁실을 낮게 한 것은 이 괘를 보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오니, 그렇다면 후세에 토목공사에 마음을 쓰는 자들은 또한 이 뜻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 귀매(歸妹)태(兌)가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귀매(歸妹)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끝을 영구히 하고 병폐를 안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괘를 귀매라고 이름한 것은 사귐이 가장 깊은 것이 귀매보다 더함이 없음을 취한 것입니다. 군신간의 사귐과 붕우간의 사귐도 또한 어찌 사귀는 도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귀기를 도리에 맞게 한 뒤에야 끝이 있어 병폐가 없는 것입니다. ‘마침을 영구히 한다’ 하고 ‘병폐를 안다’ 하였으니, 이는 사귀는 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풍(豊) 이(離)가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번개와 우레가 모두 이르는 것이 풍(豊)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옥사(獄事)를 결단하고 형벌을 이룬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풍대(豊大)한 도는 성현(聖賢)의 사업과 왕자(王者)의 사업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이를 이루는 데 있어서 밝음과 동함이 서로 따르지 않는다면 가능하겠습니까. 밝음이 아니면 동함이 갈 곳이 없고 동함이 아니면 밝음을 쓸 곳이 없습니다. 괘의 초구(初九)에 이르기를 “배필의 주인을 만나되 비록 대등하게 하나 허물이 없으니, 가면 가상한 일이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풍성함을 이루는 방도입니다. 신은 살펴보옵건대 옥사와 형벌이 풍대한 세상에 만들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당(唐)·우(虞) 시대에 네 간흉을 주벌하였고, 대우(大禹)는 방풍(防風)을 죽였고, 주공(周公)은 삼감(三監)을 처벌하였으니, 이는 풍대한 세상이 아니었겠습니까. 다만 옥사를 결단하고 형벌을 이루는 도가 밝음과 위엄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성인(聖人)이 이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을 형벌하여 천만 사람이 징계된다면 옥사를 결단함은 바로 천하의 옥사를 결단하는 것이요, 형벌을 이루는 것은 형벌이 없기를 기약하는 것이니, 이 어찌 풍대함을 이루는 중요한 방도가 아니겠습니까. 괘사(卦辭)에 이르기를 “풍(豊)은 형통하니, 왕(王)이 풍성함을 이루는바, 근심이 없게 할진댄 해가 중천(中天)에 있는 것과 같이 하라.” 하였으니, 대개 근심할 만한 것은 해가 중천을 지난 뒤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지나치게 성하여 근심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인(聖人)이 사람에게 보여준 뜻이 깊습니다.

○ 진(震)진(震)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말하기를…….
해설은 정진(貞震)의 아래에 있습니다. 신은 또다시 생각해 보오니 괘(卦)의 정(貞)과 회(悔)가 모두 진(震)이므로 천(洊)이라 하였으니, 천은 거듭한다는 뜻입니다. 하늘이 만물을 진작하여 동하게 하는 것은 진실로 하나에 그치지 않으니, 사람이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하는 것 또한 잠시만 할 뿐이어서는 안 됩니다. 무릇 재앙을 만났을 때에는 공구하고 수성하는 마음을 반드시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니, 하물며 이 벼락의 변고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조화(造化)에 우레가 있는 것과 팔괘에 진(震)이 있는 것과 중괘(重卦)에 거듭 우레가 있는 것은 어찌 도리를 중단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항(恒)손(巽)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우레와 바람이 항(恒)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설 때에 방소를 바꾸지 않는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항(恒)은 변치 않음을 이르니, 천지 사이의 사물이 만약 떳떳한 도를 잃고 변함이 있으면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하늘의 명(命)이 심원(深遠)하여 그치지 않으므로 낳고 낳는 조화가 일찍이 혹시라도 멈추지 않는 것이니,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에 이르기까지 모두 떳떳한 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모두 결실이 있는 것이며, 새 한 마리와 짐승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모두 떳떳한 도가 있기 때문에 때로 새끼치고 기르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인간에 있어 항상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설 때에 방소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편벽되이 하나만을 지키고 고집하여 동(動)하는 자는 언제나 동하고 고요한 자는 언제나 고요함을 말한 것이 아니니, 반드시 동(動)과 정(靜)이 서로 이용되고 굽히고 폄을 때에 맞게 한 뒤에야 항상하는 도가 확립되어서 온갖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괘의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해와 달은 하늘을 얻어 비춤이 오래가고 사시(四時)는 변화하여 이루어짐이 오래가고 성인(聖人)은 도(道)를 영구하게 하여 천하가 교화되어 이루어진다.” 하였으니, 도를 영구하게 하여 천하가 교화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왕자의 사업이 아니겠습니까.

○ 해(解)감(坎)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우레와 비가 일어남이 해(解)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과오가 있는 자를 사면해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 관용을 베푼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서합괘(噬嗑卦)의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형벌을 분명히 하고 법을 삼간다.” 하였고, 풍괘(豊卦)의 상전에 이르기를 “옥사를 결단하고 형벌을 이룬다.” 하였으니, 모두 형벌과 법을 운용함에 엄중히 함을 지극히 하는 것입니다. 해괘(解卦)의 상전에 이르러서는 “과오가 있는 자를 사면하고 죄가 있는 자에게 관용을 베푼다.” 하였으니, 마땅히 엄중히 하여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엄중히 하고, 마땅히 용서하여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용서하여, 분명히 하고 위엄을 보이며 엄중히 하고 용서하는 도가 함께 행해지고 모순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혹시라도 엄중히 함에 편중되어 마땅히 용서하여야 할 것을 용서하지 않고, 용서함에 편중되어 마땅히 엄중히 하여야 할 것을 엄중히 하지 않는다면 모두 중도(中道)를 쓰는 것이 아니오니, 이 어찌 인군이 반드시 신중히 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 소과(小過)간(艮)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산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소과(小過)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서 행실은 공손함을 과(過)하게 하고 상(喪)은 슬픔을 과하게 하고 씀은 검소함을 과하게 한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도는 과하게 하고서 옳은 것이 없으나 오직 행실의 공손함과 상(喪)에 슬퍼함과 씀에 검소함 이 세 가지는 과하게 하여도 마땅합니다. 우레가 산 위에서 일어나도 산은 그대로 있으니, 이는 진실로 공손함이 과한 것이 덕을 감손(減損)함이 없고 슬픔이 과한 것이 효를 감손함이 없고 검소함이 과한 것이 도를 감손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인(聖人)이 소과(小過)의 상(象)을 취하고 세 덕을 들어 조목을 삼았으니, 그 뜻이 깊습니다.

○ 예(豫) 곤(坤)이 아래에 있고 진(震)이 위에 있음.
대상(大象)에 이르기를 “우레가 땅에 나와 분발함이 예(豫)이니, 선왕(先王)이 이를 보고서 풍악을 울려 덕이 있는 분을 높여서 상제(上帝)에게 성대히 올려 조고(祖考)로써 배향한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옵건대, 풍악을 울림은 우레가 위에 있음을 형상한 것이요, 덕이 있는 분을 높임은 곤(坤)이 아래에 있음을 형상한 것입니다. 풍악을 울려 덕이 있는 분을 높이는 것은 제왕의 사업에 있어 조리(條理)를 끝맺음이 됩니다. 만약 높일 만한 덕이 없다면 한갓 풍악을 어찌 굳이 일으킬 것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도가 행해지고 덕이 확립되어 정치가 안정되고 공이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풍악을 울려 높이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종과 북, 관악기(管樂器)와 현악기(絃樂器)만 있을 뿐입니다. 어찌 이것을 덕이 있는 분을 높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엎드려 보오니, 《주역》 가운데에 팔괘의 위에 팔괘를 가(加)하여 위와 아래 두 체(體)를 만든 것이 모두 64괘이온데, 이 64괘를 통합하면 3백 84효(爻)가 됩니다. 성인(聖人)은 괘마다 모두 붙인 말씀이 있고 효마다 모두 붙인 말씀이 있으니, 어느 괘 어느 효의 말씀인들 지극한 교훈이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상언(上言)을 구하는 뜻은 실로 벼락의 변고로 인하여 내리신 것이므로, 신은 다만 진괘(震卦)가 정(貞)이 되고 회(悔)가 된 것 16괘를 모두 취하여 별책(別冊)으로 배열해서 함께 올리는 것입니다.

천지(天地)에는 진(震)의 이치가 있고 《주역》의 괘에서는 우레의 뜻을 상징하였는데, 이는 모두 16괘의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진(震)의 성(性)·정(情)과 도(道)·덕(德)이 포함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오늘날 변고를 초래한 이유가 혹 16괘의 도리에 미진함이 있는 데에서 나온 것임을 어찌 알겠습니까. 또 변고를 구원하는 방도가 또한 16괘의 도리를 수성(修省)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신의 말이 견강부회(牽强附會)함에 가까운 듯하오나 《주역》 가운데의 모든 괘·효에서 말한 도리는 실로 우주 사이의 사물과 응하지 않는 것이 없사오니, 그렇다면 신이 아뢴 것 역시 이치 밖의 말이 아닐 것입니다. 괘를 그은 것과 전문(全文)은 모두 본경(本經)에 있사옵고 정전(程傳)과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 이것을 발명한 것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신은 다만 괘의 이름과 대상(大象)의 글을 취하여 차례로 배열해서 쓰고 대략 신의 사견(私見)을 들어 각 상전(象傳)의 아래에다 진달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과연 본경 가운데 본괘와 본효에 실려있는 도리를 취하여 만기(萬機)의 즈음에 반복하여 체험하신다면 혹 묵묵히 터득하는 바가 있으실 것입니다.

무릇 이 16괘 중에 진(震)이 정(貞)이 된 것은 상체(上體)가 모두 본래의 팔괘(八卦)이고, 진(震)이 회(悔)가 된 것은 그 하체(下體)가 또한 모두 본래의 팔괘입니다. 팔괘에 일찍이 진(震)이 없이 팔괘가 된 것이 없으며, 진(震)이 일찍이 팔괘를 떠나 진이 된 것이 없사오니, 여기서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하는 도리가 일마다 있지 않음이 없고 때마다 그칠 수가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한 가지 일, 한 때인들 혹시라도 그대로 지나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숭정(崇禎) 6년(1633) 10월 일에 전 부호군(前副護軍) 신(臣) 장현광(張顯光)은 취하여 올리옵니다.


[주D-001]당(唐)·우(虞)……삼감(三監)을 처벌 : 네 간흉은 공공(共工)·삼묘(三苗)·환도(驩兜)·곤(鯀)이며 방풍(防風)은 하(夏) 나라 때의 제후로 우왕(禹王)이 회계산(會稽山)에서 제사할 때에 뒤늦게 도착하였다가 우왕에게 살해되었다. 삼감(三監)은 은(殷) 나라를 감독하던 세 사람으로 관숙(管叔)·채숙(蔡叔)·곽숙(霍叔)을 이른다. 무왕(武王)은 은 나라를 멸망한 다음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을 은 나라에 봉하고 이들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였는데 무왕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무경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다가 주공에게 토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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